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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15-01)

 

 


복음과 그리스도의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1-11절


생각할 수도 없는 끔찍한 가정(假定)들이 있습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안 계신다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없었다면... 하지만 복음에 있어서 가장 끔찍한 가정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일 것입니다. 왜 그런 가정은 성립될 수 없습니까? 있어서는 안 됩니까?

 

  • 예배 상황에 대한 것을 끝내고 새로운 주제로 넘어갑니다. 부활에 대한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1-2절로, 바울이 듣고 독자에게 전한 복음에 대해 소개합니다. 둘째는, 3-8절로, 부활과 관련한 복음의 내용을 설명합니다. 셋째는 9-11절로, 바울과 관련한 추가 정보를 제공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1-2)

 

이 부활신앙은 지금도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입을 통해 고백되어지고 기독교의 신앙의 핵심입니다. 부활에 대한 구체적 문제를 상술하기 전에, 과거에 바울이 전하고 고린도 성도들이 들었던 복음의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바울이 독자적으로 고안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과 부활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과 모든 사도들이 공유하고 있는 복음의 핵심 내용임을 말합니다.

 

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1-2)

 

바울이 말한 ‘알게 하노니’는 표현과 복음이란 말로 이전 부분과 주제적 단절을 보입니다. 11-14장이 교회 모임에 대한 것이라면, 15장은 부활에 대한 내용입니다.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복음을 알게 하노니’라는 말로 운을 떼고 추가 설명으로 그 복음의 성격을 말합니다. 그 복음은 바울이 독자인 ‘너희’에게 전한 것입니다. ‘너희’가 받아들여 이미 그 안에 서 있고, 바울이 전한 것을 잘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으면 그것을 통해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몇 가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부활은 복음의 진리와 연결된 핵심 요소 중 하나입니다. 예수의 부활이 없으면 바울의 증거는 복음이 아닙니다. 또한 성도 몸의 부활이 없으면 역시 복음이 아닙니다.

둘째, 부활의 복음은 새로운 내용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건축자처럼 예수 메시아로 교회의 터를 잘 닦을 때(3:10) 가르쳤던 것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이미 그것을 받아들였고, 그 진리를 통해 하나님과의 새 언약 관계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셋째, 부활과 관련해 고린도 성도들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복음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부활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은 비상식적인 것이고, 영에 비해 몸을 중시하지 않는 당시 생각 속에서 몸의 부활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넷째, 고린도 성도들은 진리에 계속 서야 합니다. 그는 복음의 내용을 상기시켜 굳게 붙잡으라고 하고, 그들이 가진 믿음을 헛되게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계속 부활 내용을 뺀 채로 복음을 믿으면, 구원에서 제외되는 결말을 맞게 될 것입니다. 구원은 진리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부활 진리는 세상 사고를 따를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일하심의 진리를 따를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다섯째, 구원은 일회적 사건이 아닙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이미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계속 진리 안에 서 있음으로 완성을 경험해야 합니다. 따라서 구원은 완성을 향해 가는 ‘구원 과정’으로 보아야 합니다.

 

 

부활과 관련한 복음의 내용(3-8)

복음은 그리스도인의 정신을 새롭게 함으로써 신비한 것들에 현혹되지 않고 오직 성경대로 사는 것을 열망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죄 가운데서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파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3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3-8)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한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과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은 바울의 인생을 완전히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1) 복음의 내용: 메시아의 죽음(3-4)

 

바울은 부활과 관련한 복음 내용을 다시 설명합니다. 바울이 받은 것을 독자들에게 전했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접속사로 시작하는 네 가지 일련의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사건은 메시아의 죽음입니다. 메시아가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었습니다. 구약 약속의 성취로서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바울은 더 구체적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그의 목적은 십자가에 대한 설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린도 성도들에게 처음 복음을 전했을 때 이미 가르쳤기에 더 설명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열쇠는 ‘성경대로’입니다. 메시아 고난에 대한 구약 본문들이 여럿 있지만, 특별히 죄 용서와 관련해 신명기 21:22-23과 이사야 53장이 대표적입니다. 신명기는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의 저주 받은 자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유대인 입장에서는 그의 십자가 죽음을 하나님의 저주로 인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은 사람들 죄를 대신 지고 고난당한 자의 이야기입니다. 신명기 내용과 연결시키면 메시아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나무에서 죽은 것은 사람들 죄와 그로 인한 심판을 대신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을 ‘우리 죄를 위한 죽음’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둘째 사건은 메시아의 장례입니다. 성경 예언(이사야 53:9)의 성취이지만, 바울은 더 설명하지 않습니다. 셋째 사건은 부활입니다. 성경대로 제 3일에 다시 일으킴을 받았습니다. 죽음과 부활의 모든 과정은 구약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의 오랜 계획의 성취이며 요소들 모두가 구원사건의 핵심입니다.

 

(2) 복음의 내용: 메시아의 부활과 증인들(5-8)

 

바울이 독자들에게 전한 네 번째 사건은 예수 부활을 목격한 것입니다. 바울은 상대적으로 이 부분을 길게 언급합니다. 전하고 싶은 주된 초점이라는 말입니다. ‘그후에’를 통해 시간 순서로 목격자들을 소개합니다. 처음은 게바, 곧 베드로이고 그 후는 열두 사도입니다. 그 후는 오백 명 넘는 형제들이고 그 후는 야고보이며 그 후는 많은 사도들이고 마지막으로 바울 자신입니다.

이런 설명에는 몇 가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부활과 관련한 주도권은 주님께 있습니다. 목격자들은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예수의 부활을 본 것이 아닙니다. ‘보다’동사의 수동형과 대상을 의미하는 여격(~에게)을 통해 예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이 보게 되었음을 묘사합니다. 바울은 이 표현을 따라 목격자들을 네 그룹으로 구분합니다. 베드로와 열두 사도, 오백 명 넘는 형제들, 야고보와 많은 사도들, 그리고 바울입니다.

둘째, 부활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여러 목격자를 열거한 것은 이 사실을 확증하기 위함입니다. 더 나아가 부활의 예수를 만난 오백 명 넘는 형제 중 죽은 사람도 있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말을 첨가한 것(6)도 그 때문입니다. 셋째, 바울 역시 부활한 예수님을 목격한 자입니다. 비록 만삭되지 못하여 난 사람 같은 자이지만, 그에게도 주님이 나타나셔서 부활하심을 알게 했습니다.

 

바울 자신에 대한 추가 정보와 결론(9-11)

온전한 복음으로만 구원을 얻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 일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서 구원을 받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온전히 깨닫고 믿을 뿐 아니라, 그 복음을 나타내고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바울은 결코 ‘더 많이 수고하면서’ 부활을 전하는 종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9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9-11)

 

바울은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다’는 표현에 대한 설명을 이어갑니다. ‘나’라는 1인칭 강조 지시어를 통해 사도 중 가장 작은 자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설명은 바울의 구원 이전 상태와 이후 상태의 대조로 진행됩니다. 먼저 구원 이전 상태입니다(9). 그는 감히 사도라고 불릴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9:1-2 내용을 반영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사도행전에서는 주의 제자들을 핍박했다고 표현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참조, 갈라디아서 1:13, 23; 빌립보서 3:6)라고 말합니다. 몇 가지 생각거리가 있습니다.

첫째, 바울의 교회관입니다. 그는 교회를 건물이 아닌 사람들, 곧 하나님 백성의 모임으로 이해합니다(1:2). 더 나아가 교회를 메시아의 몸이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다메섹 도상의 경험을 반영한 듯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했는데, 부활한 예수님께서는 ‘왜 자기를 핍박하느냐’고 질문합니다. 제자들을 예수님과 동일시한 표현입니다. 이 경험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서로 뗄 수 없는 한 몸으로 인식하게 한 요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둘째, 바울이 편지를 쓰는 의도입니다. 이전에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던 자였습니다. 지금 교회를 어렵게 하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입니다. 오히려 바울이 그 하나님의 교회를 바로 세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과거 교회를 핍박하던 자가 사도가 되어 교회를 세웠고, 지금 어지러운 교회를 회복시키고 있습니다. 놀라운 반전입니다. 10절은 ‘그러나’를 통해 구원 이후의 반전 상태를 설명합니다.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모든 사도들보다 더 수고한다고 말합니다. 그들과 비교하거나 경쟁하고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직 자기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것에 응답해 충성스럽게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분의 은혜입니다. 구원과 은사와 지식을 도구 삼아 비교와 경쟁으로 교회를 어지럽힌 고린도 성도들과 다릅니다.

 

11절에서 바울은 그간 언급한 복음의 내용과 부활에 대해 결론짓습니다. 바울과 사도들의 복음 전파 내용이 다르지 않다는 것과 그 내용을 독자들이 믿어 구원을 경험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부활의 내용이 담긴 복음은 바울이 만든 것도 아니고 그만 전한 것도 아닙니다. 목격자가 있는 역사적 사실로, 초대 교회 모든 사도와 전도자들이 공유하고 있고 또 전하고 있습니다. 독자들 역시 경험으로 확증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지난 모든 구원의 역사와 예수님의 삶이 완성됩니다. 따라서 부활이 없으면 그간 모든 역사를 설명할 수 없고, 우리가 선 가리를 알 수 없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생명도, 소망도, 삶의 의미도 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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