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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15-01)

 


갈등을 지혜롭게 극복한 초대교회

사도행전 15장 1-11절


 

교회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합니다. 외부적인 문제를 통해 합심하여 기도하면서 부흥의 기회로 삼습니다. 내부적인 문제는 스스로 감당 못하는 경우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내부적인 어려움은 대부분 사사로운 것에 대한 다른 의견으로 시작하여 갈등으로 성장합니다. 갈등은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 잘못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잘 관리하면 해결 시키면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숙한 교회는 갈등을 피하지 않고 인내하며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 나갑니다.

 

  • 사도행전 15장은 사도행전의 정중앙에 위치합니다. 구조적인 측면뿐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중요합니다. 이 단락은 예루살렘 공회가 모이게 된 과정과 베드로의 연설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방인 신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모세의 율법을 준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은 심각한 질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유대주의자들의 도전(1-2)

 

이단은 물론이고, 교회 안에서도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구속의 충족성과 완전성을 훼손하려는 주장들이 있습니다. 그 주장 중에는 교리의 옳고 그름보다 삶이 중요하다는 논리로 주장합니다. ‘관대함’을 요구하며 진리를 상대화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습니다. 진리는 관용적으로 대할 수 없습니다. 오직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타협할 수 없습니다.

 

1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2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1-2)

 

성공적이었던 1차 선교여행을 마친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안디옥 성도들을 모아서 하나님께서 함께 행하신 일들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였습니다(사도행전 14:27).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이방인의 회심과 구원에 대해 예루살렘 교회에는 아직 보고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안디옥에서 휴식을 취하며 충전하고 있을 때, 안디옥 교회 안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 했습니다. 교회가 확장되면서 예기치 못했던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⑴ 구원에 대한 문제 제기(1)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많은 시간을 지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난 후에 안디옥 교회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소위 ‘유대로부터 내려온 어떤 사람들’이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안디옥 교회에 심각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도대체 그들의 정체에 대해 누구인지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견해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문맥을 통해 그들의 정체성에 관해 추정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먼저 이런 문제를 야기한 사람들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갈라디아서 2:4)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소위 이단들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도 이들과 같은 의견을 가진 ‘어떤 믿는 사람들’, 즉 유대교를 믿다가 기독교로 회심한 자들일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예루살렘 교회에 속해 있었고, 야고보 사도의 권위 아래 있는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들(사도행전 15:24)이었다고 하더라도, 바울의 입장에서 그들은 거짓 형제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⑵ 구원에 대한 논쟁(2a)

 

유대에서 온 사람들은 동기와 의도의 진정성과 관계없이 그들의 행위가 복음을 왜곡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기독교는 유대교를 개혁한 것일 뿐 유대교를 버린 것이 아니고, 더 나가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와 구성원이 되려면 유대인 밑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의 엉터리 주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격렬한 다툼과 토론을 벌렸습니다. 이 사실은 기독교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한발도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단호하게 맞섰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 문제를 초대 교회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받아들였습니다.

 

⑶ 문제를 해결 방법(2b)

 

안디옥 교회는 매우 중요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와 사도들 드리고 선배 장로들이 있었기 때문에,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로써 이 논쟁은 단순히 안디옥 교회만의 내부적 문제가 아니라, 초대교회 전체가 반드시 다루어야 하는 중요한 신학적 문제로 부각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안디옥 교회가 보여준 모습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첫째, 안디옥교회는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복음의 핵심적 가치를 지키려는 수고를 기꺼이 감내하였습니다. 둘째, 안디옥 교회는 소위 유대주의자들로 밝혀진 사람들이 제기한 신학적 문제를 교회 공동체 전체의 논의를 통해 함께 해결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결코 교만하거나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충분히 자체적으로 이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의 권위를 존중하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하려는 수용적인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이런 모습은 교회 운영의 바람직한 모델을 제공합니다.

교회의 하나 됨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자세에서 시작됩니다. 배려와 존중은 교회와 교회들 사이의 모임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할 가치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함(3-5)

하나님의 일꾼들은 사역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던 일들을 자랑하고 소개합니다. 그들은 소식을 전함으로 성도들에게는 뜨거운 열정을 전합니다. 이런 불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어가실 것입니다. 바울도 가슴에 하나님의 뜨거운 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했던 것입니다.

 

3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3-5)

 

유대주의자들은 논쟁에서지지 않았습니다. 그들 위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 세계 유대인들의 율법과 선전에 대한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 또한 그들의 압박에 저항하고 전혀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여정(3)

 

바울과 안디옥 교회의 대표들이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여정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바울과 그 동료들은 남쪽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베니게와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을 택합니다. 이 길은 안디옥에서 거의 일직선으로 예루살렘에 이르는 약 400km에 달하는 긴 여행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본질을 다루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긴 여정의 중간에 바울과 그 일행들은 지나가는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나누고 함께 기뻐하면서 그들을 격려합니다. 각 지역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 선교의 열매들(행 8:5-25; 11:19)이었기 때문에 바울 일행은 그들 역시 격려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3절에 ‘다니다’라는 뜻을 반복적으로 계속된 행위를 나타냅니다. 바울과 그 일행이 베니게와 사마리아 지역의 성도들을 만나기 위해 계속해서 돌아다녔음을 의미합니다. 바쁘고 힘든 여정 속에서, 특히 앞으로 신학적으로 골치 아픈 문제를 다룰 것인데, 그 영적인 긴장감 속에서도 바울은 목회자의 면모를 잃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⑵ 예루살렘에 도착(4)

 

드디어 바울과 일행은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과 함께 문안하면서 그 동안 있었던 사역의 보자기를 풀어놓습니다. 바울과 일행은 각자 자신의 의견을 예루살렘 교회 앞에 의견을 제시합니다. 바울과 그 일행들에게는 이방-그리스도인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으로 충분하다는 자신들의 믿음과 확신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님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비록 유대-그리스도인들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⑶ 반대자들의 반론(5)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는 환대와 냉대가 교차합니다. 백성이 된 성도들과 이 동역자들의 만남은 양쪽 모두에게 큰 위로와 소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특히 예루살렘에서 환대와 냉대를 동시에 맛보아야 했던 것입니다.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 교회 앞에서 그 동안 이방인 지역에서 있었던 사역을 보고한 후에, 개종해지만 아직까지 유대교의 떼를 벗지 못한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반론을 제기합니다.

 

공동체의 사랑의 연합은 그 삶을 살아가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삶을 배우고 훈련해야 합니다.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바울의 교훈인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 5:15)는 말씀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베드로의 연설(6-11)

초대교회는 거짓된 가르침과 교리에 맞서 훌륭한 싸움을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거짓된 가르침에 조금도 미혹되지 않고 복음 위에 교회를 굳게 세웠습니다. 그들은 복음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았습니다. 날마다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좇아갑니다.

 

6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10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6-11)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양 측의 주장을 듣고 모였습니다. 이 모임을 후대 사람들은 ‘예루살렘 회의’ 또는 ‘예루살렘 공회’라고 말합니다. 이 단락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이 의논하는 장면, 그리고 베드로의 연설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⑴ 예루살렘 공회의 모임(6)

 

먼저 예루살렘 교회가 이 문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사도와 장로들이 모여서 의논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댄 것입니다. ‘사도와 장로들’에 대한 언급은 2절과 4절과 6절에 연이어 나옵니다. 4절에는 바울과 그 일행을 환영하는 상황에서 ‘교회’가 함께 언급되고 있지만, 2절과 6절에는 교회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의 입교에 대한 문제를 교회의 지도자들이 먼저 논의했음을 보여줍니다. 반면에 바울의 일행을 환영할 때는 온 교회가 동참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역할 분담이 잘 되고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모두가 함께 해야 할 일과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구분한 것입니다.

 

⑵ 베드로의 연설(7-11)

 

이처럼 베드로는 고넬료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선 자신을 따로 선택하셔서 복음을 전하게 했는지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베드로 연설의 첫 번째 부분이며(7-9), 여기에는 그의 경험에 대한 진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유대교의 율법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원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자신이 사용된 경험 때문입니다. 그는 이것이 하나님의 오랜 계획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라고 합니다. 바울도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표현하였지만,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신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도 구원하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성령의 임재를 통해 확인하였습니다.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과도 함께하신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차별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방인들의 회심은 하나님이 주도하신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듣게 하셨으니 아무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이 베드로의 결론입니다.

다음으로 베드로는 자신의 논지를 더욱 강력하게 전개합니다(10-11). 이방인들에게 다시 율법 준수를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며, 유대인들도 메지 못하는 멍에를 지우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 연설의 요지는 구원이 오직 예수 그리스로의 은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이제 율법과 복음은 양립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서로 다른 의견들을 조율해 가는 모습을 통해서 성숙한 성도와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영적 성숙함이란 예배 시간과 더불어 회의 시간에 자주 들어납니다. 서로 의견이 다를 때, 자신의 의견만 최고라고 충돌하지 않습니다.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찾아갑니다. 이렇게 성숙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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