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075-01)
높이시고 낮추시는 하나님
시편 75편 1-10절
세상에서 높은 자리는 흔한 자리가 아닙니다. 가파른 피라미드처럼 맨 아래에는 넓고 많은 사람이 있지만, 맨 꼭대기는 아주 좁고, 한 사람이 설 수 있는 공간밖에 없습니다. 그해서 사람들은 어찌하든지 그 꼭대기에 오르려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높이는 일은 위험한 일입니다.
- 시인은 땅을 지탱하고 유지하시는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신뢰하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신탁의 말씀이 전해지고 악인에 대한 심판 선언은 정의를 실현하는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향한 신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시인은 의인들의 위풍당당한 위엄이 높여질 것을 확신합니다.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감사(1)
하나님께서는 심판주 되신 분입니다. 악한 사람들을 심판하시고 의로운 사람들은 세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만을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날이 가장 기대되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그 날을 기대하고, 바라는 마음을 갖는 것이 정상입니다.
1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1)
시인은 예배인도자로서 회중과 함께 하나님 이름을 부르며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을 고백하고 찬양합니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더 정확히 ‘하나님, 우리가 당신을 찬양하고 찬양합니다’입니다. ‘찬양하다’(야다)는 감사와 찬양을 목소리로 드릴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느 11:17 참조). 더군다나 2인칭 복수 형태의 ‘우리가 찬양합니다’를 두 번 반복하여 강조하는 표현 방식은 오직 이곳에서만 발견됩니다. 시인은 찬양의 이유를 밝히듯 목소리를 이어갑니다. ‘당신의 이름이 가깝고, 사람들이 당신의 놀라운 일들을 전파합니다.’(1bc) 시인을 비롯해 예배자들이 경험한 기이하고 놀라운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또 ‘당신의 이름이 가깝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시인이 하나님의 놀라운 행적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으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이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반영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택하신 곳에 자기 이름을 두시고, 거기서 백성을 만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신 12:5,11; 참조. 출 3:13-15). 따라서 주의 이름이 가깝다는 것은 예배 받으시는 곳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로 언급한 회중이 예배하며 하나님 이름의 현존을 실제화하는 광경 묘사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예배에 참여한 이들이 함께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반복해서 하나하나 자세히 열거합니다.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신탁(2-10)
세상의 판결은 바르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사건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을 때나 불의한 재판관이 잘못된 판결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항상 바르고 공정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속히 임하기를 고대할 수 있습니다.
2주의 말씀이 내가 정한 기약이 이르면 내가 바르게 심판하리니 3땅의 기둥은 내가 세웠거니와 땅과 그 모든 주민이 소멸되리라 하시도다 (셀라) 4내가 오만한 자들에게 오만하게 행하지 말라 하며 악인들에게 뿔을 들지 말라 하였노니 5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6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7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8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 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이 쏟아 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 9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 10또 악인들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2-10)
시인은 하나님의 심판 선언을 인용합니다. 정한 때가 이르면 바르게 심판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 여기서 삼판에 대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심판이 임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심판이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공정한 판결(2-3)
시인은 하나님의 신탁 말씀을 인용하여 선포합니다. ‘내가 때를 정하고, 내가 공정하게 심판할 것이다’(2). 1절과 2절의 인칭 변화(3인칭 복수 1인칭 단수) 사이에 공백이 있습니다. 이는 아마도 성전 예언자를 통해 백성에게 전달된 신탁의 과정이 생략된 것으로 보입니다(참조. 시 46:10; 50:7,16). 정의로운 심판이 하나님께 속했고,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하는 때에 실행하신다는 약속이 포함되었습니다. 1인칭 대명사 아니를첨가하여 1인칭 동사 ‘내가 판결(심판)할 것이다’(에쉬포트)라는 말을 강조합니다. 지금은 명확히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때가 무르익으면 의인을 옹호하는 정의로운 심판의 시간이 도래합니다(합 2:1-4). 하나님께서는 땅과 거기에 거주하는 모든 것이 소멸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땅의 기둥을 내가 질서 있게 세웠다고 말씀하십니다(3). “그 모든 주민”(콜-요쉬베하)은 땅에 거주하는 모든 것이기 때문에 사람만이 아니라 땅을 거주지 삼는 모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세계와 거기에 속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는 분임을 천명하신 것이며, 창조자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는 모든 행위에 대한 경고입니다. 또한 ‘내가 세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결정하고, 측정하고, 질서 있게 배열하신다는 뜻이며, 1인칭 동사 앞에 독립인칭대명사 ‘내가’를 배치하여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가 강화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땅과 세계의 질서를 굳건히 붙들고 계신 분입니다.
(2) 교만한 악인들을 향한 경고(4-5)
하나님께서 오만한 자들을 향해 직접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만한 자들에게 오만하지 말라. 악인들에게는 뿔을 들어 올리지 말라고 말했다’(4). ‘내가 말했다’(아마르티)에 포함된 내용은 5절까지 이어집니다. 흥미롭게도 시편에서 ‘내가 말했다’는 표현은 대체로 기도하는 사람이 사용하는 말입니다(시 30:6;31:14; 32:5; 38:16; 40:7,10 등). 그런데 시편에서 유일하게 이곳만 하나님께서 주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라.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라’(5) 말씀하셨습니다. 악인들에게 뿔을 들어 올리지 말라(4)는 경고는 ‘높이’ 들지 말라는 경고로 강화되고, 오만한 자들에게 오만하지 말라는 경고는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라는 경고로 한층 강화됩니다. 시행의 배열은, 하나님께서 오만한 자들과 악인을 평행관계로 설정하여 동급으로 취급하고 계심을 드러냅니다. ‘뿔’은 힘, 능력, 자랑, 권력, 위엄을 상징하는 은유(18:2; 89:17,24; 92:10; 112:9; 132:17;16:1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에게 힘과 능력을 높이 쳐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고 엄히 경고하십니다. 오만한 자들과 악인들은 자기를 높이거나 뻣뻣하게 목을 세워 자랑하는 모든 것을 멈춰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3) 높이시고 낮추시는 재판장 하나님(6-8)
오만한 자들과 악인들의 행동을 멈춰야 하는 이유가 시인의 언어로 설명됩니다. 6절 시행이 다소 모호하지만, 4-5절과 연결된 것으로 읽을 때 모호함이 해소됩니다. “높이는 일”은 동쪽이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않고,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않는다(6)고 합니다. ’높이다‘라는 동사가 오만하고 도도하고 불손함을 표현할 때 사용되곤 합니다. 이것은 4-5절의 악인들과 교만한 자들의 행위를 가리킵니다(참조. 시 131:1). 해가 뜨고 지는 곳이나 광야의 산들로부터, 곧 사방 모든 곳에서 높아짐의 발원지가 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어디로부터 옵니까? 오직 재판장 하나님입니다. 시인은 그가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7)고 말합니다. 시인은 모든 주권을 가지신 창조자 하나님을(3) 재판장으로 고백합니다(시 7:11;9:4;50:6).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일찍이 한나의 입에서 처음 고백된 이후로(삼상 2:7), 구약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삼하 22:28; 시 18:27; 138:6; 사 2:11,17; 10:33; 겔 21:26). 이처럼 시인은 신앙공동체가 공유했던 고백을 반복하며 스스로 높이는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이어지는 8절도 모호합니다. “주님은 거픔이 이는 잔을 들고 계신다. 잔 가득히 진노의 향료가 섞여 있다. 하나님이 이 잔에서 따라 주시면, 이 땅의 악인은 모두 받아 마시고, 그 찌끼까지도 핥아야 한다”(새번역). 한마디로 여호와 손에 들려진 잔에 가득한 포도주는 파도가 거품을 만들 듯 거품으로 일렁입니다. 예언서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술잔으로 표현한 것처럼(렘 25:15), 악인이 심판을 피할 길이 없음을 표현한 것입니다(시 60:3; 사 51:17; 렘 25:15,28;49:12;51:7). 반대로 잔은 하나님의 은총을 표현합니다(시 23:6; 116:13). 이 때문에 축복의 잔에 악인들이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서 피할 수 없는 심판으로 해석하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럽습니다.
(4) 야곱의 하나님을 찬양하리라(9-10)
시인은 악인과 오만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을 확신하기에 하나님을 찬양하며 마무리합니다. ‘나는 영원히 선포하며, 야곱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9). 시인은 자신이 경험하고 알고 있는 하나님올 중단 없이 큰소리로 외쳐 말할 것을 다짐합니다.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판결이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시인은 여호와를 ‘야곱의 하나님’(시 20:1;46:7,11; 76:6 등)으로 부르며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노래할 것이라 맹세합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악인들의 모든 뿔, 곧 악인들의 능력과 권세를 잃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반면,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릴 것이라고 노래합니다(10). 그러면 누가 이것을 실행하십니까? 문자적으로 ‘내가 조각낼 것이다’(아갇데아)라는 말이기 때문에 정확히 10절은 2-5절 처럼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인용한 셈입니다. 또한 의인(차디크)은 단수형이고, 악인들(레샤임)은 복수형입니다. 이 때문에 의인을 메시아로 해석하긴 하지만, 의인의 소수성과 악인의 다수성을 표현한 것일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잔과 산산조각 부서질 악인의 ‘뿔’ 이미지와 위풍당당할 의인이 대조되어, 반전을 기획하시고 공정하게 재판하실 하나님이 찬미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낮아짐으로 높아지는 예수님의 방법을 배워야합니다. 우리가 가장 낮은 곳에서 섬길 때 우리를 높여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진정한 높아짐의 비결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방법을 따라야 할 교회에서조차 세상의 방법이 횡행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세상의 뿔을 소망하기보다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의인의 뿔(10)을 기대하며 잠잠히 하나님 안에 거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베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19 시편(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92) - 시편 77편 1-20절 - 하나님을 찾을 때 느끼는 아픔 (0) | 2024.07.06 |
---|---|
시편(91) - 시편 76편 1-12절 - 백성을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 (0) | 2024.07.03 |
시편(89) - 시편 74편 12-23절 - 눈여겨보시며 기억하소서 (0) | 2024.07.02 |
시편(88) - 시편 74편 1-11절 -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의 신앙 (0) | 2024.07.02 |
시편(87) - 시편 73편 17-28절 - 마음의 반석이신 피난처인 하나님 (0) | 2024.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