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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10-02)


변하지 않는 구원 법칙

로마서 10장 5-13절


아주 오래전에 서울대학교를 일반대학도 입학할 수 없는 점수로 합격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큰 뉴스거리였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2학기를 버티지 못하고 학업을 그만두었습니다. 학생들이라고 한다면 일류대에 들어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사람들보다 실력이 월등해야 합니다. 잠을 줄이고 더욱 많은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헌신해야만 일류대에 들어갈 실력이 되고 입시를 통과해서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습니다. 가령 구원을 얻는 방법이 이렇게 어렵다면 어떻겠습니까?

 

바울의 간절한 소망은 유대인들의 구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의가 아닌 자신의 의를 내세우려고 헛된 노력을 다했습니다. 구원의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율법은 의와 생명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예수님만이 의와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고 소개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주로 시인하며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습니다.

 

율법에서 난 의(5)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은 무엇입니까? 율법의 계명을 어기면 연약한 죄, 죄인 된 죄, 하나님과 원수 된 죄를 깨달음입니다. 그러나 율법으로 어떤 사람도 완벽한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된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5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5)

바울은 9:30-10:4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 담긴 새 언약 약속이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성취되었음에도 유대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옛 언약을 고집하여 그분 선택의 긍정 결과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여기서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의 대조를 통해 그들 문제를 부연하는데, 특별히 ‘의’를 얻는 방법에 집중합니다. 그는 먼저 옛 언약이 말한 내용 소개로 시작합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난 의에 대해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그 안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율법에서 난 의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율법을 추구하는 유대인이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결과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음을 진단하지만, 율법 추구 자체가 문제라는 식의 논증은 없습니다. 여기서도 바울은 담담하게 레위기 18:5을 인용해 율법에서 난 의를 모세의 가르침이라고 말합니다. 출애굽 당시 모세 가르침의 기원이 하나님이었기에, 의에 대한 가르침도 언약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따라서 율법에서 난 의의 원리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율법에서 난 의는 무엇입니까? 이 개념은 언약 관계를 배경으로 하나님을 향한 언약 백성의 의무 이행과 관련 있습니다. 언약 관계에는 상호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을 사랑하고 관계에 신실해야 하며(시 25:10), 백성은 올법이 제시한 하나님의 뜻을 성실하게 이행함으로 관계에 충실해야 합니다(신 4:40). 법에서 난 의는 언약 백성이 율법 준수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언약 백성다운 상태로 인정받는 것을 뜻합니다(신 6:25). 이런 의의 상태는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함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며 살게 합니다. 그렇기에 율법에서 난 의는 모든 언약 백성이 반드시 추구해야 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통해 새 언약 백성이 된 신자도 율법을 통한 하나님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모세 율법의 모든 조항을 문자적으로 다 따를 필요는 없지만,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율법의 핵심 정신인 하나님 사랑/사람 사랑을 반드시 삶으로 표현하며 살아야 합니다(13:10; 참조, 갈 5:14; 요일 3:23).

 

믿음에서 난 의(6-13)

유대인들은 율법대로 살아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것으로 스스로 의롭게 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율법(행위)을 통해 의롭게 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이 아닌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되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믿음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면 되는 것입니다.

6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6-13)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부르는 자를 차별 없이 구원해 주십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로 믿고 주님으로 고백합니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십니다.

(1) 메시아(메시아)에 대해(6-7)

‘그러나’로 율법에서 난 의와 대조되는 ‘믿음에서 난 의’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바울의 설명을 살펴보기 전에 몇 가지를 짚고 가야 합니다. 첫째, 5절과의 대조점은 모세와 예수님이 아니라, 의를 얻는 방법, 곧 율법과 믿음입니다. 둘째, 믿음에서 난 의의 개념입니다. 믿음은 구원의 상호 작용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시작한 것에 대한 사람의 긍정 반응이고, ‘의’는 사람의 반응에 대해 하나님께서 주신 결과입니다. 그렇기에 상호 작용 과정 설명에서 이 의는 사람이 구원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뜻하고, 두 영역 설명에서는 죄와 죽음의 영역에서 벗어나 하나님 통치 영역 안으로 옮겨져 새 언약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 율법에서 난 의와의 관계입니다. 이 두 개념을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향한 구원 방식 차이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즉, 유대인은 율법으로, 비유대인은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둘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로 이해해야 합니다. 율법은 언약 백성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데, 사람의 응답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도 함께 계시합니다. 순종에는 복과 생명이 있지만, 불순종에는 정죄와 심판이 있습니다(신 28장). 문제는 언약 백성이 이것을 다 알고도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근원적 죄와 파생 죄악들을 중단하지 않은 유대인의 역사는 율법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 역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계속 신실했고 새 언약을 약속했습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죄인 대신 예수님을 심판하심으로 죄인에 대한 율법의 저주를 끝냈고, 그의 부활로 구속 과정이 성공했음을 확증했습니다(4:25). 이제는 옛 언약 안에 있는 유대인을 포함한 모든 죄인이 하나님의 그 주권적 일하심에 믿음으로 응답하면, 죄 용서와 함께 새 언약 관계 안으로 들어갈 자격을 얻습니다. 이런 면에서 여기서 바울이 말한 의와 관련한 대조는 (1) 구원의 새 언약에 참여하는 과정과 관련 있으며, (2) 믿음에서 난 의는 율법에서 난 의를 얻지 못한 자에게 새롭고 완전한 기회를 주는 하나님 은혜의 표현입니다. 바울이 믿음에서 난 의에 대해 설명합니다(6b-13). 몇몇 요소를 차례로 소개하는 과정으로 진행합니다. 첫 단계는 믿음의 내용인 메시아에 대해서입니다(6-7). 바울은 ‘너’의 마음속에서 하늘에 올라가겠다거나 땅 밑 무저갱으로 내려가겠다고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올라가겠다는 것은 이미 성육신한 메시아를 모셔 내리는 것이고, 내려가겠다는 것은 부활한 메시아를 다시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30:12-13을 변형한 형태이며, 핵심은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성육신해서 십자가와 부활로 구속 사역을 완수했으니 새 언약 성취를 위해 다른 메시아를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2) 복음의 내용에 대해(8-10)

‘그러나 무엇을 말하느냐?’ 표현으로 믿음에서 난 의에 대한 두 번째와 세 번째 단계를 소개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복음 증거 과정입니다. 바울은 신명기 30:14을 인용해 말씀이 ‘너’에게 가까워 ‘너’의 입과 마음에 있다고 하고는, 그 말씀을 복음 전도자(우리)가 전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합니다(8). 복음 안에는 이 땅에 와서 구속 사역을 끝낸 메시아에 대한 증거가 있기에, 유대인은 다른 곳에서 메시아를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복음에 대해 바른 반응을 하면 됩니다. 이것이 세 번째 단계인 믿음의 반응입니다. 만일 ‘너’가 입으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린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해 구원에 이릅니다(9-10). 두 가지 관찰 거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a) 입으로 시인 - (b) 마음으로 믿음(구원받음) - (b) 마음으로 믿음- (a) 입으로 시인(구원받음) 형태의 구조입니다. 이 구조는 입으로 시인하는 것과 마음으로 믿는 것의 경중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함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마음이 인간 인격의 중심이고 입이 마음의 표현 통로이기에, 이 둘은 안에서의 믿음을 밖으로 표현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믿음과 시인의 내용입니다. 모두 예수님에 대해서입니다. 믿음의 내용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것이지만, 이는 십자가 사역을 포함한 구속 사역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구원의 상호 작용 과정 중 하나님께서 하신 첫 단계입니다. 시인하는 내용은 예수님께서 주라는 것입니다. 두 영역을 배경으로 구원의 영역에서 예수님을 새로운 주인으로 모시고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이는 또한 창조주 대신 자신을 사고 체계의 중심에 세운 것과 반대이기에 근원적 죄에 대한 완전한 회개를 전제로 합니다.

(3) 복음을 통한 공평한 구원(11-13)

믿음에서 난 의의 또 다른 요소를 다룹니다. 이번에는 구원의 차별 없는 개방성입니다. 성경이 메시아를 믿는 자는 결코 부끄러움 당하지 않는다(11; 참조.사 28:16; 롬 9:33)고 말한 것처럼, 예수님으로 인한 구원 과정은 유대인이나 비유대인 모두에게 차별 없이 열려 있습니다(12; 참조. 1:16; 3:22). 그렇기에 9-10절처럼 믿음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모든 성도의 주가 되시고, 그들은 구원 과정에 참여해 예수님께서 주는 풍성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설명에 의하면 믿음에서 난 의는 (1) 옛 언약의 한계 위에 약속된 새 언약 구원의 성취로서 (2)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역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3) 복음 전파자의 증거로 전해져 (4) 유대인/비유대인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5) 오직 마음의 믿음을 입으로 시인한 자만 구원 과정에 참여하게 됩니다. 바울이 이렇게 율법에서 난 의와 믿음에서 난 의를 대조한 것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도 은혜의 기회를 열어 주셨음에도 그들이 믿음으로 응답하지 않아 지금의 상태가 되었음을 분명히 지적하려는 의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목적을 성취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율법 돌판을 소유한 자나 혈통적 유대인이 아니라, 율법의 마침이 되신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자가 구원을 받습니다. 마음과 입에 둔 율법의 목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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