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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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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다윗 왕국을 위한 서막

사무엘하 1장 1-16절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면, 1막이 끝나면 막을 내리고, 잠시 무대를 정리할 시간을 가졌다가 다음 막을 위해 다시 막을 올리면서 또 다른 내용의 연극을 시작합니다. 이처럼 ‘사무엘상’ 막을 내리고, 이제 ‘사무엘하’ 막을 올리고 있습니다. 원래 사무엘 상하는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많은 분량으로 상하로 나눈 것뿐입니다. 사무엘 상하의 분기점은 사울의 죽음입니다. 그래서 사무엘하는 ‘사울이 죽은 후’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사울의 시대가 지나가고 다윗 통치의 새 시대가 왔다는 선언입니다.

 

이 단락은 다윗이 사울의 죽음에 관해 알게 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다윗이 시글락에 머물고 있을 때, 사울의 병사 중 한 명이었던 아말렉 청년이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아말렉 청년은 전쟁 중 중상을 입은 사울 왕의 부탁을 받아 그를 죽인 뒤, 그의 왕관과 팔찌를 벗겨 다윗에게 가져왔다고 보고했습니다. 다윗은 이 보고를 듣고 크게 슬퍼하며 울고 금식하였습니다. 또 다윗은 자신이 사울을 죽였다고 말하는 그 청년을 수하를 시켜 죽이게 하였습니다.

 

아말렉 청년의 보고(1-5)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께서는 위대하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라도 큰 일꾼으로 쓰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서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자리를 탐내기 전에 자신을 합당한지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공동체는 지도자를 잘 만나고, 지도자가 누구인가가 중요합니다.

1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죽이고 돌아와 다윗이 시글락에서 이틀을 머물더니 2사흘째 되는 날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영에서 나왔는데 그의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그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3다윗이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하니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하니라 4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너는 내게 말하라 그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가운데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하는지라(1-4)

성도의 태도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사울의 죽음을 알려온 아말렉 소년을 죽이는 사건을 통해, 다윗 왕국은 이 세상의 욕심과 성공의 방법으로 발붙일 곳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을 따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나라임을 보여줍니다. 사건이 발생한 시간이나 장소를 기록하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됨을 알리는 표시입니다.

(1) 시간과 장소(1)

사무엘하의 이야기는 “사울의 죽은 후라”(1)라고 시작합니다. 이 의미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왕 다윗의 시대가 시작됨을 함축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 무렵 아말렉과의 전쟁을 마치고 시글락으로 돌아온 지 이틀이 지났습니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죽은 후에(삼상 31:1-6), 다윗이 공식적으로 행한 첫 번째 일은 아말렉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앞으로 펼쳐질 다윗 왕국은 사울의 왕국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였지만, 다윗은 아말렉을 심판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은 아말렉 족속을 에서의 후손으로 소개합니다(창 36:12; 대상 1:36). 이들은 유다 남부 광야지대나 시내 반도에 거주하는 유목민으로 등장합니다. 히브리 민족과 아말렉 사이의 적대 관계는 출애굽 직후에 형성되었으며, 사울 왕이 아말렉을 진멸함으로써 그 적대 관계가 대부분 청산되었습니다(출 17:8-16; 삼상 15장). 그 후에도 아말렉이 여전히 존속하였는데, 다윗이 한동안 머물렀던 성읍 시글락을 약탈했던 무리가 아말렉이었습니다(삼상 30:1-2). 다윗은 아말렉을 추격하여 그들을 살육하고, 사로잡혔던 가족을 되찾고 많은 재물을 빼앗았습니다(삼상 30:16-20). 그후 다윗은 시글락으로 돌아와 머물렀습니다. 시글락은 아마도 브엘세바에서 죽쪽으로 약 30km 떨어진 곳에 해당합니다.

(2) 아말렉 청년의 모습(2)

다윗이 아말렉은 도륙하고 시글락에 돌아와 쉬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소년이 사울의 진영에서 나왔습니다. 그의 모습은 엉망이었습니다. 옷이 찢어져 있었고, 머리에 흙이 있었습니다(2). 그는 죽은 자를 애도하거나 전쟁에서 패배했음을 슬퍼하는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창 37:34; 수 7:6; 삼상 4:12; 삼하 13:31; 시 35:13). 그가 다윗 앞에 와서 땅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3) 아말렉 청년의 보고(3-4)

이 아말렉 청년은 이스라엘 진영에 있다가 도망한 자였습니다. 다윗에게 블레셋과 전투에서 있었던 사울 왕과 요나단의 죽음을 보고 합니다. 다윗은 그에게 전쟁의 결과에 관해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전쟁 도중에 도망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 역시 죽었다는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사울왕의 죽음은 결국 이스라엘의 패배로 끝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패한 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전전긍긍하다 결국 패하고 전사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의 질문(5-10)

진실을 외면하고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공을 세운 것처럼 가장하여 칭찬과 상급을 받으려는 얄팍한 잔꾀는 스스로를 멸망시킵니다. 자신의 이익을 우리가 밝혀야될 진실보다 자신에게 유리한 거짓을 꾸미고 있지는 않습니까? 인간의 얄팍한 꾀는 오히려 자승자박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진실을 왜곡하는 거짓된 삶을 격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5다윗이 자기에게 알리는 청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6그에게 알리는 청년이 이르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가 보니 사울이 자기 창에 기대고 병거와 기병은 그를 급히 따르는데 7사울이 뒤로 돌아 나를 보고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8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그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9또 내게 이르시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 중에 있나니 청하건대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10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의 곁에 서서 죽이고 그의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하니라(5-10)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놀라운 소식을 들은 다윗은 소년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합니다.

(1) 다윗의 질문(5)

다윗은 아말렉 소년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려고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느냐고 다시 질문합니다. 본문에서는 ‘어떤 사람’으로 불리던 정보 전달자를 처음으로 ‘청년’(나아르)이라 부릅니다. 히브리어 ‘나아르’는 청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어린 나이의 소년을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이 단어는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초보자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여기서 ‘나아르’라는 칭호는 그의 보고가 신뢰하기 힘들다는 다윗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으로 보이는 어린 나이의 병사, 나아르가 이스라엘 왕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에 관해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 다윗에게 의구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2) 아말렉 청년의 보고(6-9)

아멜렉 청년은 사울을 만난 것은 우연이라고 강조합니다. 자신이 길보아 산에 우연히 올라갔다고 말합니다. 그가 말한

‘길보아 산’은 이스르엘 평원의 동쪽 끝부분에 있으며, 이 산의 높이는 해발 500미터 정도입니다. 그는 자신이 두 눈으로 본 것을 말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보라’라는 뜻의 ‘힌네’를 사용하여 설명합니다.

청년은 사울이 자기 창에 기대 있었고, 기병과 병기가 사울을 추격하여 매우 가까이 와 있음을 보았습니다(6). 자신이 사울 왕을 볼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사울 왕이 고개를 돌려 아말렉 청년을 보고서 불렀습니다(7). ‘네가 누구냐?’ 하고 묻는 사울의 질문에 그는 자신이 아말렉 사람이라고 답했습니다(8). 그러자 사울은 자신의 목숨이 아직 완전히 있어서 고통스러우니 자신을 죽이라고 그에게 지시했습니다. 목숨이 완전히 있다는 것은 ‘콜-오드 나프쉬’의 번역입니다. 이 번역은 사울이 마치 건강한 상태로 있었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콜(모든)은 뒤에 나오는 오드(여전히)를 강조하는 역할을 하며, 생명이 완전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드는 생명이 소멸되지 않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콜-오드 나프쉬’는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상태를 표현합니다. 고통으로 번역된 ‘샤바츠’는 성경에서 단 한 번 사용되었으며(hapax legomenon), 의미가 불분명합니다. 칠십인역은 이 단어를 ‘스코토스 데이논’, 즉 ‘공포스러운 흑암’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단어는 벗어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가리킬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고통 중에 있나니’(9)는 ‘내가 절망적인 상황에 부닥쳤으니’라는 뜻입니다.

사울 왕은 창에 기대고 있었고, 그의 뒤를 병거와 기병이 급하게 쫓아오고 있는 다급한 상황이었는데, 이때 사울이 뒤돌아보고 자신을 불러서 그에게 갔다고 합니다. 소년은 사울과 만난 장면을 매우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3) 아멜렉 청년의 행동(10)

아말렉 청년은 사울이 기력을 소진한 뒤 쓰러지면 생명을 잃을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울의 지시대로 사울을 죽이고, 그의 면류관과 팔찌를 취하여 다윗에게 가져왔습니다. 여기서 ‘면류관’(네제르)은 왕이 야외에서 착용하는 간편한 형식의 왕관을 가리킬 것입니다. 또 ‘팔찌’(에츠아다)는 팔꿈치 위쪽에 착용하는 형태로 여겨집니다. 이 청년은 자신이 칭찬받으리라고 생각하여 이처럼 말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먼저 사울의 사망에 대한 경위를 살펴보면, 자신이 우연히 길보아 산에 갔었는데 부상당한 사울 왕을 만났고 말했습니다. 부상이 심한 사울 왕은 자신에게 죽여 달라고 원했었고, 그래서 자신은 사울을 죽인 후에, 사울의 징표인 왕관과 팔찌를 증거로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년의 보고는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점들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3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 미치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를 인하여 중상한지라 4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5병기 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삼상 31:3-5)

사울은 활 쏘는 자에게 쫓기고 있었지만(삼상 31:3), 여기서는 병거와 기병에게 쫓기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 사울은 병기 든 자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부탁하다가 자신이 자살해 죽지만(삼상 31:4), 여기서는 아말렉 소년은 자신에게 부탁해서 자신이 고통을 덜해 주기 위해 죽였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다윗의 원수 사울 왕을 죽였기 때문에, 다윗을 위한 일등공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윗이 세울 새로운 나라의 공신으로 세워달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거짓된 공적을 꾸며서 유리하게 거짓 보고한 것입니다.

 

다윗의 반응(11-16)

무엇에 기뻐하고 슬퍼하는지를 보면 무엇을 가장 열망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는 판단이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평생 따라다니면서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원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기뻐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11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12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을 인하여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13다윗이 그 소식을 전한 청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14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15다윗이 청년 중 한 사람을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그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16다윗이 그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언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11-16)

평생 칼갈이 다윗을 위협하던 사울은 건재했습니다. 기름 부음 받은 자 사울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긴 그의 판단은 옳았습니다. 그리고 이 판단을 거스른 아말렉 소년을 처형합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는 판단이 우리를 지켜줍니다.

(1) 슬퍼하는 다윗(11-12)

다윗은 자신의 목숨을 끈질기게 노리던 사울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기뻐하기보다는 매우 슬퍼하였습니다. 다윗과 부하들은 모두 자기 옷을 찢고 저녁까지 금식하면서 그들의 죽음을 위해 금식하였습니다.

한 번도 사울을 원수로 여긴 적이 없었습니다. 사울 왕의 죽었다는 소식은 다윗은 개인적인 감정과 욕심을 떠나서 하나님이 세운 이스라엘 왕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그의 슬픔은 결코 정치적 위선이 아니라 안타까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과 슬픔에는 쉽게 동참할 수 있지만,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의 슬픔에 동참하기란 전혀 쉽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모든 일들을 하나님 나라의 거시적인 차원에서 살펴가야 합니다.

(2) 처형당하는 아말렉 청년(13-16)

다윗은 사울을 죽였다고 자랑스럽게 거짓 보고하며, 큰 상을 기대했던 아말렉 소년을 죽이라고 다윗은 명령합니다. 그를 죽이라는 이유를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14)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말렉 소년을 심판한 것입니다. 아말렉 소년이 생각한 것처럼, 다윗은 결코 사울 왕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다윗은 그를 징계하고 죽임으로써 하나님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에 대한 다윗의 변함없는 태도를 말합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입은 사람을 죽이는 것은 큰 죄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거역을 나타내며,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왕관을 취하려는 삶을 결코 원치 않았습니다. 결국 원수의 죽음을 기뻐하리라는 생각과 그것을 이용해서 성공하려는 아말렉 소년의 꿈은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거짓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룹니다. 아말렉 소년은 뛰어난 연기와 능숙한 말솜씨로 다윗을 속이는데 성공할 수 있었지만, 그의 거짓된 행동은 자신의 죽음을 불러왔습니다. 우리들도 야망을 위해 거짓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버려야 합니다. 진실한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나가는 말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들을 행할 때,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순종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데, 하나님의 중심과 방식대로 순종하면서 시작한 것입니다. 욕심이 아닌 말씀을 따라 반응하게 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거짓이 아닌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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