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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07-01)

 


 고린도교회의 문제점:결혼과 부부생활

고린도전서 7장 1-24절


어떤 가정들은 자녀 교육을 잘해보겠다고, 남편은 한국에 남아 있고, 아내와 자녀들만 외국으로 가서 헤어져 사는 것을 종종 봅니다. 이러한 가정의 남편들을 ‘기러기 아빠’라고 부릅니다. 이 ‘기러기 아빠’들이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사건이나 외도로 많은 가정들이 파괴된다는 슬픈 소식을 듭니다. 자녀를 좋은 교육을 시키는 것은 좋지만, 얼마나 잘해 보겠다고 가정까지 파괴되면서 교육시킬 필요가 있습니까! 이렇게 교육받은 자녀들이 장차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없다고 봅니다.

 

  • 7장부터 16장 12절까지 고린도 교회의 문제점들에 대한 질문들을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주로 결혼과 부부 관계에 대한 여러 주제들을 짧게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그 내용은 부부간 성관계에 대한 것(1-5)과 결혼과 독신(6-9)과 이혼에 대한 것(10-16)입니다. 한편, 17-24절은 결혼이란 주제와 약간 다른 내용이 제시됩니다. 하나님꼐서는 부르신 대로 살라는 권면입니다. 유대인/비유대인 문제와 노예 상태에 대한 권면을 담고 있습니다.

 

문제점(1) : 부부간에 성관계에 대해(1-5)

 

결혼한 목적은 성적 만족을 위해서 아닙니다. 부부간의 성생활은 그리스도인의 영성과 긴밀히 연계된 사안입니다. 성적 방종이 문제지만, 이습이나 편견에서 비롯된 금욕주의적 태도도 만만찮은 걸림돌이 됩니다. 하지만 결혼의 중요한 축복 가운데 하나입니다. 성경은 오직 부부 관계 안에서만 성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1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5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1-5)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어려운 문제들을 질의하는 편지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문제점에 관해 편지를 공식적 질문을 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의 견해를 피력합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편지로 질문한 것에 대해 다르기 시작합니다.

 

(1) 질문 내용(1)

 

먼저, 첫 질문은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라고 남자가 아내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질문했습니다. 바울과 성도들은 알고 있었겠지만, 현대 성도들에게 어떤 문맥에서 그 말이 나왔는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부부간 성관계에 대한 내용인 듯합니다.

 

(2) 바울의 대답(2-5)

 

바울은 부부의 성에 대한 대답을 합니다. 음행 때문에 각 남자는 자기 아내를 갖고, 각 여자들도 자기 남편을 갖게 하라고 합니다(2). ‘갖다’라는 말은 성관계를 의미하며, 세 가지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부부간 성관계는 문제되지 않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말한 것에 대한 구체적 대답입니다. 둘째, 음행의 요소입니다. 5-6장에서 계속 다룬 주제입니다. 부부간 성관계는 음행과 관련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런 죄를 막을 수 있게 합니다. 셋째, 성관계는 부부에게만 허락됩니다. 성관계가 한 몸 되게 하는 가장 친밀한 행위이기에(창세기 2:24), 오직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만 허락됩니다. ‘각각’과 ‘자기’ 표현을 반복함으로 이 요소를 강조합니다.

이런 원리에도 불구하고 실제 상황에서는 첨가할 요소들이 더 있습니다. 바울은 두 가지를 추가합니다(3-5). 한 가지는 상대방을 향한 배려와 섬김입니다(3-4).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 대한 성적 의무에 충실해야 하며, 자기 몸에 대한 배우자의 주장을 허락해야 합니다. 그 권리를 빼앗으면 안 됩니다. 상당히 놀랍습니다. 오직 남편의 권리만 인정되는 당시 문화에서 서로 섬김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다른 원리가 부부간 성관계에도 적용됩니다. 또 다른 추가 요소는 성관계의 예외 사항입니다. 기도 같은 경건 생활을 위해 잠시 절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꼭 합의 하에 해야 하고 오랫동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제 못함으로 음행을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에 대한 이기적 왜곡과 부부 관계에 대한 어그러짐이 여전히 존재하는 현대 사회에도 적용해야 하는 놀라운 가르침입니다.

  

문제점(2) : 결혼과 독신에 대해(6-9)

지혜 있는 부부는 서로에게 필요한 영적, 성적 필요를 이해하고 합의를 통해 서로 협력하는 것입니다. 요리에 적당한 조미료가 필요하듯이 부부 사이에도 조화로운 합의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은사대로 순종할 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 연합하여 합력해서 하나님 나라와 교회 그리고 이웃을 섬김으로 거룩한 삶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또 독신자는 많은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더 많이 섬길 수 있습니다.

 

6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9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6-9)

 

바울은 자신의 말이 명령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결혼이 부정한 것도, 독신이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결혼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며, 하나님께 은사를 받아 혼자 사는 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1) 바울 같기를 원함(6-7)

 

결혼과 독신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할 수 있으면 모든 사람이 자기처럼 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주의 명령이 아니라 자기가 허락하는 것, 곧 사도의 의견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결혼했는지, 혹 했다면 언제 독신이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독자들이 그 정보를 알고 있는지도 확실치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 혼자된 것은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독자들에게 자기처럼 결혼에 얽매이지 않고 살기 바란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부르심이 같지는 않다고 첨언합니다. 독신이 강제의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2) 결혼하지 않은 자나 과부에 대해(8-9)

 

독신과 관련해 미혼자와 과부에게 말합니다. 역시 자기처럼 그냥 혼자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구체적 이유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25절부터 처녀에 대해 언급하면서 몇몇 이유를 제시하지만, 여기서는 그냥 지나갑니다. 대신 절재할 수 없으면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성관계 자체가 결혼의 목적은 아니지만, 2절 설명처럼 음행보다 결혼의 낫다는 말입니다.

 

문제점(3) : 이혼에 대해(10-16)

요즘 결혼을 거부하고 독신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지면서 자신의 일과 자유분방한 삶을 유지하고자 독신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어떻습니까? 당신은 독신으로 살고자 합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복음 안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 안에 있는 자에게 자신만을 위한 삶은 없습니다.

 

10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10-16)

 

본문은 결혼과 이혼 상담소 같습니다. 먼저 ‘독신’에 대해, 영적인 과욕으로 독신을 고집한다면 더 곤란한 상황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말합니다.

 

(1) 결혼한 자에 대한 주의 명령(10-11)

 

화제를 바꾸어 결혼한 자에 대해 이혼하지 말라는 주의 명령을 전합니다(마가복음 10:9). 아내는 남편과 이혼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이혼했다면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그대로 독신으로 있든지 다시 남편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는 것은 안 됩니다. 남편에 대해서도 동일합니다. 아내와 이혼하지 말아야 합니다.

 

(2) 바울의 제안(12-16)

 

바울의 제안 나머지 사람들의 경우로 화제를 돌리고 주의 명령이 아닌 사도의 권면으로 다룹니다. 부부간 일이지만, 앞의 상황과 다른 것 같습니다.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의 경우입니다. 기본 원칙은 이혼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만일 믿지 않는 배우자가 원치 않으면 이혼하지 말라고 합니다. 믿는 자로 인해 배우자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 백성이 될 수도 있고, 자녀들 또한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배우자가 나도 원하면 이혼해도 됩니다. 이혼이 절대적 금지 명령은 나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배우자 때문에 애써 이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배우자를 위한 생명의 통로로 부르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16).

결국, 결혼이냐 이혼이냐의 문사 제는 신자에게 절대적 구속 요건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생명의 통로로서 이 땅에서 배우자를 포함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가는가가 중요합니다. 진리와 사랑의 모습으로 만들어가는 관계입니다.

 

부르심에 따른 삶(17-24)

성도의 삶의 자리 전반에 관한 문제로 논의를 확대합니다. 중요한 것은 혈통, 신분, 결혼 여부 등 외적인 삶의 조건보다 소명(신자다운 삶)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가 아니라 더 근사하게 해낼 수 있겠다고 생각하다가 지금 그 자리에서 주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닙니다.

 

17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17-24)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고린도 교회 성도 가운데에는 자신의 상태나 신분을 바꾸려 하는 자들이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대로 있으라고 권했습니다. 할례자는 할례의 표지를 제거하기 위해 육체적 수술을 받을 필요가 없고, 무할례자 역시 할례를 신자의 참된 표지로 여기며 그것을 행할 필요가 없습니다.

 

(1) 원리 부르신 대로 살라(17)

 

부르심에 따른 삶이라는 주제로 넘어갑니다. 결혼이나 이혼과 무관한 듯하지만 연결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앞부분에서 독신, 결혼, 이혼에 대해 자신이 처한 상황과 상관없이 주 안에서 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바울은 그 주제를 일반화해서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고 명령합니다.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주 되심 입니다. 삶의 모습을 주께서 나눠주셨다고 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셨다고도 합니다. 반복하며 상황과 처지를 비롯한 모든 삶의 주인이 그분임을 강조합니다. 다른 하나는 부르심의 개별성입니다. ‘각 사람’이란 말의 반복을 통해 제시됩니다. 그렇기에 각 사람은 부르심에 충실함으로 주님의 주 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바울은 여기에 그 명령을 모든 교회가 들어야 한다고 첨언합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전달합니다.

 

(2) 적용1 : 할례와 무할례(18-20)

 

부르심에 충실한 첫 번째 예입니다. 할례와 무할례, 곧 유대인이나 비유대인의 구별에 대해서입니다. 이제 예수 안에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그런 구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 됨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3) 적용2 : 노예 상태에 대해(21-24)

 

두 번째 적용으로 노예 상태를 예로 듭니다.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입니다. 기회가 되어 자유인이 되면 좋습니다(21). 하지만 신분 변화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살아야 합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형제들’이라고 불리는 신자의 정체성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노예지만 예수로 인해 영원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된 자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자유인이더라도 메시아께 속한 사람, 그분의 종인 정체성이 더 중요합니다. 둘째, 정체성에 합당한 삶 때문입니다. 세상의 관점과 신분에 얽매여 신자로서의 삶의 표현을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답게 그분께 충성하며 세상에서 진리와 사랑으로 신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벼운 주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도 ‘주의 명령’은 아니라고 거듭 말하며, 분명한 원칙을 지키면서도 구체적 상황의 특수성을 배려하는 의도를 내비칩니다. 그러고는 이 난제를 ‘종말의 시각’(26)에서 한 번 더 헤아려보라고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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