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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09-01)


사도로써 권리를 포기한 바울

고린도전서 9장 1-23절


세상의 역사는 오늘도 자신의 권리를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것 때문에 싸움과 전쟁이 일어납니다. 전 세계를 호령했던 나폴레옹, 알렉산더, 징키스칸과 같은 전쟁에 영웅호걸들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권리를 얻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지만, 그들이 죽은 후에 역사 속으로 묻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철저하게 낮아지셨습니다. 그분은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셨습니다. 지금까지도 역사에 변함없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 우상 제물 먹는 자들이 주장한 권리(8:9)와 연결해 그 권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8:13처럼 바울 자신의 예를 통해 전체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1-14절은 바울의 사도적 권리에 대해 말하고, 15-23절은 복음을 위해 그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이 부분은 대화 방식을 많이 사용하여 진행합니다(1[x3],4,5,6,7[x3],8,9,10,11,12,13, 18). 자기 권리를 타인을 위해 사용하도록 설득하는 것입니다.

 

사도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1-14)

교역자는 성도의 영적 생활을 책임지고 성도는 교역자의 육적 생활을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목회자의 육적 필요를 채워줌으로써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영적으로 기도하고 인도하는 것이 방해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게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라디아서 6:6)고 권고한 적도 있습니다.

 

1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3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4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3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1-14)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성전과 제단에서 섬기는 자들이 거기서 나오는 것을 먹고 나누던 일을 상기시켰습니다. 주님도 복음 전하는 자에게 복음을 통해 생계를 꾸려 나가라고 명하셨습니다.

 

(1) 사도의 자격(1-2)

 

성도 중 일부가 로마 시민권을 가진 고린도 시민으로서 우상 신전에서의 만찬에 참여할 권리를 주장했습니다(8:9). 바울은 자신의 예를 들어 그들을 교정합니다. 네 개의 수사적 질문으로 자신이 사도의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음을 논증합니다(1절). 모두 긍정 대답을 요구하는 방식입니다. (1) 바울이 자유자이고 (2) 사도이며 (3) 부활의 주 예수를 목격했고 (4) 주 안에서 그의 사역의 결과가 독자들입니다. 첫째 근거는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종이 된 것(19)과 연결하고, 둘째와 셋째는 사도의 자격이고(15:8), 넷째는 사역의 결과입니다. 바울은 넷째 내용을 2절에서 부연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몰라도 독자들에게는 분명 사도의 자격이 있다고 합니다. 교회를 세웠기 때문입니다(3:6,10).

 

(2) 바울의 권리 논증(3-14)

 

사도 자격을 설명한 바울은 그에 어울리는 권리도 있음을 논증합니다. 먼저 수사적 질문으로 진행합니다(3-6). ‘권리가 없겠느냐’라는 질문으로 세 가지 내용을 제시gkqsl다. 모두 긍정 대답을 유도합니다. 첫째, 먹고 마실 권리입니다. 사도의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권리입니다. 둘째, 다른 사도나 주의 형제들과 게바처럼 신자 아내와 함께 다닐 권리입니다. 셋째, 자기와 바나바도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지 않을 권리입니다. 이 표현들은 현재 바울이 어떻게 사역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교회의 재정 지원 없이 천막 짓는 일을 통해 생계비를 충당하면서 아내 없이 혼자 사역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런 모습으로 사역하고 있지만, 그는 사도이며 사도로서 누릴 권리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논증이 계속됩니다. 이번에는 여러 예들을 통해 자기에게도 권리가 있음을 보여줍니다(7-10). 네 가지 질문으로 진행합니다. 첫 세 개는 ‘누가 ~하겠느냐?’는 형식으로 군인과 농부와 목축업자를 예로 듭니다. 군인은 자비량으로 일하지 않고, 농부와 목축업자는 자기가 일한 것을 먹을 자격이 있습니다. 바울 역시 복음의 일을 하기에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할 권리가 있습니다. 네 번째 질문은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구약 율법(신 25:4)을 사용합니다. 구약 내용은 소가 일할 동안 먹을 수 있게 해주라는 뜻이지만, 바울은 그것을 자신의 사역에 적용합니다. 밭을 가는 자나 곡식을 떠는 자는 그 결과를 먹을 기대로 일합니다.

바울은 위의 예들을 교회 상황과 연결시켜 자기 권리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이어갑니다(11-14). 역시 대화 방법으로 진행합니다. 두 가지 유비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씨 뿌리는 농부입니다. 자신이 영적 씨를 뿌렸기에 육적인 것, 즉 사역비를 받는 것을 과하다 할 수 있습니까? ‘아니다’란 대답을 이끄는 질문입니다. 다른 사도들도 그런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 바울은 교회를 세운 사도이기에 더욱 자격이 있습니다(1-2). 또 다른 유비는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입니다.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예배의 일을 하고 그 제물로 살아가는 것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독자와 공유하고 있는 지식을 상기시킵니다. 바울은 성전 제사장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도들이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기에(3:16) 그들을 위해 사역하는 바울은 영적 의미에서 제사장입니다. 당연히 후원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 유비들은 3장에서 자기 역할을 설명할 때 사용한 것과 동일합니다. 바울은 밭에 씨를 심은 자와 건축 과정에서 터를 닦은 자, 곧 성전 건물을 위해 일한 자로 자신을 묘사했습니다. 그 내용을 상기시켜 자신이 사도의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음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 복음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살리라는 주의 명령(마 10:10; 눅 10:7)을 통해 자신의 권리에 대한 논증의 정점을 찍습니다(14).

 

사도의 권리를 복음을 위해 거절함(15-23)

복음을 전할 때 보상이나 특권을 누리지 않아도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복음 자체가 너무나 귀하기에 그것을 전하는 것 자체가 의무가 아니라 큰 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억지로 해야 하는 의무로 다가온다면 자신이 복음을 올바로 이해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15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16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8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19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20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15-23)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행위가 자랑하거나 공로로 내세울 수 없는 사명임에도 자신이 왜 자랑할 수밖에 없는지를 다시 고백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할 때 누릴 수 있는 마땅한 보상과 특권 대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 자체를 상으로 여겼습니다.

 

(1) 바울의 복음 사역(15-17)

 

‘그러나’를 통해 이제껏 설명한 것을 반전시킵니다. 바울은 자기의 그 권리를 하나도 쓰지 않았습니다. 이미 12절에서 메시아의 복음에 장애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이 부분은 그에 대한 추가 설명입니다. 복음과 관련해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두 가지로 제시합니다. 첫째, 복음 사역의 상급과 자랑 때문입니다(15b). 바울은 자기 권리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 말이 독자들에게 또 다른 오해를 일으킬까 조심합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후원을 요구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런 의도가 없음을 강조합니다. 죽으면 죽었지 고린도 교회의 후원을 절대로 받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학생을 얻어 수업료를 많이 받으려는 당시 철학 선생처럼 여김 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복음 사역을 통한 그의 자랑은 따로 있습니다. 그 구체적 내용은 둘째 이유를 설명한 후 18-23절에서 다룹니다. 한편 권리를 사용하지 않은 둘째 이유는 그의 복음 사역의 특징 때문입니다(16-17). 비록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지만, 그 복음은 그의 것이 아닙니다. 사역 주도권도 그에게 있지 않습니다. 단지 복음을 전하라는 청지기직을 부여받았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복음사역 자체는 후원금을 상으로 받거나 또는 자기 것인 양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위임받았기에 그것을 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禍)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불충실한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바울은 자신의 권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바울의 입장은 오늘날 모든 사역자가 들어야 하는 보편적 규범입니까? 바울이 말하는 복음 사역의 진짜 자랑과 상급, 사역의 성격은 모든 시대에서 통용되는 원리입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사역 후원을 절대로 받지 않겠다는 태도가 모든 사역자들에게 적용해야 할 보편적 규범이 되지는 않습니다. 바울도 후원받을 권리를 긍정적으로 말했고, 실제로 빌립보 교회의 후원은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바울의 태도는 고린도 교회의 특별한 상황 때문인 듯합니다.

 

(2) 바울의 상급과 복음사역 방법(18-23)

 

복음으로 인한 진짜 상급에 대해 설명합니다. 자기 권리를 사용하지 않는 첫째 이유와 관련 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할 때 값없이 전하고 복음 안에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않는 것을 상급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세상 철학자들의 태도나 비교와 경쟁이 난무하는 교회 상황을 감안하면 독자들이 이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자기의 권리와 이익만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예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2:17-31). 그 방법을 따르는 것이 참 지혜이자 능력이라는 것도 알았기에 몸소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권리를 다 쓰지 않고 세상과 다르게 살았습니다. 사도이고 자유인이지만(1) 모든 이의 종처럼 살았다.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처럼 살았고, 비유대인들이나 약한 자들에게는 그들과 함께함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십자가 예수의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막힘없이 드러나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면에서 바울은 (1) 하나님과 예수를 정말 잘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이고, (2) 예수를 사랑하고 그분의 삶을 따르려는 제자이며, (3)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람들을 사랑하려는 사역자이고, (4) 맡겨진 것에 충성하는 일꾼이며, (5) 무엇이더 가치 있는지를 분별해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을 위해 살아가려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 형제들을 배려하지 않는 자들이 보고 배워야 하는 신앙의 선배이자 사역자입니다.


권리도 자유처럼 사랑의 정신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자신의 권리도 자유처럼 기쁘게 포기했습니다. 네게 주신 권리를 주의 복음과 공동체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인생을 자랑할 것을 얻는 데 매여 살기보다는 예수님을 자랑하는 일에 우리의 삶에 목포를 가지고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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