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24-01)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사람들
누가복음 24장 1-12절
명문 휘튼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짐 엘리엇(Jim Elliot, 1927-1956)은 그 동료들과 함께 1956년 남미의 아우카 부족에게 선교하러 갔다가 몰살당합니다. 그가 죽은 후 학교에서 발견한 일기장에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자는 바보가 아니다.(He is no fool who gives what he cannot keep to gain what he cannot lose.)”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십자가는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고귀한 사랑의 낭비입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신 성부 하나님의 낭비요, 한없이 비천한 자들을 위해 송두리 채 자신을 바친 성자 예수님의 낭비입니다. 기독교 역사는 십자가 은혜에 가슴 겨워 이렇듯 사랑의 낭비를 하는 사람들이 면면히 이어온 역사입니다. 그 사랑의 낭비가 사람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세상을 살린 것입니다. -국민일보 겨자씨 2017-04-12자 ‘사랑의 낭비’ 참고-
- 누가복음의 마지막장인 24장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합니다. 특히 본문에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들을 제시합니다. 안식일 후 가장 먼저 무덤에 찾아간 여자들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봅니다. 그곳에서 찬란한 옷을 입은 천사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여자들은 열 한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지만, 그들은 또한 믿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 베드로는 부활을 확인하기 위해 무덤까지 찾아갔지만 믿지 못합니다.
빈 무덤을 본 여자들(1-4)
하나님께서 원하는 삶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처럼 공의우면서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공의와 자비를 통해 사회가 건강해지고, 사람들은 더 행복해지며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변함없이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꾸준하게 살려고 노력하다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1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1-4)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증거는 ‘예수님의 빈 무덤’이었습니다. 빈 무덤을 처음 본 사람들을 ‘여자들’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여자들은 그 동안 예수님을 따르던 여자들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에도 꾸준하게 사랑과 존경으로 따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녀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향유를 가지고 무덤을 찾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후 곧바로 안식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향유를 바를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 여인들이 찾아간 시간을 ‘안식일 후 첫날’이라고 소개합니다. 더 적절한 번역은 ‘그 주간의 첫날(on the first day of the week)’이라 한 것이 좋습니다. 그날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사흘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간 여인들은 최소 다섯 명이었습니다. 함께 다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10절 참조). 그녀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맞이하러 갔던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 갔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날이 안식일이 시작한 날이라 그 날 저녁부터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급하게 장사를 치렀습니다. 일반적인 시신에 향유를 바르지 못하고 시신만 그대로 장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첫날 새벽에 달려갔던 것입니다. 이 향유는 값이 대단히 나갔지만, 그들의 헌신에는 향유의 값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자들은 예수님의 무덤에 달려가면서도 걱정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시신을 넣고 돌을 굴려 막아 놓은 방식이었기 때문에, ‘누가 무덤 문을 열어줄 것인가?’라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걱정은 쓸모없는 것이었습니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무덤 문은 열려 있었고, 무덤에는 텅 비어 있었기 때문입니다(마 27:66). 그곳에는 예수님 대신에 빛난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한 사실을 아직까지 모르기 때문에 빈 무덤을 보고서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살아져 버렸으니깐, 그들은 ‘누가 옮겼단 말인가?’라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빈 무덤은 근심거리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살아나신 확실한 증거입니다. 빈 무덤은 죄와 사망 그리고 어두움의 권세를 물리치신 확실한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십자가를 하나님의 능력과 생명으로 바꾸셨습니다. 이 부활로 말미암아 사탄의 사망 권세에서 생명의 길로 나갈 수 있도록, 그리고 예수처럼 십자가를 지고 순종의 길을 걷게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알아야할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은 제자들이 아닌 예수님을 변함없이 사랑하며 따랐던 여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예수님을 따라서 동행했습니다. 하지만, 실수는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삼일만 부활할 것이란 말씀을 하신 것을 들었지만, 깊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안식일 후 첫날에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무덤 속에 누우신 예수님의 시신을 보려고 나갔던 것입니다(23:55-56).
이 여자들은 아직은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가장 큰 복을 누린 사람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첫 번째 목격한 증인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들처럼 변함없는 수고와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던 여자들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누릴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부활을 목격한 여자들과 같은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말씀을 기억한 여인들(5-7)
‘기억’은 믿음의 터이고 기초입니다. 신앙의 기억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습니다. 과거에 경험했던 하나님의 사랑은, 지금 경험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재해석되고 재발견됩니다. 그래서 기억은 새로운 소망을 잉태합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곳으로 부르셨을 때, 지금까지 동행하신 하나님에 대한 기억 위에서 담대하게 나갈 수 있습니다.
5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 대(5-7)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간 여자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아니라 천사들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깨닫지 못하고 시신이 없음을 당황하는 여자들에게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 옷은 단지 흰 옷이 아니라 번개처럼 찬란하게 빛난 예사롭지 않는 옷에 눈이 부셨습니다. 그 여자들은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조아렸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범상치 않는 동산지기인 줄 알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두 천사였습니다(마 28:3-4). 이 천사들은 여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미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셨건 것을 상기시킵니다.
(1) 부활에 대한 선언(6)
천사들은 여자들에게 부활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먼저 천사들은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여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고 선언 하였습니다. 천사들은 신실한 증인들이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진리’이기 때문에 ‘설득’이나 ‘강요’가 아니라 ‘선포’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인정하던 하지 않던 간에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그 아들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리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셨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제 후로도 지금까지 약속한 것들을 이루어 가시고 계십니다. 약속 중에 가장 큰 약속이며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이 약속 또한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2) 다시 기억된 말씀(6b-7)
천사들은 부활의 사실을 선포한 후에,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나도록 근거를 설명합니다. 그들은 여자들에게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고, 그 동안 하셨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부활에 대한 말씀(9:21-22, 17:25, 18:31-34)을 기억하도록 인도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가장 결정적이고 확실한 증거입니다.
① 약속하신 장소(6)
천사들은 그 동안 예수님께서 친히 하셨던 말씀을 기억나게 합니다. 먼저 장소를 언급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장소는 말씀에 대한 분명한 역사적 사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갈릴리에 계실 때’ 하셨던 수난 예고는 9장 22,44절에 나옵니다. 십자가 사형을 목격했던 여자들 또한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23:49,55)로 표현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의도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기억하도록 ‘갈릴리’를 명시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도중에도 장차 수난을 당할 것을 두 번 더 예고하셨습니다(17:25; 18:32-33).
② 약속하신 내용(7)
천사들은 여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셨던 그대로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전합니다. 이 여자들도 함께 있던 갈릴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32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누가복음 18:32-33)
이 여자들도 예수님께서 하셨던 이 말씀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마음에 두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부활에 대한 예언을 믿었거나 명심했었더라면,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천사를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전기 충격을 받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한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여자들뿐만 아니라 제자들까지도 그 핵심적인 말씀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 자신이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죽으신 후에 3일 만에 살아나실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예수님을 죽인 종교지도자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무덤에 병사들을 배치시켜 철저하게 지키게 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어떤 군대가 지켜도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 말씀대로 사망 권세를 깨고 부활하셨습니다.
천사들의 증언을 종합해 볼 때, 예수님의 시신에 대해 다른 가능성은 없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 악한 자들에게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었다가 삼일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절대 진리이기 때문에, 어떤 증거보다 더 강력한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을 통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이 과거의 교훈이 아니라 지금 역사하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할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의 능력이 강력하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8-12)
기독교 신앙의 두 축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의미가 없고, 부활이 없는 십자가는 비참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의 신앙을 통해 부활의 신앙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놀라운 진리를 깨달고 나면 전파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의 기쁜 소식은 우리 마음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8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8-12)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으신 일은 아직까지 제자들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은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따랐던 제자들에게 절망적인 상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 절망은 제자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습니다.
(1) 증거하는 여자들(8-10)
천사의 권고대로 여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냈습니다. 조각났던 말씀의 퍼즐들이 한순간에 하나둘 완성되었습니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면, 그 순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에 왔던 여자들은 천사들을 통해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들이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동안 이해되지 못한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들까지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눅 24:32). 그들의 눈을 성령님께서 열어주신 것입니다. 더 이상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찾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여자들의 명단을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저희와 함께한 다른 여자들도’라고 소개합니다. 이처럼 변함없는 헌신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변함없는 봉사한 여자들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덤에 달려갔던 여자들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사실을 알리기 위해 사도들과 다른 제자들에게 달려갑니다. 무덤을 향할 때 근심어린 얼굴이 아니라 기쁨에 찬 얼굴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2) 제자들의 반응(11-12)
여자들뿐만 아니라 제자들 중에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여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천사들로 인해 깨닫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① 부정적인 반응(11)
천사들의 말씀을 한 후 여인들은 자신들이 감격스럽게 첫 부활의 목격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 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사도들에게 달려가서 나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도들 또한, 여자들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놓지 못했었습니다. 그들도 여자들의 증언에 엉뚱한 반응을 보입니다. 그들의 반응은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부활이 ‘허탄한 듯이(ληρος)’라고, ‘터무니없거나 종잡을 수 없음’으로 들렸습니다. 아마 그들은 여자들이 환상이나 보았을 것이라고 치부하며, 그 이상은 예수님을 사모하는 열정에서 나온 착각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까지 여자들의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부활의 소식을 들은 너무 놀라운 것이라 증거 없이는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기뻐하기는커녕 여인들을 제정신이 아니라고 몰아붙이고 믿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허탄한 것은 여자들이 아니라 사도들 자신이었습니다. 그들의 우둔함은 경악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참 메시아로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마 16:16;막 8:29;요 11:27). 또한 예수님과 다니면서 수차례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광경을 몇 번이나 목격했습니다(요 12:1-44).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속 깊이 새기지 않은 신앙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고 뽑히는 것인지 보여줍니다.
② 또 다른 반응(12)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보다 여자들의 증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는 여자들의 증언과 예수님의 말씀들을 생각하며 특별하게 반응합니다. 그는 여자들의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수고합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이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는 예수님의 무덤에 달려갔습니다. 몸을 구부려 무덤 안을 살펴보았습니다. 역시나 무덤에는 예수님의 시신은 간 곳없고 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던 세마포만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도 거기까지였습니다. 비어 있는 무덤을 확인했지만, 베드로조차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놀랍게 여길’뿐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계면스럽게 머리를 끌쩍이면서 집으로 돌아갔다고 소개합니다. 그는 자신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부터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였더라면,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 말씀을 따르기만 하면 유익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마음일 때,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받고 믿을 수 있습니다. 이제 죽음의 권세를 깨드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는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구원해주시고 나에게 영생을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라고 찬양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음에 깊이 세기지 않으면, 사도들처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없이 그대로 성취되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사건을 통해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하신 것들을 중에 성취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을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살피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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