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18-02)
하나님 나라의 입성에 합당한 사람
누가복음 18장 15-30절
우리의 신앙은 물질적 소유에 의존하지 않으며,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의존과 헌신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재물을 포기하라고 말씀하시며, 물질이 믿음의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십니다. 이는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태도를 보시며, 물질적 소유가 아닌 순수한 믿음을 원하십니다. 따라서 신앙의 본질은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으며, 이를 통해 진정한 구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18:15-17은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지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고, 18:18-30은 영생을 얻는 길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표현은 영생을 얻는다는 표현과 동일한 뜻을 가지므로 이 두 단락은 모두 예수님의 구원론을 다룹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사람이 절대로 구원받지 못하는지 알려주시고, 어떠한 사람이 반드시 구원받는지 알려주십니다.
어린아이와 하나님 나라(15-17)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하고 순수한 믿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고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하며, 이것이 신앙의 근본적인 태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린아이의 믿음은 의심이 없고 순수하여, 이러한 믿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임을 보여줍니다. 신앙 생활에서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가짐을 유지해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이러한 믿음이 우리 삶의 기초가 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5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16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7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15-17)
16절은 예수님의 구원론을 담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나님 나라가 ⋯의 것이다’ 즉 ‘...가 하나님 나라에 속하다’라는 표현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다’와 같은 뜻입니다. 17절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다’라는 표현으로 동일한 개념을 바꾸어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다’라는 표현은 나아가 ‘구원받다’와 같은 뜻입니다. 25-26절에서 이 두 표현이 호환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라고 하시자 듣는 자들이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표현상의 호환성을 염두에 둘 때 16절 본문은 누가 구원받는지 알려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과 같은 자들이 구원받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원받는다고 말씀하신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17절은 이것을 알려줍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자들입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에 순복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17절은 하나님의 나라(통치)를 받아들이는 자(순종하는 자)가 구원받음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순복하는 자, 즉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자가 구원받는다는 원리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원리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행함을 배제한 지식이라고 이해하면 이 둘이 다른 원리인 듯 여겨지지만, 믿음은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대로 실천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이 둘은 서로 동일한 원리입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함으로 열매 맺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거역하고 자신의 주권을 주장하는 태도에는 아무런 믿음이 없습니다. 17절은 그러한 자가 절대로 구원받지 못한다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원리를 왜곡하여 남용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 원리를 죄를 짓기 위한 도구로 사용합니다. 자기들이 왜곡한 구원의 원리를 주장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거역하며 성경에 명확히 기록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이 절대로 구원받지 못함을 분명히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사실상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런 믿음을 가졌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는 없습니다.
부자와 하나님 나라(18-30)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세상의 가치와 크게 다르며, 물질적 소유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목표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가능합니다. 신앙의 여정에서 우리는 희생과 헌신을 요구받지만, 이러한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상급을 약속하시며, 그 상급은 세상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18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9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20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1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2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3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24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27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28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30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18-30)
본문은 예수님의 구원론을 다시 한 번 명확히 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가족이나 집을 포기하는 자는 그러한 열매를 맺는 자이며, 따라서 반드시 영생을 얻습니다. 사람은 이러한 열매 맺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예수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가능하게 하셔서 구원을 얻게 하십니다.
본문은 한 관리의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영생을 얻다’라는 표현은 ‘하늘에서 보화를 가짐’과 같은 뜻임을 22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관리의 질문에 답을 할 때 ‘영생을 얻다’ 대신에 ‘하늘에서 보화를 가지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24-25절은 동일한 개념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다’라는 표현으로 바꾸어 사용합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그러므로 ‘영생을 얻음’은 결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과 같은 뜻입니다. 25-26절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이 ‘구원받음’과 같은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을 얻다’라는 표현은 나아가 ‘내세에 영생을 얻음’과 같은 뜻임을 30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18:18-30은 누가 내세에 영생을 받는 궁극적인 구원을 받게 되는지 알려줍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가족을 포기한 자는 반드시 구원받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최우선의 원리였으므로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선택한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보상을 받습니다. 그 보상은 영생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포기한 것과 비교할 수 없이 값진 것입니다.
이 본문에 담긴 원리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과 대립하는 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본문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참으로 믿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참으로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도래한 하나님 나라를 참으로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믿음은 하나님 나라와 세상 가치가 충돌할 때, 하나님 나라를 선택하고 세상 가치를 포기하게 합니다.
본문은 하나님 나라를 선택한 자들이 따라야 하는 원리를 구체적으로 소개합니다. 그것은 때로 집이나 가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는 사람의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그러한 자들은 땅에서도 여러 배를 받게 된다고 약속하십니다(30). 이것은 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일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이 더 많은 가족을 얻게 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22절은 재물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가르침을 주십니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부자 관원에게 십계명 지킴에 있어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며 주신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하다고 지적한 것은 재물을 탐하지 말라는 제10계명(출 20:17; 신 5:21)과 관련된 실천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재산은 율법(레 25:23,28)을 어기면서 영구 매매나 반환거부 등으로 과다 소유하게 된 토지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웃의 재물을 탐내어 빼앗은 것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의 철저한 율법 적용에는 조금의 타협도 없습니다. 그래서 부자는 구원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점도 명확히 하십니다. 제자들은 이 가르침을 분명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절망합니다.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그들은 부자가 구원받지 못한다면 가난한 자들도 구원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율법을 잘 지켜 물질의 복을 받은 자들이 구원받지 못한다면 그러지 못하여 가난한 자들은 더더구나 구원받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생각을 반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께서 가능하게 하심을 지적하십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27). 이것은 단지 은혜 구원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 구원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부자로 하여금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게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을 때 생기는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자가 믿는 것은 매우 기적적인 변화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자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불법 재산을 처분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28). 이때 ‘다 버리다’라는 표현은 그들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선택한 원리적인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렸다고 하지만, 여전히 집을 소유하였기 때문입니다(5:28-29). 이러한 현상은 구약성경을 통해 이해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토대로 하여 버릴 수 없는 재산에 해당하는 몫인 기업(inheritance)으로서의 토지와 가옥은 예외로 간주되었을 수 있습니다(레 25장). 이러한 정당한 몫의 경우에는 잃어도 되찾아야 하고, 그럴 능력이 없을 때에는 가까운 친족(근족)이 되찾아 주어야 하는 것이 구약의 원리입니다. 제자들은 이 원리를 당연히 전제하고 말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물질적 소유에 의존하지 않으며,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의존과 헌신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재물을 포기하라고 말씀하시며, 물질이 믿음의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십니다. 이는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태도를 보시며, 물질적 소유가 아닌 순수한 믿음을 원하십니다. 따라서 신앙의 본질은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으며, 이를 통해 진정한 구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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