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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030-01)

 


헤아릴 수 없는 기쁨

시편 30편 1-12절


 

고통의 문제는 인류의 시작과 함께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고통을 제거해주시지 않는 것일까?’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왜 인간에게 고통을 허락하실까?’ 이러한 질문의 반대편에는 ‘하나님은 고통 중에 있는 사람과 함께하신다’라는 대답이 늘 있었습니다. 고통의 한가운데서 신음하던 시인이 고통을 벗어났을 때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 다윗의 시로서, 다윗은 고통과 병에서 자기를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 감사의 시는 감사제를 드릴 때 불리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개인 감사의 시에 ‘성전 봉헌가’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가 성전 의식과 관련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나 시의 내용에 성전이나 봉헌에 대한 언급이 없으므로 확실하지 않습니다.

 

주께 감사 찬양하는 이유(1-3)

우리가 찬양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삶의 근거를 마련하셨기에 그 은혜를 찬송해야 하고, 또한 우리를 구언하셔서 인생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면서 살 수 있게 하셨기에 그 은혜를 찬송해야 마땅합니다.

 

1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2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3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1-3)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림으로 시를 시작하고 또한 시를 맺습니다(1,12). 그의 감사의 내용에는 자신이 경험한 고난의 때와 그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한 때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는 병에 걸렸고 죽음의 위기에 있었으나 지금은 회복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높이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세 가지 이유를 밝힙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죽음에서 끌어내심으로써 다윗의 원수들에게 기뻐할 기회를 주지 않으셨습니다(1). 둘째,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병을 치료하심으로써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2). 셋째,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문턱에서 다윗을 살리셨습니다(3). 이 세 가지 이유 속에는 다윗과 원수와의 관계 그리고 다윗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타납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가 아파 죽음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그런 다윗의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치료와 생명을 공급하심으로써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끌어내신 사건(1)은 그를 죽음에서 끌어올려(lift up) 살리심으로써 무덤으로 내려가지(go down) 않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3)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는 그분이 죽음의 병을 치유하고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능력자임을 밝히 드러냅니다.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였고, 구원을 얻었고, 이제 그 하나님을 높이고 있습니다.

다윗과 원수의 관계는 서로에 대한 마음의 태도와 행동에서 잘 나타납니다. 원수들은 다윗이 죽고 멸망할 때는 기뻐하지만, 다윗의 병이 치유되어 생명을 얻을 때는 그들에게 낙이 없게 됩니다. 다윗의 고난과 죽음을 기뻐하며 고대하는 원수들은 악인들입니다(시 35:15-16). 그러나 의인은 그런 악인들이 병들었을 때 그를 위해 슬퍼하고 금식하고 기도하는 자입니다(시 35:13-14; 109:4).

 

성도들을 주 찬양에 초대(4-5)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치유 사역입니다.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심은 물론, 환난에서 건져주시며 궁핍한 자들을 부요케 하여 주시는 것들도 하나님의 치유의 한 영역입니다. 영적으로 곤고한 자들을 소생시켜 주시는 것도 중요한 치유입니다. 그 치유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4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5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4-5)

 

다윗은 본인만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함께한 공동체를 기억하고 그들을 찬양에 초대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된 공동체이므로, 한 사람의 감사의 이유는 그가 속한 공동체 모두에게 감사의 이유가 됩니다. 다윗은 자신의 공동체에게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분의 거룩함을 기억하기 위해 감사하라고 청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다윗을 구원한 사건을 표현하는 단어로 쓰였습니다. 거룩함은 죄가 없고 공의로우며 은혜로운 성품을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다윗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다윗을 병과 고통에서 구원하시며, 원수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하신 하나님의 모든 행위에 나타난 것이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하신 일을 되새기며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에 대해 우리가 마땅히 화답해야 하는 반응입니다.

이제 5절에서 다윗은 그의 공동체에게 하나님께 찬양하고 감사하는 이유를 제시합니다. 다윗은 다시 하나님의 성품에서 하나님 찬양의 이유를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대조적인 성품인 노여움과 은총을 예로 들어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알립니다. 다윗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노여움은 잠깐이나 그의 은총이 평생에 임할 것임을 표명합니다. 하나님의 노여움과 은총은 성도의 울음과 기쁨과 직결됩니다. 하지만 노여움으로 인한 성도의 눈물은 저녁에 머물다가,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해 아침에는 기쁨을 맞이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분이지만, 노하시는 때에라도 긍휼히 여겨 노여움을 오래 지속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출 34:6). 여기서 하나님의 노여움과 은총은 단순히 하나님의 성품만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과 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의 6-12절에 좀 더 자세하게 나옵니다.

 

다윗의 형통의 때와 고통의 때(6-7)

기다림의 법칙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서두름은 하나님의 뜻을 빨리 알아야 하겠다는 성급함보다 사단의 덫에 걸린 결과에서 나온 행동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는 오히려 소돔과 고모라보다도 더 깊은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사회의 구원을 요청하는 기도자여야 할 것입니다.

 

6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7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6-7)

 

다윗이 앞 5절에서 하나님께 감사 찬양해야 하는 이유로 언급한 내용은 그의 직접적인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었습니다. 다윗은 형통한 때와 고통의 때를 경험했습니다. 형통한 때라는 것은 그의 삶이 평화롭고 고요한 시기라는 뜻입니다. 그런 때에 그는 자신 만만하게 “나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거야”라고 선포하였습니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표현은 불행이나 악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서(시 46:5;10:6), 자신의 형통한 때가 지속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은 시편 46:5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거하시므로 예루살렘 성이 ‘흔들리지 (개역개정에서는 ‘요동하지’로 번역) 않을 것이다’와 같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고백(시 16:8; 62:2,6) 또는 하나님 덕분에 의인이 ‘흔들리지 않음’을 확증하는 표현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시 15:5;112:6; 잠 10:30;12:3). 그러나 여기서는 시편 10:4-6의 악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동일하게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는 다윗의 교만한 발언입니다. 다윗의 흔들림이 ‘영원히’ 없을 것이라는 표현은 ‘대대로’ 해악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악인(10:6)의 말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만심이 드러나 있습니다.

다윗이 형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7). 다윗은 자신이 산같이 흔들림 없이 굳게 설 수 있었던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간과하거나 잊고서 자기 자신을 삶의 중심으로 두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다윗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그에게 노하셨습니다(5). 그에게 근심과 고통을 주셨습니다. 삶이 안락하고 편했을 때에 다윗은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는 잊은 듯 자기 자신과 형통한 현재를 보았고 앞으로의 형통한 미래를 자신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근심과 고통으로 삶이 흔들리자 다윗은 자기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다시 하나님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자신이 형통했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으며, 현재의 고통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윗에게 고통은 마치 하나님께서 다윗으로부터 그분의 얼굴을 가린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능동적인 간섭하심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깨달은 평생의 은총(5)인 것입니다.

 

다윗의 간구(8-10)

곤경에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도 낙심치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때에 따라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하나님의 때를 기억하고 은혜의 기도를 잊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8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9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10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8-10)

 

교만과 죄로 인해 고통과 죽음에 다다른 다윗은 하나님께 용서와 회복을 간구합니다. 다윗은 “제가 살아야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죽는다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외치며 용서와 생명의 회복을 간청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풀어, 그의 도움이 되어달라고 요청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하고 구원할 능력과 긍휼을 가지신 분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의 응답과 다윗의 화답(11-12)

다윗은 찬송할만한 이유와 조건을 갖추었을 때에 찬송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건을 갖추지 못해도, 마땅한 이유가 없어도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의 찬송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전히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무엇 때문에 찬송하고 있다면, 이제는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으로 기뻐하며 하나님으로 찬송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11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12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11-12)

 

다윗의 간절한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으므로 다윗은 감사와 찬양으로 화답합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시고 베옷을 춤으로 바꾸신 분이 하나님께서 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와 고통으로 통곡하는 눈물을 바꾸어 그가 기쁨을 참지 못하고 춤을 추게 하셨습니다. 그가 참회하며 고통 속에서 입었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입히셨습니다. 하나님의 적극적인 간섭과 응답을 경험한 다윗은 잠잠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주께 노래하며 영원히 주께 감사합니다. 주께 영원히 감사드리겠다는 다윗의 고백에는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감사의 기회를 주실 것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다윗은 찬송할만한 이유와 조건을 갖추었을 때에 찬송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건을 갖추지 못해도, 마땅한 이유가 없어도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의 찬송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전히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무엇 때문에 찬송하고 있다면, 이제는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으로 기뻐하며 하나님으로 찬송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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