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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07-01)


마지막은 찬란한 회복

미가 7장 1-13절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소망의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죄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용서와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세상의 부정과 악이 일시적으로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정의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계획을 믿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 세상에 경건한 자도 정직한 자도 없고 무리가 다 악을 행하므로, 파수꾼들의 날 곧 형벌의 날이 임합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공의로 대적이 거리의 진흙같이 밟히고, 성벽을 건축하는 그날에는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재앙이로다(1-6)

인간은 본질적으로 연약하며, 죄와 타락으로 인해 서로에게 실망을 안기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서로 불신하며 미워하는 공동체는 파멸하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 심지어 가족조차도 믿지 못할 상황이 많다는 것을 인식하고, 인간 관계의 한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세상의 부정과 악이 만연하더라도,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정의를 세우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1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과일을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포도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 2경건한 자가 세상에서 끊어졌고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3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는도다 그 지도자와 재판관은 뇌물을 구하며 권세자는 자기 마음의 욕심을 말하며 그들이 서로 결합하니 4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그들의 파수꾼들의 날 곧 그들 가운데에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 5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6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사람이리로다(1-6)

 

지금까지 언약 소송의 형식을 통해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고 회개를 권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백성은 그 경고를 듣지 않고, 여전히 죄악에 머물러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재앙이로다”라는 탄식이 나오게 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고통과 하나님의 슬픔을 동시에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1) 예루살렘에 대한 탄식(1)

 

어떤 학자는 1절이 추수한 후에 일부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남겨둬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언약법(레 19:9-10; 신 24:19-22; 참조. 룻 2장)을 어긴 상황을 반영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2절 이후의 문맥을 고려할 때, 1절은 하나님의 공의와 인자를 행하는 자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비유로 들어 제기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1절에서 포도송이가 없고 무화과가 없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언약 백성으로서의 결실을 맺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일반적인 상황을 가리킵니다. 전반적으로 온 백성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2) 사람들에 대한 탄식(2-4)

 

1절이 전반적으로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선언이라면, 2-4절에서는 1절의 비유를 이제 더 구체적으로 지적합니다. 물론 2-4절에서 지적하는 이스라엘의 죄악은 이미 2-3장의 고발에서도 드러났고, 바로 앞에서는 6장의 두 번에 걸친 언약 소송의 형식을 빌린 고발에서도 드러났습니다. 여기서의 차이점이라면 이전의 죄악에 대한 고발은 이런 죄악들을 법정이라는 배경에서 한 것이었다면, 여기서는 탄식시의 형식을 빌려 선지자 개인의 죄악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탄식시의 형식은 6-7장이 미가서 전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미가서의 본래 목적이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촉구하는 데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안타까움과 죄악의 현실과 심각성을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그 죄악에서 돌이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1절에서 표현한 대로, 과실수에 열매가 없듯이, 2절에서는 이제 하나님의 공의와 인자를 행하는 ‘경건한 자’와 ‘정직한 자’가 없다고 탄식합니다. 그 심각성은 이런 죄악상이 우연한 일이거나 비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계획된 일이고 의도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2절의 ‘매복하며’는 죄악을 저지르려는 계획을 잘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3절의 ‘부지런히 행하다’는 죄악이 우연한 결과가 아니며 그것을 목적으로 삼고 행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3절의 “자기 마음의 욕심을 말하며 그들이 서로 결합하니”는 마음의 악한 계획을 드러내놓고 말하고 서로 공모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 더 이상 마음의 거리낌이 되거나 부끄럽지 않은 상황이 된 것입니다. 4절에서 그 없는 정도가 심각하여,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다고 합니다. 참으로 참혹한 상황입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귀하게 여기고 그 뜻을 실천하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벌의 날’이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4). 4절의 ‘파수꾼들의 날’은 ‘형벌의 날’과 병행구로 나옵니다. ‘파수꾼’은 선지서에서 여호와의 날에 여호와의 임함을 보는 자들을 가리킵니다(사 52:8; 렘 6:17). 이들이 여호와를 본다는 것은 여호와의 날 곧 심판과 회복의 날이 임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날은 곧 심판의 날, ‘형벌의 날’이 될 것입니다.

 

(3)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탄식(5-6)

 

점진적으로 메시지를 받는 개인에게 가까워집니다. 1절이 전반적인 상황을 언급했다면, 2-4절은 이런 전반적인 상황에 구체적으로 사람들에게서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다루었습니다. 5-6절은 그 죄악의 심각성이 깊어지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까운 사람들, 즉 이웃과 친구, 가족에게로 좁혀갑니다. 이와같이 5-6절은 가까운 사람들조차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죄악의 깊이가 더해가는 상황을 지적합니다.

 

주님은 내 변호인 (7-13)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소망을 제공합니다. 또한,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에게 용서와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비록 세상의 부정과 악이 일시적으로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정의를 세우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의 공의를 믿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7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8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9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그의 진노를 당하려니와 마침내 주께서 나를 위하여 논쟁하시고 심판하시며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공의를 보리로다 10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보리로다 11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12그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강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13그 땅은 그 주민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황폐하리로다(7-13)

 

본문의 교훈은 믿는 자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그분의 구원을 기다리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의 세력이 일시적으로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정의를 세우실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면, 그분의 용서와 회복이 임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희망을 잃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1) 징벌에서 구원과 회복으로(7-10)

 

1-6절을 탄식시로 보듯이, 7-13절을 제사 때에 노래하는 제의시(liturgy)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14-20절 역시 기도와 찬양의 시로 되어 있는 것과 맥을 같이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돌아올 때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의 운명을 구원과 회복으로 바꿀 것이라는 확신에서 제사 가운데 드리는 예언적 제의시로 봅니다. 1-6절의 탄식시에서 죄악의 현실성과 심각성이 두드러졌듯이, 하나님 앞에 돌아올 때의 구원을 다 같이 부르는 제사 때의 노래 형식을 취해, 하나님 앞에 돌아오라는 권고를 합니다.

1-6절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탄식하지만, 7절 이후부터는 구원과 회복의 하나님을 예언하기 시작합니다. 1-6절과의 관계에서 내용의 흐름을 고려할 때, 7절의 ‘오직 나는’이라는 표현은 ‘그러나 나는’으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여기서 심판에서 구원으로 전환이 일어나는데, 미가서에서 종종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가 번갈아 나오는 것과는 다릅니다. 여기서 7절의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라는 표현을 보면, 전환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므로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8절에 대적이 이스라엘로 말미암아 기뻐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멸망하므로 조롱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조롱은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10)로도 표현됩니다. 고대 근동에서 한 나라의 멸망은 그 나라를 보호했던 신 혹은 신들의 패배로 인식됐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너희를 지키던 신은 어떻게 된 것이냐는 조롱을 듣게 됩니다. 10절의 “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니”라는 표현 역시 당시 전쟁에서 패배하고 조롱당하는 상황을 반영합니다. 이런 상황이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라도 히스기야 왕(주전 715-686년) 당시 주전 701년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공한 경험을 고려하면, 생생한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통과 멸망을 경험하더라도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8절의 어둠이 암울한 이스라엘의 운명을 상징한다면, ‘빛’(8)은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상징합니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돌아올 때에 다시 회복되고, 어둠에서 빛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10절에서처럼 전쟁에서 일시적으로 이겨 의기양양해 하며,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고 조롱했던 이들이 자신들이 했던 그 행동 그대로 짓밟히며 상황이 역전될 것입니다(10). 9절의 “그의 공의를 보리로다”에서 ‘공의’는 여호와께 범죄한 자들에게 내리는 여호와의 진노의 근거가 됩니다. 동시에 이는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돌아올 때에, 그들을 위해 논쟁하고 옹호하며 구원을 베푸는 근거도 됩니다. 따라서 “그의 공의를 보리로다”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죄악에 따라 심판을 내리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돌아올 때에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도 되실 것이라는 고백의 표현입니다.

 

(2) 성벽과 경계의 회복(11-13)

 

이 단락을 처음 시작하는 세 문장은 원문상으로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지경을 넓히는 날, 네가 돌아오는 날”이라고 표현됩니다. 곧 이 날에 성벽이 건축되고 지경이 넓혀지며 백성이 돌아오면서 점차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성벽의 재건은 안전함을 의미하며, 이스라엘의 구원을 상징합니다(시 51:18). 12절에서는 온 민족이 하나님께로 온다는 의미보다는, 각처에 흩어져 있던 백성이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며, 이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13절에서 그 땅이 황폐하게 된다는 것은 각처에 흩여져 있던 땅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대조하는 표현입니다. “그 주민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는 그 땅이 황폐하게 된 원인을 가리키는데, 그들의 행위에 따라 멸망을 당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며, 다시 한 번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미가는 대적들에게 기뻐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비록 죄로 인해 걸려 넘어졌을지라도 남은 백성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를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을 단련하신 후에 광명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조롱하던 대적들이 마침내 수치를 당할 날이 올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성벽을 건축하셔서 열국에 흩어진 남은 백성을 모으시고 오대양 육대주에서 사람들이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백성으로서 절대 소망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타락한 현실을 드러내며, 의로운 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을 강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회개와 구원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때, 그분의 은혜와 자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시작을 주실 것이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삶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평안과 소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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