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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078-04)

 


하나님께서 목자가 되시는 땅

시편 78편 56-72절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편만하게 계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임재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참 평안과 위로가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를 사모해야 합니다.

 

  • 시인은 거룩한 영토에 들어와 다시 하나님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조상들의 배신을 고발하며 시온과 다윗을 선택하신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의 뿌리와 지나간 구원 역사의 의미를 더듬으며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만남과 언약이 지속되었음을 회고합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하나님의 분노(56-60)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여 약속의 땅을 선물로 주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을 지존자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항하고 말씀을 업신여겼습니다. 광야에서 그의 조상들이 하던 대로 배반하고 속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다른 어떤 소리보다 내 삶을 지배하고 영향을 미치게 하고 있습니까?

 

56그러나 그들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항하여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며 57그들의 조상들 같이 배반하고 거짓을 행하여 속이는 활 같이 빗나가서 58자기 산당들로 그의 노여움을 일으키며 그들의 조각한 우상들로 그를 진노하게 하였으매 59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60사람 가운데 세우신 장막 곧 실로의 성막을 떠나시고(56-60)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다시 ‘지존하신 하나님’(엘로힘 엘론)을 시험하고 반항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56). 그들이 돌이켜 거듭 하나님을 시험했다(41a)는 말이 반복된 셈입니다. 그때는 그들이 광야에 있었고, 지금은 ‘거룩한 영토’(54)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반역은 이전보다 심각한 것입니다. 이제 시인이 말하는 조상들은 출애굽 1세대가 아니라 광야에서 태어난 출애굽 2세대 조상으로 언급됩니다. 시인은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배반하고 신실하게 행동하지 않았고, 느슨한 활처럼 빗나갔다고 말합니다(57). “속이는 활 같이”는 더 정확히 ‘느슨한 활 같이’입니다. “속이는”(레미야)에 해당하는 단어는 태만함, 느슨함, 부주의를 뜻하는 명사입니다. 시행 사이의 평행관계가 보여주듯 느슨한 활이 과녁을 향해 정확히 쏘지 못하는 것처럼, 조상들은 하나님께서 목표하는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지 못했습니다. 시인은 그 대표적인 항목을 말합니다. 그들이 신당에서 그를 격동시켰고, 그들의 우상이 그를 질투심에 불타게 했습니다(58).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우상숭배 때문에 질투심을 일으켰던 사례들이 있습니다(신 32:16; 겔 8:3). 이것은 언약 백성에게 주신 십계명의 첫 계명을 위반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들으셨고 그가 분노하셨으며, 이스라엘을 극도로 미워하셨습니다(59). 하나님의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미움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떠나는 것으로 매듭지어집니다. 끝내 하나님께서는 실로의 ‘장막’(미쉬칸)을 떠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 사이에서 그가 거주하셨던 ‘장막’(오헬)이었습니다(60). 실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착 초기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였지만, 하나님께서 더는 그들과 함께 거주하지 않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참조. 삼상 3-5장).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로 인한 하나님의 질투와 분노는 하나님의 부재로 귀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61-64)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도 미워하여 떠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자 성소가 있던 실로는 파괴되고 법궤는 블레셋에게 빼앗깁니다. 이스라엘의 능력은 빼앗기고 영광도 대적의 손에 넘어갑니다. 대적을 향하던 칼과 불이 이스라엘을 유린하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청년들이 전쟁에서 사라지자 혼인의 노래도 들리지 않고, 과부들의 통곡 소리만 들립니다.

 

61그가 그의 능력을 포로에게 넘겨 주시며 그의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62그가 그의 소유 때문에 분내사 그의 백성을 칼에 넘기셨으니 63그들의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그들의 처녀들은 혼인 노래를 들을 수 없었으며 64그들의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그들의 과부들은 애곡도 하지 못하였도다(61-64)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하나님의 부재였습니다(60).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을 포로에게 넘겨주시고, 그의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셨다고 합니다(61). 그의 능력과 그의 영광은 법궤를 의미합니다(시 132:8). 하나님께서는 실로를 떠나시고, 법궤를 빼앗기게 하셔서 실로를 중심으로 ‘거룩한 영토’에 정착한 첫 세대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블레셋이 법궤를 전리품으로 빼앗아 갔으니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신 셈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칼에 넘기셨고, 그의 소유(기업) 때문에 분노하셨습니다(62). 시의 평행구조가 제시하듯 그의 소유는 곧 그의 백성이며, 그의 분노는 칼입니다. 그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을 불이 삼켰고, 그의 처녀들은 혼인 노래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63). 전쟁에서 죽은 젊은이들의 수가 얼마나 많았는지 젊은 여성들에게 구애하기 위한 칭송도 들리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의 제사장들도 칼에 맞아 넘어졌고, 그의 과부들은 애곡도 못했습니다(64; 참조. 삼상 4:17-22). 하나님께서 자기능력을 포기하신 것 같은 철저한 파괴와 슬픔과 고통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심판은 다름 아닌 방치와 유기였습니다. 이것은 법궤를 우상처럼 섬겼던 조상들의 불신앙이 가져온 참담한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과 선택(65-7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셔도 영원히 버리지는 않으셨습니다. 포도주에서 깬 용사처럼 큰소리 외치시며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의 대적을 물리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수치와 하나님 자신의 수를 갚아주셨습니다. 왕을 세우시고 시온 산에 견고하고 영원히 안전한 성소를 세우셨습니다.

 

65그 때에 주께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포도주를 마시고 고함치는 용사처럼 일어나사 66그의 대적들을 쳐 물리쳐서 영원히 그들에게 욕되게 하셨도다 67또 요셉의 장막을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68오직 유다 지파와 그가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며 69그의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도다 70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71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72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65-72)

 

아삽은 모든 소망이 끊어진 것 같은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일어나사 이스라엘을 구언하셨다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열두 지파 중 장자 지파라할 수 있는 에브라임을 버리고 유다를 택하셨으며, 시온산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결정하셨습니다.

 

(1) 강인한 용사처럼(65-66)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회복을 기획하십니다. 시인은 회복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용사에 빗대어 노래합니다. 그때 나의 주님(아도나이)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그가 술에서 깬 맑은 정신의 용사처럼 깨어나셨습니다(65). 시인은 포도주로 붉게 달아올랐지만, 취하지 않고 침착한 용사로 하나님을 비유합니다. 시편 다른 곳에서도 하나님의 잠을 언급합니다(시 7:6;35:23;44:23;59:4-5). 이 시들은 하나님께서 깨어나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이것을 실제로 하나님이 주무신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듯, 하나님의 깨어나심을 이스라엘을 위해 다시 활동하시는 것으로 생생하게 표현한 은유입니다. 술을 마셨어도 취하지 않은 용사로 하나님을 표현한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강인한 용사의 이미지로 그려진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물리치시고 영원히 그들에게 수치가 되게 하셨습니다(66). 이 두 절은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법궤가 이스라엘로 돌아온 이야기를 회고하는 듯합니다(참조. 삼상 6:1-18). 그러니 영원히 그의 대적들을 욕되게 하셨다는 것은(66b), 블레셋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내리셨던 재앙과 그들이 전리품 취급한 법궤를 반환한 사건을 가리킬 것입니다. 이후 법궤는 기럇여아림에 머물고 백성들은 전쟁을 위해 인간 왕을 선택합니다.

 

(2) 유다 지파와 시온 산을 선택(67-69)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장막을 버리시고 에브라임 지파를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67). 에브라임 지파는 가장 수효가 많고 유력한 지파였지만 우상숭배와 교만 때문에 하나님의 선택에서 탈락했습니다(삿 12,17장 참조). 이는 하나님이 북쪽 성소와 에브라임 지파가 속한 곳이 예배처소가 되길 원하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대신에 유다 지파와 그가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셨습니다(68). 하나님께서는 한동안 멀리 계셨습니다. 그가 유다지파와 시온을 선택하시고 에브라임 지파를 거부하셨지만, 그렇다고 북쪽 지파를 버리시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시인이 강조하는 것은, 다윗 왕권 수립의 중요성에 있습니다(삼하 7장). 시온, 곧 예루살렘은 다윗 왕이 선택한 수도이며(삼하 6:21; 왕상 8:16),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 다윗이 처음 한 일은 언약궤를 긴 것입니다(삼하 6:1-19). 그래서 시인은 “그가 사랑하시는 시온”을 선택했다고 해석합니다. 이 때문에 시인은 그의 ‘성소’(미크다쉬)를 높이 세우셨고, 땅처럼 영원히 세우셨다고 노래합니다(69).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신 것과 다윗이 정한 수도는 하나님의 현존을 드러내며, 시인에게 이것은 구속 역사의 핵심이 됩니다.

 

(3) 이스라엘의 목자로 다윗을 선택(70-72)

 

시온과 다윗의 선택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획하신 새로운 출발이 시작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종 다윗을 선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선택하셨다고 노래합니다(70). 이는 그가 양을 치는 목동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지만, 이스라엘을 돌보는 목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한 것입니다(삼하 7:8; 겔 37:24). 그리고 시인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신 목적을 밝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암양을 돌보는 그를 데려와 그의 백성 야곱과 그의 유산 이스라엘을 돌보게 하기 위함입니다(71). 여기에 암컷 동물이 어린 새끼를 젖먹이고, 키우며, 돌보는 행위를 표현하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다윗 왕권이 제왕적인 통치가 아니라 필요를 공급하며 소박하고 따뜻하게 돌보는 선한 목자의 돌봄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또한 그의 백성 야곱과 이스라엘은 마치 유산 같은 하나님의 영원한 소유로서 목자의 돌봄을 받습니다. 시인은 그가 온전한 마음으로 돌보았고, 그의 능숙한 손으로 그들을 인도했다고(72) 회고합니다. 이렇게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세우신 선한 목자로서 그 역할을 정직하게 수행한 인물로 기억되었습니다. 시인은 목자 다윗의 돌봄의 통치를 회상하기까지 구원 역사의 드라마에 하나님의 사랑, 좌절, 분노, 심판이 고스란히 배어 있음을 노래했습니다. 이렇게 78편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과 인류 간의 길고 긴 투쟁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이 시편이 그려주듯,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온갖 죄악들 사이에서 번뇌하시고 심판하시지만, 항상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으신 분입니다.


지도자들은 작은 일이라고 소홀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 좋은 지도자입니다. 어떤 일이든 맡은 일에 전문가가 되는 사람이 나중에 더 큰일에도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준비하지 않고서 지도자가 되려는 것은 공동체를 망치는 일입니다. 나는 내게 맡겨진 일을 사랑합니까?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그 일에 전문가가 되려고 애씁니까? 스스로 점감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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