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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3-02)


작은 시작, 큰 변화: 겨자씨의 비밀

누가복음 13장 10-21절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세상의 가치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우리는 이 차이를 깨닫고, 하나님 나라의 원칙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은 종종 물질적 성공이나 권력을 중시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사랑과 겸손, 섬김을 중요시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이러한 가치들을 드러내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를 통해 주변에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임하는지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행동과 태도가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 13:10-21은 꼬부라져 펴지 못하는 여자가 안식일에 치유 받은 사건(10-17)과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18-21)로 구성됩니다. 두 비유는 치유 사건을 해석하기 위해 배열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사탄의 속박 가운데 살아가던 한 여자의 치유와 같이 하나님 나라가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치유를 통해 확장되는 사실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이런 특징과 작고 보이지 않는 겨자씨와 누룩의 속성은 잘 어울립니다.

 

아브라함의 참 자녀와 거짓 자녀(10-17)

신앙생활에서 우리는 형식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사랑과 긍휼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힘이 부족할 때에도 주변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며, 서로를 돌보는 것이 그 본질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진정한 신앙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10○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17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10-17)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습니다(10). ‘보라, 여자가 있었다!’(11). 그러나 귀신이 18년 동안 그녀를 약하게 만들었고 몸을 펴지 못하게 했습니다. 여자는 사탄에게 매여 있었습니다(16). 안식일이 아닌 다른 날에 오라고 지시한 회당장의 말에 따르면 여자는 예수님의 권능에 의지해 회당에 나왔을 것입니다(14). 여자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모두에게 부담을 주는 모습이라 생각하고 회당구석에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허리를 펼 수 없으니 예수님을 바라보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의 빛이 그녀에게 비쳤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녀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10절과 11절은 각각 문장의 맨 앞에 ‘보라 여자가 …’, ‘보셨다 그녀를’을 배열함으로써 예수님의 시선이 병든 여자에게 향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 여자를 불러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고 선언하셨습니다(12). ‘네가 풀려났다’는 완료형으로 여자에게 병의 치유가 이미 일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의 권위로도 치유되기 시작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긍휼의 마음으로 손을 여자의 병든 몸에 얹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권능과 긍휼로 여자는 허리를 폈습니다(13). 나사렛 회당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된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것을 사명으로 선언하셨습니다(4:18-19). 사탄보다 ‘더 강한 자’(11:22)로서 사탄의 속박 가운데 있던 여자를 풀어주고 가난한 인생에게 기쁜 소식을 선사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도 혈루증 여자의 경우처럼 여자를 앞으로 불러 사람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이는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무엇인지 목격하게 하고 여자를 공동체로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여자는 사람들의 외면과 무관심 가운데 18년을 살았으나 이제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온전해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치유된 여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13).

이 광경을 목격한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치유한 이유로 화를 냈습니다(14). 일을 할 수 있는 엿새가 있으니 병 치유를 원하는 사람은 평일에 와야하고 안식일에는 치유받지 말라고 지시합니다(15). 예수님께서는 공개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보여주셨고,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 규례를 침해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비판합니다. 회당장은 자신이 회당의 책임자이고 율법 해석과 적용의 권위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해야 한다’라는 표현으로 안식일에 치유받고 치유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당위성을 주장합니다. 회당장의 논지는 이렇습니다. 여자는 18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 있으므로 안식일에 치유해야 할 정도의 응급 환자가 아닙니다. 사실상 안식일에 병을 치유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습니다.

주께서 회당장의 말을 듣고는 위선자들을 향해 책망하십니다(15). 안식일 규례를 사람과 짐승에게 차별적으로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 끌고 가서 물을 먹입니다. 그들은 가축을 위해 자주 노동을 했습니다. 이는 가축에 대한 동정심에 기인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브라함의 귀한 딸을 풀어주는 것은 비판합니다. “안식일에 가축이 당장 갑갑해서 죽는 것도 아닌데 왜 짐승을 풀어주느냐?” 하물며 18년 동안 아브라함의 딸이 사탄의 속박 가운데 있다가 안식일에 매임에서 풀리는 것이 지극히 합당하지 않느냐고 반문하십니다(16). 회당장이 ‘해야 한다’고 권위를 주장하자 예수님께서도 ‘해야 하지 않느냐’의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주로서 안식일 규례의 의미를 정확히 해석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자 안식일 치유를 반대한 자들이 부끄러워하고 무리는 모두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영광스런 일을 기뻐했습니다(17).

본문은 사람의 가치에 대한 반전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장과 당시의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딸을 짐승보다 못한 가치로 취급한 것을 심각하게 지적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위선자들로 질책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들은 안식일 규례를 적용할 때 짐승은 동정심으로 배려했지만 18년 동안 고통당한 병든 여성이 치유받은 것은 불법 시술과 같이 취급하고 경고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아브라함의 딸로 보셨고 존엄성을 회복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18년 동안 사탄에게 매여 몸을 펴보지도 못한 여자를 치유하기에는 안식일보다 더 좋은 날이 없었습니다. 사회의 바닥에 있는 인생을 예수님께서 존귀한 딸로 여기고 치유하신 사건은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반영합니다. 전통과 규례에 얽매여 귀한 영혼을 그림자 취급한 사람들은 멸시받던 여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워해야 합니다(17). 하나님 나라는 가난하고 갇힌 자들이 회복되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받으시는 나라입니다. 약하고 작은 사람을 새롭게 창조돼야 할 아브라함의 자녀로 가치 있게 여기는 나라입니다.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18-21)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것에서 시작되지만, 그 안에 큰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통해, 작은 신앙의 실천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고, 공동체에도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우리의 작은 행동이 하나님의 큰 사역에 기여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18○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19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21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18-21)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로 설명합니다. 겨자씨 비유를 통해 작은 시작이 큰 결과를 가져온다고 강조하며, 누룩 비유를 통해 작은 것이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점차 확장되고 영향력을 미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1) 겨자씨의 비유(18-19)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는 안식일의 치유를 해석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질문하십니다(18).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그리고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로 대답하신다(19-21). 왜 예수님께서는 작은 특징을 내포하는 겨자씨와 누룩을 예로 드십니까? 누구도 관심 두지 않은 병든 여자를 보고 치유하신 원리처럼 하나님 나라는 대중의 관심 속에서 웅장하고 화려하게 시작하고 확장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마치 어떤 사람이 채소밭에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습니다(19). 겨자씨가 자라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가지에 몰려듭니다(20).

 

(2) 누룩의 비유(20-21)

 

본문에서는 밭 대신 정원이 언급됩니다. 정원은 밭보다 더 수고해야 결실을 얻는 곳입니다(참조. 13:6-9). 수고하는 예수님의 노동은 반대 세력이 득실거리는 예루살렘에서도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겨자씨는 나무가 됩니다(시 104:2:겔 17:23; 31:6; 단 4:9-21). 예수님의 사역으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 안에 포함될 것을 예고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기 시작합니다(겔 17:23;31:6; 단 4:9-21).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부족하고 연약한 자들의 변화로 시작되고 확장되는 점을 겨자씨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세상의 영광을 충족시키는 나라인 것을 강조하려 했다면 능력(시 80:10; 92:12; 슥 11:2)과 웅장함(아 1:17; 22:23)의 상징이었던 백향목의 비유를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어떤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넣어 부풀게 한 누룩과 같습니다(21). 밀가루 서 말(약 27킬로그램)은 150명을 먹일 수 있는 양입니다. 누룩온 적은 양이라도 밀가루 반죽을 전부 부풀어 오르게 만듭니다. 작아서 간과하고 무시하고 쉽고 인지하지 못할 수 있는 일에서 하나님 나라는 시작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일상의 삶에서 은밀히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두 비유는 하나님 나라가 작게 시작했으나 크게 되는 속성과 처음부터 겸손을 특징으로 하여 자라는 속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상과 달리 놀라운 정도로 자랍니다. 겉보기에 보잘것없는 활동처럼 여겨져도 실제로는 비유의 가르침처럼 놀랍게 확장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능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의 영웅담을 만들어주는 나라가 아닙니다. 8년 동안 사탄에 매여 고통당하다가 해방된 여자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가지고 오신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적절히 반영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회의 주변부에 살고 있던 병든 여자를 회복시키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지고 오신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자들이 살아나 예수님의 공동체에 참여합니다. 성육신의 원리에 따라, 곧 매일의 삶 가운데서 겸손히 낮아지는 속성을 유지합니다. 긍휼이 필요한 사람들의 변화를 통해 긍휼이 확장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과 그 확장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받는 자를 외면하지 않고, 안식일에도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신앙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 줍니다. 또한, 겨자씨와 누룩 비유를 통해 작은 시작이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강조하십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작은 행동을 실천하며, 사랑과 자비를 전파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의 작은 노력이 모여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확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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