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15-03)
그리스도의 부활과 신앙적 은택
고린도전서 15장 20-34절
예수님의 부활은 과거의 한 역사적 사건만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모범으로 삼아 적용해야 할 일만도 압니다. 그 사건의 영향력이 오늘까지 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해 시대를 열었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촉구하였습니다. 새로운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의 중요성을 변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고 인간의 삶이 현세로 마감된다면, 사람들은 종교적 책무든 사역의 각오든 성화의 삶이든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바울의 논지입니다.
- 앞 12-19절이 부활이 없는 부정적 상황에 대한 설명이었다면,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로 인한 긍정 상황을 설명함으로써 성도들을 훈계합니다.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20-28절로, 예수님의 부활로 인한 결과들을 설명합니다. 둘째는 29-34절로, 부활로 인한 결과와 그것을 소망하고 사역하는 자신의 예를 들어 독자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칩니다.
예수의 부활로 인한 결과(20-28)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망이 끊어졌습니다. 아담 이후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죽었는데, 이제 그 죽음의 행렬이 끝났습니다.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삶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는 첫 열매입니다. 이제 그에게 붙은 자도 그 부활에 동참할 것입니다. 그분처럼 순종할 때 우리도 죽음에서 살아날 수 있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20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27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28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20-28)
예수님의 부활을 시작으로 장차 진행될 구원 과정 완성의 큰 그림 속에서 신자의 부활을 소개합니다. 또 이런 영광스런 미래를 기대하고 부활에 근거한 삶을 살라고 권면합니다.
(1) 전제 : 예수가 부활하셨다(20-22)
부활을 부인하는 일부 신자의 주장에 대해 그 논리적 결과가 어떤지를 보인(12-19) 바울은 이제 예수의 부활이 가져올 긍정적 결과를 설명합니다.
20절은 그 전제이자 시작입니다. 예수가 부활하셨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기에 예수님의 부활도 없다는 13,16절 내용과 반대입니다. 그러나 13,16절은 가설에 근거한 논리적 추론이지만, 20절은 실제 사건에 대한 선포입니다.
바울은 여기에 두 가지를 추가해 예수님의 부활을 강조합니다. 첫째, 강한 반전 표현인 ‘그러나 이제’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는 주장과 그에 따른 부정적 상태에 대한 강한 반전으로 예수 부활의 사실성을 강조합니다. 둘째,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는 표현입니다. ‘잠자는 자들’이란 죽은 자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첫 열매, 곧 첫 수확입니다. 수확이 시작되었기에 이후에 계속 수확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신자들도 부활할 것임을 말합니다. ‘왜냐하면’이란 접속사를 통해 죽은 자들의 첫 열매에 대해 부연합니다(21-22). 아담과 메시아로 인한 결과 대조를 통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를 설명합니다.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해 존재한 것처럼 죽은 자들의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해 존재합니다(21). 많은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죽게 된 것처럼 많은 사람이 메시아 안에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22). 얼핏 같은 이야기의 반복 같지만, 초점이 다릅니다. 21절은 한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아담이든 메시아든 한 사람을 통해 죽음과 생명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반면, 22절은 아담과 메시아로 인한 결과에 초점 맞춥니다. 많은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죽고 메시아 안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바울의 이런 설명은 몇 가지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아담과 메시아는 모두 첫 열매들입니다. 아담은 옛 창조의 시작이고 메시아는 새 창조의 시작입니다. 20절에 대한 설명이자 21절의 초점입니다. 아담을 통해 죽음이 존재했기에 그 이후로 죽음이 지속됩니다. 하지만 메시아를 통해 생명이 시작되었기에 아담과 다르게 메시아 이후로는 생명이 지속될 것입니다. 둘째, 아담과 메시아는 통치 영역의 시작자들입니다. 단순히 조상이나 시작자가 아닙니다. 죄로 인한 죽음의 통치 영역과 하나님의 생명의 통치 영역의 문을 연 자들입니다. 22절의 ‘안에’라는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전치사는 도구나 방법의 뜻으로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장소의 의미로 ‘아담 안에’ 혹은 ‘메시아 안에’라는 말입니다. 각각 아담의 반역으로 시작된 죄와 죽음의 통치 영역과 메시아를 통해 회복된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의미합니다. 이런 면에서 22절은 모든 사람이 아담으로 시작된 어둠의 영역, 곧 하나님께 반역하는 통치 영역 속에서 죽음의 지배를 받고 있지만, 모든 사람(많은 신자)이 메시아가 통치하는 영역 속에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임을 말합니다.
(2) 결과: 부활과 구원 과정의 완성(23-28)
22b절과 연결해 예수 메시아의 통치 영역 속에 있는 신자들이 어떻게 구원의 완성을 경험하는지를 설명합니다.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첫 번째는 구원의 완성 과정을 시간 순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시간 진행 표현(‘다음에는’[23절], ‘그 후에’[24절])과 접속사(‘때’[24,27,28절])를 통해 읽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부활과 관련한 구원의 완성 과정이 차례대로 된다고 말하고 예수의 부활을 첫 열매, 곧 시작점으로 소개합니다(23). 그 다음은 주의 재림입니다. 이때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는 일으킴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후는 마지막입니다(24).
비록 시간 표현을 썼지만, 물리적 시간이라기보다 논리적 시간, 곧 주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지는 과정일 것입니다. 역사의 완성이고 모든 것을 심판할 때입니다. 이때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 곧 하나님을 대적한 모든 인간적 세력과 영적 세력을 멸하고 메시아 통치를 아버지 하나님께 넘깁니다. 그런데 바울의 표현에 의하면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 사이 중간 시점도 있습니다. 원수들을 발아래 두는 완성의 때까지 예수가 통치하고 있는 시점입니다(25).
십자가와 부활로 어둠의 영역을 깨고 하늘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연결시켰지만(마태복음 28:18), 아직 완성은 아닌 ‘이미’와 ‘아직’의 시점입니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은 여전히 하나님 통치 영역의 주권자로서 어둠의 영역에 대한 회복과 완성을 이루어가는 통로입니다. 정리하면 신자의 부활은 예수의 부활 ‘이미’와 ‘아직’ 사이의 예수 통치-재림과 완성이라는 시간 틀 속에 있다.
두 번째 설명 방식은 어둠과 빛이라는 종말적 두 영역 관점입니다. 사람은 절대적으로 독립된 존재가 아닙니다. ‘아담 안’이라는 하나님을 반역하는 통치 영역에 속하거나, ‘예수 안’이라는 하나님의 통치 영역에 속한 존재입니다. 둘 중 하나이고 중간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신자의 부활은 단순히 개인이 변화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죄와 죽음과 사탄이 통치하는 어둠의 영역에 대한 완전한 심판과 함께 얻어집니다. 바울은 어둠의 영역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를 예수의 발아래 두는 것, 곧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을 멸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이 심판으로 마지막 원수인 죽음도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 신자는 빛의 영역에서 생명의 부활을 얻습니다. 이 과정이 끝나면 아들 하나님인 예수는 아버지 하나님이 주신 통치 권위를 다시 그분께 드리고, 아버지 하나님은 모든 것 속에 계시며 모든 것의 주인으로서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27-28).
이런 설명에 의하면 신자의 부활은 어둠의 통치 영역을 멸하고 구원을 완성하는 하나님의 커다란 계획 속에 위치한 것으로, 개인 구원의 마지막 과정일 뿐 아니라 만물을 회복하는 마지막 과정에 속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의 부활, 곧 죽은 자의 부활로 이루어질 결과입니다.
부활에 근거한 실제적 권면과 경고(29-34)
부활은 무엇이 참된 삶이고 생명다운 생명을 누리며 사는 것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들, 제한된 것들, 소수만 누리는 것들을 위하여 사는 삶을 헛되게 만들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오늘이 전부인 듯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이 가장 지혜로웠을 것입니다.
29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30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33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29-34)
부활은 예수님을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되게 했습니다. 사망의 통치자 사탄을 이기고 그 예수님께서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셔서 사탄과 함께 대적하는 세력들을 멸하시고, 이양 받은 왕권을 성부 하나님께 드릴 것입니다.
(1) 실제적 권면 1: 부활과 세례(29)
구체적 상황을 예로 들어 실제적 권면과 경고를 한의 부활이 없다면 왜 죽은 자들 때문에 세례를 받습니까? 아마도 독자 중 일부가 부활을 부인하면서도 ‘죽은 자’의 부활, 곧 영광스런 미래를 얻고 싶어 세례를 받는 것을 염두에 둔 듯합니다. 인지부조화입니다. 차라리 부활을 인정하는 것이 더 일관성 있지 않겠느냐는 지적입니다.
(2) 실제적 권면 2: 부활과 고난을 견딤(30-32)
두 번째 예는 고난 상황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왜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바울은 날마다 죽는 상황 같은 고난을 당하고 에베소에서 맹수로 상징될 수 있는 어려운 상황과 싸웠다고 합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의미 없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부활이 있기에 그런 삶은 유익합니다. 심지어 그런 고난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영광스런 미래 때문입니다.
(3) 실제적 권면 3: 부활과 바른 삶(32b-34)
마지막 권면은 부활에 근거한 바른 삶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오늘 이 생이 끝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즐기며 사는 것이 최고의 선일 것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살고, 교인 중 어떤 이들은 그런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바울은 그들을 책망합니다. 속지 말고 의를 행하며 죄를 짓지 말라고 합니다. 부활이 있고 또 하나님의 미래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성도의 삶은 과거 예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를 발판으로 미래를 기대하고 오늘을 사는 것이다. 속으면 안 됩니다.
부활은 우리가 죽음이 다스리는 이 세상을 따라 살지 않아도 되고, 살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주었습니다. 옛 시대가 가고 새 시대가 오게 해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왕으로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였습니다. 달리 살아야 진정한 삶이 되는 이유와 근거를 만들어준 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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