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047-01)
찬양을 담을 우리의 신앙고백
시편 47편 1-9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찬양은 단순히 듣기 좋은 음악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입니다. 그 신앙고백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믿음의 고백을 찬양에 담아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 이 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며 동시에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지존하신 왕이심을 선포하고 찬양합니다. 시인은 만민이 함께 손뼉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나팔 소리로 왕이신 하나님을 기뻐하고, 왕권을 기념하는 축제를 통해 열방이 하나 되는 것을 상상합니다. 한마디로, 거룩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왕권과 우주적인 주권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만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외쳐라(1)
우리는 하나님의 범궤 앞에서 춤추고 찬양한 다윗을 본받아야 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온 땅에 선포하며 노래해야 합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큰 사랑과 은혜를 찬양해야 합니다. 그렇게 이 세계의 참된 주인이시요 통치자이신 하나님께 합당한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
1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1)
이 시 전체 주제의 통일성은 세 개의 반복되는 단어에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직접적인 요청을 중심으로 ‘백성’(2,3,9), ‘왕’(2,6,7,8), ‘땅’(2,7,9)이 반복됩니다. 이 어휘들은 ‘만민들’을 호명하며 즐겁게 기쁨의 함성을 외치라는 초청과 연결됩니다. 시행의 첫 단어 ‘모든 백성들’, 곧 ‘만민들’에게 손바닥을 마주치며 즐거움의 함성을 부르라는 초청에서 ‘하나님’께서는 완전하고 보편적이며 우주적인 왕권을 천명하는 이름입니다. 그러면 ‘만민들’은 누구입니까? 3절의 ‘만민’은 정관사를 덧붙인 1절의 ‘하암밈’과 달리 특정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1절의 ‘만민들’은 하나님과 언약 맺은 백성 이스라엘을 특정한 셈입니다. 언약 맺은 그 모든 백성을 향해 시인은 우주적인 왕을 향해 손뼉을 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향해 함성 소리로 외치라 합니다.
지존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은 온 땅의 왕(2-5)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그저 이스라엘만 주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 삶의 자리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큰 왕이십니다. 우리는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찬양합니다.
2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왕이 되심이로다 3여호와께서 만민을 우리에게, 나라들을 우리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며 4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 (셀라)(2-4)
함성을 지르고 즐거운 목소리를 높여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2절의 첫 글자는 ‘왜냐하면’(키)입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가장 높으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온 땅에 큰 왕이시라’(2) ‘지존하신’을 뜻하는 ‘엘욘’은 이스라엘 안에서만이 아닌 국제적인 맥락에서 최고의 신을 묘사할 때 불리는 칭호인데, 시인은 이를 하나님께 적용합니다(참조, 창 14:18-20; 민 24:16; 32:8; 9:2; 21:7; 46:4; 77:10; 78:17,35, 56;82:6 등).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는 지존하신 주님이며(2a) 온 땅의 큰 왕이십니다(2b). 이방신들과 비교 불가한 하나님의 통치권이 시의 평행관계 안에서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을 큰 함성 소리로 찬양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만민을 우리에게, 나라들을 우리 아래 복종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3). 시인이 말하는 이 승리는 조상들이 가나안 땅 정복 전쟁에서 승리한 때를 회상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때의 전쟁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 뿌리 깊이 내재된 전쟁이며, 약속의 땅 위에 나라의 기초를 수립하는 승리였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완벽하게 차지하고, 가나안 땅과 이웃 나라들이 이스라엘에게 완전히 굴복한 것은 다윗 시대에 이르러 가능했습니다. 시인은 지금 ‘만민’과 ‘나라들’이 우리 발아래 복종하도록 하나님께서 완벽한 승리의 근원임을 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한 기업을 택하셨고, 이는 그가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입니다(4). 하나님의 구속의 과정이 ‘야곱의 영화’입니다. ‘기업’은 하나님께서 상속 재산처럼 이스라엘에게 주신 가나안 땅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또 다른 이름 야곱의 영화는 이스라엘의 ‘높아짐’입니다. 더욱이 온 땅의 왕이신 하나님, ‘그가 사랑하시는 야곱’(4b)으로 특정하여 지목합니다. 그리하여 그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5-6)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찬양을 들으시고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세상의 왕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왕이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왕 중의 왕이십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이 믿음의 찬양을 언제나 부르며 하나님께 나가시길 바랍니다.
5하나님께서 즐거운 함성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 6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5-6)
하나님께서 기쁨의 함성 속에,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가운데 오르셨습니다(5). 이 부분은 여호와가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을 높이는 찬양의 절정입니다. 하나님 곧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로 올라가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보좌를 두셨지만(시 103:19), 땅으로 내려오셔서 자기 백성 가운데 함께 계신 분입니다. 이는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법궤가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것일 수 있습니다(참조. 시24:3; 132:8; 삼하 6:15). 이때 백성들의 기쁨의 함성과 양의 뿔로 만든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뿔 나팔은 왕의 즉위식이나(왕상 1:34,39) 신년 축제에서(레 23:24; 민 29:1) 사용되는 악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장면은 천상의 왕을 향해 지상에서 기쁨의 함성과 나팔 소리로 환호하며 왕이신 하나님을 높이고 공표하는 의식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왕으로 높이는 절정의 중심에서 시인과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왕이신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네 번 반복합니다. ‘찬송하라 하나님께 찬송하라/찬송하라 우리의 왕께 찬송하라’(6). 시인은 하나님께서 곧 우리의 왕이시라는 고백을 담아 찬송합니다. 이 찬송은 목소리만이 아닌 악기들의 연주와 감격에 찬 백성의 목소리로 가득한 장엄한 광경입니다. 다 함께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가슴 벅차오르는 찬양의 시간입니다.
거룩한 보좌에서 높임을 받으시는 하나님(7-9)
하나님께서는 찬양 가운데 거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들의 찬양을 기뻐하십니다. 사람들이 인정하든 하지 않든, 하나님께서 창조주시라는 사실은 변함 없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지혜의 시로 하나님을 노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인지, 어떤 일을 행하셨고,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를 지혜의 말로 고백하며 노래해야 합니다.
7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8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9뭇 나라의 고관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하나님의 것임이여 그는 높임을 받으시리로다(7-9)
시인이 기쁨의 함성을 높이며(1) 하나님 찬양의 이유를 밝혔지만(2), 그는 찬양의 이유를 더 강조하고 싶었습니까? 시인은 다시 시행을 강조하는 히브리어 불변화사 ‘키’를 반복합니다(7).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온 땅의 왕이시니 ‘지혜의 시’로 찬송하라(7)고 외칩니다. ‘지혜의 시’는 ‘마스킬’입니다. 이 말은 45편의 제목 고라 자손의 ‘마스길’에서 사용된 말과 같습니다(32,42,44편). 정확한 의미는 알려지지 않지만, 음악 용어이며 제의적인 노래나 교훈이나 배움을 위한 악절로서 ‘지혜의 노래’인 셈입니다. 이 노래는 관조적이고 깊은 생각에 잠기는 명상을 위한 것입니다. 악기가 동원된 웅장한 광경이 아니라 이제 시인은 신앙공동체가 깊은 묵상으로 하나님 찬양하기를 권합니다. 깊음 심호흡처럼 심장에 새기는 조용한 시간도 찬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무엇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까? 이미 시인은 하나님께서 온 땅의 왕이심을 말한 것처럼(7a), 하나님께서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심을 선포합니다(8). 시인은 언약 백성을 위해 건축된 지상 성전의 중심인 법궤에 임재하신 하나님만이 아니라, 뭇 백성을 다스리시는 그분의 거룩한 보좌를 상상합니다. ‘다스리신다’와 ‘앉으신다’는 평행 관계를 이루는 같은 의미입니다. ‘뭇 백성’, 곧 이방인 취급하는 모든 사람과 민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모두의 하나님이요 모두의 왕이십니다. 온 세계 모든 이들의 왕이 앉으신 ‘거룩한 보좌’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주권을 드러냅니다. 이는 지상의 성막이나 성전의 법궤로부터 발현되는 통치 너머에 있는 하늘 보좌입니다(참조. 시 103:19; 렘 3:16; 사 66:1). 시인의 언어를 통해 이스라엘의 중심이며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지상의 성전이 하늘로 확장됩니다. 상상해보시길 보시기 바랍니다. 온 땅의 큰 왕(2,7) 앞에 권력을 가진 모든 이들이 모여들고, 그들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시인은 마지막으로 뭇 나라들의 고관들이 소집되어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속한 백성 됨(9ab)을 노래합니다. 세상의 모든 방패, 곧 모든 군사력이 하나님께 속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으실 것입니다(9cd). 시인은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의 경계를 넘어 이방인들까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이처럼 뭇 나라 고관들과 아브라함에게 속한 백성이 함께 왕좌에 모이는 것은 구약의 세계관에서 매우 대담한 발상입니다. 물론 시인은 이미 ‘온 땅’을 반복하며 민족적 경계를 넘는 하나님의 왕권을 노래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세상’(9, 에레츠)을 반복하여 하나님의 우주적 왕권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로 ‘온 땅의 왕’(2,7)이심을 강조하려고 ‘키’를 반복한 것처럼, 시행 마지막 두 소절도 같은 방식입니다. ‘지존하신 여호와’(2), 곧 하나님께서 가장 높임을 받고, 찬양을 받으실 것입니다(9d). 이는 지상에서의 하나님 왕권과 통치를 반영하기에 장차 메시아 예수의 가르침에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로 확장됩니다. 하나님의 통치 범위가 범세계적이고 보편적인 것처럼 예수의 구원 사역도 인간 중심적인 경계를 벗어난 우주적인 수준으로 성취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 자녀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찬양은 우리를 위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온 세상의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권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는 하나님 덕분에 이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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