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30-131)
겸손한 회개와 신뢰의 길
시편 130-131편
죄를 짓는 것도 죄에 빠지는 것도 인간이고, 회개를 시작하는 것도 서둘러 회개를 마무리 짓는 것도 인간입니다. 용서의 때, 소망의 때는 하나님이 정하시고 주관하십니다. 죄의 잠을 지나 인자한 아침을 주실 때까지 자비를 구하고 하나님 뒷전에 겸손히 물러나 있어야 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으시며,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 용서를 베푸는 분이십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포함하여 이스라엘 공동체의 모든 죄를 속량함으로써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기를 간구합니다(130편). 시인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여 평안하다고 고백합니다. 시인과 마찬가지로, 각 성도의 하나님을 향한 신뢰는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속되어야 합니다(131편).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과 소망(130:1-8)
이스라엘 백성들 전제가 하나님을 바라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하나님의 언약의 사랑은 영원하고,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에 실수와 실패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우리를 세우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하기에 하나님의 속량하심(대가를 주고 사다)도 풍성합니다. 풍성한 속량의 극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1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4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5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6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7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
8그가 이스라엘을 그의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시리로다(1-8)
시편 130편은 죄에 대한 회개와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내용입니다. 시인은 깊은 절망 속에서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며, 용서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심으로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풍성한 구원을 기다리라고 권면합니다.
(1) 깊은 곳에서 부르짖는 시인(1-2)
시편 130편은 시인의 깊은 탄식과 탄원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께 부르짖었다고 말합니다. ‘깊은 곳’이란 단어는 바다의 깊은 곳이나 맨 밑바닥을 가리키므로,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에서 가장 먼 곳입니다. 이 단어는 구약에서 본 시의 예를 포함하여 다섯 번 나옵니다. 시편 69편에서도 시안은 자기가 설 수도 없는 깊은 수렁과 깊은 물(문자적으로 ‘깊음’의 물)에 들어갔다고 탄식합니다(시 69:1-2). 이와 같이 ‘깊은 곳’은 문자적으로 수렁이나 바다 깊은 속이나 바닥을 가리키고, 비유적으로는 빠져서 헤쳐 나올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130:1의 시인이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말은 그가 죽음의 위기에 처하고 고통과 절망 속에 있어 하나님의 도움 외에는 누구의 도움도 바랄 수 없는 상황임을 함축하며,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만 신뢰하고 그의 구조만을 바랐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2절의 내용은 시인이 아직 하나님에게서 어떤 응답도, 도움도 받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를 듣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소리에 귀를 주의 깊게 기울여 기도에 응답하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여기서 ‘부르짖는 소리’는 ‘은혜나 자비를 구하는 간청’이란 뜻입니다.
(2)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3-4)
시인이 현재 하나님께 간구하는 이유는 ‘죄’와 관련이 있으며, 이에 그가 하나님께 바라는 것은 죄의 용서입니다. 130편에서는 죄와 관련하여 ‘죄악들’(3)이 언급되나 ‘나의’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인이 1절에서 그가 절망(깊은 곳에서)에 빠졌음을 표현했고, 2절에서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간청(나의 부르짖는 소리)을 언급했으며, 7-8절에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죄악에서 하나님께서 속량하시기를 바라는 점을 고려할 때, 3-4절의 ‘죄악’은 시인의 죄를 가리키며, 동시에 공동체의 죄를 암시합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여호와’와 ‘주’(아도나이)로 부르며 죄와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 세 가지를 언급합니다. 첫째, 사람의 죄악은 하나님의 살피심 앞에 가려질 수 없습니다. 사람은 때로 ‘내가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침묵하신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 죄를 모르지 않으시며 그 죄를 낱낱이 드러내실 것입니다(시 50:21). 둘째, 죄인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사람의 죄는 어떤 죄든지 근본적으로 모두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업신여긴 행동입니다(삼하 12:9-10).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으로서 그의 말씀을 지켜 거룩한 백성이 될 의무를 갖고 있으므로(출 19:6), 이를 어겼을 때는 심판을 비껴갈 수 없습니다(출 28:15-68; 욥 10:14). 셋째, 죄를 사유하는 권한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단 9:9). 하나님의 죄 사함에는 그의 긍휼과 은혜와 풍부한 인자하심이 함축되었습니다(출 34:6; 사 55:7).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를 기꺼이 용서하십니다(시 86:5). 시인은 죄인들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그를 다시 경외하기를 원하신다고 말하는데(4), 여기서 하나님 경외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암시합니다.
(3) 하나님을 기다리는 시인(5-6)
죄 용서를 빈 시인은 하나님과 말씀만을 기다리며 바랍니다(5). ‘기다리다’와 ‘바라다’라는 동사의 의미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응답을 열망한다는 뜻입니다. 시인이 기다리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은 그의 자비와 용서, 인자하심(2,8)을 암시하며, 시인의 하나님 경외(4)와도 연결됩니다. 시인은 자신이 하나님을 기다리는 심정을 파수꾼에 비교합니다. 잠을 쫓아내며 밤을 지새워 보초를 서는 파수꾼이 속히 아침이 되어 평안히 귀가하기만을 바라는 것보다, 시인이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고대하는 마음이 더 간절합니다(6). 시인의 간절함에는 하나님의 용서의 응답에 대한 확신이 함축되었습니다.
(4) 이스라엘을 모든 죄에서 속량하시는 여호와(7-8)
시인은 이제 이스라엘 공동체를 초청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외칩니다. 시인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도 함께 여호와의 자비와 용서를 바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기 때문입니다(7). ‘속량하다’라는 동사는 ‘대속하다’, ‘구속하다’의 뜻으로, 값이나 대가를 지불하고 목숨을 구해주는 것을 뜻합니다(출 13:13; 레 19:20; 삼하 7:23;시 71:23). 오늘 시인과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구속의 능력으로 그들을 모든 죄악에서 속량하실 것을 확신하고 고대합니다(8).
하나님 안에서의 참된 만족(131:1-3)
마음이 교만하지 않는 것, 눈이 오만하지 않는 것, 감당하지 못할 일과 놀라운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곧 자신이 자신의 인생의 주관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의 통치자가 되심을 인정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그의 인생이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 것과 같아서 어디에 있든지 그 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1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1-3)
시편 131편은 다윗의 겸손과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노래합니다. 그는 교만하거나 거만하지 않으며, 이해할 수 없는 큰 일에 대해서도 마음을 높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린아이처럼 하나님께 안식을 찾고, 평온함을 유지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이 영원히 하나님을 신뢰할 것을 권면합니다.
(1)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려는 시인(1)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이 교만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겸손하게 살 것을 고백합니다. 구체적으로, 교만한 마음, 높은 눈, 큰 일, 놀라운 일을 언급하며, 자신은 이것들과 연관이 없고 이런 일에 힘쓰거나 끼어들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설명은 시인의 내적 태도와 외적 행동을 통한 겸손함을 보여줍니다. 한편, ‘큰일’이나 ‘놀라운 일’은 하나님의 기적과 이사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표현들이므로(수 3:5; 욥 37:14; 시 72:18), 이런 일을 시인이 넘보지 않는다는 말은 그가 자신의 한계와 약함을 알고 인정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1절의 고백 모두는 그가 앞으로도 이런 태도와 삶의 양식을 지속할 것을 다짐하는 의지를 나타냅니다.
(2) 젖 뗀 아이와 같이 평온한 시인(2)
시인은 이제 자신이 마치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 안에 있듯 고요하고 평안하다고 말합니다. 젖을 떼기 전의 아이가 젖을 더 달라고 떼를 쓰는 상태의 아이를 가리킨다면, 젖을 뗀 아이는 만족하여 기쁨을 찾은 상태의 아이를 뜻합니다. 이 젖 뗀 아이가 엄마의 품에 있을 때 안전함과 사랑을 차분히 즐길 수 있듯이, 시인의 영혼도 이 아이처럼 내면과 외면의 깊은 평안과 안정을 누립니다. 젖 뗀 아이의 평안함은 육체적이고 정서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반면, 시인의 평안함은 영적, 질적인 부분을 강조합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라라(3)
하나님 앞에서 평안을 누리고 있는 시인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하여 그들에게 여호와를 지금부터 영원까지 신뢰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로써 1-2절의 시인의 고백은 하나님을 바라며 신뢰함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3절의 ‘여호와를 바랄지어다’라는 권면은 바로 앞 130:7에서도 나왔습니다. 시편 130편에서는 하나님의 인자와 그가 베푼 수없는 속량을 바탕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모든 죄악에서 건지시기를 기원하면서 이스라엘에게 이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권면합니다. 본 시편 131편에서는 하나님 백성의 거룩한 삶을 바탕으로, 교만하지 말 것을 당부하며, 젖을 떼고 만족하고 평안한 아이처럼 하나님을 바랄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라는 어구는 앞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보호를 찬양하는 시편 121편과 125편과도 연결됩니다. 두 시편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지키시는 일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변함없이 계속하실 것임을 선포했습니다. 오늘 131편은 이스라엘도 이 하나님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신뢰함으로써 그의 영원한 보호하심에 응수하기를 권면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는 자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분인지 아는 자는 겸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야 용서도 응답도 소망도 찾아옵니다. 어설픈 회개로 때우지 말고 진정성 있는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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