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22-03)
마지막 만찬에서 주신 예수님의 교훈
누가복음 22장 24-38절
천국에 대한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사는 사람들에게 1미터가 넘는 젓가락을 주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식사를 하도록 했습니다. 지옥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스스로 먹으려다 보니깐, 음식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떠 넣어 먹었습니다. 만약 섬김을 받으려고 한 사람들만 모여 산다면 그곳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반대로 섬기려는 사람들만 모여 산다면 그곳은 어떤 곳이 되겠습니까? 당신이라면 어떤 곳으로 가고 싶겠습니까?
- 본문에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맞추어 제자들은 누가 큰지에 다시 언쟁하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천국에서 큰 자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수제자인 베드로는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장담하지만, 그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24-27)
세상에서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찾습니다. 세상적인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한 사람들이 영향력 있어 보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힘이 되기보다는 도리어 짐이 될 때가 많습니다.
24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24-27)
본문에서는 제자들 사이에 누가 가장 큰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의 권력자들은 사람들을 지배하지만, 제자들은 마땅히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섬기는 자의 모범을 보이며, 진정한 위대함은 섬김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1) 제자들의 논쟁(24)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해 한 발 한 발 가는데도, 제자들은 무지해서 전혀 준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의 마지막 만찬 석상에서도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세속적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임박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죽으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누가 스승을 팔 사람인가, 그리고 누가 큰 가에 대한 세속적인 서열 다툼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이 논쟁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 후 세우실 나라에서 누가 지도자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 논쟁했습니다. 그들의 논쟁은 눈에 보이는 나라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논쟁과 비슷한 일이 이미 이전에도 있었습니다만(참조 9:46-48), 또 다시 논쟁을 시작한 것입니다.
(2) 예수님의 가르침(25-27)
그러한 제자들의 논쟁에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호통을 치며 꾸짖기 보다는 긍휼한 시선으로 바라보십니다. 그들을 타이르며 다시 설명하십니다.
먼저 세속적인 지도자들은 따르는 사람들을 군림하고 더 높아져서 지배하는 방식이지만, 하나님 백성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새롭게 거듭난 성도들은 세속적인 가치관과 완전히 반대되는 하나님의 새로운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동안 하나님 나라의 양식을 실천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셨습니다. 세속적인 지도자는 당연히 앉아서 대접을 받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그들은 물질이나 권력 같은 것을 많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최대한 군림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대접을 요구하거나 군림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섬기는 지도자로 사셨습니다. 더 나가서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백성들보다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셔서 자기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섬길 것입니다. 그래서 섬김으로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서로 높아지려고 싸움이 많았던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영적인 지도자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많은 것을 소유하여 섬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섬길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21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린도전서 3:21-23)
예수님께서는 지도자의 섬김을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높은 자리를 위한 경쟁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가장 섬김과 낮아짐을 향한 곳입니다. 따라서 모두가 서로에게 높여 주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섬김의 삶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기고 쌓고 높아지기 위한 마음은 세속적인 욕심입니다. 이제는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아가려면, 예수님의 길을 따라서 비우고 낮아지고 비움으로 섬기는 자로 실천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심판의 보좌에 앉을 자들(28-30)
복음 전파는 다양한 방법으로 전해집니다. 성도들이 성장하는 모습으로 전파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는 모습 속에서도 전파 되어집니다. 그러므로 외형적인 성장하는 교회의 모습으로 모든 복음을 전해줄 수 없습니다. 섬김과 사랑으로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28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8-30)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섬기는 자가 가장 큰 자라는 교훈에 이어서, 섬기는 자들을 향한 격려의 메시지를 계속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낮아질 뿐만 아니라 더 나가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난까지 받으라고 권고하셨습니다. 이제는 그 뜻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왕권이 이양(移讓)되고 이양된 결과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제 공생애 동안에 제자로 부름 받고 예수님을 따르면서 같이 고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자로서 계속적으로 고난을 받게 될 것을 언급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을 자들입니다. 이런 의미와 비슷하게 산상보훈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10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0-12)
하나님 나라는 힘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사랑으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연약한 자들까지도 예수님께서 언급한 왕권 이양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이신 예수님께 위임한 하나님 나라, 메시아의 왕국의 왕권은 이양은 그 아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시련에 참여한 자들에게 위임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권을 이양 받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결과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의 만찬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만찬에 참여는 유대 생각으로 하나님 나라의 가족원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다음으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는 보좌에 앉을 것입니다. 심판할 때,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자들이 심판 받을 때, 그들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 곳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그의 왕권에 참예하는 영광이 약속되어 있습니다(마 19:28; 계 2:26; 3:21).
그리스도와 함께 당한 고난은 그와 함께 누릴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낮아져서 지속적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사역하는 동안 보석 같은 고난이 동반될 것입니다. 하지만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영광으로 보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까지 각오한 제자들에게만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맡기실 것입니다.
부인할 베드로에 대한 예언(31-34)
호언장담하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입니다. 하지만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단은 성도들에게 믿음이 떨어지길 위해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이러한 공격에 방어할 준비되어 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기도 없이 승리할 수 없습니다. 기도 없이 이룬 일은 섬기는 자리가 아니라 속된 영광을 얻는 자기를 탐하게 만듭니다.
31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31-34)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사탄이 그를 밀가루처럼 체질하고자 한다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시몬이 믿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기도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시몬은 자신이 예수님을 위해 죽겠다고 다짐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가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1) 예수님의 권면(31-32)
예수님께서는 이제 베드로에게 시선을 돌립니다. 모범을 보여야할 수제자인 베드로가 자리 논쟁에 빠지진 안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다혈질적인 성격상 다른 제자들보다 더 했으면 더했지 덜 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한심스러운 모습을 보고 계셨습니다. 잠시 후면, 예수님께서 체포되고 십자가로 다가가는데 제자들끼리 자리다툼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한심스러운 영적인 모습에 사단은 틈을 타서 믿음이 떨어지도록 공격합니다. 알곡과 쭉정이를 나는 키를 흔들듯이 사단이 제자들을 매우 심하게 시험할 것입니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모두를 공격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사단에 시험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 실패합니다.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납니다. 이렇게 무방비한 제자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십니다. 이후에도 감람산에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아직까지 상황 파악이 안 된 제자들은 같이 깨어있지 못하고 잤습니다(누가복음 22:39-46). 그리고 사단의 공격 앞에 무기력한 제자들이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하신 것입니다. 나중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후까지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해 주었습니다. 베드로의 비장한 각오가 그를 지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신실한 사랑이 지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실패를 교훈 삼아서 베드로에게 위대한 사명인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권면하십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이 넘어진 제자들을 세우는 능력인 것입니다.
사단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바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서 사단의 공격에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기도하면서 연약한 자들에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2) 장담하는 베드로의 대답(33)
예수님께서 넘어질 것에 대해 준비하라고 권고를 들은 베드로의 태도는 가관입니다. 사단에게 노출되어 있는 것도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기 보다는 자기 생각이 앞섰습니다.
베드로는 비장한 각오로 감옥 갈 준비도, 죽을 준비도 되어 있다고 장담 합니다. 큰소리는 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3) 베드로의 부인을 예언(34)
예수님께서는 비장한 베드로의 말이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를 불신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믿지 않으셨습니다. 대단한 베드로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는 예상치 못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에게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34)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을 하셨지만, 그를 향한 기도와 기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중에 실족할 베드로를 사랑의 기다림이 온전한 자리로 회복시킨 것입니다.
사단의 시험 앞에서 대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십니다. 기도 없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시험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갈 때, 언제든지 사단의 시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때마다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입니다. 시련을 당할 때 좋은 방법은 그것을 이길 지혜를 간구하는 것입니다(야고보서 1:5).
다가올 위험에 대한 경계(35-38)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미래에 대한 무지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미래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현재의 삶을 바르게 선택하는 것입니다. 지금 어떤 자세로 살았느냐에 따라서 다가올 미래의 위험을 대비할 수 있습니다.
35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36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37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38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35-38)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들이 전도할 때의 경험을 회상하며, 필요할 때 자원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제 그들이 지닌 것에 대해 경계하라고 하시며, 두 개의 칼이 필요하다고 언급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한 내용을 오해하고, 자신들이 두 개의 칼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합니다.
(1) 시련에 대한 경계(35-37)
이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들에게 임박한 환난을 경계하십니다. 그동안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사역하면서 얻었던 경험에 근거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질문합니다. 이 질문은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하셨던 약속을 근거로 하신 것입니다(10:4). 그 동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훈련을 위해 전대나 배낭 그리고 신발까지도 더 가지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3년 동안 그렇게 준비하지 않아도 항상 충족했던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떠난 후를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이전에 사역과는 달리, 이제부터 제자들 스스로 살아가야 합니다. 장차 수난을 대비하여 스스로 준비해야 할 것들을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시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떠나고 난 후, 미래를 생활은 각자에 따라 진행합니다. 전대와 배낭과 더불어 검(劍)까지 언급하므로 수난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고 마음가짐을 단단히 할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차 자신이 당할 고난에 대해서 이사야서를 언급하십니다. 자신이 당하게 될 수난들은 무기력해서 당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예언된 대로 진행한 것입니다. 무법자들에 의해 불법자의 동류로 취급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서를 살펴보겠습니다.
12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사 53:12)
예수님께서 이사야의 말씀을 언급하신 것은 체포될 당시를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불법자들 사이에서 달려서, 마치 예수님께서 불법자인 것처럼 처형 당하셨습니다(23:33).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은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 받는 양탄자의 길이 아니라 가시밭길입니다.
(2) 준비된 두 개의 검(38)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고 있던 제자들은 식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 이후 누가 큰가에 집중했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 후에 수난이 있다는 말에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준비하라는 말씀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칼 두 자루를 보이면서 이미 잘 준비되었다고 어필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최종적으로 ‘충분하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충분하다’는 말씀은 제자들의 오해를 인식한 다소 실망스러운 표현일 수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떠나고 난 다음 곧 닥칠 고난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를 가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하십니다. 제자의 길에는 오늘도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처럼 부인하지 않거나 피하지 않고 동참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기심으로 가득한 세상을 향해, 하나님 백성으로서 겸손과 섬김으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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