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19-02)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삶(3)
레위기 19장 19-37절
세상에는 많은 법칙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법칙을 초월한 하나님의 법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칙을 통해서 날마다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을 묵상하면서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적용입니다. 적용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위험한 일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관념적이며 또는 종교적인 것으로 치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레위기의 정결법과 마찬가지로 생활의 셩결을 추구함에 있어서도 언약 백성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 질서를 잘 지켜야 합니다. 두 종류를 혼합하는 것은 원래의 정상 상태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또한 고대 근등에 만연해 있던 점술, 마술 등에 대한 규례도 제공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함은 주어진 영역에서 혼합되지 않는 구별을 뜻하며, 이 원리는 삶의 모든 부분에서 적용됩니다.
혼합 금지와 여종과의 성범죄 금지(19-2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규례 중 일부는 당시 문화 속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적용되었습니다. 이러한 규례들은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의미가 있었으나, 신약시대에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분이 사라졌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규례는 현대의 신앙 생활에는 유효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모든 인류에게 확장되었음을 나타냅니다.
19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20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정혼한 여종 곧 아직 속량되거나 해방되지 못한 여인과 동침하여 설정하면 그것은 책망을 받을 일이니라 그러나 그들은 죽임을 당하지는 아니하리니 그 여인이 해방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니라 21그 남자는 그 속건제물 곧 속건제 숫양을 회막 문 여호와께로 끌고 올 것이요 22제사장은 그가 범한 죄를 위하여 그 속건제의 숫양으로 여호와 앞에 속죄할 것이요 그리하면 그가 범한 죄를 사함 받으리라(19-22)
다른 종류의 가축을 교배하거나, 다른 종류의 씨앗을 한 밭에 심는 것 등이 금지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워두신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 즉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은 중대한 범죄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보건 위생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본문은 가축, 밭, 그리고 옷까지도 두 종류를 섞지 말라고 하는 규례입니다. 질서를 지킨다는 측면에서 남자가 여자의 옷을 입거나 반대로 여자가 남자의 옷을 입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금지됩니다. 두 번째 규례는 다른 사람에게 대리모로 팔기로 한 여종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에 해당합니다. 여종은 비록 계약을 맺고 팔리는 것으로 정해졌지만, 아직 돈을 지불하여 자유롭게 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주인에게 속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그 일이 범죄에 해당한다 할지라도 정혼한 사람과의 잘못된 관계로 말미암는 사형의 형벌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여기서 여종은 약혼은 했으나 아직 남편 될 사람에게 신부 값이 지불되지 않았으며 주인도 여자를 자유민으로 풀어준 것이 아닙니다. 이 경우엔 강간이 아니라 쌍방이 합의하여 관계를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그들은 죽음을 당하지는 않으리니”라는 진술에서 확인됩니다. 다만 정혼한 종과 관련된 규례가 이종교배와 관련된 문맥에서 주어진 것은 이 역시 부적절한 혼합이라는 주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실수의 열매(23-25)
제대로 된 열매를 얻기 위해서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좋은 토양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토양이 바뀌기까지는 약 3년 걸린다고 합니다. 열매보다 중요한 것은 토양이며 토양이 좋으면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시고 자기 백성 삼으심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인데(요 15:16), 개인의 토양이라고 할 수 있는 성품이나 기질이 변화되고 할례 받은 열매처럼 좋은 열매 맺는 성도가 되려면 변화되기 위한 과정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23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각종 과목을 심거든 그 열매는 아직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되 곧 삼 년 동안 너희는 그것을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 먹지 말 것이요 24넷째 해에는 그 모든 과실이 거룩하니 여호와께 드려 찬송할 것이며 25다섯째 해에는 그 열매를 먹을지니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 소산이 풍성하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23-25)
말에 과실수를 심을 경우 최소 3년 안에 열매를 맺는 것은 할례받지 못한 것으로 간주하여 먹지 말 것이고, 4년째에 열리는 열매는 첫 번째 소산이니 하나님께 돌리고, 5년째부터 열매 맺는 것을 먹을 수 있다는 명령입니다. 할례받지 못했다는 말은 금지되었다는 뜻입니다. 어린 나무의 열매를 일찍부터 수확하는 것은 과실수가 장기적으로 성장하여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을 방해하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더 안정적이고 풍성한 수확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이 규례가 주어졌을 것입니다.
점술과 마술, 그리고 이방 관행의 금지(26-31)
사랑의 관계에 이미 만족한 사람은 탐하기를 멈출 수 있습니다. 사랑의 결핍은 세상에 물건을 쌓은 것으로 충족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노예에게는 안식이 없고, 멈추어 안식하는 것은 사랑받는 자의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대로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율법을 따르는 이의 중심입니다.
26너희는 무엇이든지 피째 먹지 말며 점을 치지 말며 술법을 행하지 말며 27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 수염 끝을 손상하지 말며 28죽은 자 때문에 너희의 살에 문신을 하지 말며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29네 딸을 더럽혀 창녀가 되게 하지 말라 음행이 전국에 퍼져 죄악이 가득할까 하노라 30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귀히 여기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31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26-3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 숭배의 문화로부터 구별될 것을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러한 이방의 풍습을 행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몸과 영혼을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1) 점술과 마술 금지(26-28)
피째 먹지 말도록 명하는 것은 아마도 고대 사회의 종교적인 관행과 연결되어 있을 것입니다. ‘피쌔 먹다’의 히브리어 표현은 ‘피와 함께’ 혹은 ‘피 위에 선다’는 뜻입니다. 이 금지 규례가 곧장 점을 치는 것과 술법을 행하는 것을 금하는 표현 앞에 있다는 점 때문에, 피째 먹는 것은 점을 치거나 술법을 행하는 방편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짐승의 피를 먹고 점을 치거나, 짐승의 내장을 보면서 점을 치는 등의 행위를 엄격하게 금합니다. 가나안의 어떤 제의에서 사람들은 구덩이를 판 뒤 짐승 도살 의식을 거행할 때 그 피를 구덩이 속에 쏟았습니다. 악귀들이 그 속에 있었는데 쏟아진 피는 그들을 불러냈고 그들은 피를 먹고서 미래의 일을 예언해주었습니다. 이때 그 제의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 ‘피 위에서’ 고기를 나누어 먹었습니다. 결국 이것은 가나안 땅의 점술과 마법 의식 중 하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피째 먹지 말라’는 번역은 ‘피 위에서 먹지 말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또한 고대 근동 사회의 장례 의식에 대한 규례도 주어집니다. 머리와 수염 가를 둥글게 깎거나 수염 끝을 손상시켜서는 안 됩니다. 죽은 자를 위하여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거나 문신을 하는 것도 안 됩니다(참조, 왕상 18:28).
(2) 음행을 금하고 안식일을 지키라(29-30)
먼저 자신의 딸을 창녀로 넘기면 안 됩니다. 고대 신전에는 신전 창녀들이 있었는데, 당시 아버지는 자신의 딸을 신전 창녀로 바치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딸을 창녀로 보내는 것은 딸을 더럽히고, 그 땅을 음란하게 만들어 죄가 가득하게 만듭니다. 여기서 다시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을 주는데, 본문 3절에서 안식일 준수 명령을 한 것과 다른 문맥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식일은 단순히 개인의 경건 문제를 넘어서 이웃과 사회를 위한 배려와 안전장치를 포함해기 때문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안식일을 지킴으로 종들과 가축들까지도 쉬게 될 것입니다.
(3)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라(31)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는 영매나 거짓 명의 도움으로 미래를 예언하는 박수무당 등을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괴롭혀 왔고 두려움으로 살게 한 장본인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마치 자신들만이 신적인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함으로 사람들을 자기들의 뜻대로 조종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음에서 떠날 때, 신접한 자와 박수무당을 통해 자신이 가진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받으려는 끊임없는 유혹이 이스라엘 역사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노인 공경과 공평한 사회 유지(32-37)
오늘날 ‘유전무죄, 무전 유죄’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오가는데, 이러한 문제는 부자들과 법을 집행하는 자들의 은밀한 거래를 통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도는 이러한 세상 속에서 약자를 사랑으로 돌보며 정의를 따라 행함으로 어두운 세상에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32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33거류민이 너희의 땅에 거류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34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35너희는 재판할 때나 길이나 무게나 양을 잴 때 불의를 행하지 말고 36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37너희는 내 모든 규례와 내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32-37)
어른을 공경하라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눈에 보이는 어른을 공경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습니다. 나그네를 선대 하는 것, 재판의 판결이나 무게를 젤 때 불의를 저지르지 않는 것등은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1) 노인 공경과 나그네 대접(32-34)
부모 공경의 법률은 이제 확대된 가족으로서의 사회공동체 안에 있는 노인들에게까지 적용됩니다. 흰 머리 앞에서 일어섬으로 사회는 노인들을 존경하고 예의를 다해야 합니다. 노인들을 존경하고, 그들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울 때 보다 믿을 만한 공동체의 유산을 전달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본문은 노인을 공경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고대 사회는 나그네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성경 본문 역시 이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그들을 대해야 한다고 말씀한다. 나그네를 사랑해야 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애굽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사회적 공통 경험이 이제 공동체의 윤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2) 공평한 재판과 공정한 저울과 결론(35-37)
한 사회의 타락 척도는 부정한 저울을 사용해서 장사의 이윤을 남기는 것과 불의한 재물이나 권력으로 재판을 굽게 하는 것이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됩니다. 성경은 이 두 가지 즉 경제적인 불의와 사법적인 불의에 대해 엄격합니다. 36절에서는 ‘공평한’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반복해두었음을 본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제 활동과 사법 활동에 있어서 공평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 역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부터 은혜로 구원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거짓으로 부를 축적하고, 부와 권력으로 재판을 굽게 하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결론부에서(37) “너희는 내 모든 규례와 내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고 다시 강조하며 마무리하는데, 이는 19절을 염두에 두고, 전체를 하나의 문학적 단위로 묶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19장 전체가 십계명을 전제로 규례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19장의 여러 규례들은 실제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 관계를 굳게 하는 일과 관련됩니다. 이웃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정신이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과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련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19장 전체는 ‘나는 여호와이니라’라는 전형적인 문구를 무려 16회나 반복하고 있다. 결론부에서도 마찬가지다.
타락한 인간의 죄성이 과거나 오늘이나 변함없듯이 하나님 백ㄷ성의 거룩한 삶의 원리도 변함이 없습니다. 구속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따라 행함으로 세상과 성별 됨이 마땅합니다. 성도는 거룩한 자라 일컬음을 받은 자답게 거룩한 길로 행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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