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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6-01)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누가복음 16장 1-13절


 

우리에게 맡은 바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이를 통해 사회적 연대감을 키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개인의 성장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발전에도 기여합니다. 결국, 우리는 책임감 있는 행동과 지혜로운 판단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 16장은 부와 제자도의 관계를 다룹니다. 부와 관련된 두 비유가 16장의 시작과 끝입니다. 비유 사이에는 부에 대한 교훈(10-13, 14-18)이 배열됩니다. 1-13절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1-9)와 비유의 해석(10-13)으로 구성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실하지 않지만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영민한 청지기의 태도를 칭찬함으로써 유한하고 불의한 부로 영원하고 참된 미래의 가치를 준비하는 데 영민하도록 가르치십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1-8)

우리에게 맡은 바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이를 통해 사회적 연대감을 키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개인의 성장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발전에도 기여합니다. 결국, 우리는 책임감 있는 행동과 지혜로운 판단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1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1-8)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주제를 도입하기 위해 새로운 비유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15장에서 누가는 예수님 안에만 하나님 나라 주제 가운데 죄인들까지도 기꺼이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청지지의 비유로 제자들을 가르치십니다. 이 비유에는 두 명의 주요 등장 인물이 나옵니다. 부자와 청지기입니다. 부자 주인은 청지기가 자신의 소유를 낭비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1). 로마 문화에서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관리할 뿐 아니라 주인을 대리해 행정을 책임지고 다른 종들을 관리하고 감독했습니다. 노예나 자유인 신분인 청지기는 능력을 인정받아야 부자의 재산을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은 청지기를 불러 해고를 통보하기 전에 ‘설명하라’고 합니다. 청지기는 속으로 말합니다. 주인이 해고를 결정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능력 외에도 책임감과 신뢰성이 청지기의 기본 자질이기에 이번에 직장을 잃으면 살아갈 일이 막막합니다. 노동으로 먹고 살 만큼 튼튼하지도 못하고 구걸하기도 부끄럽습니다. 혼자 생각하던 청지기는 위기를 돌파할 방법을 찾았습니다(4). ‘알아냈다’는 ‘해결책을 찾았다’라는 뜻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채무자를 불러서 정확한 빚을 묻습니다(5). 빚 문서를 조작해 빚의 일부를 탕감합니다. 기름 100말은 노동자의 500-600일 치 임금에 해당하는 가치였습니다. 청지기는 문서를 조작해서 절반으로 빚을 줄입니다. 당시 밀 한석은 25-30데나리온(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으므로 100석은 2500-3000일치 임금에 해당합니다. 청지기가 문서 조작으로 삭감해 준 5분의 1은 약 500일 치 임금의 가치입니다. 빚을 진 사람들은 주인의 과도한 이자로 불만이 많았을 수 있습니다.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의 호의로 그들은 예상하지 못한 덕을 입었습니다. 당시 문화에서 호의 또는 호혜를 제공 받은 사람은 은혜를 갚아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됩니다. 채무자들이 받은 호혜에 대한 의무를 실행하기 때문에 청지기는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그의 계획은 주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이처럼 청지기는 남의 부로 자신의 미래를 완벽하게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주인은 ‘옳지 않은 청지기’를 칭찬합니다(8). 주인은 청지기의 행위가 불의하다고 분명히 평가합니다. ‘아디키아’(8a)는 ‘부정직한’ 또는 ‘불의한’의 뜻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했을 뿐 아니라 문서를 조작했기에 부정직합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왜 칭찬합니까? 청지기는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점에서 만큼은 영민했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청지기의 도덕적 태도가 아니라 내일의 안전을 위해 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8b절과 9절은 비유에 대한 예수님의 해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시대의 아들들’과 빛의 아들들을 대조하면서 옳지 못한 청지기의 영민함을 이 시대의 자녀들에게서 나타나는 영민함으로 이해하십니다. 이 시대의 자녀들은 미래를 준비하는 점에서 빛의 자녀들보다 더 영민합니다. 미래를 위해 부를 훨씬 더 영민하게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불의한 재물로 영원한 처소로 인도할 친구들을 만들라고 가르치십니다(9). ‘재물’ 또는 ‘부’는 사람들에게 거짓 확신을 심고 숭배하도록 유도하는 속성을 갖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정직하지 못합니다(9). 비록 부가 불의하지만 선하게 사용하는 제자들은 친구들의 환영을 받고 영원한 처소로 인도받습니다. ‘영원한 처소들로’에서 ‘영원한 장막들’은 성자들이 죽어서 가는 장소 또는 재림 때 주어지는 처소입니다(참조. 요 14:2). 이곳은 이어지는 비유(16:19-30)에서 거지 나사로가 ‘천사들’의 인도로 들어가는 ‘아브라함의 꿈’, 부자가 던져진 음부의 반대쪽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재물이 없어질 때”는 재물의 유한성을 의미합니다. 부는 불의할 뿐 아니라 영원한 가치가 되지 못합니다. 세상에서는 영원할 것 같은 부가 죽은 사람과 함께하지 못합니다. 짧은 인생에서 짧은 기간 부를 소유하거나 취급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은 불의하고 유한합니다. “영원한 처소”는 “이 세대”와 대조되고 부의 유한성과도 대조됩니다. 부는 영원할 것 같지만 영원한 처소에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참조. 12:33). 영원한 처소로 인도하는 친구들은 천상의 존재들, 곧 천사들입니다. 천사들은 이 세상에서 궁핍한 이들을 위해 부를 영민하게 사용한 사람을 환대하고 영원한 처소로 인도할 것입니다. 빛의 자녀들에게 미래는 하나님께서 최후의 심판을 집행하시는 때, 곧 예수님의 재림을 가리킵니다. 이 시대에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부를 사용하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길입니다. 영민하고 지혜로운 제자는 불의하고 유한한 재물로 영원한 처소를 준비합니다. 빛의 자녀들은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요구하지 않고 궁핍한 자들을 도와야 합니다. 사람은 갚지 못해도 미래에 하나님이 갚아주십니다. 영주할 처소에서 천사들의 환영을 받고 하나님께서 보상하실 것입니다.

 

부에 대한 교훈(9-13)

물질이 우리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물질 사용 방식은 하나님과 물질 중 무엇을 더 사랑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선시하고 물질을 도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올바른 태도가 신앙을 반영하는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9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0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9-13)

 

예수님께서는 옳지 못한 청지기의 비유(1-8a)와 해설(8b-9)을 근거로 제자들에게 부에 대한 교훈을 전하십니다. ‘작은 것’에 신실한 자는 ‘큰 것’에도 신실하고,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합니다(10). 11절은 비슷한 용어를 사용해 10절의 의미를 강화합니다. 제자들이 불의한 재물에 신실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참된 것’을 맡길 사람이 없습니다. 10절과 11절의 평행 관계를 고려하면 10절의 ‘작은 것’은 11절의 ‘불의한 재물’과 10절의 ‘큰 것’은 11절의 ‘참된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참된 것’은 참되신 하나님께 속한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작은 것’은 ‘불의한 재물’이고 ‘큰 것’은 ‘참된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눈에는 재물이 가장 크게 보입니다. 그러나 영원의 세계에서 보면 재물은 작은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오는 세상에 준비하신 부가 큰 것이고 참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참된 것’은 다가올 시대의 영원한 것이며, 오늘 있다가 내일 사라지는 것은 참된 것이 아닙니다. 12절도 10절과 평행 관계에 있습니다. 제자들이 ‘남의 것’에 신실하지 않으면 ‘너희의 것’을 제자들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남의 것’(12)은 ‘작은 것’(10)과 ‘불의한 재물’(11)입니다. 다른 사람의 재산이고 앞의 비유에서는 불의한 재물(부)입니다. ‘너희의 것’(12)은 ‘큰 것’과 ‘참된 것’(10)이고 제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오는 세상에 준비하신 것으로 ‘너희의 것’으로 표현됩니다. 정리해 보면, 10-12절은 부에 대한 두 가지 태도와 교훈을 대조의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부에 신실하지 않은 태도는 이기적으로 부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부에 대해 신실한 사람은 궁핍한 사람들을 도우며 되갚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지우지 않고 섬깁니다. ‘작은 것’(10)과 ‘불의한 재물’(11)과 ‘남의 것’(12)에 신실한 사람은 앞의 비유에 묘사된 것처럼 빛의 자녀들이 행해야 하는 삶이고 영주할 처소로 환대받습니다(9). 곧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준비하는 삶입니다(12:33).

예수님께서는 10-12절에서 설명한 부에 대한 태도를 하나님에 대한 태도와 연결하십니다. 인간은 부와 하나님을 동시에 주인으로 섬길 수 없습니다. 집 하인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이쪽 주인을 싫어하면 저쪽 주인을 좋아하게 되고, 이쪽 주인을 가볍게 여기면 저쪽 주인을 중하게 여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부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부는 인간에게 주인의 위치에 서려고 합니다. 부는 인간을 자신의 청지기로 삼으려 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부와 하나님께서는 청지기에게 요구하는 목적을 다르게 설정하기 때문에 인간은 부와 하나님을 동시에 주인으로 섬길 수 없습니다. 본문을 1-9절의 비유와 연결해 보면 불의한 청지기는 부를 주인으로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의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청지기는 자신에게 있는 부가 많으나 적으나 상관없이 더 궁핍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사용합니다.


본문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다루며, 예수님께서 정직과 신앙을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맡은 일을 정직하고 충실하게 수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이 큰 일에서도 신뢰받을 수 있습니다. 재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 사이에서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두고, 정직하고 신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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