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사도행전(16-01)


바울의 2차 선교 사역을 위한 준비

사도행전 15장 36절-16장 5절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일꾼들은 획일적이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매우 다양합니다. 다양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지으신 그대로 각자의 달란트를 따라 다양한 일꾼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주신 은사와 특성을 하나님 나라에 귀하게 쓰임 받아야 합니다.

 

  • 예루살렘 교회에서 파송한 유다와 실라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이 가져온 예루살렘 편지는 안디옥 교회를 거쳐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으로 전달되었습니다. 그 지역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면에서 모범적으로 보였던 안디옥 교회가 예상치 못한 아픔을 겪게 됩니다. 마가 요한의 일로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갈라선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결별(36-41)

 

하나님의 사역을 해나갈 때, 마음에 맞지 않으면 서로 결별하는 것도 좋습니다. 갈등이나 결별 자체가 문제를 안고 계속 불편한 상태로 지속하기보다는 서로 각자의 사명을 따라 분리되어 사역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반드시 같이해야 선한 것만은 아닙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가 안정을 찾아오자 2차 선교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36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36-41)

 

예루살렘에서 온 유다와 실라는 돌아가고, 안디옥 교회는 할례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고 안정적으로 성장합니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상당한 기간을 머물면서 교회와 성도들을 세웠습니다(행 14:28). 바울은 바나바에게 자신들이 1차 선교 여행 때 세웠던 교회들과 형제들을 방문하여 돌아보고 양육하러 방문하자고 제안합니다. 즉, 2차 선교 여행을 준비하자고 요청합니다.

 

(1) 바울과 바나바의 결별(36-39)

 

하나님의 선한 사역임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발생합니다. 문제는 바나바가 그의 조카 마가 요한(골 4:10)을 동참시키자고 주장한 것으로부터 논쟁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바울은 마가를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까에 대해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반대합니다.

 

바울이 다툼이 일어날 정도로 마가를 반대하게 된 이유는, 사도행전 13장에서 바울 일행이 선교 사역이 한참일 때로 돌아갑니다. 구브로 바보에서 밤빌리아를 통해 아시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 마가는 갑작스럽게 일방적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아마 그는 이 사역이 힘든 것을 생각했기 때문에 혼자만의 결정으로 돌아 가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생각에는, 마가가 동참하였다가 2차 선교 여행 도중에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또 포기할 가망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지난번 마가의 당황스러운 행동이 선교 일행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일이 또 반복되면 선교 사역에 동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마가를 동참시킬 수 없다고, 바나바는 한 번 실수는 용서하고 동참시키자고 사로 강력하게 주장한 것이 다툼으로 비화했을 것입니다.

39절의 ‘심히 다투었다’는 표현은 바울과 바나바가 도저히 의견 일치를 이루 수 없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의미합니다. 최후에는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계속해서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상대방과의 소통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결과만 놓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결과와 과정을 모두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성숙함입니다.

 

아쉽게도 누가는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이 결별한 채 각자의 길을 갔다고만 기록합니다. 바나바는 자신의 고향 구브로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의 행적은 더 이상 거론되지 않습니다. 먼 훗날 바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마가를 향해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장면을 다른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딤후 4:11).

 

(2) 바울이 실라를 선택(40-41)

 

결국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과 맞는 동역자들을 선택한 후에 서로 다른 지역으로 선교여행을 떠납니다. 바울은 실라를, 바나바는 누가를 선택합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결별은 초대교회의 입장에서는 매우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누가는 이 사건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사건을 대하는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당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결별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이 이야기를 통해서 몇 가지 교훈을 찾는 것도 유익하다고 생각됩니다. 첫째, 열정에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입니다. 만약에 바울이 선교지를 다시 방문하려는 열정이 없었다면, 바울과 바나바에게는 문제가 생길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바울의 열정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바울은 마가라는 실패자를 오랜 시간 바라보며 참아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충분히 예상되는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바울의 결정은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바로 바나바의 결별 선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의 열정을 그다지 긍정적으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열정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바울은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잘 극복하고 나중에는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됩니다.

둘째, 영적 훈련은 멈출 수 없다는 점입니다. 초대교회의 훌륭한 영적 지도자들이었던 두 사람 사이에 불화가 존재했다면, 일반 성도들로 이루어진 오늘날의 교회에서 신자들 상호간에는 불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성도들 사이에 불화가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특히 한 쪽의 일방적인 고집으로 인해 타협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자 하다’라는 뜻을 가진 ‘에불레토’가 미완료시제인 것은 바나바가 계속해서 바울과 소통하려고 했던 흔적을 보여줍니다.

 

혹자는 바울과 바나바의 결별이 선교팀을 한 쌍에서 두 쌍으로 늘어나게 했기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섭리하심을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결과적으로 바울의 사역은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40-41). 그렇더라도 공동체에서 발생한 분열을 정당화하기는 어렵습니다. 누가는 어느 누구의 편을 들지 않습니다. 누가의 이후 기록이 바울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누가가 바울을 옹호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누가는 다만 지도자들의 분열과 연약함을 그대로 묘사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에 초점을 맞출 뿐입니다. 이는 복음 전파가 사람의 능력과 재능에 따라 그 성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임을 강조하려는 누가의 의도일 것입니다.

 

바울의 새로운 동역자 디모데(16:1-5)

사역자에는 따뜻한 가슴과 더불어 단호한 결단도 필요합니다. 진리의 문제는 양보할 수 없지만, 그 외 문제는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사역자에게는 일반 성도들보다는 좀 더 높은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그런 부분에서 마가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런 기준에 맞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만한 일꾼을 보내십니다.

 

1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2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3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4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5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1-5)

 

하나님의 사역을 진행하는 과정에 구성원은 매우 중요합니다. 바울은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디모데를 선택하여 동역자로 세워갑니다. 이 단락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디모데가 바울의 선교팀에서 새로운 일원이 되는 것(1-3)과 바울의 선교팀이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을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에게 전달한다는 것(4-5)입니다.

 

(1) 디모데를 선한 바울(1-3)

 

누가는 바울이 디모데를 선택한 이유를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기록합니다(2). 마가로 인해 바나바와 결별한 바울이 새로운 동역자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 ‘사람들의 평판’이었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또한 그는 말씀으로 잘 교육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외할머니 로이스와 유대인 어머니 유니게에게 성경을 배웠던 사람입니다(딤후 1:5, 3:15). 성경을 기초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확신 있게 증거 할 수 자질이 준비되었습니다.

특히 바울은 이방-그리스도인들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유대주의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디모데에게 할례를 시행하면서까지 그를 선교팀의 구성원으로 선택했다는 점은 아주 놀랍습니다. 이는 바울의 입장에서 검증된 사람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강했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바울은 선교사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측면에서 모험과 가능성을 우선적인 가치로 두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동역자로 디모데를 선택한 기준은 ‘검증된 사람’이었습니다. 마가와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바울의 행동이 충분히 납득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바울이 바나바와의 결별 사건을 기회로 삼아서 선교사 선발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한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게 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이미 이방인이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했을 때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 한 봐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가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게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선교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디모데가 평판이 좋았지만 그는 혼혈 유대인이었습니다. 더구나 할례를 받지 않았다면 다른 유대인들에게 그는 결코 유대인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의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던 바울의 선교 패턴을 고려했을 때, 디모데의 무할례는 적대적인 유대인들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바울은 선교 전략상 디모데가 할례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할례의 시행 여부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바울의 모습은 복음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고집과 생각을 버리고 조절할 수 있다는 유연성을 갖춘 선교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둘째, 목양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무척이나 아꼈던 것 같습니다. 디모데가 차세대 지도자로 성장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흔히 바울은 업무 중심적이었고 바나바는 사람 중심적이었다고 평가하지만, 적어도 디모데와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바울의 성품은 업무 중심적이지 않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효율적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였습니다. 무엇이 디모데에게 필요하고 유익한지 바울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함으로써 그의 영적 부담을 덜어주려고 하였습니다. 결국 선교는 사람을 얻고 사람을 세우는 일입니다. 사람을 무시하거나 잃으면, 올바른 선교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2) 두 번째 갈라디아 교회 방문(4-5)

 

결론적으로 갈라디아의 교회를 방문했던 바울의 사역은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정한 규례를 교회들에게 잘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방문을 통해 교회들은 믿음에 더욱 굳건해졌고 성도들의 숫자가 날마다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질적 성장과 양적 성장이 동시에 일어나는 건강한 교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울의 갈라디아 지방 사역이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그의 전략적 선택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요한 마가 대신에 검증된 일꾼 디모데를 선택한 전략, 디모데의 약점을 보완해주었던 전략이 주효한 것입니다. 비록 바나바와의 결별이 아쉬움으로 남게 되었지만, 바울은 성공적인 선교의 모델을 오늘날의 교회들에게 하나의 지침으로 제공합니다. 복음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검증된 사역자들, 그리고 실제적인 전략은 언제 어디서나 꼭 필요한 필승 조합입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성향이 다르다고 믿음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스타일이 다르다고 다른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동일한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사람을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하십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상대방을 나보다 낫게 여기면서 하나님을 섬겨 나가시길 바랍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베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