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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11-01)


거룩한 예배를 위한 자세

고린도전서 11장 2-16절


종종 선교사님들이 선교지 풍습을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해 실패한 경우가 있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대로 전파하려기 때문입니다. 이는 선교지에게 대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고려를 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복음 전하는 방법은 시대장소에 따라 다르게 전파되었습니다. 복음 자체는 변함없지만, 시대와 장소를 따라서 전달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게 전파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각 국마다 다른 모습입니다. 중국에서는 마약을 금했고, 우리나라에서 술과 담배를 금했습니다. 당시에 사회적인 상황에 따라 악한 것을 금했던 것입니다.

 

  • 본문에서부터 14장까지는 예배 중에 있을 이슈들을 권면합니다. 본문은 그 첫 주제로 교회 모일 때 머리에 무엇을 쓰는 문제입니다. 내용은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2-6절 도입 부분으로 문제 상황에 대한 기본 정보와 권면을 제공합니다. 둘째는 7-12절로 앞부분 권면에 대한 첫 번째 근거입니다. 창조에 근거함여 남편과 아내의 관계성을 설명합니다. 셋째는 13-16절로 2-6절 권면에 대한 두 번째 근거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 스스로의 판단과 당시 관습에 의지해 논증합니다.

 

머리에 쓴 문제에 대한 도입(2-6)

교회는 하나님께 부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공동체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알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각 사람이 어떤 권위 아래에 있는지, 어떤 권위에 복종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석하다가 문제가 발생됩니다.

 

2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3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6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2-6)

 

바울은 자신이 전한 전통을 지키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그 원리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 여자의 머리는 남자,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 때 자신이 그 권위 아래 있음을 합당한 방식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1) 머리에 무엇을 쓰는 문제에 대한 도입(2)

 

사도 바울은 예배 상황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갑니다. 첫 주제는 모임 때 머리에 무엇을 쓰는 문제입니다. 바울은 독자를 칭찬하면서 시작합니다. 모든 일에 그를 기억하고 그가 전한 전승을 잘 지켰기 때문입니다. 칭찬한다는 말은 처음 사용됩니다. 고린도전서 안에서는 독자에게 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한다는 말(1:4) 이후 처음 언급된 긍정적인 표현입니다. 아마도 이후 제시될 권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칭찬으로 표현한 수사적 의도일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과의 관계성과 그에 근거해 바울이 전한 가르침을 잘 따르는 것입니다.

 

(2) 머리에 무엇을 쓰는 문제에 대한 기본 정보와 권면(3-6)

 

‘그러나’로 칭찬과 반대 상황을 다룹니다. ‘알기 원한다’는 형식으로 상황에 대한 기본 정보와 원리를 제시합니다. 그 토대는 하나님과 메시아와 남편과 아내 사이의 관계성이고, 권위나 탁월한 위치를 의미하는 머리의 상징으로 표현합니다. 제일 위가 되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메시아의 머리가 되신다. 메시아는 남편의 머리이고,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됩니다(3).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메시아 → 하나님의 관계다. 메시아는 하나님 나라와 새 언약 관계의 시작이기에 남편 → 메시아의 관계이고, 남편과 아내는 아담이 먼저 창조되었기(9)에 아내 → 남편의 구조입니다.

바울은 이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여기서 제공하지 않습니다. 구체적 설명 대신 그 원리에 근거해 예배 상황의 문제를 진단합니다. 먼저 남편에 대해서입니다(4). 남자가 머리(물리적)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면 그 머리(상징)를 욕되게 합니다. 당시 황제나 이방 제사장들이 우상에게 제사할 때 토가 같은 겉옷을 머리에 끌어 쓰고 집행했습니다. 아마도 어떤 이들이 이런 세상 방식을 교회 예배 상황에서 연출했던 모양입니다. 세상 지위를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는 남편의 머리(상징)인 메시아를 욕되게 하기에 문제입니다. 메시아를 향한 예배를 우상 제사의 모습처럼 만들었기에 합당치 않았습니다.

 

바울은 아내에 대한 것도 다룹니다(5-6). 당시 아내들은 공적 자리에서 머리에 천을 써서 결혼한 신분을 나타냈는데, 예배 상황에서 그것을 벗는다면 머리(상징)인 남편을 욕되게 합니다. 마치 결혼 관계를 거절한 행동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당시 상당히 수치스럽게 여겼던, 공적 자리에 민머리 여자가 나타난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또한 아내뿐 아니라 그런 아내를 둔 남편을 욕되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공적 예배 때 아내가 천으로 머리를 덮지 않으려면 머리를 밀어 수치스러운 상태가 되거나, 그것이 싫다면 천을 씀으로써 결혼한 자로서의 증표를 유지하라고 합니다. 바울이 남편이나 아내가 공적 예배에서 기도나 예언 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여자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바울의 관심은 예배와 행위의 적절한 연결입니다. 우상 제사 형식을 도입함으로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거나 세상 풍조를 따라 교회에서 결혼 관계를 가벼이 여기는 모습으로 참여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권면의 근거 1: 창조에 근거한 남편과 아내의 관계성 설명(7-12)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질서와 상식을 지켜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혼란스러운 것을 질서 있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은 질서의 사람이지 공동체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통해 모든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새로운 판단기준을 제시합니다.

 

7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11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7-12)

 

창조와 새 창조(주 안에서)를 전제로 2-6절 권면의 근거를 제시합니다. 먼저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기에 머리(물리적)를 가려서는 안 됩니다.

형상이란 본질을 잘 드러낸 외적 표현을 의미합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잘 드러내는 존재로 지어졌다는 말입니다. 아담의 창조 과정을 배경으로 합니다(창세기 1:26-27). 바울은 여기에 영광이라는 표현을 추가합니다. 창세기에는 없지만,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은 종종 합께 등장합니다(참조. 시편 8:5). 남자는 하나님/메시아의 어떠함과 영광을 반영하는 존재이기에 예배 상황에서 이방인들이 우상에게 제사하듯 머리에 무엇을 쓰면 안 됩니다.

한편, 여자에 대해서는 여자가 남자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이기에 머리에 천을 쓰라고 합니다. 바울은 창조 순서와 특징을 통해 여자에 대한 주제를 좀 더 자세히 다룹니다. 아담과 하와는 창조 과정에서 기원과 목적이 다릅니다. 아담은 하나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직접 지어진 존재이지만, 하와는 아담을 통해 나중에 지어졌습니다. 또한 하와는 아담을 위해 돕는 배필로 지음 받았습니다(창세기 2:18-23). 이 때문에 여자(아내)는 예배 상황에서 머리에 천을 쓰지 않음으로 자기가 남편과 관련한 모든 관계에서 자유로운 듯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천을 씀으로써 그 머리(물리적)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고, 그 권리를 남편과의 관계를 충실히 표현하는 쪽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돕는 배필로서 남편의 영광을 드러낼 아내가 오히려 남편을 부끄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생각하는 부부관계는 아내만 일방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수직 관계가 아닙니다. ‘주 안에는’ 남편과 아내의 개념이 세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11). 하와가 아담을 통해 지어졌지만, 이후 모든 남자는 여자를 통해 태어났습니다. 서로 자기의 높임을 주장하면 안 됩니다. 오직 모든 것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안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자리 매김해야 합니다.

 

권면의 근거 2: 독자의 판단과 당시 관습에 호소(13-16) 

교회의 전통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의해 세워진 전통입니다. 그러므로 공적인 예배나 기도나 예언을 할 때,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지나친 자유에 대한 주장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와 질서를 부정하고 공동체를 혼란을 주는 그릇된 자유의 남용을 경계해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중에 영적인 질서를 깨뜨리고 혼란스럽게 만든 일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13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16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13-16)

 

바울은 이 문제를 논쟁거리로 삼지 말라고 본연의 본성과 통념에 따라 판단해보라고 설득합니다. 자유와 개성, 권한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주장하다가 건전한 상식과 문화를 거스리고 공동체에 혼란을 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함과 불쾌함을 주지는 말아야 합니다.

 

(1) 권면의 근거 : 독자 판단에 호소한 논증(13-15)

 

2-6절 권면에 대한 두 번째 근거 제시다. 7-12절이그야이 창조를 통한 논증이었다면, 이 부분은 고린도교회의 성도의 생각과 판단에 호소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는 명령과 함께 두 가지 요건으로 분별하라고 합니다. 모두 질문 형식으로 제시합니다. 한 요소는 적절성입니다. ‘적절하다’는 의미의 동사를 통해 예배 상황에서 여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묻습니다(13). 앞부분에서 제공한 신학적 논증을 근거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요소는 본성 그 자체입니다(14-15). 모든 시대에 통용되는 창조의 본성이라기보다는 당시 사회에서 용인하는 직관 혹은 보편적 생각을 의미합니다. 남자(남편)와 여자(아내) 모두에게 질문합니다. 먼저 남자에 대해서는 긴 머리를 가지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라고 질문합니다. 우리 시대에는 문제되지 않지만, 로마 사회에서 긴 머리는 남성성을 거절하고 동성애와 관련해 여성 역할을 하는 자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당시 남자의 긴 머리는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한편 여자에 대해는 긴 머리가 스스로에게 영광스러운 것이 아닌가, 하고 질문합니다. 미(美)를 추구하는 여자에게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이유를 긴 머리는 가리는 것 대신 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긴 머리 때문에 천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마도 긴 머리를 마치 머리를 가리기 위해 추가로 써야 하는 천과 연결시킨 유비 표현인 듯합니다. 여자는 예배 환경에서 머리에 천을 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2) 권면의 근거: 당시 관습에 호소한 논증(16)

 

비록 다른 생각을 가진 자가 있다 해도 당시 교회에 그런 관습이 없기에 ‘우리’라는 사도들이 가르친 전승이나 바울의 권면을 따르라고 합니다. 권면과 명령이긴 하지만 강요는 아닙니다. 또한 절대적으로 목숨 걸고 따라야 할 규범으로 제시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당시 사람들에게 복음 증거가 방해되지 않도록, 그리고 공적 예배 가운데 세상 방식이 아닌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모습으로 하기를 바랍니다.


차이와 질서와 상식을 부정할 때 혼란은 불가피합니다. 자유와 권한의 사용보다 서로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복음의 원리에 타당하다면 관습을 무시하거나 본성을 거슬러서도 안 됩니다. 경직된 예배에도 변화가 필요하지만 질서 없이 자유분방함에 경도된 예배 또한 경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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