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28-01)
축복받는 가정의 비밀
시편 128편 1-6절
어느 단체든지 궁극적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지속성과 확장성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이 땅에 지속적으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성장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확장 시켜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가정과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가 세상의 도전을 이기고 부흥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간구해야 합니다.
- 하나님을 경회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얼마나 행복합니까! 이들은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행복과 형통의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자신과 그들 가정을 돌보시며 그가 사는 성읍에도 평강을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행복(1-4)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모든 복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단순히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자신의 수고의 열매를 온전히 누리게 됩니다. 우리의 노력과 수고가 헛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풍성하게 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물질적인 축복을 넘어서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형통함을 의미합니다.
1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2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3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4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1-4)
시편 128편은 앞 127편과 주제와 내용상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먼저 주제 면에서, 127편이 하나님의 개입이 배제된 삶이 헛됨에 초점을 맞췄다면, 128편은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자기들의 삶에 개입시키는 자들이 누리는 행복과 축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시는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주제를 서로 대조적으로, 동시에 보완적으로 묘사합니다. 시인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고 노래합니다. ‘복이 있도다’라는 말이 1절맨 뒤에 번역되어 나오지만, 원문에서는 첫 단어(아쉬레)로 나옵니다. 이 단어의 원뜻은 ‘얼마나 행한가!’(how happy!)이며, 상대방에 대한 개인적인 부러움을 표현할 때 사용되거나, 부러움을 넘어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할 때 사용됩니다(신33:29; 왕상 10:8; 잠 4:21 등). 신약에서 예수님의 산상수훈(마 5:3-11)에 나오는 ‘~자는 복이 있나니’에서 ‘복이 있나니’가 이 단어에 상응하는 헬라어(마카리오이)의 번역입니다. 앞 127:5에서도 ‘얼마나 행복한가!’의 단어가 나와(‘복되도다’로 번역됨) 하나님의 축복의 일환으로 자녀에 대해 언급하면서, 화살통에 화살을 많이 가진 용사가 전쟁을 대비하거나 전쟁에서 담대할 수 있어 행복하듯, 많은 자녀를 둔 자도 그러한 행복을 누린다고 말했습니다(127:3-5). 127편에서는 하나님이 백성에게 은혜로 주어 누리게 하는 행복을 소개했다면, 128편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할 때 누릴 행복을 소개하여 서로 보완하고 있습니다. 128:1의 행복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있다는 구절은 112:1에도 유사하게 나옵니다. 두 시편 모두 여호와를 경외하는 행복을 순종의 행복에 앞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경외’라는 뜻은 잠언에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듯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잠 1:7; 9:10)이자 훈계와 책망을 존중하는 것(잠 1:7), 나의 경험이나 생각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3:7), 교만이나 거짓말이나 악행을 버리고 선을 추구하는 것(8:13),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9:10)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말씀을 실행해야 합니다. 두 시편에서는 특히 순종의 의미를 ‘하나님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것’(112편)과 ‘하나님의 길을 걷는 것’(128편)으로 정의합니다. 진정한 순종에는 진심으로 말씀을 즐거워하는 마음과 말씀대로 행하려는 자발성 등이 포함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참조. 시 119:1-2).
2-3절에서는 구체적으로 ‘너’라는 주어를 사용하여 여호와를 경외하고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 가장을 중심으로 한 가정의 구성원 모두가 누리는 행복한 삶을 설명합니다. 2절에서는 가장의 노고와 그 대가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축복, 3절은 아내와 자녀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축복을 그립니다. 2절을 직역하면 ‘네 손의 수고를 네가 먹을 때, 네가 행복하고 네가 선하리라’입니다. 원문에서는 ‘네 손의 수고’가 문장 맨 앞에 강조되었고, 특히 ‘네 손’이라는 말은 직접 일했다는 점을 부각합니다. 또한 ‘네 속의 수고를 먹는다’는 말은 가장이 손수 일했음을 강조하며, 이 일에 손해를 보지 않았으며, 얻은 대가를 잃거나 남에게 빼앗기지 않고 당사자와 가족이 먹을 수 있었음을 드러냅니다(시 111:5).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가장과 그의 가족에게 주시는 행복과 형통의 축복이 증명됩니다. 2절의 이런 내용은 앞 시편 127:2을 상기시킵니다. 거기서는 일찍 일어나 쉬는 것을 미루면서 열심히 일하여 그 수고의 떡을 먹어도, 하나님이 그 모든 활동에 함께하지 않아 부질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반면에 시편 128:2에서는 가장의 손의 수고와 그 결과를 맛보는 것이 행복하고 선함(또는 형통)을 보여줌으로써,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간섭하심을 넌지시 드러냅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행복은 1절의 ‘복이 있도다’라는 단어가 2절에서도 ‘복되고’로 반복되어 더 강조되었습니다. 이같이 127편에서 강조하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중요성은 128편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3절은 아내와 자식에게 초점을 맞추어 여호와를 경외하는 남편과 더불어 가족 모두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풍요를 누리는 모습을 묘사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남편에게만 머물지 않고 아내와 자녀들에게까지 뻗어나감을 보여줍니다. 아내와 자식은 집 안에서 그들이 머무는 상징적인 장소를 통해 소개되고, 각각 결실을 맺는 나무들로 비유됩니다. 집의 안쪽 방에 자리 잡은 아내의 모습은 사적인 공간에서 보호와 안정을 제공 받으면서 한 남편의 아내이자 자녀들의 어머니로서의 위상을 보여줍니다. 이 아내는 또한 많은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로 비유되어, 여러 자녀를 낳아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키우고 자신도 성장해가는 자로 암시되었습니다. 식탁에 뺑 둘러앉은 자녀의 모습은 아버지의 노고와 어머니의 수고가 깃들인 음식을 서로 나누고 있는 화목한 가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들은 어린 감람나무로 비유되어, 나무가 자라 풍성하고 질 좋은 올리브와 기름을 내듯 자녀들도 여호와를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가정과 사회에 유용한 자들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니다.
1-3절에서 한 가정의 가장을 중심으로 그의 수고와, 아내 및 자녀를 통한 행복을 설명한 후, 4절은 1절의 주제로 돌아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축복’으로 단락을 끝냅니다. 시인은 이들에게 ‘자, 이와 같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축복을 받으리라’라고 말하며, 그들도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분이 주시는 복을 누리기를 권면합니다. 4절의 ‘복을 얻으리로다’는 ‘축복을 받으리라’라는 뜻으로, 1, 2절의 행복을 뜻하는 ‘복이 있도다/복되고’보다 하나님의 축복이 강조되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2-3절에 묘사된 행복과 축복이 가득한 가정을 꿈꿀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성읍의 축복(5-6)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하심은 사망 권세를 꺾으셨고,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확정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온전한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축복은 개인과 가정을 넘어서 공동체와 나라에도 미칩니다. 시온에서 주시는 복은 하나님의 임재와 평강을 상징하며, 이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와 나라가 하나님의 은혜로 번영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5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6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5-6)
1-4절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과 그의 가정에 임한 ‘하나님의 축복’은 5-6절에서는 시온과 이스라엘에게로 확대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그의 배경을 시온에서 축복하신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축복을 기초로 하여, 그들에게 평생 동안 예루살렘이 번영과 자식의 자식을 보라고 명합니다. 여기서 언급된 두 도시 시온과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여 택하신 곳(시 78:68)이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고 백성과 영원히 함께 기할 것을 약속하신 장소(신 12:5; 왕상 9:7; 렘 7:14)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온에서 백성을 축복하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시온에서 백성과 함께하심을 암시합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께서는 장수와 후손의 축복을 더하실 것입니다. 어디에 살든지 예루살렘의 번영을 볼 것입니다. ‘번영’이란 ‘행복’, ‘안녕’, ‘아름다움’, ‘최상의 것’을 뜻하므로, 예루살렘의 번영을 본다는 말은 이들이 사는 곳에도 예루살렘 도성에 깃든 안전과 평안이 함께할 것을 의미합니다. 한편, 5-6절의 백성을 향한 축복의 기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기 원하여 제사장에게 가르쳐주신 민수기 6:24-27의 제사장의 축복기도를 연상시킵니다. 하나님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나 이스라엘을 기꺼이 축복하려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전체의 평강을 기원하며 끝납니다. ‘평강’으로 번역된 단어 ‘샬롬’은 바로 앞 5절의 ‘평강(화평)의 도시’라는 뜻을 지닌 ‘예루살렘’과 연결됩니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의 평강을 기원하는 것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와 그 나라 백성의 평강, 하나님께서 선택한 도시 예루살렘과 그곳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의 평강을 함축하는 기원(시 122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6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한 사람을 택하여 복을 주셨을 때, 그 축복이 아브라함에게서 끝나지 않고, 그의 아내와 이삭과 그의 후손에게 확대되고, 후에 이스라엘 백성과 나라 자체에까지 확대된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땅의 모든 족속에게 확대됩니다(창 12:3).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일을 감당하든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음을 인정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가정과 일터에서, 학업과 사업에서, 그리고 교회의 부흥을 위한 모든 활동에서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며, 하나님께서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모든 일을 먼저 주님께 의뢰하고 힘차게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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