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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078-01)

 


다음 세대를 위한 권면

시편 78편 1-11절


 

교회의 침체, 그로 인해 신앙을 이어 갈 다음 세대의 부재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를 키우기 위한 프로그램, 화려한 건물, 과감한 투자 등 여러 방법들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정말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 이 시편은 이스라엘 구원 역사를 재진술하는 역사적인 서사시이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도록 안내하는 교훈적인 찬양입니다. 이 부분은 시 전체의 도입부로서 다양한 주제의 핵심을 담고 있습니다. 비유와 역사의 신비한 수수께끼를 드러내고, 여호와의 기이한 행적을 잊지 않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도록 당부합니다.

 

여호와의 영광과 능력과 기인한 일을 전하리라(1-4)

말씀이 없는 부흥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믿음도 생겨나기 않습니다. 믿음이 생기려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백성을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 아들이 다시 아들에게 전하는 방법으로 전수했습니다.

 

1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2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 3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 4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1-4)

 

본 시는 다윗 시대에 성소에서 제사를 주도했던 아삽이 지은 시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마지막이 다윗에 대한 찬사로 끝나고, 전체 내용 중 성전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인 아삽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하나님을 대변해 백성에게 노래로 말씀을 선포합니다.

 

(1) 내 가르침을 들어라(1-2)

 

“나의 백성이여, 내 가르침을 들어라”(1). 시인의 첫마디는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듯 백성에게 말합니다. “내 율법”(토라티)의 우선적인 뜻은 가르침, 교훈, 방향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부여하신 율법이 아니라 자신의 가르침을 지칭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출애굽 2세대에게 교훈했던 것처럼 가르침의 권위를 갖고 말합니다(참조. 신 32:1). 또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16)고 말합니다. ‘내 가르침’과 ‘내 입의 말’은 동의적인 의미로 쓰였습니다. 시인은 입을 열어 비유와 예로부터 감춰진 것들을 말하고 드러내겠다고 합니다(2). 시인이 고대 이스라엘의 지혜자들처럼 자신의 교훈을 “비유”(마샬), 곧 ‘잠언’ 형식으로 말하고, “감추어졌던 것”(히도트), 곧 ‘수수께끼’같은 말로 쏟아내겠다는 뜻입니다(참조. 잠 1:6). 예로부터 감춰진 것들은 이전 세대로부터 전수 받은 삶의 수수께끼 같은 것들, 곧 즉각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들입니다. 이러한 역사의 수수께끼에 대해 말하겠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과 이스라엘의 죄 사이에서 반복된 신비한 은총의 역사입니다.

 

(2) 여호와의 기이한 일을 전하리라(3-4)

 

시인은 비유와 역사의 수수께끼에 대해 우리가 아는 바이고,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수해준 것이라고 합니다(3). 시인은 ‘내 백성’, ‘내 교훈’, ‘내 입의 말’(1), ‘내가 입을 열어 말한다’(2)와 같은 1인칭화법 사용에서 1인칭 복수형태 ‘우리’로 전환합니다. 그리고 비유와 예로부터 감춰진 것들은 시인만 아는 것이거나 획기적인 새로운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듣고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조상들이 일일이 열거하며 전수한 비유와 수수께끼는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입니다(4cd). 비범하고 놀랍다는 뜻의 ‘팔라’ 동사의 분사형태로 표현된 여호와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 곧 기이한 일들은 11절에서 다시 반복됩니다. 이것은 107편에서 다섯 번 반복됩니다(107:8,15;21;24,31). 시인은 이것을 ‘우리 자손’(“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않고, 다음 세대에 전할 것이라(4ab)고 말합니다. 흥미롭게 시인은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겠다고 밝힌 것처럼, 여호와의 ‘영광’(테힐로트)과 그의 능력과 기이한 일들을 ‘우리가 숨기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영광과 기이한 일, 곧 기적은 모세가 부른 이른바 바다의 노래와 평행합니다(출 15:11). 시인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온갖 이적들 중에서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을 자자손손 전수해야 한다는 책임성을 모든 세대에게 부여한 셈입니다. 또한 시인 자신의 교훈은 세대를 거듭하며 전수할 하나님의 기적과 관련된 것임을 밝힌 것입니다.

 

여호와의 언약과 법, 그리고 그의 기이한 일을 망각(5-11)

우스갯소리인지 모르지만, 요즘 아이들의 가장 큰 꿈은 건물주가 되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조물주보다 건물주’라는 말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우스갯소리를 간과할 수 없는 이유는 아이들에게서 소망이, 비전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 때문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그저 편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하나님의 마음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입니다.

 

5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사 그들의 자손에게 알리라 하셨으니 6이는 그들로 후대 곧 태어날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에게 일러서 7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8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 9에브라임 자손은 무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갔도다 10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율법 준행을 거절하며 11여호와께서 행하신 것과 그들에게 보이신 그의 기이한 일을 잊었도다(5-11)

 

시인은 하나님의 백성이 후대에 말씀을 전수하고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할 이유와 책임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가나안을 정복했지만, 이후 세대는 전 세대를 알지 못해 각자 가기의 마음에 옳은 대로 행하기 시작했습니다.

 

(1) 언약과 법을 세우신 목적(5-8)

 

시인은 더 먼 옛적 일을 회고하며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증거”(에두트), 곧 ‘경계 표지’를 맡기셨고, 율법(토라)을 이스라엘에게 부과하셨습니다(5ab). 이것을 그가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셨고, 그들의 후손들에게 알리라고 하셨습니다(5cd). 시인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전수해야 할 교훈을 야곱에게 소급하면서 거기서 시작되고 지파별로 분화된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되새깁니다. 이스라엘에게 시내산에서 부과하신 “법도”, 곧 ‘토라’는 야곱에게 부여하신 ‘경계 표지판’ 같은 삶의 길잡이입니다. 시내산에서 언약식을 거행하기 전에 부여된 삶을 위한 신호 표지판은 자동적으로 전수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언약과 가르침(토라)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만 다음 세대로 전수됩니다. 따라서 여호와는 언약에 따르는 의무와 책임을, 삶을 위한 경계의 표지들을 자손들에게 가르치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출 10:2;13:14; 참조. 신 4:9; 6:7). 하나님의 구원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은 모든 세대의 의무입니다. 다음 세대가 알 수 있도록, 태어날 후손들도 그들의 후손을 위해 지속하여 하나하나 일러주어야 한다(6)고 말합니다. 그렇게 할 때 그들은 하나님께 “소망”(키쏠람), 곧 ‘신뢰’를 두며,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잊지 않고 그분의 명령을 준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7). 이것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맡기신 ‘경계의 표지’와 이스라엘에게 부과하신 ‘법’(토라)을 전달하며 교육하는 목적입니다. 그들의 조상들처럼 되지 말아야 합니다. 즉 완고한 세대요, 고집 센 세대요, 그 마음은 견고하지 않으며, 그의 심령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던 조상들 같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8). 이스라엘 조상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한 생생한 경험을 가졌음에도 현재의 이스라엘이 따라야 할 모범이 되지 못했습니다. 완고하고, 패역했고, 마음은 정직하지 못하며,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기이한 행적을 찬양하는 대신에 이스라엘 조상들의 불신의 역사를 열거합니까? 시인은 전통 전수만을 옹호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릇된 역사의식과 잘못된 전통들이 새 세대에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도”, 곧 그분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못한 역사를 언급한 것입니다.

 

(2) 언약과 법을 준행하지 않고, 여호와의 일을 망각(9-11)

 

시인은 좀 더 구체적으로 에브라임의 불순종을 언급합니다. 시인은, 에브라임 자손이 무기를 갖추고 활 쏘는 자들이었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났다(9절)고 합니다. 에브라임은 야곱의 큰 축복을 받았던 요셉의 두 아들 중 둘째입니다. 에브라임의 후손들은 북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많았을 뿐만 아니라 용맹성으로 유명했습니다(삿 8:1-3; 12:1-6). 그러나 시인은 에브라임 후손들이 전쟁에서 물러서는 비겁함을 전합니다. 시인이 특정한 어떤 사건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입니까? 에브라임 지파가 기업으로 받은 땅을 정복하지 못한 것입니까(삿 1장), 아니면 실로에 있던 법궤를 빼앗기고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것을 말하는가(삼상 4-6장), 아니면 사마리아가 앗시리아 군대에 의해 함락된 일을 말합니까(왕하 17:7-18)?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될 수 있지만, 이것은 에브라임 지파만을 특정하기보다는 유명한 조상 이름으로 민족 전체를 언급하는 셈족 시문학의 일반적인 관행입니다.

시인은 에브라임, 곧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배한 이유를 밝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고, 그의 율법에 따라 걷기를 거절했습니다(10). 언약(베리트)과 율법(토라)은 구약에서 여러 차례 평행되는 말입니다(신 29:21; 31:9,26; 스 10:3; 사 24:5; 렘 31:33; 호 8:1; 말 2:8). 율법은 언약보다 하위 개념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과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유지하기 위한 “법도”(5), 곧 ‘토라’입니다. 이것은 언약 백성으로서 살아갈 삶의 방향성을 지시하며, 언약 백성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명시한 가르침입니다. 에브라임 자손은 이 둘을 버렸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행위와 그들에게 보이신 기이한 일을 잊었습니다(11). 여호와의 행하신 일이나 기이한 일은 이스라엘의 구원과 관계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과 구원은 밀착되어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행동하시는 분으로 노래할 뿐만 아니라, 그 행위는 ‘기이한 일’(4, “기이한 사적”), 곧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으로 강화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행동과 기적은 그 수혜자들(언약 백성들)에 의해 잊히지 않고 기억될 때, 아름다운 전통으로 빛납니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하려고 노력해 왔습니까? 자녀에게 세상의 지식을 전수하기 위해 쏟는 노력의 몇 퍼센트를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하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말씀보다 세상의 지식을 전수하는 데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면 하나님의 경고를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겠습니다. 우리 자녀와 이웃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드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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