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74-01)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의 신앙
시편 74편 1-11절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죄 때문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두렵다고 말합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하나님을 두려운 분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에게 침묵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어떤 존재입니까?
- 이 시편은 극심한 고난을 겪은 공동체의 탄식 어린 기도입니다. ‘하나님 왜입니까?’라는 외침으로 시작하는 시인의 절규는 공적인 기도와 탄식으로서 이방 침입자들의 잔인한 성전 파괴와 맞물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재와 침묵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능욕당하지 않기를 바라며, 원수들의 멸망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공동체를 위한 탄원Ⅰ(1-3)
인생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들을 겪게 마련입니다. 사람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닥치면 대부분 낙심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신앙까지 잃어버리는 삶도 있습니다. 시편의 많은 탄식시들은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 처한 시인이 지은 것입니다. 환난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지 이 탄식의 부르짖음과 간구를 살펴보겠습니다.
1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께서 기르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뿜으시나이까 2옛적부터 얻으시고 속량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께서 계시던 시온 산도 생각하소서 3영구히 파멸된 곳을 향하여 주의 발을 옮겨 놓으소서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나이다(1-3)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질문하며 탄원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옛적에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셨음을 기억하면서, 이제는 그 백성이 고통받고 성전이 파괴된 상황에서 다시 돌아와 구원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1) 하나님께 대한 외침과 질문(1)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어찌하여 하나님, 당신은 우리를 영원히 버리십니까?’(1a) 어떤 상황에서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까? “영원히”는 중단 없는 지속성을 뜻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으로부터 거절당하고 배제된 것처럼 느껴지는 고통이 지속되는 것을 더는 견딜 수 없습니다. 시인의 질문은 더 깊어집니다. ‘어찌하여 당신 목장의 양 떼에게 당신의 분노를 내뿜으십니까?’(1b) ‘분노를 내뿜다’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당신의 코가 연기를 내뿜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분노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이미지입니다(신 29:20; 시 18:8 등). 시인은 목자이신 하나님, 곧 목장의 주인이 양 떼를 돌봄이 마땅한데, 돌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분노하시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고대 근동 문헌에는 신들이 왕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때, 목자의 호칭이 사용됩니다. 하나님도 목자로서(시 23:1; 28:9; 80:1; 창 49:24; 사 40:11; 렘 31:10; 겔 34:15), 백성은 양의 이미지로 나타납니다(시 79:13; 95:7; 100:3; 사 5:17; 49:9; 렘 50:19; 겔 34:2-23; 습 3:13).
(2) 공동체를 위한 탄원Ⅰ(2-3)
시인은 하나님께 단호히 요청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옛적에 당신이 사신 당신의 회중을/당신이 구속하셔서 당신의 소유 삼으신 민족을/당신이 거처 삼으신 시온산을’(2). 시인은 하나님의 분노를 멈추게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기억에 호소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했습니까? 마치 모세처럼 말입니다(출 32:13). 그러고서 영원한 파멸을 향해 당신의 발걸음을 들어 올리셔서 심판하시기를 구합니다(3). 구약에서 발걸음은 정복과 관련됩니다(시 58:10; 60:12; 미 1:3-4; 사 37:25 등). 이유 절을 위한 언어학적인 표시는 없지만, 이유를 밝히듯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한 일을 저질렀다고 고발합니다(3b). 이는 시인이 성소(코데쉬), 곧 예루살렘을 짓밟은 자를 심판하시고, 주님이 다시 그곳을 거처 삼으시길 바란다는 요청입니다.
원수들에 의해 파괴된 성소(4-8)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질 때 처한 어려움과 고통을 여러 차례 보여줍니다. 특히 성소가 파괴되는 사건은 그들의 신앙생활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성소는 단순한 건물이 아닌,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과의 교제를 상징하는 장소였습니다. 따라서 성소의 파괴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됨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4주의 대적이 주의 회중 가운데에서 떠들며 자기들의 깃발을 세워 표적으로 삼았으니 5그들은 마치 도끼를 들어 삼림을 베는 사람 같으니이다 6이제 그들이 도끼와 철퇴로 성소의 모든 조각품을 쳐서 부수고 7주의 성소를 불사르며 주의 이름이 계신 곳을 더럽혀 땅에 엎었나이다 8그들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리가 그들을 진멸하자 하고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회당을 불살랐나이다(4-8)
시인이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원수가 성소에서 악행을 저지르고, 대적들이 주의 회중을 표적으로 삼은 것입니다. 악한 자들은 거룩한 성소를 더럽히며 짓밟고, 주의 백성을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1) 원수들의 성전 파괴와 약탈(4-6)
시인은 원수들이 성소에서 행한 일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합니다. 시인은 ‘원수’(3)를 ‘당신의 대적들’이라고 칭하면서, 그들이 당신의 회중 가운데서 으르렁거리며, 깃발들을 세워 표시했다고 말합니다(4). “회중”은 지정된 시간이나 만남의 장소, 곧 집회 장소를 뜻하기도 합니다. 솔로몬 성전이 건축된 이후 회막은 없어졌지만, 이 단어는 축제의 장소를 가리키곤 했습니다(애 2:6; 사 33:20). 이 때문에 회중을 뜻하기보다 성전이 탈취된 상황에서 예배를 위해 회중이 모일 수 없기 때문에 장소적인 의미가 더 적합해 보입니다. 더군다나 대적자들은 탈환을 자랑하듯 깃발들을 꽂고,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면서 세상을 호령하듯 소란하게 떠들어대는 상황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침략자들은 자기들의 신을 상징하는 깃발을 성소에 두었고, 고대인들은 전쟁하며 깃발을 들었습니다(렘 4:6;51:12,27). 점령당한 이스라엘의 성소에 침략자들의 깃발이 펄럭이는 영상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시인은 그들이 도끼로 빽빽한 나무숲을 찍어버리는 사람 같다(5)고 말합니다. 시인은 성소를 파괴한 대적자들을 숲을 파괴하는 무자비한 벌목꾼처럼 생각합니다. 그들은 도끼와 철퇴로 성소의 모든 조각품들을 찍어서 산산조각 냈습니다(6). 대적들이 성전 내부에있는 장식품들을 마구잡이로 ‘모조리’(야하드) 또는 ‘철저하게’ 부수는 폭력성과 야만성을 드러낸 묘사입니다. 그들이 성전을 완전히 폐허로 만든 셈입니다.
(2) 성소 방화와 주의 이름 모독(7-8)
파괴자들의 고발하는 목소리는 계속됩니. 시인은, 그들이 당신의 ‘성소’를 땅에 불살라버리고, 당신의 이름이 ‘계신 곳’을 더럽혔습니다(7)라고 말합니다. 시인은 ‘당신의 성소’와 ‘당신의 이름을 두신 곳’을 동의적인 의미로 사용하며 강조합니다. 이곳은 이미 언급한 시온(2)이며 성소(3)입니다. 주전 587년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주님의 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 성벽을 헐었던 시점을 가리킵니다(왕하 25:9-10; 렘 52:13). 그러니까 땅 위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소가 철저하게 더럽혀지고 유린된 그때의 그 사건을 소환한 셈입니다. 시인은 그들이 마음속으로 했던 말을, 광기에 휩싸인 폭력적인 언사를 직접 들은 것처럼 말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모조리 제압하자!’(8) 그러고서 다시 파괴자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묘사합니다. 그들이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회당”(콜-모아데엘), 곧 ‘하나님을 만나는 모든 곳’을 불살랐습니다(8b)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회당”(모에드)은 4절에서 “회중”으로 번역된 단어와 같은 낱말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적인 의미와 회중들 다를 뜻할 수 있지만, 마카비 시대, 구약과 신약 중간기 때 존재했던 회당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회당”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소나 회중을 언급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철저하게 실행된 물리적 파괴와 종교적 오염을 표현합니다. 곧 시인은 성소와 관련된 모든 사람을 제압하고 약탈하고 파괴하자는 노골적인 외침처럼(8a), 대적자들이 종교 지도자들에서 예배자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유린한 상황을 표현한 것입니다.
공동체를 위한 탄언Ⅱ(9-11)
우리는 모두 인생의 어려운 시기를 겪어본 적이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서 매우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지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직장을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혹은 삶의 여러 문제들로 인해 낙심하게 되는 순간들 말입니다. 이런 순간들에 우리는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왜 저를 도와주지 않으십니까?”라고 묻게 됩니다. 이런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9우리의 표적은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더 이상 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 10하나님이여 대적이 언제까지 비방하겠으며 원수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능욕하리이까 11주께서 어찌하여 주의 손 곧 주의 오른손을 거두시나이까 주의 품에서 손을 빼내시어 그들을 멸하소서(9-11)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탄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더 이상 표적이 보이지 않으며, 예언자도 없고,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어려움이 지속될지 알 수 없다고 호소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왜 손을 사용하지 않으시는지, 왜 오른손을 품에 감추고 계시는지 묻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개입과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심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1) 표적과 환상 없는 하나님의 침묵(9)
시인에게 더 큰 고통은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시인은 이렇게 호소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표적들을 볼 수 없고, 예언자는 더 이상 없으며, 얼마나 오래일는지 우리 곁에 아는 자가 없습니다.’ 표적도 예언자도 아는 자도 없다는 것은 같은 의미입니다. 예언자의 임무 중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 그분의 뜻을 알리는 것입니다. 또한 “표적”(오트), 곧 경이로운 징후를 보는 것도 예언자의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 임재의 표시였습니다. 이 때문에 이상과 묵시가 그친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할 때(삼상 3:1; 애 2:9; 젤 7:26),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느 때까지입니까?”라고 질문하며 탄식했습니다(시 13:1; 35:17; 80:4).
(2) 하나님의 개인을 간구함(10-11)
시인은 예배 처소에서 행해진 끔찍한 피해와 하나님 이름을 조롱하는 행위를 더는 견디기 어려워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오, 하나님! 언제까지 원수가 조롱합니까? 언제까지 원수가 당신의 이름을 능욕하게 두시렵니까?’(10) 이스라엘의 원수가 성전 기물을 파괴하고 불태운 것은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힌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조롱과 능욕은 행동과 말을 모두 포함합니다(8). 시인의 감정은 점점 고조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원수를 멸하시도록 촉구합니다. 그 방식은 질문과 명령의 형태입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손과 당신의 오른손을 거두십니까? 당신의 품에서 그들을 소멸하소서!’(11) 시인은 하나님께서 감춰진 손을 사용하셔서 원수를 철저히 파멸해주시길 요청합니다. 시인의 강력한 요청은 출애굽 당시 애굽인들을 치셨던 기억에 근거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후손들과 함께 홍해를 건넌 후 했던 말처럼(출 15:12; 참조. 사 52:10), 하나님께서 거두셨던 손으로, 감추셨던 오른손으로, 품에 숨기셨던 능력의 손으로 원수를 멸망시켜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하나님의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개입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74편뿐 아니라, 시편 전체의 경첩이 될 만큼 해석자들 사이에서 중요하게 다뤄졌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공격한 것은 거기에 계신 분을 공격한 것이며 시온의 신성불가침을 훼손한 것이기에 사망의 영역으로 던져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부재 속에 절망하면서도 길을 찾으려는 탄식입니다.
세상에는 끝이 있고 악행에는 심판이 따릅니다. 간밤의 꿈은 깨기 마련이고 악한 자의 번성은 깨지기 마련입니다. 세속적인 번영의 허황된 꿈을 버리고 꿈같이 임할 종말의 영생을 소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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