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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04-03)


추수할 일군을 찾으신 예수님

요한복음 4장 27-42절


 

성도는 일상 속에서 우연처럼 보이는 만남이나 대화 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단순히 자신만을 위한 만족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다른 이들에게 나누고 전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또한 복음은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보편적인 소식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참된 믿음은 단순히 들은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경험하고 확신하는 과정에서 깊어집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방법과 사람들을 통해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며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 본문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지만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가서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증언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와 그분과 함께 머물며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세상의 구주로 믿게 되었습니다.

 

메시야를 증언하는 여인(27-30)

사람들은 때로 주변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먼저 판단하기보다 관찰하고 신뢰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개인의 경험과 깨달음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삶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자신이 배운 진리와 경험을 주저하지 않고 나누는 용기는 공동체 속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결국 진심 어린 나눔과 행동은 다른 이들이 새로운 길을 발견하고 삶의 참된 의미를 깨닫도록 돕습니다.

 

27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28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27-30)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이 바로 메시아임을 밝히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기다리던 ‘타헤비’가 바로 자신임을 알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의 반응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3장에서 등장했던 니고데모와 대조되는데, 가장 능동적으로 반응할 것 같던 니고데모는 침묵한 반면, 가장 깨닫기 어려워 보였던 여인은 깨닫고 믿으며 나아가 제자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⑴ 제자들의 반응(27)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실 때, 동네에 음식을 구하러 갔던 제자들이 돌아왔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여인의 대화를 보고 놀랐고,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당시 유대인 남자가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는 것은 그 문화와 관습상 전혀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자들은 당황하거나 즉각 질문을 던질 수도 있었지만, 아무도 예수님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27)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동안 예수님께서 여러 차례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행동과 가르침을 보여 주셨기에, 제자들이 이번에도 제지하지 않고 지켜보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자들은 단순히 눈앞의 상황만 보고 판단하지 않고, 스승을 존경하며 그분의 뜻을 신뢰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에게 아직 알 수 없는 큰 계획과 깊은 뜻이 있으리라 믿었고, 그 믿음 안에서 의문을 품는 대신 조용히 관찰했습니다. 결국 제자들은 이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으며, 예수님의 행위와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⑵ 사마리아 여인의 반응(28-30)

 

예수님의 제자들이 있는 상황에서는 대화를 계속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여인의 가슴은 뜨거워지고 마음은 점점 다급해졌습니다. 결국 여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물동이를 뒤로한 채 예수님을 떠나 자기 마을로 향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마음이 매우 급했습니다. 그녀는 마을에 들어가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29)라고 외쳤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서 먼저 말해주지 않으셨는데도, 자신이 살아온 모든 과거를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그 과거는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인을 아는 사람들은 그녀가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꾸었던 일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그녀가 얼마나 많은 손가락질과 평가를 받아왔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연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비록 작고 연약할지라도, 예수님은 당신을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신학적 지식이나 탁월함 없이도 사마리아에서 최초의 복음 전도자로 나섰던 것처럼, 우리 역시 예수님을 믿고 전도자가 되기 위해 모든 지식을 완벽히 갖추거나 철저한 학문적 연구를 마칠 필요는 없습니다. 전도자에게 더 중요한 것은 불타는 가슴, 복음에 대한 확신, 영혼을 향한 사랑, 그리고 주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모든 것이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만약 실천적이고 적극적인 복음 증거가 없다면, 우리는 단지 책상 앞에서 사변적인 신학이나 연구에만 머무를 뿐, 실제로 영혼을 살리고 복음을 전하며 좋은 교회를 세우는 일에는 참여하기 어렵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전하신 것에 감동받은 여인은 곧 동네로 들어가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자신의 과거를 모두 아시는 분임을 소개했고, 사실 예수님께서 언급한 것은 남편의 수뿐이었지만, 여인은 약간 과장하여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 분이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그리스도, 메시아임을 증언했습니다. 이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기 위해 동네에서 나왔습니다. 여인은 의문과 궁금증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자신이 아는 만큼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으로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참된 양식(31-38)

진정한 만족과 삶의 에너지는 단순한 육체적 필요를 넘어, 개인이 가치 있다고 믿는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소명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발견됩니다. 중요한 기회는 예측하기 어려운 순간에 다가오므로, 눈앞의 상황을 즉시 파악하고 용기 있게 행동하는 통찰력이 결실을 맺게 합니다. 우리의 노력은 과거의 수고 위에 쌓이고 미래의 열매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연결고리 속에서 의미를 찾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큰 공동의 성취로 이어지며, 이를 통해 우리는 모두가 함께 기뻐하는 풍성한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지혜는 개인의 성장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번영을 이끄는 보편적인 원리입니다.

 

31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32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34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31-38)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참된 양식이 육적인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 말씀하시며, 영혼 구원과 복음 전파의 긴급한 '추수'의 때가 이미 왔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이 복음 사역은 특정인이 아닌 모두의 역할이며, 씨를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기뻐하는 협력의 일임을 일깨워줍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다만 씨를 뿌리고 추수할 뿐, 모든 열매와 영광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인정하며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1) 예수님의 참된 양식(31-34)

 

예수님과 제자들 간의 대화 장면으로 전환되어, 제자들이 예수님께 음식을 드시기를 권합니다(31).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도 제자들에게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32)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던지십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없는 사이에 누군가가 음식을 가져다 드린 것으로 오해하며 문자적으로만 이해했습니다(33).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그런 생각을 아시고,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34)고 자신의 진정한 뜻을 밝히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음식보다, 자신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인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 일을 완성하는 것을 훨씬 더 중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삶은 진정으로 산 것이 아니며 영생을 누린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실상 영적인 양식을 섭취하지 못하여 메말라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예수님께 이러한 영적인 양식은 그의 삶을 이끄는 강력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께서 추구하신 삶의 본질은 하나님의 일을 행하며 그분의 뜻을 온전히 성취하는 것이었고, 이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곧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추구하신 삶의 목표였습니다.

 

(2) 영적인 추수 밭과 제자들의 동역(35-38)

 

사마리아 여인은 주님의 뜻을 행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제자들의 역할은 바로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역을 ‘추수’라고 표현하십니다.

 

사마리아인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시며 예수님은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35)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번에도 영적인 의미로 ‘추수’를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 앞의 영적 밭이 추수할 시기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그 영적인 현실이 명확히 보였습니다. 이제 제자들이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때가 이미 도래한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든, 언제든, 누구에게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희어져 추수할 곡식’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는 반드시 자신이 뿌린 씨앗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뿌린 씨앗이 십 년 후에 다른 곳에서 다른 이들을 통해 결실을 맺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오늘 우리가 거두는 열매는 이미 오래전에 다른 이들이 뿌렸던 씨앗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증거를 통해 많은 이들이 영접하거나, 우리 교회의 성도 수가 많아졌다고 해서 자신이 능력 있는 종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사역을 하고 있지만 교회가 작아서 열매가 없다고 불충한 종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열매가 많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열매가 없다면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면 됩니다. 사람은 단 하나의 씨앗조차 스스로 자라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씨를 뿌리고 추수할 뿐입니다.

 

증인이 된 사마리아 여인(39-42)

익명성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용기는 큰 울림을 줍니다. 우리는 자신의 약점과 과거를 숨기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 얻은 구원의 경험을 당당하게 증언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간증을 넘어, 삶의 변화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설득력이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진솔한 이야기로 다가갈 때, 사람들은 편견을 버리고 우리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결국 삶으로 증명하는 믿음이 가장 강력한 전도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39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하였더라(39-42)

 

사마리아 여인의 진솔한 증언에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께 주목하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마을로 초청했고, 예수님께서는 이틀간 머무시며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여인의 말뿐 아니라 예수님 말씀을 친히 들은 후 더욱 많은 이가 믿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참으로 세상의 구주’라고 확신 있게 고백했습니다.

 

(1) 여인의 증언으로 시작된 믿음과 초청(39-40)

 

사마리아 여인의 간증 하나만으로도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즉각 반응하며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39). 이 대목만 본다면, 마땅히 그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광이 돌아가야 할 듯합니다. 그러나 이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직접 만난 후, 집중적인 제자 훈련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렇게 말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방식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대했던 바이며, 사마리아 여인은 이미 남성 제자들이 해야 할 그 역할을 실행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제 그녀가 증언한 예수님을 만나자,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듣고 싶어 마을에 머물러주시기를 요청합니다(40). 예수님께서는 원래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는 중이셨지만, 이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곳에 이틀이나 머무시며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친히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2) 직접적인 만남을 통한 확고한 믿음의 고백(41-42)

 

이 본문은 예수님께서 직접 복음을 전하시자, 사마리아 사람들 가운데 믿는 이가 더욱 많아졌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한 여인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그녀의 증언을 통해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으며, 이제 예수님의 직접적인 선교를 통해 더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41). 이제 사마리아인들은 여인의 간접적인 증언에 머무르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으며 그분을 ‘세상의 구주’로 고백합니다. ‘구주’라는 단어는 요한복음에서 오직 이 구절에만 나타나지만, 동일한 어원을 가진 ‘구원하다’는 예수님의 구원 사역과 관련하여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구약에서 ‘세상의 구주’는 하나님을 의미했고, 당시 로마 문화에서는 황제를 지칭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세상의 왕으로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처럼 사마리아 여인의 증언을 들은 사람들은 단순히 그 이야기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직접 예수님을 자신들의 마을로 청하여 이틀 동안 함께 머물면서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고백합니다.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42). 이 말은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다소 서운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말씀의 증인이자 사역자라면, 이러한 장면을 더욱 간절히 기대해야 마땅합니다. 세례 요한이 자신을 인도자에 불과하다고 말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증인의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예수님을 만나 더욱 깊은 고백과 온전한 헌신에 이를 수 있다면, 그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일 것입니다. 모든 교회와 사역자는 물론, 모든 성도는 사람들을 주 예수님께로 인도할 줄 아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오직 그분만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말입니다.

 

동료 사마리아 여인의 변화는 강력한 표적이었지만, 그들은 이 표적에만 머물지 않고 직접 말씀을 들음으로써 예수님에 대한 참된 이해와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즉, 표적과의 만남이 아니라 말씀과의 직접적인 만남이 그들을 진정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참된 생명의 양식이 되시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진정한 만족임을 깨닫게 합니다. 더 나아가, 사마리아 여인처럼 예수님을 만난 자마다 그 변화된 삶과 입술로 담대히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날에도 우리의 주변은 영적으로 ‘희어져 추수할 밭’과 같으니,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시기가 바로 지금임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의 작은 증언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계기가 되며, 직접 주님을 만날 때 그들의 믿음은 더욱 확고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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