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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24-01)


다윗의 인구조사와 하나님의 재앙

사무엘하 24장 1-17절


별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고개만 끄덕이는 사람을 ‘버블헤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위대한 지도자란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전하고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이는 사람입니다. 교만이라는 범죄는 한순간에 파고들지 않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교만은 은밀하게 마음에 침투해 들어옵니다. 교만한 마음에 사단은 틈타서 넘어지게 만듭니다.

본문은 결론의 마지막 부분인 인구조사에 대한 이야기로 21장의 기근 이야기와 쌍을 이룹니다. 두 사건 다 여호와의 진노가 임하여 이스라엘에 재앙이 일어나게 되는데, 21장에서는 진노의 대상이 사울이고 24장에서는 다윗입니다. 두 이야기 모두 여호와께 기도하였고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해 기도를 들으시고 재앙을 멈추십니다. 두 이야기 모두 왕이 재앙의 원인으로 나오면서 왕정 시대에 왕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인구조사를 명령하는 다윗(1-4)

사람들은 세상에 속한 것, 즉 재물이나 인맥을 의지하여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기대는 것은 영원한 생수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터진 웅덩이에서 물을 찾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 성도가 자기 자신이나 사람의 힘을 의지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싫어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그 은혜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십니다.

1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2이에 왕이 그 곁에 있는 군사령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이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백성의 수를 내게 보고하라 하니 3요압이 왕께 아뢰되 이 백성이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 4왕의 명령이 요압과 군대 사령관들을 재촉한지라 요압과 사령관들이 이스라엘 인구를 조사하려고 왕 앞에서 물러나(1-4)

이 단락은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 구문은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이 다시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하여’라는 구문과 유사합니다. 반복적인 행위를 표현하는 것으로 여호와께서 여러 번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사무엘서 이야기에서는 여호와께서 사올이나 다윗에게 진노하신 이야기는 등장하지만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신 경우는 사무엘상 12장 사무엘의 고별 설교에서 이스라엘이 왕을 구한 것에 대해 진노하시고 비와 우레를 보내신 일 이외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다윗 시대에도 사사 때처럼 반복적인 이스라엘의 범죄가 있었고 그때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고 벌을 내리신 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 다윗 마음의 충동(1)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범죄를 벌하시기 위해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도록 부추기셨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마음에 원래 품고 있던 것을 행동으로 옮기도록 부추기신 것이지 순수한 마음에 악을 집어넣으신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마음을 부추기시는 모습은 사사기 8:23에서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악한 명을 보내어 서로 싸우도록 하신 모습과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여호와께 범죄하였고 심판의 맥락에서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도구로 다윗을 쓰신 것입니다.

(2) 다윗의 명령(2)

다윗은 요압을 불러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해 인구조사를 하라고 명령합니다. 인구조사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군사를 징집하기 위한 것이고 둘째는 백성들에게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행위는 여호와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으로 세금을 많이 걷는 것은 왕이 은금을 많이 쌓기 위한 것이고, 군사를 징집하는 것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의 숫자에 의지하여 전쟁을 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7:2에서 하나님께서 많은 수의 군인이 필요 없다고 하시면서 그 이유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고 말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수의 군인을 징집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원하는 전쟁 방식이 아닙니다.

(3) 요압의 반대와 다윗의 고집(3-4)

이런 다윗의 명령에 요압이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습니다. ‘이 백성이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길 원한다’고 기원합니다. 여기서 백 배는 과장법으로 많은 인구 주시기를 기원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왕은 어찌하여 인구조사 하는 것을 기뻐하냐고 묻습니다. 이것은 수사적 질문을 통해서 인구조사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간접적으로 설득하는 것으로 요압은 다윗의 인구조사 명령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백 배의 인구 주시길 원한다고 기원한 것은 여호와의 능력이 있으면 사람의 많고 적음이 문제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요압은 다윗보다 더 신앙적인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그다지 신앙적이지 않은 요압이 보아도 다윗의 행동은 여호와 앞에서 옳지 않은 행동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인구조사에 대한 다윗의 주장은 완강했고 결국 요압과 사령관들은 다윗의 명령을 시행하게 됩니다.

 

인구조사의 결과를 보고함(5-9)

하나님의 일을 맡은 우리는 지금 무엇을 의지해 그 일을 수행하고 있습니까? 우리 눈에는 세상에서 통하는 원리가 금세 들어옵니다. 그런 방법을 사용하면 원하는 결과가 쉽게 손에 잡힐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은 하나님의 원리와 은혜로 감당해야 합니다. 현대 교회들이 사람의 힘을 의지하고 세상의 방법을 적용한 결과, 교회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5요단을 건너 갓 골짜기 가운데 성읍 아로엘 오른쪽 곧 야셀 맞은쪽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6길르앗에 이르고 닷딤홋시 땅에 이르고 또 다냐안에 이르러서는 시돈으로 돌아 7두로 견고한 성에 이르고 히위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모든 성읍에 이르고 유다 남쪽으로 나와 브엘세바에 이르니라 8그들 무리가 국내를 두루 돌아 아홉 달 스무 날 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9요압이 백성의 수를 왕께 보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 명이었더라(5-9)

다윗은 세금을 징수하고 군을 정비하는 국가를 합리적으로 경영하려는 마음과 통치권을 자랑하고 강화하려는 두 마음이 같이 있었습니다. 하늘의 와과 관계없이 행하던 다윗은 죄의 결과가 급습해오기 전에 성찰하고 엎드립니다. 주님께서는 죄 중에서라도 겸손히 엎드리면 거절하지 않으시고 소통하십니다.

(1) 인구조사 과정(5-8)

다윗의 강한 주장으로 인구조사를 시행한 요압과 군대장관들의 여정은 먼저 요단 동편 지역에서 시작해서 아르논을 따라 나라의 동남쪽 끝 아로엘로 갔다가 그 다음에 북쪽 제일 끝인 단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북서쪽을 향해 시돈의 페니키아 해안에 이르고 그 다음에 남쪽으로 이동하여 나라의 주요 부분들을 통과하여 두로와 히위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이르렀고 마지막으로 남쪽 끝인 브엘세바로 갑니다.

(2) 인구조사 결과(9)

이렇게 다윗이 당시에 다스리고 있던 지역을 전부 조사한 결과 이스라엘 사람이 팔십만 명이고 유다 사람이 오십만 명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별도로 기록된 것은 각기 독립된 행정 조직과 군사 조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다윗을 징계하신 여호와(10-17)

하나님께서 긍휼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 자는 그 긍휼을 의지해 죄를 범했을 때에 회개합니다. 회개는 자기의 구체적인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회개할 때만 보혈의 은총을 깊이 누릴 수 있다. 우리가 누리는 은혜의 핵심은 회개에 있습니다. 항상 같은 죄에 넘어져 또다시 회개하기 민망하더라도 회개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회개를 다음 기회로 미루지 말라. 회개할 기회를 주셨는데 회개하지 않는 것은 매우 악한 일입니다.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운다는 것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회개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10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11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12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를 위하여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 13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아뢰어 이르되 왕의 땅에 칠 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은 왕이 왕의 원수에게 쫓겨 석 달 동안 그들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은 왕의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무엇을 대답하게 하소서 하는지라 14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고통 중에 있도다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5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 16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17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10-17)

아무리 용서를 빌고 용서를 받아도, 왕이 행한 죄의 결과는 참담합니다. 가문마다 장자를 잃은 애굽에서의 애곡처럼 전국을 뒤덮었습니다. 죽음의 쓰나미 앞에서 다윗은 깨닫습니다. 제아무리 왕이라 해도 실은 자기 죄의 결과조차 책임질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1) 다윗의 회개(10)

이렇게 반대를 무릅쓰고 인구조사를 마친 후에 다윗은 이 일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마음에 걸렸다는 표현은 사울의 옷자락을 벤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삼상 24:6). 이때 다윗은 자신이 사울을 죽이려는 마음을 먹은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다윗은 인구조사를 한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는 군사력을 의지하려고 한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고 죄책감을 느낀 것입니다. 그리고 죄라는 것을 깨닫자 바로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죄를 사해달라고 요청하며 자기가 어리석었음을 고백합니다. 이 사건이 밧세바와 간통하기 이전인지 이후인지 알 수 없지만, 밧세바 때에는 나단의 지적을 받고서야 비로소 죄를 지었다는 것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했지만, 이때는 스스로 잘못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 것을 보면 아직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지 그른지 분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2) 여호와의 명령(11-14)

이렇게 다윗이 회개하는 모습에 하나님께서는 갓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셔서 회개에 합당한 벌 세 가지를 제시하시고 이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하십니다. 회개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벌을 받는 모습은 밧세바 사건에서도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잘못을 용서하셔서 다윗을 버리지 않으시고 계속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두셨습니다. 하지만 그에 합당한 벌은 감당하게 하십니다. 세 가지 벌은 첫째는 이스라엘 땅에 7년 동안 기근이 오는 것이고, 둘째는 석 달 동안 왕위에서 쫓겨나는 것이고, 셋째는 3일 동안 이스라엘에 전염병이 도는 것입니다. 뒤로 갈수록 날수가 줄어드는 것은 재앙의 강도가 점점 약해지는 것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제안에 다윗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신 분이기 때문에 자신이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기를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반역자에게 석 달 동안 왕위를 빼앗기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을 받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이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긍휼이 크신 분이지만 권능도 크시다는 것입니다.

(3) 전염병의 창궐(15)

다윗의 선택대로 하나님께서는 다음 날부터 정한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 보내셨는데, 그 때 죽은 자가 칠만 명이었습니다.

(4) 여호와의 천사(16-17)

이 기간은 3일을 다 못 채운 기간으로 16절에서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손드는 것을 여호와께서 막으십니다. 마지막 날 예루살렘에 재앙을 내리려고 계획하셨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마음이 편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16절에서 ‘뉘우치다’로 번역된 단어는 ‘후회하다’. ‘유감스럽게 생각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는 많은 백성의 죽음이 애석하시고 속상하신 것입니다. 처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에 그들을 말하기 위해서 이런 계획을 하였고, 이스라엘과 다윗에 대한 별을 시행하토지만 막상 배성의 죽음에 마음이 아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17절은 16절보다 시간적으로 이전으로 하나님 개서 멈추시기 전에 다윗은 전사가 재앙으로 백성들을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로 인해 다윗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백성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선책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여기서 다윗과 하나님께서 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책임지는 지도자가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는 백성을 대신해서 자신과 자신의 집을 발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다윗은 왕으로 지낸 시간이 오래되자 왕의 본질이 무엇인지 잊고 권력에 심취해 있었고, 더 큰 권력을 갖고 싶은 욕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구조사를 통해 이스라엘의 권력의 핵심은 여호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의 죽음을 통해 백성이 왕을 위한 존재인 것이 아니라 왕이 백성을 위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왕은 특성의 구원자이며 목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은 요압의 반대를 물리치고 인구 조사를 강행합니다. 칼을 빼는 자의 숫자를 센 것을 볼 때, 징병과 조세를 위한 조사였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구원이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지 않음을 부정하고 자기 힘을 의지하려는 불신앙이며 열방의 왕과 귀족들이 백성을 억압적으로 통치하는데 사용한 수단이었습니다. 우리도 여호와의 힘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인간적 힘을 모으는데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없는지 자신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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