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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7-03)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가르치신 예수님

누가복음 17장 20-37절


 

하나님 나라는 영적인 나라이기 때문에 눈으로 보이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보여줄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통해서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질문(20-21)을 계기로 제자들에게 인자의 오심에 대해 가르치십니다(22-37). 하나님 나라가 오는 것(17:20)은 인자가 오는 것(18:8)과 분리되지 않으므로 예수님님께서는 자신의 활동으로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고 있고 미래에 완성될 것임을 설명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한 문답(20-22)

성도들은 오늘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적으로 혁명적이고 화려한 나라가 아니라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겸손히 인정하는 가운데 계속 확장되어 가고 있습니다.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22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20-22)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질문합니다. 그들이 생각한 하나님 나라는 로마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로서 독립된 이스라엘 나라였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눈에 보이게 이루어지는 나라였습니다. 이 땅에 자주 독립국가로서 존재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나라가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단지 ‘어느 때’에 그 나라가 임하는지 질문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질문은 마치 일제 치하에서 독립을 염원하는 대한민국의 애국지사가 그날이 올 것을 확신하고 언제 조선이 독립되느냐고 질문한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질문을 받고 예수님께서는 우선 바리새인들이 가진 하나님 나라 사상을 교정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지상에 있는 하나의 국가가 아닙니다. 그래서 어느 특정한 장소에 국한되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점을 분명하게 지적하십니다.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또한 하나님 나라는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방식으로 독립전쟁을 통해서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들이 생각하는 나라와는 성격이 다른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이것을 알 수 있는 힌트를 예수님께서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여기서 예수님의 대화 상대는 바리새인들이므로, ‘너희’는 바리새인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나라는 바리새인들 가운데 있습니다. 이 말씀은 종종 오해됩니다. 에반스(C. Evans)는 하나님 나라가 제자들 가운데 임재하신 예수님과 함께 있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너희’는 바리새인들을 가리키므로, 하나님 나라가 제자들 가운데 있다고 해석하면 문맥에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바리새인들 가운데 와 있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바리새인들의 마음에 와 있다는 뜻이 아니라, 바리새인들 가운데서 그들과 대화하고 계신 예수와 함께 와있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우리도 종종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오해합니다. ‘심령 천국'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영성화하기를 좋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보이는 세상 나라 중에 하나로 기대한 바리새인들의 오해와는 다르지만 이와는 반대되는 또 다른 극단적인 오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리새인들의 심령 속에 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게 역사 속에 나타나 신 예수님을 통하여 시간과 공간 속에 구체적으로 임한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도 바리새인들처럼 눈에 보이는 세상적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기독교인이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고 맹목적으로 기독교인에게 투표를 하며 이것이 하나님 나라 운동인양 착각한 것도 바리새적인 하나님 나라 사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성육신을 통하여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오는 것입니다. 세상 정권의 획득을 통하여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려놓음을 통하여 오는 것입니다.

 

인자의 날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23-36)

하나님 나라는 외적인 표징이나 기적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이해하고 인식해야 합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원칙을 실천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고 전파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23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24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25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26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28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30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31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32롯의 처를 기억하라 33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3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36(없음)(22-36)

 

23절부터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인자의 날에 관하여 다룹니다. 인자의 날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예수와 함께 도래하였지만, 그것이 완성되는 인자의 날은 제자들이 그들의 생애 속에서 보지 못한다고 지적하십니다.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22). 이 말씀대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우리 생애 내에 예수님의 재림을 볼 수 있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림의 날이 어떻게 임하는지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번개처럼 임합니다(24). 번개처럼 임한다는 것은 갑자기 임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번개가 언제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천둥은 번개를 통해 예측 가능하지만, 번개는 갑자기 매우 빠르게 칩니다. 그러므로 번개가 갑작스러움보다 밝음을 가리킨다는 스타인(RH. Stein)의 해석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번개는 시편 97:3에서 하나님과 관련되어 심판과 관련된 이미지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서운 심판의 이미지를 번개를 통해 전달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재림의 날도 예측할 수 없게 심판의 날로서 임합니다.

재림의 날이 지닌 이러한 예측 불허의 특성을 예수님께서는 예를 들어 설명하십니다. 노아의 때에 사람들이 홍수가 날 것을 예측 못하고 먹고 마시고 결혼하며 방심할 때 심판의 날이 임하였습니다(26). 롯의 때에도 불과 유황이 비 오듯 내리기 전에 소돔 사람들은 이를 예측하지 못하였습니다(28).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재림하는 날에도 세상이 그와 같을 것이라고 하십니다(30). 재림은 세상 사람들이 재림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이 방심할 때 임합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즐길 것입니다. 그때 심판의 날이 갑작스럽게 임합니다.

심판의 날이 갑작스럽게 임함은 34절의 ‘그 밤에’라는 표현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강조됩니다. 이 표현은 데살로니가전서 5:2에서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임한다고 할 때에도 재림의 날과 관련해서 사용되었습니다. 이 표현은 밤에 도둑이 갑자기 드는 것처럼 예기치 못한 때에 재림의 날이 임함을 알려줍니다.

34-35절은 휴거에 관한 구절로 오해되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휴거에 관한 구절이라기보다 심판 때 일부는 구원받고 일부는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데려감을 당한 사람을 구원받는 사람에 대한 비유로 볼 수는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로, 롯이 도시 밖으로 각각 데려감을 받았기에 ’데려감‘은 긍정적인 뜻을 지닙니다.

 

장소에 관한 문답(37)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 준비는 단순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믿음의 실천을 포함합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징후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 징후를 발견해야 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 깊이를 더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합니다. 결국,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삶은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살아가는 것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37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이르시되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37)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때를 질문한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이어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장소에 관하여 질문합니다. “주여 어디오니이까?” 이러한 질문은 하나님 나라를 장소적으로 이해하지 말라는 23절의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한 질문입니다. 제자들이 제기한 장소에 관한 질문은 34-35절과 관련지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질문은 데려감을 당하는 장소와 버려움을 당하는 장소에 관한 질문입니다. 어느 장소에 있어야 심판을 면할 수 있느냐는 질문일 수도 있고, 구원받아 데려감을 당하는 장소가 어디냐는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관하여 예수님께서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 있는 사람이 어떠하냐가 중요함을 지적하십니다. 의인들이 있는 곳에는 구원이 임하고 악인들이 있는 곳에는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데려감을 당하느냐 버려둠을 당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떠한 자인지가 중요합니다. 의인이 버려둠을 당하고 악인이 데려감을 당하면, 악인은 마치 쭉정이처럼 거두어져 심판을 받기 위해 데려감을 당하는 것이며, 의인이 데려감을 당하고 악인이 버려둠을 당하면 마치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이듯 악인이 버려두어진 곳에 징계가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체가 있는 곳에 콘도르(혹은 독수리)가 오고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오지 않듯이,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심판을 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재림의 날을 준비하는 바른 태도는 먹고 마시며 즐기는 데 빠져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시작된 하나님 나라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입니다. 이 나라에 속한 자들은 어디에 있든지 심판을 면할 것이며, 언제 심판의 날이 임하더라도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바른 태도는 그 날과 장소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믿음으로 산자답게 사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그 징후에 대해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적인 표징이나 기적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이미 임해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또한, 마지막 날의 심판에 대한 경고를 통해,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준비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때와 롯의 때를 예로 들어,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에 빠져 있을 때 갑작스러운 심판이 올 것임을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것들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과 준비를 가져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신앙의 경각심과 주님의 재림에 대한 준비를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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