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10-03)
핑계할 수 없는 이스라엘
로마서 10장 14-21절
광주광역시 양림동 언덕 위에는 선교사 묘지가 있습니다. 전라도에서 선교하시다가 돌아가신 23명의 선교사들과 가족들도 잠들어 있습니다. 100여 년 전에 좋지 않은 미개국인 와서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들의 희생과 순교가 없었다면 우리들은 아직까지 복음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선교사님들에게 우리는 복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그들의 사명을 기억하면서 그 선교사들이 조선 땅에 왔고, 지금도 많은 분들이 주님의 사명을 기억하면서 열악한 곳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자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을 세우시고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의 메시지가 전달되었지만, 듣고도 모른척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 복음을 거부해 버렸습니다. 그들에게 거부당한 복음이 이방인들에게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전 세계에 전파됨으로 많은 이방 사람들이 깨달고 돌아왔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도 부릅니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겠습니까?
복음 전파의 과정(14-17)
복음 전파는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자신에게 기회 있을 때 충성해야 합니다. ‘기회’는 항상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하는 일에 대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점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14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6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4-17)
복음 전도자들은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말씀에 가까워진다는 뜻입니다. 주의 ‘말씀’은 육화되었고 우리가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돌판이 아니라 마음에 말씀이 새겨져 있고, 멀리 있지 않고 우리 입과 마음에 있어 실천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⑴ 복음 전파의 과정(14-15a)
바울은 본문에서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부터 받는 사람까지 설명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받았던 사람으로부터 전파한 사람까지 역순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음 전파는 믿음에 이르게 하는 길이라고 소개합니다. 한 영혼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복음 증거 과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를 사용한 네 개의 질문을 통해 다섯 단계로 복음 증거와 그에 대한 반응을 소개합니다. 각 질문은 원인과 결과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각 질문은 이전 질문과 꼬리물기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전 질문의 원인 과정을 다음 질문의 결과로 사용하는 형태입니다. 전체적으로 (1) 어떻게 그들이 그를 부름(결과) - 그들이 그를 믿지 않음(원인) → (2) 어떻게 그들이 믿음(결과) - 그들이 듣지 못함(원인) → (3) 어떻게 그들이 들음(결과) - 선포가 없음(원인) → (4) 어떻게 그들이 선포함(결과) - 보내심을 받지 못함 (원인)의 구조입니다. 바울은 꼬리 물기 설명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 복음이 사람들에게 들려질려면 누군가는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전하는 사람은 누군가에 의해 보내심을 받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음 전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 영혼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순종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에 하나님을 믿게 된 것도 누군가의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게 되어진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제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전파하는 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멀리 나가서 전파할 순 없지만, 가까운 곳에서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함으로 복음이 전파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믿음 이전에 말씀을 들어야 하며 듣기 이전에 선포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 이전에 보냄을 받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은 들음에서 시작하는데, 이것이 믿음의 가장 근원이 되는 기본입니다. 믿음이란 기본을 듣는 것입니다. 믿음은 말씀을 듣는 것에서 시작되기에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잘 듣지 않고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은 한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할지 모르지만, 당신의 수고를 통해 믿었던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전하고, 또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면, 점점 세상 끝까지 복음이 전파될 것입니다.
⑵ 복음 전하는 사람(15b-17)
복음 전하는 사람들은 아주 중요한 일을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귀한 사람들인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해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로 표현합니다.
7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이사야 52:7)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은혜의 때를 선포하던 그 순간을 떠올렸습니다(사 52:7).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나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던 때를 떠올리며 감격스러워했습니다. 누군가 70년간의 포로생활에서 해방된 소식을 전할 때 그 발이 얼마나 복된 발걸음이 되었겠습니까! 과거에 우리나라는 일본의 지배를 35년 동안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으로부터 해방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기쁜 발걸음이 되었겠습니까! 기쁨의 소식을 가져다주는 발은 복된 발걸음일 것입니다. 이곳에서 사도 바울은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는 것만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죄와 죽음에서 있던 사람들에게 생명의 길로 이끄는 소식은 말할 수 없이 좋은 소식입니다. 이것은 사형수에게 감형을 얻고 출옥하는 것보다 좋은 소식입니다. 이것은 복음 전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귀한 사람들인지를 말합니다. 당신이 말씀을 전파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얻게 된다면, 그보다 더 복되고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분이 새로운 선교지에 선교사님이 부임하길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것은 네가 가장 적격이다.’라고 응답하셨습니다. 그는 한국에서의 교회생활이나 신앙생활을 정말 재미있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앙이 안일함에 빠질까봐 명하신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떠나기로 했습니다. 때로는 일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삶이 무기력해지고 안일한 신앙에 빠지기 쉽습니다. 무기력한 삶을 깨고 힘 있는 삶을 살길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영적인 전투를 해나갈 때, 그리스도인으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사명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무기력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수많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봉사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명으로 알고 수고할 때, 당신의 수고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것이며, 그들도 당신을 통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위해 사역을 감당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 수고하는 발길은 얼마나 아름다운 발길이겠습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일에 당신이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복음을 무시하는 이스라엘(18-21)
복음 전파를 위해 수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봉사는 매우 아름답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봉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이라고 소개합니다.
18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19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20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21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18-21)
유대인이 계속해서 복음을 거부했지만, 오히려 이방인이 하나님 나라에 진입하였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 새로운 백성으로 편입하는 이방인의 모습을 봄으로써 시기와 질투를 느끼게 되고, 결국 그들도 구원 대열에 합류하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⑴ 부정적인 이스라엘의 반응(18-20)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냉담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이 세상에 오실 메시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곳에서 사도 바울이 질문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음을 들었는데도 복음을 믿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시편의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은 이미 전파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4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시편 19: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을 수 있도록 온 세상에 말씀을 전했습니다. 심지어 온 땅에,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못들었다고 변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점은 자신의 것만 최고로 생각하는 집착(執着)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주장이나 이론을 들어보지 않고 무조건 반대하는 형상이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자신이 생각하는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복음을 전할 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떤 문제에 집착하면, 주변에서 아무리 무슨 말을 해도 흘러버리고 들리지 않습니다. 사랑에 빠진 여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외에 다른 말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눈에 콩깍지 썼다.’고 말합니다. 종종 고집을 부리다가 나중에 현실로 돌아와서 후회하는 경우를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통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온 땅에 전파되는 복음을 통해서 이방인들조차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사도 바울의 안타까움이 배어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이사야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21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신명기 32:21)
또한 이사야는
1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이사야 65:1)
이방인들은 전혀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복음을 듣고, 복음을 믿었고, 그의 복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깨닫지 못했습니다. 더 나가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불순종으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 되지만, 무슨 이유로든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의를 거슬릴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⑵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21)
불순종과 거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많은 긍휼과 오래 참으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들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믿을 수 없었다고 변명할 여지를 완전히 차단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으로 돌아오길 기다린 하나님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믿지 못한 것은 그들이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듣고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부한 것은 알아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순종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은 그들의 마음이 완악해서 의도적으로 주님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거부한 불순종한 그들에게 아직까지도 손을 벌리시며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손을 내미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복음을 전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구원의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2000년이 넘도록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내하시면서 수많은 영혼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부모가 자식을 포기하지 않듯이, 하나님의 구원 열정은 식을 줄 모릅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세상이자 절절한 사랑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일은 영광스럽고 복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 사랑의 열정을 본받아 기쁨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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