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04-01)

영원한 생수이신 예수님
요한복음 4장 1-14절
인생을 살아가면서 선한 만남은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당신은 어떤 사람들과 만남이 있었습니까? 그 만남을 통해 인생이 풍성해졌습니까? 아니면 잘못된 만남으로 삶이 망가졌습니까? 만남 중에는 일생의 만남을 뛰어넘어 영원을 결정하는 만남이 있습니다. 그 만남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본문은 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생이 바뀌어지는 놀라운 축복의 여인이 됩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그 만남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 본문은 니고데모와는 대조적인 인물인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다가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동네 우물곁에서 쉬셨습니다. 그때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나왔습니다. 그녀에게 물을 달라고 하시자 여인은 의문을 제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라고 소개합니다. 이 만남을 통해 공급해주시는 생수가 어떤 생수인지, 그 생수를 마시러 같이 가겠습니다.
유대를 떠나시는 예수님(1-6)
신앙의 길에서 우리는 때로 맞서기보다 물러나는 것이 더 큰 일을 이루는 준비가 될 수 있음을 배웁니다. 익숙한 자리를 떠나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용기와 변화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때에 맞추어 인내하며 기다려야 하고, 무모함이 아닌 지혜로 신앙과 안전의 균형을 지켜야 합니다. 지금의 순간은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준비의 과정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굳건히 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1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3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5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1-6)
예수님께서는 유대 지역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셨습니다. 세례를 베풀고 제자를 삼으시며 사역하실 때, 예수님께 나아와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세례 요한보다 더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아시고 유대를 떠나 갈릴리 지역으로 가시기로 하셨습니다. 그 길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⑴ 유대를 떠나시는 예수님(1-3)
세례 요한보다 예수님께서 더 큰 인기를 얻게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자, 그분의 명성은 바리새인들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이제 세례 요한은 점차 그 사역의 자리를 내어주고, 예수님께서는 더욱 흥왕하게 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주의해야 할 인물은 세례 요한만이 아니었습니다. 새롭게 떠오르는 예수님 또한 그들의 경계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전에 제압하려 했고, 예수님과 세례 요한을 경쟁 구도로 몰아 이간질함으로써 두 사역을 분열시키려는 계략을 꾸몄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사역에 조금도 걸림돌이 되고자 하지 않으셨습니다. 세례 문제로 자신과 요한을 비교하며 시비를 걸려는 상황을 지혜롭게 피하시고, 남쪽 유대를 떠나 북쪽 갈릴리로 향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명성과 대중의 환호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우선으로 삼으셨습니다. 사람들의 칭송을 뒤로하시고, 사소한 경쟁이나 오해에 얽매이지 않으시며 사명의 본질에 집중하셨습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의 음모를 미리 아시고, 그들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현명하게 그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초기 교부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hn Chrysostom, 349–407)가 명료하게 설명했듯이, “예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보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시는 데 온전히 헌신하셨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리더십과 삶의 태도가 어떠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분은 한때 열광적으로 환호하던 군중의 박수 소리나 칭찬에 흔들리지 않으셨고, 반대로 배척당하고 위협받는 순간에도 자신의 길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세상이 제시하는 성공의 기준이나 대중의 환호에 굴복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의 뜻을 이루는 참된 종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범은 우리에게 진정한 가치와 삶의 방향을 끊임없이 되묻게 하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⑵ 사마리아로 들어가시는 예수님(4-6)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실 때 사마리아를 통과하시겠다고 하신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갈릴리로 갈 때 사마리아 땅을 피했습니다. 사마리아 길이 가장 짧은 지름길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곳을 거부하고 요단강 동편 길을 돌아서 가곤 했습니다.
이유는 유대와 사마리아 사이의 뿌리 깊은 적대감 때문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은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뒤, 혼혈 정책으로 인해 이방 민족과 섞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순수성을 잃은 자들”로 멸시하며 이방인처럼 취급했습니다. 더 나아가 주전 4세기경, 사마리아인들이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방해하고 그리심 산에 자신들만의 성전을 세운 사건은 양측의 갈등을 더욱 깊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남쪽 유대에서 북쪽 갈릴리로 이동할 때, 유대인들은 오염될 것을 우려하며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고 요단강을 건너 먼 돌아서 가는 길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일부러 사마리아 길을 택하셨습니다(4). 단순히 지름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속에서 그 길을 의도적으로 걸어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꺼리는 길을 기꺼이 지나가시며, 아버지의 뜻에 따라 새로운 사역의 장을 열어 가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개인적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와 뜻 속에서 진행된 일이었습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하고 싶은 일만 선택할 수 없습니다. 원하지 않는 길이라도 주님께서 원하시면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신뢰하기 때문에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쉬운 길이 아니라, 주님께서 허락하신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길에서 도착하신 곳이 바로 ‘야곱의 우물’이었습니다(6). 이 우물은 옛부터 예루살렘과 갈릴리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이 쉬어 가던 장소였습니다. 그때는 유대 시간으로 여섯 시, 즉 오늘날의 정오 무렵이었습니다. 뜨거운 한낮, 예수님께서는 지치고 피곤하여 우물 곁에 앉아 계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는 복음서이지만, 이 장면에서는 예수님의 연약한 인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참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참 인간이심을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장면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신 예수님(7-9)
신앙은 사회적 배경이나 편견을 넘어 사랑을 실천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장소와 순간에서 일어나며, 그 만남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도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는 용기를 가져야 하며, 그들의 과거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임을 바라봐야 합니다. 신앙은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드러나며, 평범한 삶 속에서도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참된 신앙은 경계를 허물고 사랑과 대화를 통해 삶 속에서 나타납니다.
7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하시니 8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7-9)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의 ‘야곱의 우물’ 곁에서 쉬고 계실 때, 제자들은 양식을 구하기 위해 잠시 동네로 떠나셨습니다(8절). 그때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오정 무렵,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시간에 우물에 나온 것은 그녀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아마도 도덕적 낙인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3장에서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모습과 흥미롭게 대조됩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 남자요, 이름이 알려진 지도자였고, 사마리아 여인은 여자이자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존재로 이름조차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공통적으로 영적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 갈증을 채워 주실 분도 예수님뿐이었습니다. 세상 사람 중 누구도 예수님 없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스스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사랑을 들었지만 적극적으로 믿음으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반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직접 맞닥뜨리며 영적 필요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외형적 모습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영혼의 내적 갈증을 보셨습니다. 그녀의 빈 물 항아리와 같은 마음, 즉 목마른 심령을 간파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물을 좀 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니고데모에게는 신학적, 교리적 접근을 하셨다면, 이 여인에게는 현실적 필요를 따라 접근하신 셈입니다. 이는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경계를 고려할 때 매우 이례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녀는 처음에 놀라고 반문했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십니까?” 당시 유대인 남성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거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더욱이 아무도 없는 시간과 장소에서 부탁하는 것은 전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회적 관습이나 성별, 민족적 차이에 얽매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여인에게 다가가셨고, 그녀의 상처와 연약함을 치유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외형이나 겉모습보다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노와 방어로 굳어 있는 겉모습 너머, 갈증과 상처로 목말라하는 여인의 내면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그 여인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생명의 길로 초청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먼저 다가가심으로써, 참된 사랑과 치유가 시작된 것입니다.
영원한 생수를 소개하신 예수님(10-14)
세상에서 얻는 만족은 일시적일 뿐이며, 참된 기쁨과 평안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옵니다. 신앙인은 자신의 노력이나 자원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예수님께 의지하며 생명과 공급을 구해야 합니다. 영적 갈증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그분께 나아가야 합니다. 결국 참된 생명과 만족은 예수님을 믿고 그분께 순종할 때 비로소 경험하게 됩니다.
10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12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0-14)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야곱의 우물에서 만난 여인에게 자신이 주는 ‘생수’의 의미를 설명하셨습니다. 이 생수는 단순한 물이 아니라, 성도가 영생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생수는 인간의 노력이나 대가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는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과 구원을 가져다주는 은혜의 상징입니다.
(1) 생수를 주시는 예수님(10)
예수님께서는 단순한 물을 넘어 영원한 생수를 주시는 분임을 밝히셨습니다. 이는 육체적 갈증을 넘어, 영혼의 깊은 갈증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현대 신앙인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 삶의 공허와 결핍을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 하기보다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참된 만족과 평안은 오직 그분 안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2) 생수를 이해하지 못하는 여인(11)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의 ‘생수’에 대한 말씀을 듣고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이 대화는 여인이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말씀하신 생명의 진리를 문자적인 물로만 이해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러한 오해는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육체적인 출생으로만 해석했던 상황과 매우 유사합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니고데모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영적인 가르침을 세상의 상식이나 물리적인 현실에 빗대어 이해하려 했고, 이로 인해 참된 의미를 놓쳤습니다. 우리의 영적 이해 역시 이들처럼 종종 제한적이어서,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우리의 이성이나 경험으로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직면할 때,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고 진리를 구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뜻은 때로 우리의 모든 상식과 기대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계를 인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진리에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3) 우물을 준 야곱(12)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는 계속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언급하시자, 여인은 그 말씀의 본질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께 “이 우물을 누가 주셨느냐?”라고 반문하며 조상 야곱의 유산, 즉 야곱의 우물과 그에 얽힌 오랜 역사와 전통을 떠올립니다. 그녀의 질문은 단순히 물의 출처를 묻는 것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과 민족의 자부심이 깃든 과거의 역사적 기반을 확인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야곱의 우물은 당시 사마리아인들에게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유산이자,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물리적 근원이었습니다.
이러한 여인의 반응은 인간이 얼마나 과거의 전통, 역사, 그리고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것에 대한 집착과 의존에서 벗어나기 어려운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신앙적 전통, 교회의 역사, 혹은 개인적인 신념 체계나 윤리적 노력이 분명 가치 있는 부분들이지만, 이 이야기는 그것만으로는 영혼의 근원적인 갈증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일깨워 줍니다. 물리적인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이 일시적으로 육체의 갈증을 해소할 뿐, 영원한 만족을 줄 수 없는 것처럼, 과거의 신앙 유산이나 전통, 그리고 인간적인 노력이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 자신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4) 생수를 주시는 예수님(13-14)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3-14)고 대답하셨습니다. 자신이 주는 물이 단순한 육체적 물이 아니라, 영원한 생수, 즉 영혼의 참된 갈증을 채우는 생명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육체의 물은 잠시 갈증만 해소할 뿐이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는 영원한 생명과 영적 회복, 그리고 마음의 깊은 평안을 가져옵니다. 이는 현대 신앙인에게, 삶의 공허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님께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가 이 생수를 받아 영혼의 갈증을 채울 때, 비로소 삶의 참된 목적과 의미를 발견하며 흔들리지 않는 내적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나아가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이 평안과 생명은 단순한 위로나 일시적 만족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관계, 모든 삶의 영역을 풍성하게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와 힘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회적, 문화적 경계를 넘어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가심으로, 참된 사랑과 은혜가 어디서나 필요함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세상적 만족으로 채워질 수 없으며, 오직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로만 참된 갈증이 해소됩니다. 신앙생활에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앞에서도 겸손히 배우고, 하나님의 뜻과 은혜를 신뢰하며 나아가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영적 갈증을 채울 때, 삶의 참된 목적과 흔들리지 않는 평안을 경험하게 됩니다. 결국, 현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 의지하고 그분의 생수를 받아 영혼과 삶 전체를 회복하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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