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시편(080-01)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간구

시편 80편 1-19절


 

어늘해진 기억을 더듬어 방치된 기억 상자를 열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백성일지라도, 오래된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참츰 채색되더니 곧추세워졌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기억의 반대편에 있어서 아픕니다. 기억 속 주님만이 회복의 열쇠입니다.

 

 

  • 하나님께서 직접 돌보신 포도나무 같은 이스라엘이 멸망하였습니다. 시인은 전사이신 만군의 하나님께서 선두에 나서서 이스라엘의 원수를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호의와 구원을 간구(1-3)

역사적으로 왕의 상징은 주로 칼이었으며, 왕의 주된 의무는 전쟁에서의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 왕의 역할은 목자로서 어리석은 백성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지도하며, 강한 자들 사이에서 약한 다들을 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얼굴빝, 임재가 사라진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 깊은 절망입니다.

 

1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2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 앞에서 주의 능력을 나타내사 우리를 구원하러 오소서 3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1-3)

 

시인은 “이스라엘의 목자”이신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구원을 간청합니다. 이 목자는 ‘양 떼를 모는 목자’, 즉 시편 23편에 묘사된 선한 목자의 모습입니다. 목자는 양을 초장과 물가로 몰고 가 그들을 배불리고 편히 쉬게 해주며, 짐승과 위험한 곳의 위협으로부터 양을 보호하여 안전을 누리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목자로서 이스라엘을 몰아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기를 시인은 소망합니다. 또한 이 목자는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입니다. 그룹은 성막의 지성소에 놓인 법궤 위의 천사들(출 25:17-21)이며, 이 천사들이 있는 곳에 “좌정하신”이란 표현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을 상징합니다. 출애굽 후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하나님의 법궤가 선두에서 행진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앞서 행하며 장막 칠 곳을 찾고, 불과 구름 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민 10:33; 신 1:33).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신 31:8)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갈 때도 하나님의 법궤가 이스라엘 앞에서 행진하며 백성을 인도하였습니다(수 3:6,11-17). 시인은 이같이 목자의 비유와 법궤의 상징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동행과 인도가 시인과 공동체에게도 여전하기를 호소합니다.

시인은 구원의 대상으로서 ‘이스라엘’을 언급하는데, 특히 “요셉”(1)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양으로 지목함으로써 북이스라엘에 초점을 둡니다. 2절에서 요셉의 아들들이자 북이스라엘의 대표 지파인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남북 분열 후 북이스라엘 영토의 일부가 된 “베냐민”을 예로 든 점 또한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 세 지파는 모두 야곱과 라헬의 자손이며, 출애굽 후 광야에서 같은 서쪽 진영에 머문 지파입니다(민 2:18-24).

하나님께 드리는 구원의 기도는 첫째, 그의 관심과 호의를 가져달라는 비유적인 표현(“귀를 기울이소서”, “빛을 비추소서”)으로 시작됩니다(1). 하나님께 간구하는 백성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집중해주시고, 이스라엘에게 얼굴빛을 비추는 호의를 약속하셨던 그 약속(민 6:25)을 지금 그의 백성에게 이루어주시기를 바라는 요구입니다. 둘째,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통한 구원을 구합니다(2). 특히, “주의 능력을 나타내소서”라는 외침에서 ‘나타내다’(2)에 해당하는 동사는 ‘휘저어 일으키다’, ‘깨우다’, ‘선동하다’의 뜻이므로, 이 간구는 소용돌이가 솟구쳐 오르듯 하나님께서 그의 힘을 휘저어 일으켜 이스라엘을 위해 행동을 개시해주시라는 강렬하고 적극적인 요구입니다. 이에 덧붙여, “우리를 구원하러 오소서”(2)라는 외침은 하나님께서 전쟁의 용사로 나서서 이스라엘의 선두에서 전투를 이끌어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시라는 구체적인 요청입니다. 3절의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당신의 얼굴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라는 간구는 7철과 19절에도 나와 후렴구를 이룹니다. 첫째 간구에서 시인이 언급한 ‘회복’ 또는 ‘돌이키심’은 구체적으로 포로로부터의 회복인지, 땅의 회복인지, 언약의 회복인지 알기 어렵지만, 문맥상 ‘구원’과 밀접한 내용임에 틀림없습니다. 둘째 간구인 ‘당신의 얼굴을 비추소서’에서 하나님꼐서 얼굴을 어떤 대상에게 비추는 행동(시 4:6; 31:17; 67:1; 민 6:25)은 그 대상에게 관심과 호의를 품으심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관심과 호의는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을 원수한테서 구원하는 것을 뜻합니다. 셋째,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는 앞의 두 간구의 궁극적 목적지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있음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간구(4-7)

죄인된 모습을 보신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장 떠나가셔도 할 말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의지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성도가 가져야 할 합당한 마음입니다.

 

4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5주께서 그들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6우리를 우리 이웃에게 다툼 거리가 되게 하시니 우리 원수들이 서로 비웃나이다 7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4-7)

 

시인은 이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쏟으신 분노에 애통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로 호칭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할 능력자임을 드러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할 전쟁의 용사로 나서서 싸워주시기를 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현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 분노하셨고, 그의 정의로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기도에 대해 노하신다(4)는 표현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아직 그치지 않았음을 뜻합니다.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4)라는 물음은 하나님의 진노 대신 긍휼로 백성의 기도에 응답하시기를 재촉하는 시인의 절규입니다. 그의 양 떼에게 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눈물의 빵을 먹고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이런 현실은 과거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이끄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하늘로부터 빵을 내려 먹이시고 굳은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신 것과 대조적입니다. 이때 이스라엘이 놀라움과 감사의 양식과 물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였고, 계속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익히게 하시려는 배려였습니다(신 8:15-16).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가르침을 잊고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섰으며, 그에 마땅한 심판으로서 고통과 눈물의 양식을 먹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이런 상황은 이방 원수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시 79:4,10). 시인이 이스라엘이 겪는 내, 외부적 고통을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원망이나 하소연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받는 심판은 마땅하지만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시기를 간청하려는 의도입니다.

 

하나님이 심고 가꾸신 포도나무(8-13)

하나님의 교회가 불미스러운 일로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듣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에 이런 일을 자주 있었습니다. 전반적인 이유는 그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보호에서 떠났기 때문에, 세상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은 것입니다.

 

8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9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10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고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11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12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허시사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따게 하셨나이까 13숲 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8-13)

 

시인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친히 돌보셨음을 회고하며 구원을 재촉합니다. 이 단락에서 언급한 역사적 시기는 출애굽 사건(8)으로부터 시작하여 가나안 정복(8b-9), 왕정시대와 황금기(10-11)를 거쳐 이스라엘의 멸망(12-13)까지 이릅니다. 또한 이 단락에서 이스라엘은 ‘포도나무’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8절의 첫마디가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한 포도나무”로 시작됩니다. 시인은 ‘한 포도나무를 이집트에서 당신이 뽑아오셨나이다’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종살이에서 직접 구한 대상이 ‘이스라엘’임을 부각합니다. 출애굽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에는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언약(창 12:2; 17:4-7)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창 13:15-17)에 대한 기대가 고조됩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돌보심과 가꾸심으로 인해 풍요로워지고, 그 영향력이 바다(지중해)와 강(유브라데)까지 뻗쳐 갔습니다(11). 그러나 이제 이방인들이 멧돼지와 들짐승들처럼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하나님께서 가꾸신 포도원 이스라엘을 뒤엎어버렸습니다.

 

포도나무의 회복을 간구(14-19)

아무리 역사가 오래되고, 많은 사람이 모이며, 재정이 넉넉한 교회일지라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혹시 이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과연 하나님의 돌보심을 갈망하고 있는지, 지도자가 하나님의 손에 불들려 사역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14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15주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요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가지니이다 16그것이 불타고 베임을 당하며 주의 면책으로 말미암아 멸망하오니 17주의 오른쪽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있게 하신 인자에게 주의 손을 얹으소서 18그리하시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9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켜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우리에게 비추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14-19)

 

하나님께서 심고 가꾸신 포도나무인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에게 처참히 짓밟혔으므로, 하나님께서 이를 긍휼히 보시고 구원하시기를 시인은 간청합니다. ‘당신의 오른손으로 심으신 줄기’, ‘당신을 위하여 힘 있게 하신 아들’, ‘당신의 오른쪽에 있는 사람’, ‘당신을 위하여 힘있게 하신 사람의 아들’이란 표현(15,17)을 반복함으로써, 시인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다윗과 맺은 언약(삼하 7:14)을 기억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적극적인 개입이 있을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고, 생명을 회복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18). 19절에서 시인은 7절에서처럼 3절의 간구를 후렴같이 반복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재차 간청하고 기도를 끝냅니다. 이때 하나님에 대한 호칭인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는 3절의 “하나님이여”와 7절의 “만군의 하나님이여”에 이어 가장 긴 형태로 나와 시인의 간구의 간절함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시인의 호소는 여전히 오로지 하나님의 긍휼과 언약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망각의 백성에게 재차 기억하라고 주께서 당부한 말씀은 애굽에서의 종 됨과 하나님의 속량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백성이 하나님께 그때를 기억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수많은 기억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근거요 기도 제목이 아니겠습니까!


구독과 아래 [광고베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