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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048-01)

 


하나님의 거룩한 성 시온

시편 48편 1-14절


 

찬양은 교회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가장 귀한 제사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찬양의 향기로 늘 가득해야 합니다. 이 시는 하나님의 성, 곧 교회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가 하나님께서 위대하시기 때문이라고 선포합니다. 우리가 극진히 찬양해야 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십니까?

 

 

  • 이 시편은 시온의 영광과 그 주체이신 하나님을 아름답게 찬양합니다. 겉으로는 큰 왕의 성, 곧 시온 성의 견고함과 높음과 아름다움을 노래하지만, 그곳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합니다. 그 하나님의 영광과 명성은 인자하심과 정의로우심을 밝히는 심판으로 드러납니다. 때문에 시인은 주의 모든 백성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을 확신하며 노래합니다.

 

시온성에 계신 하나님을 찬양(1-3)

아무리 교회 건물이 웅장하고 아름다워도 그곳에 하나님을 찬양함이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고백이 넘치는 교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온 우주를 바라보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는 위대하십니다. 이 높으신 하나님을 늘 기뻐 찬양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1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 받으시리로다 2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 3하나님이 그 여러 궁중에서 자기를 요새로 알리셨도다(1-3)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극진히 찬양받으시리라’(la). 시인은 여호와의 크심을 선포하며 최고 수준으로 찬양받으심을 노래합니다. ‘극진히’는 47편 마지막 절, 마지막 소절에서도(9) 가장 높임을 받으시는 하나님을 노래할 때 반복됩니다. 자연스럽게 47편과 48편이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시의 기획적인 연속물처럼 보입니다. 첫 소절은 하나님을 높이는 최고의 찬양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찬양받으시는 곳이 명시됩니다. ‘그의 거룩한 산,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입니다(16). 그의 거룩한 산, 하나님의 성은 어디입니까? 북방의 시온 산에 있습니다(2). 거룩한 산에 있는 하나님의 성이 네 가지로 묘사됩니다. ‘높고 아름다워/온 땅이 즐거워함이여/북방의 시온 산/큰 왕의 성이라’(2). 히브리 본문에 ‘터’라는 말은 본래 없지만, 의미를 완결시킵니다. 하나님의 성은 첫째, 마치 우뚝솟은 봉우리처럼 그 높음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성은 ‘온 땅’, 곧 온 세상의 기쁨입니다. 셋째, 북방에 있는 시온 산입니다. ‘북방’은 북쪽 주변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가나안 신화에서 가장 최고의 신 ‘엘’이 머무는 곳이 ‘차폰’ 산이었습니다. 시인은 당대 사람들에게 가장 높고 아름다운 산으로 인식된 장소를 시온산과 연결 시킵니다. 그러니까 ‘시온 산’을 새로운 ‘차폰산’으로 당시 독자들에게 각인시킨 셈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성은 큰 왕의 성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는 ‘큰 왕’이며, 그곳의 주인임을 선포합니다. 이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장 높은 곳에 계신 위대한 왕이요, 그분만이 풍성하시고 충분히 넉넉한 왕이심을 선포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께서는 여러 궁전들에 계시고, 높은 요새로 알리셨습니다(3). ‘높은 요새’는 안전한 피난처입니다(46:7,11). 하나님 자신이 시온을 찾는 이들의 은신처가 되셨음을 강조한 말입니다. 하나님 스스로 높고 강하고 견고한 요새가 되셨습니다. 모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접근하기 어려운 강고한 요새이신 하나님께 피할 수 있는 특권이 하나님을 찾는 이들에게 부여되었습니다.

 

시온성을 견고하게 하신 하나님(4-8)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요새가 되십니다. 견고하신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교회는 세상 속에서 견고합니다. 세상이 감히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교회는 더욱 든든히 설 것이고, 악한 영들의 유혹이나 공격에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4왕들이 모여서 함께 지나갔음이여 5그들이 보고 놀라고 두려워 빨리 지나갔도다 6거기서 떨림이 그들을 사로잡으니 고통이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도다 7주께서 동풍으로 다시스의 배를 깨뜨리시도다 8우리가 들은 대로 만군의 여호와의 성, 우리 하나님의 성에서 보았나니 하나님이 이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리로다(셀라)(4-8)

 

시온은 끊임없이 열방의 침략을 받았지만, 전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요새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왕들이 연합해서 시온을 차지하려고도 했지만, 결국에는 혼비백산 달아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1) 열국의 침공과 좌절(4-7)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성에(2) 왕들이 힘을 규합하여 함께 전진했습니다(4). 시인은 이것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려고 ‘보라!’라고 외칩니다. ‘보라’는 왕들이 함께 공격하기 위해 진군하는 장면을 강조하려는 문학적인 장치입니다. 그때 그들은 성을 보고 놀라 공포에 휩싸여 재빨리 지나갔습니다(5). 하나님께서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이신 것을(3) 왕들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그분의 현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참조, 시 46:6; 삼상 14:15; 사 17:13; 29:6; 33:3). 큰 왕 곧 하나님의 나타나심 자체가 왕들에게 두려움이었습니다. 왕들의 떨림과 두려움은 마치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과 같았습니다(6). 시인은 하나님의 성을 본 왕들의 두려움을 극적으로 표현하려고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을 빗대어 표현했습니다. 구약 본문들은 극도의 고통을 해산이 임박한 여성의 고통에 빗대어 표현하곤 합니다(예. 사 13:8; 21:3; 렘 4:31; 6:24). 그러고서 시인은 하나님께 말합니다. ‘동풍으로 당신이 다시스의 배들을 깨뜨려 부수십니다'(7). 왜 갑자기 다시스의 배들입니까? 맥락을 벗어난 듯하지만, 왕들의 공포를 현실감 넘치게 말하기 위함입니다. 당시 다시스의 배들은 지중해 무역을 책임지는 크고 견고한 배입니다. ’다시스의 배들‘은 견고함과 화려함의 상징이었습니다(사 2:16). 따라서 이것은 크고 화려하고 웅장한 무역선들을 바람으로 부수시는 공포감만큼이나 왕들이 본 하나님의 성이 두려움 그 자체가 되기를 바라는 시인의 간절한 마음이 발현된 것입니다.

 

(2) 순례자들이 본 견고한 성(8)

 

시인의 선포에 예배 공동체의 회중이 응답합니다. ‘우리가 듣고 본 것처럼/만군의 여호와의 성에서/우리 하나님의 성에서/하나님은 영원토록 이것을 견고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들, 곧 순례자들은 열방의 왕들이 공격하려고 해도 ‘하나님의 성’(1)이요, ‘큰 왕의 성’(2), 곧 시온 산(2)이 건재함을 듣고 보았습니다. 그 성을 보고 공포에 떨며 신속히 달아났던 왕들과 순례자들의 반응이 엇갈립니다. 순례자들이 직접 듣고 본 것은 미래를 여는 확신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시온성의 승리와 기쁨(9-11)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장래까지 모두 아시는 완전한 인도자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따라갈 때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완전히 인도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따라 가시기 바랍니다. 위대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찬양에 기쁨으로 응답하실 것입니다.

 

9하나님이여 우리가 주의 전 가운데에서 주의 인자하심을 생각하였나이다 10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 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손에는 정의가 충만하였나이다 11주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시온 산은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은 즐거워할지어다(9-11)

 

이제 예배하기 위해 모여든 순례자들이 직접 하나님께 말합니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당신의 인자하심을 깊이 생각했습니다/당신의 성전 한가운데서’(9) 순례자들은 모두 성전 안에 있습니다. 성전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헤세드)을 곰곰이 헤아려봅니다.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 곧 실패하지 않는 사랑을 깊이 묵상합니다. 순례자들은 깊은 헤아림 끝에 자기들이 발견한 것을 직접 말합니다. ‘하나님이여, 당신의 이름처럼/당신의 찬양은 땅 끝까지 미쳤습니다/당신의 오른손은 정의로 충만합니다’(10). ‘이름'(쉘)은 명성이나 평판을 뜻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 곧 ‘영광’이 땅 끝까지 미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두 시행에서 분명한 것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깊이 헤아려 묵상할 때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명성과 영광, 그리고 하나님의 활동에서 드러나는 정의(체데크)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로움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손으로 펼쳐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을 찾는 순례자들에게 하나님의 정의는 곧 그분의 이름이며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심판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노래합니다. ‘시온 산이 기뻐합니다/유다의 딸들이 즐거워합니다/당신의 심판으로 인하여’(11). 시온 산이 마치 사람처럼 인격화되어 기뻐하고, ‘유다의 딸들’이 즐거워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 때문입니다. 유다의 딸들은 딸들만 지목한 것이 아니라 유다 여러 성읍에 사는 주민들을 가리키는 대유법적인 표현입니다(시 97:8). 따라서 열방의 왕을 심판하시고, 영광의 상징인 시온과 주의 백성들을 구인한 것 때문에 순례자들 모두 함께 기뻐합니다.

 

시온 성 행진과 하나님의 인도하심(12-14)

사람은 내일을 모르기에 어디로 가야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두려워하고 염려하는 것입니다. 이런 두려움과 염려 때문에 사람들은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에게 빕니다. 그러나 우상은 우리를 인도할 수 없습니다. 여기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인도자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12너희는 시온을 돌면서 그 곳을 둘러보고 그 망대들을 세어 보라 13그의 성벽을 자세히 보고 그의 궁전을 살펴서 후대에 전하라 14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12-14)

 

시인은 예배에 참여한 순례자들을 향해 순례 행진에 참여하라고 권합니다. 시온 주변을 걷고 둘러보며 성의 망루를 세어보라(12) 말하는 것은, 시온 성의 높고 견고한 아름다움을 만끽하라는 뜻입니다. 또 성벽을 자세히 보고, 성의 궁전들을 살펴서 후대에 전하라(13) 말합니다. ‘전하라’는 것은 하나하나 열거하며 자세히 말하는 것입니다. 꼼꼼하게 자세히 보는 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전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보는 것은 헤아림을 위한 첫 단계입니다. 시온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가장 강력하게 보여주는 실체가 됩니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하나님은 영원토록 우리의 하나님이시고/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이라’(14). 시인이 지시대명사를 사용하면서까지 ‘이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순례자들이 듣고, 보고, 깊이 헤아린 시온성의 아름다움이 어디를 향하는지 강조한 것입니다. 또 열방의 공격도 방어할 수 있는 견고함과 능력을 유지하시는 그분이 우리 하나님 되심을 강조한 것입니다. 시온 성의 견고함은 건물 자체의 뛰어난 위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공동체를 끝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시온의 영광은 건축물 자체에서 발현되는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가장 높으신 분이십니다. 세상이 이길 수 없는 견고한 능력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는 완전한 인도자이십니다. 그 위대한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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