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04-04)

기적을 넘어서는 말씀의 능력
요한복음 4장 43-54절
현대 그리스도인은 눈에 보이는 증거보다 믿음을 우선시해야 함을 배워야 합니다. 삶의 문제 앞에서 인간적인 방법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믿음은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실제 행동과 결단으로 이어져야 참된 열매를 맺습니다. 작은 믿음의 시작이 더 큰 변화와 기적을 경험하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신뢰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삶의 회복과 생명의 능력을 누릴 수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시자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환영했습니다. 가버나움의 한 왕의 신하가 병든 아들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보아야만 믿는 사람들의 태도를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나 신하는 간절히 부탁했고, 예수님은 “네 아들이 살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돌아간 신하는 아들이 살아난 것을 확인하고 가족 모두가 믿게 되었습니다.
표적만을 쫓는 갈릴리 사람들(43-50)
현대인들은 종종 눈앞에 보이는 현상이나 단편적인 결과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마치 어떤 현상이 주는 즉각적인 만족감이나 외적인 성과만을 쫓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외적인 ‘표적’이 아닌, 그 안에 담긴 본질적인 가치와 더 깊은 의미를 탐구하는 자세입니다. 진정한 만족과 성장 또한 외부의 피상적인 성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성찰과 주체적인 삶의 목적 설정을 통해 얻어지는 법입니다. 따라서 일시적인 유행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에 휩쓸리지 않고, 삶의 진정한 방향성과 의미를 스스로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43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44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45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46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43-50)
예수님께서는 유대에서 니고데모를 만나신 후 예루살렘을 다녀오시고, 이어서 사마리아 지역으로 향하셨습니다. 사마리아에는 ‘희어져 추수할 밭’처럼, 주님을 기다리던 사마리아 여인과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당시 유대인들처럼 요단강 동쪽 길을 택해 고향 갈릴리로 올라가셨거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편견을 보이셨다면,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었을 것이며,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신 사건(요한복음 4:4)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에 이틀을 머무시며 말씀을 가르치셨고, 그 결과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며 놀라운 영적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1) 갈릴리 귀환을 앞둔 예수님(43-44)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에서 이틀간 머무신 후 갈릴리로 향하셨습니다. 갈릴리는 예수님께서 유년 시절을 보내신 곳으로,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어떤 대우를 받게 되실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이에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44). 갈릴리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잘 아셨던 것입니다. 공관복음에서는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하여 기적을 행하지 못하신 장면으로 나타나지만(마태복음 13:53-58), 본문에서는 아직 그러한 직접적인 거부는 없었고, 다만 주님께서 장차 일어날 일을 내다보시며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특히 이 말씀은 바로 직전 사마리아에서 환대받았던 상황과 매우 대조됩니다. 유대인들이 천하게 여기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기꺼이 환영했지만, 정작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주님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점을 통해, 참된 믿음은 출신 성분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반응으로 결정됨을 보여줍니다.
(2) 갈릴리 사람의 예수님 영접(45)
본문은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앞서 예수님께서는 고향에서 영접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이들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들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도 표적 자체는 인정했으나, 그들의 반응이 온전한 믿음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표적을 대하는 태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표적이 의미하는 바, 즉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깨닫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표적 자체에 열광하며 이를 통해 개인적인 이득을 얻는 데만 관심을 두는 것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의 환대는 후자에 속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기대하셨던 믿음의 반응이 아니었으며, 그들은 언제든 예수님을 거부할 수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여기서도 예수님에 대한 갈릴리 사람들의 오해라는 주제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3) 왕의 신하의 아들 치유 요청(46-50)
예수님께서 드디어 갈릴리에 도착하셨고, 사람들은 다시 오신 주님을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그 환영은 예수님을 자신을 구원해 주실 메시아로 영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예루살렘에서 크게 출세하여 고향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한 갈릴리 사람을 환영하듯, 그들은 예수님께서 또 다른 표적을 행하실지 모른다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이곳이 갈릴리 가나임을 굳이 다시 상기시켜 줍니다. 이는 가나에서 행하신 기적(2:1-12)과 예루살렘에서 성전을 정화하신 일(2:13-22), 그리고 기적들을 일으키신 사건들(2:23)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렇게 재차 상기시키는 이유는 이 단락이 2장부터 이어지는 큰 문맥의 연장선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도래하는 새 시대라는 메시지를 마무리하는 기적이 일어날 것임을 의미합니다. 이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을 통해 예수님의 도래한 메시지를 왕의 신하들이 이해할 때, 왕의 신하 아이 또한 죽음에서 삶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암시합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 기적인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던 갈릴리 가나를 다시 방문하셨을 때, 그곳에서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왕의 신하였습니다(46). 그는 병들어 죽음의 문턱에 이른 아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왕의 신하였기에 인간적으로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예수님께 나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헤롯 안티파스의 신하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신하를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갈릴리 가나에서 약 40km 떨어진 자신의 집이 있는 가버나움에서 직접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라고 간절히 요청합니다. 이는 수로보니게 여인이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요청한 것과 예수님께서 거절하시는 형식이 비슷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하게 개인적인 필요를 위해서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 아님을 분명히 하십니다. 기적과 기사는 궁극적인 어떤 목표를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거절은 예수님의 주권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필요, 땅의 일, 땅의 때에 따라 움직이는 분이 아니라, 하늘의 뜻과 하늘의 때에 따라서만 움직이시는 분이십니다. 겉으로는 동일한 행동처럼 보일지라도, 그 행하시는 의도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왕의 신하는 끈질기게 요청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명확히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예수님께서 그의 아들의 병을 고쳐줄 능력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믿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왕의 신하에게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50). 왕의 신하의 입장에서는 순간 기분이 좋지 않았거나 갈등이 일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의지하는 사람은 믿고 순종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불신앙의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믿고 순종했습니다. 성경은 그가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라고 기록합니다(50). 그는 즉시 믿고 즉시 돌이켜 자신의 아들이 있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앙에 따라 행동했으며, 이는 순종과 실천이 없는 신앙은 결코 진정한 신앙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표적을 넘어선 왕의 신하(51-54)
현대 사회는 피상적인 성과에 집착하기 쉽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그 이면의 본질적인 가치를 탐구하는 자세입니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약속과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의 신념에 따라 꾸준히 행동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는 일시적인 성공이 아닌 삶의 진정한 목적을 추구하며, 외부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내면의 확신으로 주체적인 삶을 이끌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51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52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54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번째 표적이니라(51-54)
신앙과 순종은 예수님의 약속과 도우심을 받는 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멀리서도 치유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기록된 왕의 신하의 아들 치유 기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시공을 초월한 신성을 가진 분임을 나타내는 중요한 표적입니다. 이 기적은 표적 자체를 보고 믿음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믿었기 때문에 일어난 역사임을 강조합니다.
(1) 왕의 신하 아들의 치유(51-52)
예수님께서는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는 왕의 신하의 간청에 꾸짖지 않으시고, “아이가 살아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신하는 예수님을 잘 알지 못했고,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찾아왔지만, 예수님은 그의 요구를 들어주셨습니다. 놀랍게도 이 신하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통해 막연한 신뢰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아들이 나았다는 소식을 종들을 통해 들었고, 나은 시간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간임을 확인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던 능력이 오늘날에도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왕의 신하는 눈으로 기적을 보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으며, 이는 보지 않고도 믿는 자가 복되다는 요한복음의 핵심 주제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2) 왕의 신하와 가족의 회심(53-54)
왕의 신하는 아들의 치유를 직접 경험한 후, 자신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기에, 예수님의 사역을 면밀히 따져본 후 진정한 믿음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자기와 온 집안이 믿으니라”는 구절은 그와 예수님의 관계가 확고해졌음을 나타냅니다.
요한복음은 이 사건을 통해 표적을 보고서야 믿음을 고백한 것이 부족한 믿음이라고 비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시 많은 사람들이 표적만을 쫓고 진정한 믿음에 이르지 못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이 신하는 결국 참된 믿음에 도달했음을 강조합니다. 왕의 신하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 어떻게 구원과 영원한 삶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실제적인 사례가 됩니다.
참된 믿음은 기적 자체를 쫓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행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적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과 목적지를 가리키는 이정표와 같습니다. 이정표에만 집착하는 것이 어리석듯이, 기적에만 매달리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때로는 우리에게 놀라운 기적을 베푸시지만, 가장 큰 기적은 평범한 일상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매 순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기적으로 가득하기에, 더 이상의 특별한 기적을 구하지 않아도 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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