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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12-02)

 

 


한 몸을 이룬 공동체

고린도전서 12장 12-31절


 

우리의 몸은 많은 기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두 서로 다 연결이 되어 하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중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그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온 몸이 약해지거나 아픕니다. 그래서 몸의 지체는 여러 가지이지만, 몸은 여러 지체를 통해 하나를 이룬 것입니다.

 

  • 바울은 앞에서 은사의 다양성과 일치성에 대해 몸을 통해 비유로 말합니다. 이제 비유를 들어서 고린도 성도들의 의무를 상기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지체만을 위대하게 사용하기 원치 않으시며, 지체들에게 각각의 능력과 성품을 주셔서 적절히 연합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온전하게 이루게 하시며,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의 일을 행하도록 인도하십니다.

 

한 몸과 많은 지체들(12-14)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인종과 국가, 사회적 신분, 남녀 차별 등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차이를 그대로 가지고서는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인 교회를 완전하게 이룰 수 없습니다. 지상의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한 성령에게서 세례를 받아 한 몸, 즉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2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14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12-14)

 

한 몸과 많은 지체들에 대해 설명합니다. ‘마치 ~처럼 ~ 하다’라는 비교 표현을 통해 사람의 몸과 메시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연결합니다. 핵심은 다양성과 통일성입니다.

이 요소들은 ‘마치’로 시작하는 종속절 구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몸과 관련해 12절은 두 개의 절로 구성되는데, 하나는 한 몸을 주어로 많은 지체가 있음을 말하고, 또 다른 하나는 많은 지체를 주어로 한 몸이라고 말합니다. 한 몸(주어) - 많은 지체- 많은 지체(주어) - 한 몸의 구조입니다. 마찬가지로 메시아의 몸, 곧 교회도 하나이지만, 다양한 구성원들이 있다고 말하려는 것입니다.

이후 바울은 ‘왜냐하면’이란 두 개의 이유절로 12절을 부연합니다. 하나는 13절입니다. 어떻게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인 같은 다양한 사람들이 한 몸이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한 몸 안으로 세례를 받고, 한 피를 마셨기 때문입니다. 세례와 주의 만찬을 통한 주님과의 연합입니다.

또 다른 이유 절은 14절입니다. 한 몸에는 하나의 지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지체들이 있습니다. 두 이유 절 모두 다양성과 통일성 요소를 갖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13절은 통일성에 초점을 맞추고 14절은 다양성에 더 집중합니다.

 

비유와 설명1: 비교로 인한 열등감에 대해(15-20)

우리 몸에는 다양한 기능한 기관들이 많습니다. 가장 비천한 지체도 몸의 한 부분을 이룬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기관도 몸 전체를 이룬데 기관으로 역할을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비천해 보인 사람이라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이 성도라면 모든 지체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어떤 위치나 특별한 은사를 받지 못했다고 해도 교회의 한 몸입니다.

 

15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17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8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19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20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15-20)

 

본 단락에서는 당신은 그리스도의 봉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교회 안에서 별로 중요하게 보이지 않는 은사라도 멸시해서는 안 됩니다. 역설적으로 덜 귀해 보이고 덜 아름답게 보이는 지체일수록 하나님께서 우리가 생각 못할 만큼 존귀하고 요긴하게 사용하십니다.

 

(1) 비유(15-16)

 

다양성과 통일성을 근거로 비교 상황으로 인한 교회 문제를 다룹니다. 첫째는 열등감입니다. 바울은 사람 몸에 있는 여러 지체들을 의인화해 그 문제를 소개합니다(15-16). 발은 자기가 손이 아니니까 몸에 필요 없는 존재라고 말하고, 귀 역시 눈과 비교해 그렇게 말합니다. 교회 안에서 은사와 섬김을 통한 비교 의식으로 중요한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를 구별하거나 차별하는 상황을 전제합니다. 특별히 비교로 열등감을 느끼는 존재들의 예를 듭니다.

 

(2) 설명(17-20)

 

몸의 지체들을 의인화한 15-16절 내용에 대한 설명입니다. 다른 지체와의 차이는 비교와 열등감을 느낄 사항이 아닙니다. 만일 모든 몸이 하나의 지체만 있다면 몸은 제 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눈만 있으면 몸은 보는 것 외에 다른 기능이 없습니다. 코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한 지체만으로 구성된 것은 몸이 아닙니다. 한 몸에는 반드시 다양한 지체들이 서로 다른 기능으로 존재해야만 합니다. 더 나아가 다양한 기능의 지체를 한 몸에 둔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입니다. 그렇기에 비교를 통한 열등감은 합당치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보시기에 쓸모없는 자녀와 선물(은사)은 없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성도와 은사가 있는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다른 지체의 부족함을 채워 온전한 몸을 이룰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유와 설명2: 비교로 인한 우월감에 대해(21-26)

남다른 지식과 은사로 자신을 우월하게 생각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주목받지 못하면 참지 못하는 자들이고, 주목받지 못하는 자들을 무시하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유능하고 요긴해도 더 많은 이들에게 유익을 끼치고 더 많은 이들과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는 무익한 존재일 뿐입니다(13:1-3).

 

21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21-26)

 

교회는 한 몸 의식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특히 셀을 통해서 한 몸 의식을 돈독히 하고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한 몸에 지체처럼 붙어 살아야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끼리는 육신의 형제보다 더 반갑습니다. 성령의 교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나눈 영적인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1) 비유(21)

 

비교로 인한 둘째 문제를 다룹니다. 우월감입니다. 역시 사람 몸의 지체들을 의인화해 상황을 제시합니다. 눈이 손에게 보는 기능이 없으니 쓸데없습니다. 하거나 머리가 발에게 그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15-16절과 반대 상황입니다. 아마도 교회 안에서 은사와 섬김을 통해 우거리는 부류의 태도를 지적한 듯합니다.

 

(2) 비유 설명(22-26)

 

우월감 문제에 대해 설명합니다. 사람 몸의 예와 교회 안의 예를 섞어가며 제시합니다. 우월감을 설명하기 위해 의인화한 몸의 지체들의 경우와 달리 실제 사람은 몸에서 더 약해 보이는 부분을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덜 귀하게 여겨지는 것을 더 귀한 것으로 입혀줍니다. 더 약해 보이는 지체는 아마도 내부 장기를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손이나 발보다는 약하지만 아주 중요한 기관이기에 여러 모습으로 보호합니다. 또한 덜 귀히 여기는 지체는 성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은 그 부분을 더 귀한 것으로 입히고 가려서 수치가 드러나지 않게 합니다. 하지만 얼굴 같은 이미 아름다운 지체는 다릅니다. 꾸미고 더 아름답게 하지만 가리지는 않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약한 교회 구성원들은 하나님이 귀중함을 더하게 하십니다. 분쟁 없이 서로 돌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비교하여 우월감으로 차별과 배제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은사가 많은 사람은 자신이 더 약한 존재이고 덜 귀한 존재일 수 있다는 겸손함과 감사함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섬겨야 합니다. 더 나아가 몸의 한 지체가 아프면 온 몸이 아프듯, 교회에서 한 지체가 차별 받아 상처받고 아파한다면 온 몸과 모든 지체가 함께 아파해야 합니다. 또한 한 지체가 영광 얻으면 모든 지체가 즐거워하듯, 교회에서도 서로에게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한 몸이며 한 식구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당시 고린도 교인들은 교회를 이렇게 접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개인적 모임일 뿐 아니라 세상의 관점이 통용될 수 있는 단순한 정치 혹은 사교 모임 정도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때만 이런 관점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늘날도 교회를 그렇게 이해하지 않은 모습이 많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오늘 우리도 바울의 가르침을 들어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로의 적용(27-31)

한 지체가 아플 때 공동체 전체가 자기 아픔으로 느끼고, 한 지체의 영광에 모든 공동체가 시기나 질투 없이 같이 기뻐할 때 살아있는 건강한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 다양한 은사와 직분을 주셨습니다. 모든 은사가 다 요긴하지만, 초자연적인 은사보다는 복음을 선포하고 진리를 가르치는 은사가 교회를 세우는 데 더 필요합니다.

 

27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28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29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31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27-31)

 

한 지체의 고통을 모든 지체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한 지체의 영광을 모든 지체의 영광을 받아 드려 함께 즐거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러하지 못하다면 그 상태는 지체의 상태가 아닌 것입니다. 고통과 즐거움, 아픔과 기쁨을 한 몸으로 함께 느끼는 것이 몸이란 유기체입니다. 교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 성도들이 겪는 고통이나 누리는 영광에 대하여 다른 사람 이야기 하듯 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성도의 연합이 된 영적 상태라고 할 수 없습니다.

 

(1) 메시아의 몸과 지체(27-28)

 

‘너희’라는 2인칭 표현으로 고린도 교회 상황으로 연결합니다. 그들은 메시아의 몸이며 지체의 부분입니다. 앞서 비유로 설명한 내용의 정리입니다. 그들은 메시아 예수와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과 언약 관계 맺은 자들로서 한 몸으로서의 통일성과 많은 지체로서의 다양성을 함께 갖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 안에는 다양한 은사와 그것을 통한 섬김과 사역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는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습니다. 은사 차원도 있지만, 1차적으로 부르심에 따른 섬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두 진리와 관련된 것이지만, 그 모습은 다릅니다. 한편, 은사에 따른 섬김의 일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병 고치는 것과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 말하는 것들입니다. 모두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부르심과 은사로 메시아의 몸, 즉 교회를 구성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런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통일성의 요소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허락하고 세우신 분이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다양성의 요소를 어떻게 묶어서 교회의 통일성을 세워야 합니까? 13장은 그 중요한 방법을 소개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독자들로 하여금 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함으로 관심을 유발합니다.

 

(2) 다양한 섬김과 은사(29-31)

 

모든 사람이 사도나 선지자나 교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다 병 고치는 은사나 방언을 말하거나 통역하는 은사를 가질 수도 없습니다. 다양한 섬김의 모습과 은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최고의 것입니까? 바울은 독자에게 더 나은 은사들을 추구하라고 명하고(‘너희는 더욱 큰 은사들을 사모하라’) 최고의 길을 알려주겠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최고의 은사가 아니라 주어진 은사들을 최고가 되게 하는 방법입니다. 독자들에게 궁금증을 유발한 후 바울은 13장 내용으로 갑니다.


다름이 다툼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지체가 다양하기에 몸이 제대로 기능하는 것입니다. 저마다 하나님이 두신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니 비교해선 안 됩니다. 지체를 빛나게, 은사를 은사되게,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것을 주는 ‘평등’이 아닙니다. 다름을 포용하는 ‘사랑’ (13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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