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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22-02)


승리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다윗

사무엘하 22장 26-51절


 

하나님께서 다 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그저 바라만 보면서 현실을 즐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난이 찾아올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자세이듯 평탄할 때도 그러해야 합니다. 다윗의 고백을 통해 건강한 신앙의 자세를 알아보시겠습니다.

 

본문은 다윗의 시 후반부이며, 다윗에게 승리를 주시는 여호와의 은혜를 노래합니다. 먼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는 여호와의 성품을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을 전진 속에서 지켜주심을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으로 모든 원수를 추격하고 공격하고 굴복시키게 하셨음을 말합니다. 끝으로 열방 가운데서 여호와를 찬송하며, 다윗과 그 후손에게 인자를 베푸시기를 확신하며 기도하고 찬양합니다.

 

공평하신 여호와(26-28)

공의를 따라 깨끗한 삶을 살아갑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는 성령이 선물로 부어집니다. 성령님은 성도가 하나님의 뜻과 공의를 행하고 깨끗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믿음의 고백은 성령이 역사하시는 결과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성령의 내주하심과 역사와는 상관없이 입술의 고백으로 자신의 구원을 확신합니다. 성도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의 고백은 하나님의 공의를 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구원의 은혜 안에 날마다 거해야 합니다.

26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27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이다 28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26-28)

21-25절에서는 다윗이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보응해주시는 것에 대해 찬양하였다면, 26-28절에서는 개인의 경험을 확대하여 보편적인 하나님의 보응 원리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1-25절에서는 주어와 목적어로 ‘나’라는 일인칭이 주로 사용되었다면, 26-28절에서는 일반 사람들을 의미하는 3인칭이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26절에서 다윗은 일단 긍정적인 보응부터 시작합니다. 자비한 자에게 주께서 자비를 베풀어주신다는 말은 선을 선으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율법에서 가난한 자를 돌보는 의무 밑바탕에 깔린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출애굽기 22장에서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지 말고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꾸어주고 이자를 받지 말며 저당물로 받은 겉옷을 돌려주라고 말씀하시면서 27절에서 나는 자비로운 자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자비로운 성품을 닮아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신명기 15장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절대 그들의 필요를 외면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10절에서 ‘너희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26절 하반절에서 '완전함'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레위기의 제의 제도에서 제물은 반드시 흠이 없는 완전한 짐승을 드려야 하며 제사장도 흠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도 완전하여 결함이나 실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불완전하고 결함투성입니다. 이런 인간은 하나님의 완전함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며 하나님 안에서 완전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부족한 자에게 완전함으로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과부의 두 렙돈이 가장 큰 헌금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이 부분과 연결될 것입니다. 27절 상반절은 긍정적인 부분의 보응이고 하반절은 부정적인 보응입니다. 27절 상반절에서 ‘깨끗함’은 죄와 부정을 제거하는 것으로 죄를 완전히 짓지 않으며 완벽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었을 때 그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 죄 사함을 받아 죄와 부정을 제거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을 때 회개하며 용서를 빌고 죄에 대해 책임을 지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정결하게 하셔서 다시 그 사람과 교제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깨끗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지어 부정하게 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거룩하신 하나님 곁에 갈 수 없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받게 되면, 우리는 다시 정결한 상태가 되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됩니다. 구약에서는 동물 제사를 통해 죄 사함을 받았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안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죄를 지었을 때 빨리 회개하는 것이 연약한 인간에게는 더욱 중요한 문제입니다. 27절 하반절은 상반절과 반대의 상황으로 ‘사악한 자’는 ‘뒤틀린 자’이며 여호와 앞에 죄를 범한 자들로 이들은 여호와 앞에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엇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엇나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도 엇나가게 행동하겠다고 하십니다.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벌을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27절 상반절과 하반절은 동일하게 죄의 문제를 다루지만, 죄를 깨닫고 회개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반대되는 반응을 말하고 있습니다. 28절은 27절과 같이 대조적 평행법을 사용하여 가난한 자를 높이시고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데, 이것은 한나의 노래에서도 언급된 내용입니다. 28절의 핵심은 하나님은 얼마든지 상황을 역전시키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으로 가난하다고 낙심하지 말고 높이 있다고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부르짖는 약자를 위해 악한 상황들을 언제든지 전복하실 수 있는 분인 것입니다. 이것은 한나도 경험했고 다윗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자를 들어 쓰시기를 좋아하시며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는 분입니다. 교만은 불신앙으로 교만한 자는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명기 17:19-20에서 율법을 읽어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고 교만을 행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호하시는 여호와(29-37)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과 같은 전쟁터에서 하나님께서는 등불이 되십니다. 앞길을 환히 비추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때, 그 어떤 적도 두렵지 않습니다. 적진 가운데로 힘차게 달려 나갈 때 적진의 성벽도 훌쩍 뛰어넘게 됩니다. 완전하고 진실한 약속의 말씀을 따라 굳건한 반석이신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가장 안전하게 지키시며 대적을 향해 싸울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가르치시며 적진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 싸우게 하십니다.

29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30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 31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32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33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요새시며 나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며 34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35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36주께서 또 주의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37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내 발이 미끄러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29-37)

흑암의 장막이 다윗을 덮던 날들이 하루 이틀이었습니까? 길도 빛도 없는 광야에서 지새워야 했던 그 암담하고 외로운 밤마다 주님은 따뜻한 등불처럼 위로하시고 주의 자비와 완전함을 보이셨습니다. 어두운 심령에 찾아와 품어주는 그 빛, 그 아름다움을 찬송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1) 등불(29-30)

다윗은 이제 하나님을 의지하며 전쟁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는 나의 등불로서 어둠을 밝혀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인생의 캄캄하고 막막한 길을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뜻이고, 또 한편으로는 적들이 어디서 쳐들어올지 그리고 전쟁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하나님만 믿고 뛰어드는 30절의 모습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30절에서 자신의 앞길을 비춰주시는 하나님과 함께 그 빛을 따라 적진을 달리고 성벽을 뛰어넘습니다. 여기서 묘사된 군인은 주변의 모든 상황을 무시하고 오직 빛을 따라 칼 한 자루 손에 쥐고 적진으로 뛰어드는 매우 역동적이고 힘찬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윗의 이 고백을 보며 과연 우리에게도 다윗과 같이 여호와를 위해 힘차게 뛰고 달리고 뛰어넘는 역동적인 모습이 있는지, 아니면 주변 상황만을 보고 두려워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거나 쭈뼛거리며 간신히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아닌지, 혹은 가고 싶지 않은 길을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2) 피난처(31-34)

하나님 말씀의 완전성과 순수성을 고백한 다윗은 여호와께로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가 되어주신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하나님 말씀의 완전성과 순수성은 하나님의 언약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돌보고 지키겠다고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32절에서 다윗은 오직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라는 신앙고백을 통해 자신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고백합니다. 시내산에서 맺은 이스라엘의 언약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오직 여호와만을 하나님으로 섬기겠다는 것으로, 31절은 하나님 편에서의 언약을 32절은 인간 편에서의 언약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33절부터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인도를 묘사합니다. 33절에서는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는 분으로, 34절에서는 자신의 발이 날렵한 암사슴의 발처럼 빠르게뛸 수 있게 힘을 주시는 분입니다.

(3) 훈련(35-37)

35절에서는 자신의 손에 싸움을 가르치시는 분으로, 36절에서는 방패를 주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전쟁할 수 있게 힘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는 것을 마치 스승이 제자를 하나하나 가르치고 무장시키는 모습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인도를 받은 다윗은 빠른 발로 높은 곳에서의 전투에도 끄떡없는 체력과 민첩함을 얻게 되었고, 싸움을 배운 손은 무거운 무기인 놋활도 쏠 줄 알게 되었으며, 방패로 보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신을 강하게 만드시고 승리를 주신 것을 하나님의 겸손함으로 보았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다 뒤엎을 힘과 능력을 가지신 분이 직접 싸움에 나서지 않고, 아무런 힘도 없는 자신을 가르치고 용사로 만들어 승리의 기쁨을 맛보고 승리의 영광을 누릴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다윗의 고백 속에는 아무런 능력도 없던 자신이 전쟁터의 용사로서, 왕으로서 힘과 명예를 얻게 된 것에 대한 송구함과 겸손함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약간의 영광과 능력을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고 교만해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광을 맛보게 하신 것이 겸손함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더욱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37절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 발걸음도 힘찬 용감한 군사로 거듭난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제 전쟁할 준비가 끝난 것입니다.

 

여호와의 다윗(38-46)

승리의 기쁨을 날마다 누리고 있습니까? 초대교회는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승리를 날마다 맛보며 누렸습니다. 그들에게 이 십자가만이 유일한 자랑이고 기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 복음을 세상에 전함으로 영적 전쟁에서 날마다 승리했습니다. 교회는 십자가 복음을 알고 누리며 그것을 세상에 자랑함으로 주님의 승리를 날마다 경험하는 공동체입니다.

38내가 내 원수를 뒤쫓아 멸하였사오며 그들을 무찌르기 전에는 돌이키지 아니하였나이다 39내가 그들을 무찔러 전멸시켰더니 그들이 내 발 아래에 엎드러지고 능히 일어나지 못하였나이다 40이는 주께서 내게 전쟁하게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를 내게 굴복하게 하셨사오며 41주께서 또 내 원수들이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내게 나를 미워하는 자를 끊어 버리게 하셨음이니이다 42그들이 도움을 구해도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대답하지 아니하셨나이다 43내가 그들을 땅의 티끌 같이 부스러뜨리고 거리의 진흙 같이 밟아 헤쳤나이다 44주께서 또 나를 내 백성의 다툼에서 건지시고 나를 보전하사 모든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45이방인들이 내게 굴복함이여 그들이 내 소문을 귀로 듣고 곧 내게 순복하리로다 46이방인들이 쇠약하여 그들의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오리로다(38-46)

전쟁터의 다윗에게 다른 방패가 없었습니다. 사울의 갑옷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님이 살리시면 살고 죽이시면 죽는다는 각오로 전쟁에 임했습니다. 주님이 지키셨기에 날 선 칼과 창끝도 다윗을 건들 수 없었습니다. 전심으로 주께 피하는 다윗에게 주님은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되어주셨습니다.

(1) 원수를 굴복시킴(38-40)

이 단락에서는 하나님께 교육받은 다윗이 전투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윗의 모습은 매우 용감합니다. 적의 뒤를 쫓아가 전투하는데 그들을 무찌르기 전에는 후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임전무퇴의 용감한 돌격 정신을 볼 수 있습니다. 39절은 그 결과로 적들을 완전히 괴멸해 버렸습니다. 39절 하반절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고, 자신의 발아래 모두 엎드러졌다고 표현함으로써 완전한 승리의 모습을 생생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40절부터 다윗은 다시 자신이 승리하게 된 은공을 여호와께 돌리고 있습니다. 띠를 띠운다는 표현은 33-36절까지의 교육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입니다.

(2) 원수를 진멸함(41-43)

4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적들이 도망가게 하시고 근절할 수있게 해주셨다며 감사합니다. 42절은 여호와께서 자신만을 도와주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적들에게는 그들을 도울 자가 없었습니다. 이방신들은 여호와의 적수가 되지 못하기에 도울 수 없었고, 혹시라도 여호와를 부르는 자가 있더라도 여호와께서는 도와주지 않으셨다고 고백하며, 하나님과 자신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43절은 적들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완전히 이겼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3) 이방 사람들의 복종(44-46)

39-43절이 다윗이 싸운 일반적인 전쟁에서의 승리를 말하고 있다면, 44절은 이스라엘 안에서 사울과 사울 집과의 갈등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셔서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신 것에 대한 감사하고 있습니다. 45-46절에서는 이방인들이 자신에게 굴복하고 자신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자발적으로 다윗에게 복종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암몬과 아람을 이긴 뒤 이들이 다윗에게 복종하며 조공을 바치고 두로의 히람이 화친을 청한 이야기를 반영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이 다윗 인생에서 가장 명예롭고 승승장구하던 때입니다.

 

구원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양(47-51)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찬양하고 감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수많은 찬양의 제목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드려야 할 가장 중요한 찬양 제목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구원의 큰 능력과 은혜입니다. 오직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이 감사와 찬양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거룩하심과 십자가로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교회가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47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48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복하시고 민족들이 내게 복종하게 하시며 49나를 원수들에게서 이끌어 내시며 나를 대적하는 자 위에 나를 높이시고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건지시는도다 50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모든 민족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51여호와께서 그의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하도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 하였더라(47-51)

광야의 절벽과 낭떠러지에서 발 디딜 곳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도망자 신세라면 더욱 마음이 급하여 순식간에 미끄러지고 떨어질 수 있습니다. 구원의 반석이신 주님 덕분에 다윗은 걸음을 넓혀 높은 곳으로 달리고 뛰어넘었습니다. 반석이신 주님이 매 순간 그의 발을 붙들어 인도해 주셨습니다.

(1) 구원하시는 여호와(47-49)

다윗은 다시 노래의 처음처럼 여호와를 자신의 반석이라고 부르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높이라고 외칩니다. 2절에서는 찬양하라는 부분이 없었지만, 47-51절의 핵심은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2) 감사와 찬양(50-51)

48-49절에서 다시 한 번 여호와를 찬양하는 이유를 밝힌 후, 50절에서 다시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그 이름을 찬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큰 구원 사건이 있을 때 찬양이 등장하는 것입니다(출 15장; 삿 5장; 삼상 2장 등). 그러므로 은혜 받은 자는 감사하는 것과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51절에서 왕에게, 즉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왕에게 그리고 다윗과 그의 후손들에게 영원토록 헤세드, 즉 언약의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기원하며 노래를 마치고 있습니다. 다윗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헤세드를 베풀어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을 지켜달라는 기원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이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주셨습니다. 비록 다윗이 범죄하고 하나님과 멀어졌을지라도 이 약속은 끝까지 지켜주셨습니다. 전체적으로 다윗의 찬송시가 지어진 시기는 다윗이 범죄하기 이전으로 보입니다. 이 시에서 다윗은 매우 겸손하며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랐다고 고백하고 있으며,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므로 전쟁마다 승리한 것은 다윗이 범죄하기 전의 상황입니다. 하지만 다윗이 범죄한 이후 다윗의 이야기에 하나님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습도, 하나님께 의뢰하는 모습도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찬양시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다윗 성을 짓고 언약궤를 모셔오고 정치적 군사적으로 안정되었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며 바친 노래입니다. 이렇게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하는 노래를 했던 다윗도 인간적인 영광에 도취 되면 한순간에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약하고 악한지 다시 한 번 경고를 받게 됩니다.


 

서로 기대어 같은 결의 마음을 빚어온 사이였습니다. 두 마음이 합해졌습니다. 우리에게도 주님은 가까이 오셔서 살피십니다. 겸손히 한계를 인정하고 기대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신실하시고 겸손하고 온유하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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