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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07-02)

 

 


고린도교회의 문제점: 그리스도인의 결혼관

고린도전서 7장 25-40절


운동선수나 뚜렷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은 목표달성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합니다. 많은 것들을 희생하지 않고는 목표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성도들이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포기해야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에 당연해 보이는 것들도 내려놓아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성취하기 위해 내려놓고 포기해야 할 것은 없습니까?

  

  • 1-24절에 이어 결혼과 관련된 주제를 계속 다룹니다. 특별히 약혼한 사람이 결혼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과 과부에 대한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의 질문을 언급한 후(25), 약혼한 남녀에 대한 제안과 그에 대한 근거를 제공합니다(26-28). 이어 두 가지 근거를 추가로 언급하고(29-35), 약혼한 남자에 대한 주제를 드라눈 후(36-38), 과부에 대한 제안(39-40)을 제시합니다.

문제점 : 문제 제기(25)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하는 사람을 보면 그가 무슨 문제가 있거나 나이 든 후에 쓸쓸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하나님 나라에 영원한 것을 바라보면 살아집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종말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25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25)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질문한 미혼자의 결혼에 대한 질문에 대해 대답합니다. 이런 질문에 대해 주님께 주신 명령이나 계시는 아니지만 충성스러운 자로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고 합니다.

약혼한 처녀들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따로 설명하고 명령하신 것은 없지만, 자비로 부르심을 입은 사도로서 권면한다고 합니다. 전체 내용을 목회자의 제안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약혼한 남녀에 대한 제안과 군거들(26-35)

종말 의식은 세상에서 영원토록 살 것처럼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심판과 주권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결혼하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결혼하면 배우자를 살펴야 하는 어려움도 있기 때문에 바울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권했습니다.

 

26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7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28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29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32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33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34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35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26-35)

  

(1) 약혼한 남녀에 대한 제안과 근거 1(26-28)

 

바울은 그 질문에 대해 ‘내 생각에는’는 말로 시작합니다. 명령이라기보다는 제언이라는 뜻입니다. 지금처럼 결혼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26). 또한 만일 약혼한 남자가 결혼 헌신을 약속했으면 이혼하지 말고 계속 살 것이고, 혹시 이혼과 비슷한 파경을 맞았으면 굳이 결혼하려 하지 말라고 합니다(27).

먼저 결혼에 앞에서도 임박한 환난 날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마지막 날이 가깝다는 생각 때문에 미혼들이 결혼하지 않고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현재의 어려움 때문입니다(26). 당시 고린도 지역은 기근으로 경제 상황이 많이 안 좋았는데, 그런 형편을 염두에 둔 듯합니다. 결혼해도 어려움 당할 수 있기에 약혼한 상태지만 가급적 결혼을 미루는 것이 괜찮을 듯싶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결혼 자체를 금하는 것은 아닙니다. 약혼자와 결혼하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단지 육신의 고난, 곧 기근으로 인한 어려움에 독자들이 고생할까 봐 그렇게 권한 것입니다(28). 모든 시대에 통용되는 절대규범이라기보다 상황에 근거한 목회적인 권면입니다.

 

(2) 약혼한 남녀에 대한 제안과 근거 2(29-31)

 

약혼한 자들에 대한 제언에 대해 두 번째 근거입니다. ‘때’ 곧 주의 재림과 종말의 시간이 단축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초림, 특별히 십자가와 부활은 역사의 마지막에 있을 심판과 구원을 담고 있기에 종말의 시작이며, 완성은 주의 재림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에 신자의 ‘오늘’은 종말의 시작과 완성 사이의 시간입니다.

 

아마도 바울은 고린도 지역의 기근을 종말의 한 징조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아직 역사의 끝이 온 것은 아니지만, 그 어려움으로 종말의 시간이 가까이 왔음을 인식하며 살라고 합니다. 그때가 되면 지금의 세상은 지나가고 없어집니다. 그렇기에 희로애락의 삶이나 소유나 세상 물건을 사용하는 것에 다른 태도를 가지라고 합니다. 여기에 결혼의 영역도 포함되는데, 약혼녀가 있는 자는 굳이 결혼을 하지 않아도 좋겠다는 제안도하고 있습니다. 역시 바울의 목회적인 권면입니다.

 

(3) 약혼한 남녀에 대한 제안과 근거 3(32-35)

 

세 번째 근거를 언급합니다. 결혼하면 마음이 나뉘어 상대적으로 주님께 집중하는 것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두 부류의 예를 듭니다. 첫째, 결혼한 남자입니다. 가정의 가장으로서 세상 일에 마음이 나뉘고 아내를 기쁘게 하기를 추구합니다. 그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결혼 전에 비해 주님을 향한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둘째, 여자들입니다. 시집가지 않은 일반 여자나 약혼녀는 할 수 있으면 주의 일에 집중하려 하고 몸과 영을 더 순결하게 하려 합니다. 그러나 결혼하면 남편의 경우처럼 세상 일과 남편에게 충실하게 되어 마음이 나뉠 수 있습니다. 결혼이 마음을 나뉘게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혼하지 않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주님께 마음이 집중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결혼 자체가 주님을 향한 순결한 헌신에 장애물도 아닙니다. 바울의 제안은 기근이라는 당시의 특별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 듯합니다. 힘든 시기라서 아무래도 결혼한자들은 혼자 있을 때보다는 가정과 배우자에 대한 염려가 더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아끼는 마음으로 권면한다고 합니다(35). 할 수 있으면 그들이 주를 향한 삶에 덜 방해받고 지내기를 바랐습니다.

 

약혼한 남자에 대한 권면(36-38)

전반적으로 성도들은 세상에 대해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라도 과대평가하거나 절대화하거나 우상시해서는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다 지나가는 것들, 곧 없어져 버릴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물건이나 현 모습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곧 사라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36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37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38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36-38)

 

주제를 약간 바꾸어 약혼한 남자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두 가지 상황을 전제합니다. 첫째, 그 남자가 약혼녀와 결혼할 마음이 있는 경우입니다. 이 부분은 해석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아마도 약혼한 남자가 결혼을 미루고 있었는데, 그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될 때 약혼녀가 혼기가 찼고 결혼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그 마음을 실행해 결혼하라는 권면입니다. 결혼하는 것이 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 결혼을 계속 미루는 경우입니다. 약혼한 남자가 강요함 없이 마음을 정하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결혼하지 않고 자기 약혼녀를 그 상태로 두기로 자기 마음에 결정하면 잘한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 뜻대로’와 ‘자기 마음으로’라는 표현을 통해 약혼남의 개인적 결정과 책임을 강조합니다. 결론적으로 약혼한 남자는 결혼을 해도 되고 좀 더 미뤄도 됩니다. 둘 다 괜찮습니다.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제안합니다. 좋음과 더 좋음의 선택입니다. 역시 현재의 어려움을 고려해 독자들을 배려한 제안인 듯합니다.

 

과부에 대한 제안(39-40)

결혼을 하면 세상 일로 마음이 나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장가간 자는 아내를, 시집간 자는 남편을 어떻게 기쁘게 할까 염려하느라 주님의 일에 집중하기 어렵고 주님께 온전히 헌신하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것이 올무가 아니라 그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며, 명령이 아니라 권면임을 분명히 합니다.

 

39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40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39-40)

 

결혼한 아내에 대해 제안합니다. 기본적으로 아내는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만 결혼 관계에 묶여 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죽으면 그 관계에서 자유롭게 되어 자기가 원하는 이와 재혼할 수 있습니다. 이 원리는 바울의 다른 편지에서도 언급됩니다(로마서 7:1-3). 바울은 여기에 주안에서만 하라는 말을 첨가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결혼 같은 삶의 일반 관계보다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마지막 권면은 그 여자가 결혼하지 않고 그냥 지냈으면 하는 것입니다(40). 비록 주의 명령이 아니라 바울의 생각이지만, 두 가지 표현을 첨가함으로써 자신의 권면이 적절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비교급 사용입니다.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복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바울으로 인한 의견임을 전달합니다. 이 또한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이 들어야 하는 규범은 아닙니다. 당시의 특별한 상황을 전제하여 성도를 아끼는 제안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설명으로 결혼과 관련해 신자의 삶과 목회 차원에서 몇 가지 원리들을 생각할 수 있다. 우선 신자의 삶에 대해서 ① 결혼은 삶의 절대 요소가 아닙니다. 결혼을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② 본인의 진지한 결정과 그에 따른 책임이 중요합니다.

본문에 의하면 그 결정은 현실적 어려움이라는 변수와 종말이 있음을 기억하고 조심해서 살아야 하는 것, 그리고 주님을 향한 순전한 집중을 고려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현대에는 다른 요소들이 가감될 수 있지만, 주님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집중은 시대를 불문하고 고려해야 합니다. 한편, 목회 차원에서 바울의 모든 권면은 독자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비록 주의 명령은 아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고 주님과의 관계에서도 계속 잘 살아가기를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바울 권면의 또 다른 특징은 독자들에게 자기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충분히 그렇게 해도 될 만한 위치에 있었지만, 여러 변수들을 제시하면서 그들이 신중하게 판단하도록 유도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도록 돕고 있다. 사역자로서 성도들을 권면하는 좋은 귀감을 보여준다.


인생의 문제는 결국 가치의 문제고, 신앙의 문제입니다. 묵상은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 사라지기 않는 것(가치)에 주목하는 일입니다. 그 안목을 갖는 일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묵상의 이유이고 목표입니까?

 

 

*** 용서

 

영화 ‘밀양’의 내용은 대략,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아들과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내려가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아들까지 유괴 후에 살해당합니다. 신애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안정을 얻기 위해 예수를 믿기를 권합니다. 그녀는 예수를 믿고 나서 위로를 받고, 살인자를 용서하려 교도소에 면회를 가서 어렵게 예수를 믿고 나서 용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범인도 “나도 교도소에서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내 죄를 다 용서해주셨습니다.”라면서, 비아냥거리면 “내 마음이 이렇게 평안할 줄 몰랐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때, 신애의 마음은 순간적으로 뒤집어지기 시작합니다. 미치기 시작하고 방황하기 시작합니다. 영화 ‘밀양’에서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 큽니다. 진정한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줍니다. 진정한 자유란 것이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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