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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19-01)


깨어진 항아리가 주는 교훈

예레미야 19장 1-13절


우리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을 한두 번 정도는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 의미는 조금도 예상치 못했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엄청난 일을 만났을 때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불순종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경고의 매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매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때려지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께서는 수없이 경고하시고 혼내시고 기다리시다가, 결국 영원히 버려지지 않도록 그들의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사랑의 매를 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진 예루살렘은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항아리를 사서 힌놈의 아들 골짜기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의 장소이며 하나님의 심판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에게 항아리를 깨트려 보여주시면서 예루살렘의 운명을 선명하게 제시합니다.

 

여호와의 실행명령(1-2)

쏟아진 물을 담을 수 없는 것처럼 깨진 옹기를 다시 붙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깨진 옹기 비유를 사용해 유다 백성이 돌이킬 수 없는 패역한 지경에 이르러 재앙이 반드시 임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목을 곧게 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재앙의 심각성을 깨달아 하나님 앞에 겸손한 지혜를 지닌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1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가서 토기장이의 옹기를 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과 2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에서 내가 네게 이른 말을 선포하여(1-2)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이 목을 곧게 하고 예언의 말씀을 듣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다양한 방법으로 회개를 촉구하고 계십니다. 본문에서는 예레미야에게 명하셔서 유다 백성 앞에서 옹기를 깨뜨리며 심판을 선고하게 하십니다. 최후통첩과 같은 메시지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패역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절절한 호소를 들을 수 있습니다.

(1) 옹기 구매(1)

여호와의 명령이 예레미야에게 주어집니다. ‘토기장이의 옹기를 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과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라.’ 여호와께서 가지고 갈 물건과 동행자들과 목적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십니다. ‘옹기’는 진흙을 구워 만든 액체를 담는 병이나 항아리로, 충격이 가해지면 쉽게 조각조각 깨졌습니다. ‘백성의 어른들’은 사회적·정치적 권위를 인정받은 공동체의 어른을, ‘제사장의 어른’은 높은 지위에 속한 제사장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과 여호와의 종교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예레미야와 함께합니다.

(2) 선포 장소(2)

‘하시드 문’은 ‘질그릇 조각 문’으로, 토기장이들이 파손된 토기를 내다 버리던 곳이 문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물을 구하기 쉬운 곳에 토기 공장이 모여 있었기에 기드론 골짜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심판 선고와 그 근거(3-9)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무섭게 벌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이유 없이 벌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렇게 치명적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죄가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지를 잘 알려 줍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저지른 악한 죄가 무서운 재앙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께 심판 받을 만한 행동을 하고 있진 않습니까?

3말하기를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주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그것을 듣는 모든 자의 귀가 떨리니 4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 곳을 불결하게 하며 이 곳에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과 유다 왕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 곳에 채웠음이며 5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령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6그러므로 보라 다시는 이 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죽임의 골짜기라 부르는 날이 이를 것이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7내가 이 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을 무너뜨려 그들로 그 대적 앞과 생명을 찾는 자의 손의 칼에 엎드러지게 하고 그 시체를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되게 하며 8이 성읍으로 놀람과 조롱 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 모든 재앙으로 말미암아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조롱할 것이며 9그들이 그들의 원수와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경에 빠질 때에 내가 그들이 그들의 아들의 살, 딸의 살을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살을 먹게 하리라 하셨다 하고(3-9)

하나님께서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고 선포하십니다. 그곳에서 유다 백성이 바알을 숭배하고,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고, 산당을 건축했을 뿐만 아니라 아들들을 바알에게 불살라 번제로 드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를 낱낱이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못 보시는 것처럼 행할 때가 많습니다.

(1) 재앙 선포(3)

옹기의 표적 행위가 일시적으로 중단되고, 심판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을 징벌하시기로 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결정을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전합니다. 청자로 예레미야와 함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는 자들이 아니라 왕실에 속한 자들과 예루살렘 주민이 등장합니다. 소수 사람이 목격하는 표적 행위(10)와 달리 여호와의 결정은 위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메시지는 청자의 심적 반응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재앙의 혹독함과 철저함을 말합니다. “보라 내가 이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그것을 듣는 모든 자의 귀가 떨리니”(3). 엄청난 재앙이기 때문에 그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귀가 멍멍해집니다.

(2) 재앙 선포의 이유(4-5)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재앙을 내리실 때는 물론 이유가 있었습니다(4-5).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숭배와 폭력으로 예루살렘을 더럽혔기 때문입니다. ‘불결하게 하며’는 ‘낯설게 하며’의 뜻으로, 곧 여호와께서 택하신 예루살렘이 그분께 낯선 곳이 됐습니다. ‘자기와 자기 조상들과 유다 왕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에 채워’ 예루살렘을 여호와의 눈에 이방 도성으로 만들었습니다. 우상숭배와 사회적 폭력은 배교의 두 모습입니다. 여호와를 버린 자들에게 그분 말씀에 순종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살게 하리라”(7:6-7). 이러한 여호와의 권면은 예루살렘에서는 낯선 말이 됐습니다. 우상숭배의 한 예로 어린아이 희생 제사를 고발합니다(참조, 왕하 16:3; 21:6; 23:10). 이는 특별한 경우에 행해지던 예외적 제사였지만, 그 가증스러움 때문에 여기에 언급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바알의 산당을 세우고 제 자식을 불살라 바알에게 번제물로 바쳤습니다. 뒤따르는 ‘이는 내가 명령하거나 말하거나 뜻한바가 아니니라’는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께 드려졌음을 시사합니다(참조. 7:31). 아마도 우상 숭배자들은 바알과 여호와를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바알을 숭배하듯이 여호와를 섬겼던 것 같습니다. 에스겔 23:39 왕정 시대 말기의 예루살렘 사람들이 종교 혼합주의에 얼마나 깊이 빠져있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들이 자녀를죽여 그 우상에게 드린 그 날에 내 성소에 들어와서 더럽혔으되 그들이 내 성전 가운데에서 그렇게 행하였느니라.”

(3) 심판 선포(6-9)

우상숭배에 빠져 제 자식을 번제물로 드리기까지 하는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여호와께서 처참한 죽음의 심판을 선포하십니다(6-9: 7:32-34).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죽임의 골짜기’로 바뀔 것입니다. 축복을 기대하며 제 자식을 제물로 드리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멸망과 죽음의 상징이 됩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도벳에서 가증한 짓을 즐긴 결과로 모두 죽임을 당합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예루살렘을 대적의 칼에 넘겨주실 것입니다. 왕궁의 통치자들이 이방 민족의 침략을 대비하여 병력을 강화하고 주변 나라들과 동맹을 맺으며 나름대로의 대비책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이들의 대적이 되셨기에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파멸과 죽음은 전면적이고 치명적이어서 유다와 예루살렘에게는 최소한의 미래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수많은 시체가 매장되지 못하고 들판에 버려져 들짐승의 밥이 됩니다. 폐허가 된 예루살렘은 놀람과 ‘웃음거리’(휘파람)가 됩니다. 주변을 지나는 자들은 모두 처참하게 두들겨 맞은 예루살렘을 보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그들을 조롱하기도 합니다. 9절은 시간을 되돌려 포위당한 예루살렘 성의 절망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먹을 것이 바닥나자 굶주림에 눈먼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먹습니다(참조, 레 26:27-31; 왕하 6:24-31; 겔 5:8-10). 현재의 문맥에서는 5절과 연결됩니다. 제 아들들을 바알에게 불살라 번제물로 드렸기에, 적들이 성을 포위했을 때 예루살렘 사람들은 굶주림에 사로잡혀 제 아들의 살과 딸의 살과 이웃의 살을 먹어야 합니다.

 

표적 행위와 그 해석(10-13)

하나님께서 심판을 앞둔 유다 백성에게 선지자를 통해 반복해서 그들의 죄와 심판을 말씀하시는 것은 그들이 죄를 깨닫고 거룩한 길로 다시 돌이키기를 바라시는 사랑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비해 엎드려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10너는 함께 가는 자의 목전에서 그 옹기를 깨뜨리고 11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읍을 무너뜨리리니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하리라 12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이 곳과 그 가운데 주민에게 이같이 행하여 이 성읍으로 도벳 같게 할 것이라 13예루살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이 그 집 위에서 하늘의 만상에 분향하고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더러워졌은즉 도벳 땅처럼 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10-13)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조롱거리가 되게 하리라고 선포하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당한 예루살렘을 보면서 놀라고 조롱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살면 결국에는 조롱거리로 전략할 수밖에 없습니다.

(1) 옹기를 깨뜨림(10)

10절은 1-2a절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에게 두 번째 명령이 주어집니다. ‘너는 함께 가는 자의 목전에서 그 옹기를 깨뜨려라.’ 첫 번째 명령의 경우에서처럼 여기서도 명령의 이행에 관해서는 달리 보고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명령에 따라 함께 간 사람들 앞에서 옹기를 깨뜨렸음을 전제합니다. 뒤이어 여호와께서 표적 행위를 해석해주시며, 함께 간 자들에게 말하게 하십니다. 현재의 문맥에 따르면 해석의 말씀뿐만 아니라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선포했던 말씀도 예레미야와 동행한 자들에게만 알려집니다. 따라서 성으로 돌아온 예레미야는 성전 뜰에서 이를 다시 ‘모든 백성’에게 선포합니다(14-15).

(2) 완전한 멸망(11-13)

표적 행위의 해석은 분명하면서도 엄중합니다.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읍을 무너뜨리리라”(11a).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바닥에 떨어져 부서진 옹기처럼 부수실 것입니다. 조각난 옹기의 수리가 불가능하다면, 여호와께서 부수시는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회복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합니다. 예루살렘의 완전한 멸망이 도벳의 모티브를 활용해 비유적으로 기술됩니다(11b-13). 예루살렘 주민들이 제 자식들을 불살라 번제물로 바쳤던 도벳이 매장지가 됩니다. 묘지가 부족해 제의 장소인 도벳에도 매장해야 할 만큼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게 됩니다. 매장지로 바뀌는 도벳은 우상이 생명 없는 시체에 불과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생명이 없는 우상을 섬긴 대가로 그들은 생명을 잃습니다. 여호와의 심판은 물론 도벳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이 시체로 더럽혀져 공동묘지가 된 도벳처럼 됩니다. 13절은 예루살렘이 도벳처럼 되는 이유를 보여줍니다. 성 밖 도벳에서는 제 자식을 번제물로 불살라 드렸고, 성안에서는 하늘의 만상에 향을 사르고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었습니다. 성 밖이나 안이나 온통 우상들로 가득했습니다. 천체 숭배의 주체로 나오는 ‘예루살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은 숭배의 장소와 관련한 표현입니다(참조․ 32:29; 습 1:5). 천체 숭배는 주로 밤에 평평하게 만든 지붕 위에서 거행됐습니다. ‘하늘의 만상’은 의미론적으로 ‘만군의 여호와’에 연결됩니다. ‘만군’과 ‘만상’은 각각 ‘군대’를 의미하는 ‘차바’의 명사 복수와 단수 형태에 해당합니다. 만군의 여호와를 섬겨야 할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왕들이 황당하게도 여호와께서 당신의 군대로 창조한 별들을 섬겼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이 죄에서 떠나서 않아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멸망당하리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심히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그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많은 사람이 거부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그 복음에 생명의 길이 있기에 쉬지 말고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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