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14-03)
주님을 따르기 위한 제자들의 희생
누가복음 14장 25-35절
제자도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과 삶의 방식에 깊이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는 고난과 희생을 감수하며, 자신의 욕망과 편리를 내려놓는 것을 포함합니다. 제자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따라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일상 속에서 주님의 뜻을 실천해야 합니다. 또한, 제자도는 외적인 열광이 아닌 내적인 변화와 헌신을 요구합니다. 결국, 진정한 제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따르기 위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드리는 사람입니다.
- 이 단락에서는 제자도에 대해서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에게 제자도란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가치보다 예수 안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최고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매우 신중한 결단을 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두 개의 비유를 통해서 제시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제자도(25-27)
함께 간다고 모두 제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평소에는 무리와 제자가 섞여 있지만, 주님이 제자도를 요구할 때 구별됩니다. 영광이 아닌 고난이 올 때 진정한 제자가 판가름납니다. 십자가의 은혜는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십자가를 지고 가는 제자는 소수입니다. 우리는 무리인지 제자인지를 스스로 점검해야 합니다.
25수 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25-27)
예수님께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족과 자신의 삶을 미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을 우선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는 헌신을 의미합니다. 또한,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은 진정한 제자의 길임을 강조합니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 하나님 나라의 제자도(25-26)
많은 무리와 길을 가시는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제자도에 대해서 가르치실 기회를 얻습니다. 실제로 누가는 지속적으로 하나님 나라와 제자도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복음서를 기술해왔습니다. 14장을 마무리하면서 이 주제는 다시 한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 그리고 자신의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미워하다’라는 표현은 셈어적 용례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자신의 가족들을 미워하라는 가르침은 예수님의 윤리적 요구와 분명하게 배치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어구는 ‘~보다 덜 사랑하다’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곳에서 비교 대상은 예수님 자신을 의미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2)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제자도(27)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예수의 가르침은 제자도의 핵심을 드러냅니다. 제자도를 나타내기에 이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는데, 그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하늘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방해가 되는 것을 모두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진다’는 이미지는 매우 적절해 보입니다. 26절과 27절의 하반절에 사용된 동일한 표현(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앞에 27절에서 조건절로 등장하는 표현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것’입니다. 근접 문맥에서 이것은 자신의 부모, 처자, 형제와 자매, 자신의 목숨을 미워하는 것을 뜻했습니다. 즉 이러한 것들보다 예수를 더 사랑하는 것이 이 문맥 속에서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 구절이 가르치는 제자도란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예수님을 우선시하는 삶입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제자도가 보여주는 급진성을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비유1-망대를 새우려는 사람(28-30)
예수님의 제자는 자신의 신앙 여정을 진지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이는 믿음의 길에서 어떤 결단이 필요한지를 숙고하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제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삶을 살아가려는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신앙 생활은 단순한 감정이 아닌, 지속적인 헌신과 노력입니다. 결국, 참된 제자는 자신의 믿음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28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28-30)
이 비유에 등장하는 사람은 망대(타워)를 지으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비유의 초점은 그것을 세우기에 앞서서 자신이 그 사역을 마칠 수 있는 충분한 여력이 있는지를 미리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중함을 가지지 못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29-30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자신의 상황을 미리 가늠하지 못한 상태에서 섣부르게 실행에 옮긴 계획은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해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누가가 연이어 제공하는 두 개의 비유의 논점은 문맥 속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 비유들은 제자도가 요구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따르기 전에 충분히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가르침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비유2-전쟁에 나가려는 왕(31-32)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은 단순한 감정이나 열정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는 깊은 이해와 성찰을 필요로 합니다. 제자는 자신의 신앙을 진지하게 평가하고, 그에 따른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믿음의 여정은 지속적인 노력과 헌신을 요구합니다. 결국, 참된 신앙은 감정 이상의 깊은 이해와 책임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31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31-32)
누가는 망대를 세우려는 사람의 비유에 연이어서 전쟁에서 다른 왕과 싸우기 위해 나아가는 왕의 비유를 소개합니다. 기본적으로 망대를 세우려는 사람과 유사한 논점이 발견됩니다. 이 왕은 자신의 병력이 적국 왕이 보유한 병력과 어느 정도의 차이를 보이는지 고려합니다. 자신의 병력이 일만밖에 되지 못하는데 적국의 이만 병력을 상대한다면 전쟁에서 질 확률이 높기 때문에 화친을 청하는 것이 적절한 정책이라고 합니다. 고대의 전투에서는 지상군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더 강조되었고, 병력의 규모는 전쟁의 성패에 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비유의 논점은 문맥 안에서 제자도와 적절하게 연결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제자도는 매우 신중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전 비유에서 신중하지 못한 결단은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결과를 낳았지만, 전쟁 비유에서는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소유와 제자도(33-35)
신앙의 길은 헌신과 희생이 필수적입니다. 참된 제자는 자신의 편안함과 소유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이러한 헌신은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희생이 없이는 진정한 신앙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결국, 신앙 생활은 개인의 이익을 넘어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33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4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33-35)
제자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소금이 맛을 잃으면 쓸모없듯이, 믿음의 본질을 잃은 삶도 의미가 없음을 경고합니다. 참된 제자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맞게 살아가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1) 소유와 제자도(33)
‘자신의 소유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33절의 가르침은 28-30절의 비유와 31-32절의 비유를 정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가르침은 26절과 27절에서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제자도에 대한 다른 가르침과도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제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 신중하게 고려하라는 가르침이 주어진 후에,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논점인 제자도의 이슈로 바로 돌아옵니다. 26절과 27절에서 사용된 동일한 어구가 등장하고 있는데, 33절 상반절은 자신의 소유를 버리지 못한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제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도 예수님의 가치보다 못하다고 하는 가르침은 이 구절 속에서 선명하게 부각됩니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가르침이 개인의 소유에 대한 전면적인 포기를 문자적으로 종용하는 것으로 이해될 필요는 없습니다. 제자가 될 수 없는 조건들로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것들을 종합해서 고려한다면, 가족관계, 자신의 생명, 물질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 예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포기를 예수님께서는 27절에서 표현하고 있는 대로 ‘십자가를 지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십자가를 진다는 이미지는 상당한 고통과 희생을 수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따르는 제자들은 그 고통보다 더 큰 가치를 알기 때문에 그것을 기꺼이 수행하게 됩니다(참조, 마 13:44).
(2) 제자 소금(34-35)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세상 속에서 행하게 될 제자도의 이미지를 소금의 이미지와 결부시킵니다. 물론 이러한 구체적인 연결은 마태복음 5:13에서 더 선명하게 부각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문맥도 분명히 이러한 연결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소금이 짠 맛을 상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논리가 주석가들 사이에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상정된 이미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대사회에서 소금은 상당히 가치 있게 취급되었고, 이러한 이유로 소금을 특별한 저장고에 보관하였습니다. 고대의 소금은 오늘날의 정제염과는 달리 많은 불순물을 포함한 채로 보관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수로 보관소에 물이 유입되면 소금에서 염화나트륨 성분이 빠져나가고 소금과 결합되어 있던 불순물만 남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예수님께서 ‘소금이 그 짠 맛을 상실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둔 표현일 것입니다. 이렇게 된 소금은 정말로 쓸모없는 쓰레기로 전락해버립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아무것에도 쓸모가 없어져 버림을 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소금에 대한 이미지를 제자도와 결부시키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소금이 음식 속에서 그 맛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자들은 세상 속에서 맛을 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자가 그 맛을 잃어버리게 되면 아무 쓸데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에 유의하라는 관점에서 조언이 될 수도 있고, 그 말씀에 유념치 않았을 때 파생할 수 있는 결과의 관점에서 경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제자도가 단순한 믿음을 넘어서는 깊은 헌신을 요구함을 강조합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가족과 자신의 삶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길을 걸으며 각자의 희생과 결단이 필요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소금의 비유를 통해 우리의 삶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상기해야 합니다. 결국, 참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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