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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05-01)

 


고린도 교회 안에 있는 간음 사건

고린도전서 5장 1-13절


고슴도치가 공동체를 이룰 수 없습니다. 서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 고통을 주기 때문에 항상 혼자 다니는 고독한 동물입니다. 외로울 때면 이웃에게 다가가 보지만, 그러면 더 고통스러움이 더할 뿐입니다. 사람들은 고슴도치와 같이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살아갑니다. 이것을 존 울트버그(John Ortberg)는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했습니다. 상처를 주지 않는 방법은 사람들의 마음 속 상처를 치유 받으면 이웃의 치유자로 설 것입니다.

 

  • 고린도교회의 두 번째 문제로 넘어갑니다. 교회 안에 있던 근친상간과 간음의 문제입니다. 상당히 심각한 범죄임에도 교회는 세상의 힘의 논리에 굴복해 묵인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 일을 행한 자를 자랑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교회 상황을 책망하고(1-2) 문제 해결을 촉구합니다(3-13). 이 과정에서 악한 일을 행한 형제에 대한 이전 편지 내용의 오해를 교정하고 현재 문제에 대해 단호한 명령을 내립니다. 음행하는 자를 신속히 내쫓으라고 권고합니다.

 

교회 안에 근친상간/간음문제(1-2)

죄는 절대로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교회는 죄에 대해 단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쇠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사탄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거룩과 순결을 지키는 일에 바울처럼 분명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1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1-2)

 

고린도 교회 안에 두 번째 문제를 다룹니다. 음행의 악행의 죄악이 들어왔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에게 이방인들마저 놀랄 불륜의 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입에 담기도 힘든 ‘근친상간(近親相姦)’이었습니다.

 

(1) 문제 상황(1)

 

고린도 교회의 두 번째 문제를 다룹니다. 음행의 문제입니다. 교회 안 어떤 사람이 아버지의 아내와 성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바울은 두 가지 방법으로 그 심각성을 표현합니다. 첫째, ‘실제로’입니다. 바울이 들은 정보가 확실함을 말해줍니다. 그들 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 역시 적절하다는 것을 전합니다. 둘째, 이런 일은 이방 중에도 없던 일이라고 첨언합니다. 세상도 용납 못할 일입니다. 아버지의 아내란 법적으로 어머니 위치에 있는 여자를 의미합니다. 자기 어머니로 말하지 않은 것을 보면 계모인 듯합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아내와 성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근친상간입니다. 아버지가 죽고 미망인이었다면 간음은 아니지만, 살아 있다면 간음이기도 합니다. 과부라고 하지 않았기에 아마도 아버지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근친상간과 간음은 당시 로마법에서도 엄하게 처벌하는 죄였습니다.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추방당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이런 일에 대해 세상 법에 호소하는 일은 남편이자 아버지가 합니다. 하지만 본문 상황은 그렇게 하지 않은 듯합니다. 왜 그랬습니까? 당시 간음의 일은 먼저 이혼한 후 법적 처리를 하는데, 아직 이혼 과정이 끝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더 가능성 있는 것은 계모가 남편보다 더 높은 신분이나 유력한 집 출신이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특별히 남편이 그 사회/정치 모임의 수혜자이면 더 그럴 수 있습니다. 만일 이런 추측이 가능하다면 이 문제는 단순히 성적 문제만이 아닌, 사회 계급과 신분의 힘이라는 변수도 함께 섞여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교인들의 반응(2)

 

바울의 당황스러움이 계속됩니다. 그런 문제가 있는 것도 심각한데 교회가 교만해져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묵인하고 비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보통은 아들과 계모를 정죄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계모가 영향력 있는 사람이고 법적 아들이 계모를 통해 사회, 정치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교회가 그 아들의 눈치를 보고 그 죄에 눈감고 오히려 그 사람을 두둔하고 자랑하는 듯합니다(6). 세상 힘이 교회에서도 통하는 사례입니다.

 

문제 해결 촉구:음행하는 자를 내쫓으라(3-1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가 방종은 아님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더군다나 죄를 범하고서도 교만해 그 죄를 통탄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끔찍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들도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항상 살펴야 합니다.

 

3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6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8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9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1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13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3-13)

 

바울은 고린도 교회 안에 음행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방인도 하지 않는,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는 일이 버젓이 행해지고. 교회가 이 일에 대해 통탄하지도 않으며 그러한 일을 한 자를 제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1) 음행하는 자에 대해(3-5)

 

교회 문제에 대한 구체적 대답이 제시됩니다. 먼저 음행한 자에 대한 판단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세상 법에서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기에 교회가 이미 판단하고 처리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을 추구함으로 판단력을 상실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바울은 행음한 자에 대한 판단을 제시합니다. 그 사람을 사탄에게 내주었습니다(5). 출교, 곧 사탄이 통치하는 세상으로 쫓아내는 것이며 언약 백성 밖에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말입니다. 그런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6:9). 바울의 판단은 상당히 엄중합니다. 몇 가지 표현으로 전달합니다. 첫째, ‘나’라는 인칭대명사입니다. 고린도 성도들 태도와 다름을 강조합니다. 둘째, 육신의 몸은 떨어져 있지만 영으로 함께 있는 것 같다는 표현입니다. 어설프게 듣고 판단한 것이 아닙니다. 마치 교회에 함께 있어 듣고 본 것처럼 분명한 결정을 내린다는 말입니다. 셋째, ‘우리 주 예수의 이름으로’입니다(4). 음행하는 자에 대한 바울의 판단을 주님의 권위와 연결시킵니다. 이 모든 것은 고린도 성도가 어찌 생각하고 행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합니다. 그들은 모임 중에 공개적으로 징계해야 합니다(4-5).

이 과정에 두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가 공적으로 엄중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모일 때 바울도 영으로 동참할 것을 말함으로 모임의 공공성을 말하고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처리하라는 것은 주님의 권위로 징계하라는 말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그 징계가 그 사람에게 유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비록 그 사람을 하나님 통치 바깥에 있는 존재로 인정하고 축출하지만,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비록 육은 세상 사람이 그렇듯 죽게 될 것이지만, 영이 주 예수의 날에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그 사람이 자동적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회개함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음을 말합니다. 죄를 인정하지 않은 채 계속 교회에 머물러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주님의 심판을 받는 것보다 지금 징계 받아 회개하면 그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2) 묵은 누룩을 버리라(6-8)

 

고린도 성도들 태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권면합니다. 그들의 자랑은 옳지 않습니다. 그 문제가 심각함에도 교회가 그것을 묵인하고 심지어 음행하는 자를 두둔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누룩의 예를 들어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듯 그런 죄를 묵인하면 교회 전체가 부정해집니다. 더 나아가 유대 유월절과 관련해 부연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새 언약을 위한 유월절 어린 양, 곧 예수 메시아를 통해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 백성이 되었기에(1:2) 묵은 누륵으로 하나님의 공동체를 더럽히면 안 됩니다. 오히려 순전함과 진실함의 빵으로 새로운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철저하게 예수로 인한 구원과 그로 인한 독자들의 정체성에 근거한 권면입니다. 세상이 아닌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 합당하게 살라는 말입니다.

 

(3) 이전 편지에 썼던 바울 명령에 대해(9-10)

 

갑자기 음행하는 자들과 사귀지 말라고 한 이전 편지 내용에 대한 오해를 교정합니다. 당시 독자들은 알고 있었겠지만, 현대 독자는 어떤 내용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현재 편지에서 음행하는 자를 내쫓으라는 말(2,5,13)과 관련해 오해가 있을까 봐 설명하는 듯합니다. 이전 편지에서 말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안 신자를 향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만일 세상 악한 사람들과 사귀지 말라고 하면, 신자는 관계 맺을 사람이 없기에 이 땅을 떠나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과장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초점이 하나님 백성 공동체 안에서 음행하는 자에 대한 처리 방법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4) 현재 편지를 통한 명령(11-13)

 

10절과 연결해 현재 바울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증합니다. 철저하게 교회 안에 있는 신자에게 해당하는 명령입니다. 만일 어떤 신자가 해서는 안 되는 행동, 예를 들어 음행이나 탐욕, 우상숭배,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는 일을 하거든 그와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아야 합니다. 바울의 관심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받을 심판이 아닙니다. 그것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그의 관심은 지금 교회가 행하는 자를 어찌해야 하는가입니다. 그 악한 사람을 내쫓아야 합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개인과 공동체가 그 일에 동조하지도, 지지하지도 않게 함으로써 죄의 오염을 막기 위함이고, 죄지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비록 그가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일지라도 교회는 악을 용납하면 안 된다. 물론, 그렇게 하면 세상에서 손해 볼 수 있습니다. 악행하는 자는 여전히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일 수 있고 독자들은 그 아래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교회가 바르게 권면하고 징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른 원리가 지배해야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장 중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죄를 살펴야 합니다. 미혹된 일들이 있지 않는가 살펴야 합니다. 죄악이 해결되지 않으면 삶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고슴도치처럼 수많은 상처의 가시가 남아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살아갑니다. 말씀으로 치료를 받아 완전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거룩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그것을 깨닫고 죄악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의 고린도 교회의 실수는 말씀을 자기에게 적용하는 훈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에게 깊이 적용하는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야고보서 1:22) 말씀 속에 살아있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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