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고린도전서(12-01)

 


성령의 은사 사용 지침서

고린도전서 12장 1-11절


졸업이나 입학을 하면 가족과 친척들로부터 다양한 선물을 받게 됩니다. 그 다양한 선물은 그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필요한 것들로 선물을 받습니다. 만약 받은 선물이 필요 없는 물건으로 생각한다면, 두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첫째는, 선물한 사람이 선물 받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고, 다음으로는,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이 선물에 대한 사용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본문은 교회 모임에 대한 세 번째 주제입니다. 성령의 선물인 은사에 대한 것으로, 특별히 방언과 관련한 문제입니다. 이 부분은 그 시작으로 신령한 것과 은사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1-3절로 신령한 것들에 대한 의미를 재정리해서 독자들의 생각을 교정합니다. 다른 하나는 4-11절로 은사에 대한 기본 정보를 제공합니다.

  

신령한 것들에 대해(1-3)

신령하다는 것은 은사의 기원이 사람이 아닌 성령께 있다는 뜻입니다. 은사 있는 사람만 신령하다거나 은사가 성령의 선물입니다.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도 아니고, 보상이나 상급도 아닙니다. 그러니 자기 자랑과 사리사욕의 수단으로 삼아선 안 됩니다.

 

1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2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1-3)

 

고린도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후에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를 부족함 없이 받은 교회였습니다(1:7). 하지만 이렇게 받은 은사를 예배 중에 무질서하게 사용함으로 문제가 되었습니다.

 

(1) 신령한 것들에 대한 도입(1)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향해 ‘형제들아!’로 집중을 유도하고 ‘~ 대하여’라는 표현으로 편지로 질문한 것에 답합니다. 이번에는 예배 상황 속 신령한 것들, 소위 성령의 선물(은사) 사용에 대해서입니다.

바울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표현으로 원리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참조 10:1). 신령한 것들에 대한 성도의 이해를 교정하며 시작하기 위해서입니다.

 

(2) 성령과 구원과 신령함(2-3)

 

지식과 정보와 관련한 동사를 사용해 원리와 설명을 제시합니다. 먼저 ‘너희들이 알고 있다’라는 말을 통해 성도가 알고 있는 지식을 상기 시킵니다. 그들이 이방인으로 있을 때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그대로 끌려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한다’라고 하여 성도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식으로 진행합니다(3). 하나님의 영으로 말할 때 아무도 예수의 이름으로 저주하지 않으며, 성령이 아니면 예수님이 주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바울의 몇 가지 의도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독자의 사고와 생각 차원의 교정입니다. 신령한 것에 대해 바울은 그들의 지식과 이해 영역을 먼저 다룹니다. 하지만 그들의 지식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정리하고 그 의미를 잘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렇듯 바울은 독자의 행동을 교정하기 전에 그들의 사고와 생각을 바꾸어 바른 삶이 나오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 권면의 전형적 특징입니다.

둘째, 성령과 구원 과정과의 연관성입니다. 바울의 설명은 ‘그때’와 ‘이때’라는 구원 이전과 이후의 시간 대조로 진행됩니다. 성령의 존재 여부는 구원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는 핵심입니다. 성도들은 구원 이전에는 이방인이었습니다. 단순히 비유 대인이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밖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때에는 성령이 없었습니다. 오직 우상 숭배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원 이후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신자 안에 있고 그 영이 신자의 고백을 돕습니다. 그렇기에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은사의 유무와 종류와 상관없이 성령을 모신 신령한 자들입니다.

셋째, 성령과 관련한 신령한 것은 철저히 주님과의 바른 관계성과 관련 있습니다. 바울은 신령한 것들을 기적이나 신기한 것들로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 영으로 말하는 자는 경쟁 관계나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예수 이름으로 저주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사람 사랑의 차원이이지만, 주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예수 사랑의 차원이기도 합니다. 또한 성령이 아니면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역시 예수님과의 관계성이 핵심입니다. 이렇듯 성령으로 말하는 자, 곧 신령한 자는 철저히 하나님/예수와의 바른 관계성과 사람과의 좋은 관계성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런 관찰에 의하면 바울은 독자들에게 1) 특정 은사를 가진 자만 신령한 자가 아니라 예수를 주로 믿는 모든 신자가 신령한 것을 소유한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2) 진짜 신령한 것은 바른 관계성,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과 은사(4-11)

‘건전한’ 은사 사용이 ‘건강한’ 교회를 세웁니다. 은사는 다양하지만 은사를 주신 뜻을 분명합니다. 과시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은사의 우위를 견주지 말고 은상의 목적에 충실하게 사용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4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4-11)

 

다양한 은사가 소개됩니다. 가르침과 관련한 은사에서부터 방언과 통역까지 아홉 개의 은사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소 신비적이고 초자연적인 은사 특히 방언을 맨 나중에 언급함으로써 자신들을 좀 더 신령하고 특별한 사람으로 자랑했던 방언하는 자들을 비판한 듯 보입니다. 은사의 우열은 없습니다.

 

(1) 은사와 섬김과 사역(4-6)

 

은사에 대한 구체적 설명으로 들어갑니다. 먼저 교회 모임과 관련한 요소들, 곧 은사와 섬김과 사역과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합니다(4-6).

특별히 다양성과 일치성을 중심으로 보여줍니다. 첫째, 은사와 관련해 다양한 은사들이 있지만, 한 성령만 있습니다. 은사란 은혜로 주신 공짜 선물입니다. 바울은 은사와 관련해 두 가지 내용을 말합니다. 하나는 은사의 다양성입니다. 교회 안에 한 은사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어떤 은사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은사의 주인은 성령입니다. 다양한 은사는 한 성령이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마치 자기 것인 양 자랑하거나 비교하면 안 됩니다.

둘째, 섬김과 관련해 섬김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주님은 한 분뿐입니다. 교회 안의 섬김은 두 방향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도들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이다. 이 둘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보이는 성도들을 섬기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섬김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한 종류의 섬김만을 최고로 여기는 것 역시 합당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 섬김의 주인은 오직 한 분, 주님이신 예수 메시아이기에 섬김이 많을수록 예수가 주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사역에 대해 다양한 모습이 있지만, 일이 되게 하시는 분은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농사와 관련해 아볼로와 바울의 사역을 설명한 3장 이야기와 맥을 같이합니다.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자신의 일을 자랑하거나 자신의 사역으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이 세 가지 설명은 이후 진행될 은사와 그것을 통한 섬김과 사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다양성이 있기에 자신의 것만을 최고라고 여기는 교만을 버리고, 한 분이지만 동시에 셋인 삼위 하나님의 주 되심을 따라 그분의 의도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2) 은사에 대해: 목적과 다양성과 통일성(7-11)

 

교회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에 대해 서술합니다. 아홉 개의 은사가 예로 소개됩니다.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 영들을 분별함, 방언 말함과 방언 통역입니다. 성령의 모든 은사를 나열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없는 것이 28절과 로마서 12:6-8에 있기 때문입니다(예: 위로, 구제, 다스림, 긍휼 베풂 등).

또한 이것들만 중요하다는 것도 아닙니다. 은사와 관련해 바울이 전달하려는 의도는 따로 있습니다. 전달 방식과 표현에서 몇 가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은사는 개인적입니다. 각 사람이라는 표현이 시작(7)과 끝(11)에 나오며, 그 안의 모든 설명에는 은사를 받는 대상이 단수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은사의 개인적 특징을 말해줍니다.

둘째, 은사는 성령이 주십니다. 분명히 은사는 성령의 일하심의 증거이고(7,11) 개인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하지만 은사를 가진 자의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다’라는 동사의 수동형을 사용해 은사의 주인이 성령이고 신자는 그분의 선물을 받은 것일 뿐임을 분명히 합니다.

셋째, 둘째 의도와 관련해 은사는 한 성령이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은사 문제로 나뉠 수 없습니다. 같은 성령이 다양한 은사로 교회를 분열시킬 리 없기 때문입니다.

넷째, 방언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당시 교회는 방언을 중요시했습니다(14장). 하지만 바울은 방언과 관련된 것을 맨 나중에 언급합니다. 방언을 그 자체로는 특별할 것 없는, 단지 은사의 하나로 소개하고픈 의도입니다. 이것으로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다섯째, 은사의 목적은 교회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은사에 관해 바울이 말하려는 핵심 내용입니다. 한 성령이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준 것이 은사라면(11), 그 뜻은 은사를 통해 교회 구성원들이 서로 유익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7). 이렇듯 바울은 계속해서 은사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교정합니다. 하나님과의 새 언약 관계를 중심으로 삼위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인정하고 겸손해야 하며, 그분의 뜻에 따라 성도를 섬기는 방향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기본 방향은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방향, 곧 그분 뜻을 실천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경 속 은사가 지금도 지속되는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그 논란을 이렇게 풀고 싶습니다. 은사주의를 경계해야 하지만 지나친 경계로 성령의 은사를 경시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지’(디모데전서 4:4) 않습니까! 


[구독]과 아래 [광고 배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