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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06-01)

 


세상에 송사하지 말아야할 성도들

고린도전서 6장 1-11절


사람들은 각각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크고 작은 분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분쟁보다는 분쟁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풀어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의 방법으로 풀어가야 합니다. 얼마 전에 기독교 신문에 한 교회가 법정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는 내용을 광고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 교회는 항상 지루한 다툼과 시비가 끝나지 않는 교회였습니다. 성도들끼리 다툼이 세상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린다는 것은 그렇게 달갑지 않았습니다. 그 광고를 보고 있는 목회자로서 마음이 편치는 않았습니다.

 

  • 고린도 교회 안에 또 하나의 문제는 영적 무질서입니다. 그들은 불의한 일을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무질서했습니다. 그 문제를 세상의 법정으로 가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질서가 없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불신자들의 재판정에 가서 문제 해결을 부탁하는 것은 의롭지 못한 행위입니다.

 

교회 안에 3번째 문제(1)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최근에 한국 교회 안에는 공동체가 균열하는 모습을 경험합니다. 세상을 이끌기 위해서는 빛과 소금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 공동체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해답을 본문은 줍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서로 사랑으로 연합하는 교회로 세워갈 것인지 가르쳐 줍니다.

 

1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1)

 

고린도 교회 안에 있던 세 번째 문제를 다룹니다. 성도들 간의 문제를 교회 안에서 해결하지 않고 세상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했습니다. 음행의 문제를 다루었던 바울은, 이번에는 교회 내에 있는 분쟁과 소송에 관한 지침을 말합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 무슨 일인지 정확하게 밝히진 않지만, 세상 법정에 소송했던 문제로 시끄러웠던 같습니다.

 

당시는 세상이 교회를 인정하지 않은 때여서 법정에서 성도들이 고소하고 다투면 세상은 교회를 경멸하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동료 성도가 세상에서 벌을 받고 해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교회에 미칠 영향을 생각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은 세상 법정에서 다루어야 할 근친상간 간음에는 침묵하면서(5:1-13) 법정에 고발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고발했습니다. 아마도 음행하는 자는 세상에서 영향력이 크게 때문에 고발하지 못했지만, 본문의 경우는 감당할 수 있어서 고소한 것 같습니다. 세상의 힘의 논리를 따라 성도들을 대하는 참으로 치졸하고 비겁한 태도입니다.

그들의 이런 모습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원리가 아닌 세상의 논리가 성도의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둘째, 교회/성도와 세상과의 역할 관계가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셋째, 십자가로 인한 구원과 그에 근거한 삶에 대한 인식이 없습니다. 이후 바울은 둘째와 셋째에 대한 권면을 통해 첫째 모습을 바꾸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성도에 대한 두 가지 원리와 적용(2-4)

성도들은 잘잘못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성도는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아 세상을 심판하고 심지어 천사마저 심판할 존재입니다. 그렇게 할 만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처럼 의롭고 온전해야 합니다. 세상과 전혀 다른 기준으로, 전혀 다른 가치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2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4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2-4)

 

성도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길 만큼 지혜를 자랑했지만, 자기들 가운데 일어난 분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불신자의 재판정에 가지고 나아가 서로 송사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문제에 대해 매우 분격하고 있습니다.

 

(1) 성도와 세상에 대해(2)

 

교회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권면합니다. 그 시작은 성도와 세상과의 연할 관계에 대한 설명입니다. 원리를 말하고 그것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먼저 원리는 ‘...을 알지 못하느냐?’라는 표현을 통해 독자와의 공유 지식을 상기시키는 방법으로 설명합니다. 성도는 세상을 판단하는 존재라는 것을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성도란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의 새 언약 백성이 된 사람들입니다(1:2). 장차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완성되어 주님이 세상을 심판하고 다스리실 때 그의 백성들도 함께 세상을 다스립니다(디모데후서 2:12; 요한계시록 2:26;22:5). 그런 성도들이라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조건문과 의문문을 씁니다.

세상이 ‘너희’에게 판단 받겠거늘 ‘너희’는 가장 작은 일도 판단할 능력이 없습니까? 상당히 강한 질책입니다. 바울은 스스로 영적으로 성숙하고 지혜 있다고 여기던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의 자부심을 깨뜨리고 그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2) 성도와 천사들에 대해(3)

 

성도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두 번째 설명입니다. 2절이 세상 사람들에 대한 것이라면, 3절은 천사라는 영적 존재들과의 관계를 다릅니다.

역시 원리와 적용의 방법을 사용합니다. 원리는 2절처럼 ‘~을 알지 못하느냐?’라는 표현을 사용해 성도인 ‘우리’는 천사도 판단하는 자들임을 말합니다. 여기서 천사는 주님의 심판을 받을 악한 천사를 말합니다(유다서 1:6). 그에 대한 적용은 부정의문문을 써서 ‘하물며 세상의 일상적인 것도 못하느냐?’라고 질문합니다. 이 질문은 듣는 자로 하여금 부정적인 대답을 유도합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의 입에서 ‘못한다’는 말을 하게 만듭니다. 심지어 악한 영적 존재도 판단하게 될 성도가 세상의 작은 것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하여 스스로 부끄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3) 적용(4)

 

바울은 ‘그러므로’를 통해 2-3절 내용을 결론짓고 독자들을 질책합니다. 세상의 사소한 일이 있을 때 교회에서 멸시당하는 사람들을 재판관으로 세우겠느냐고 묻습니다. 교만한 독자들을 심히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주님과 함께 법관이나 관리를 포함한 세상과 심지어 악한 천사도 판단할 사람이 성도라는 것을 아는가? 안다면 왜 그 작은 일도 처리하기 못하고 세상을 의지하는가? 부끄러운 줄 알라!’

 

바울의 책망(5-8)

성도들은 서로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형제들 가운데서는 서로 고소하는 것부터가 이미 잘못된 일입니다. 세상 법정에 송사한 잘못을 범하기보다는 차라리 내가 좀 속아주고 손해를 보는 편을 선택하는 것이 낫습니다. 설사 승리하여 손실을 만회하거나 손해를 끼친 상대를 처벌한다 해도 교회와 그리스도께 큰 상처만 남습니다. 결국 둘 다 패배이며 불의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5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6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7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5-8)

 

바울은 2-4절과 연결해서 책망을 계속합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또한 ‘너희’가운데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말한 지혜가 없느냐고 묻습니다. 긍정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이며, 독자들은 ‘그렇다’고 대답해야 합니다.

지혜를 자랑하는 그들이 어리석은 일을 했음을 스스로 고백하게 만듭니다(5). 더 나아가 그들의 행동은 함께 하나님의 자녀인 사람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었습니다. 형제를 고발할 뿐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 앞에서 심판 받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고소를 통해 자기 의로움을 드러내려고 했지만, 사실 그들의 행동은 이미 자신들이 그 다툼에서 패한 자임을 보여줄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형제들의 어떤 것을 빼앗거나 자신들의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다투기 때문에 사실상 불의를 행하고 속여 빼앗는 자나 다름없었습니다. 형제를 대상으로 그 같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그들 모습에는 적어도 세 가지가 없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분별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 분별력이 있었다면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법정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의 고소는 하나님 앞에서의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이익과 기득권 유지 때문인 듯합니다. 율법의 첫째 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위배됩니다. 둘째, 형제 사랑이 없습니다. 형제들을 세상 법정에 고소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자녀로서 사랑의 마음이 있을 리 없습니다. 오직 다툼과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 생각합니다. 이는 율법의 둘째 계명인 형제 사랑에 위배됩니다. 셋째,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모습이 없습니다. 섬김 받기 위함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온 예수님의 모본(마가복음 10:45)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세상이 십자가를 우습게 여기듯 그들 역시 십자가의 삶을 우습게 여깁니다. 오직 자기만 높이려 할 뿐입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삶에서 기대하는 필수 요소이지만,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영적으로 그들이 심각하게 병들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원리와 독자에게로의 적용(9-11)

교회의 일로 세상의 법정을 소란케 한 일들은 부끄러워하며 회개합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리스도의 지체들을 법정에 세우기까지 한 것은 죄악입니다. 아무리 자랑할 것이 많다고 하더라도 형제를 사랑할 줄 모른다면, 연약한 아이에 불과합니다. 오늘날 주변에는 이런 영적 어린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판칩니까? 성도들은 장차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을 자들입니다. 그것을 상속 받을 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세상 법정에 송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법이 아니라 육신과 정욕과 욕망을 쫓은 행위입니다.

 

9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9-11)

 

이 문제에 대한 바울의 마지막 권면입니다. 구원 과정과 관련하여 독자들의 모습과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킵니다. 2-4절처럼 ‘~을 알지 못하느냐’라는 질문을 통해 원리를 말하고 그에 대해 적용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 원리는 불의한 자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8절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 자라고 말한 것과 연결시킵니다. 성도들의 행동은 하나님 나라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적용은 속지 말라는 부정 명령법으로 제시합니다. 여러 악을 행하는 자들, 곧 음행과 우상숭배와 간음과 동성애와 도적질과 탐욕과 술 취함과 모욕 주기와 속여 빼앗는 짓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미 예수를 통해 구원받았기에 어찌 살든 상관없다고 착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구원은 단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문제이기에, 그 관계 안에서의 삶도 중요합니다. 관계에는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은 이전의 삶이 하나님 나라와 관련 없었는데,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주 예수 메시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이전 세상의 방식, 곧 하나님 나라와 반대되는 삶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라고 권합니다. 세상 법정을 통해 자기 이익과 권리를 지키려는 태도를 포기하고 겸손히 형제를 사랑하고 용납하는 삶입니다.


 

교회는 세상보다 더 높고 분명한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 법정이 문제 삼지 않은 일까지도 하나님 나라 기준에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 법정을 의지하여 성도 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보다 더 거룩한 성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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