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09-01)
야망과 이기심으로 왕이 된 아비멜렉
사사기 9장 1-6절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 싶을 만큼 인간의 지배 욕망은 강렬합니다. 권력에서 나오는 전능감이 스스로 신으로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종교적인 부패는 배교를 낳습니다. 기드온 시대에 종교적 부패가 자녀 시대에 배교를 낳은 것입니다.
- 여룹바알(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은 자기 외가가 있는 세겜의 왕이 될 계획을 세웁니다. 그는 혈연에 호소하여, 주민들의 지지와 후원을 받는 데 성공합니다. 그는 후원금으로 형제들을 모조리 죽이는 데 쓰고, 세겜의 왕이 됩니다. 아비멜렉의 죄와 이를 지지한 세겜 사람들이 죄가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
세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은 아비멜렉(1-3)
부정적인 지도자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거짓된 정보와 과장된 말로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그 사람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어리석은 국민들은 자신들의 살을 갉아먹는지도 모르고, 이러한 악한 선동에 설득되어 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악한 지도자 설 수 없도록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1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에 가서 그의 어머니의 형제에게 이르러 그들과 그의 외조부의 집의 온 가족에게 말하여 이르되 2청하노니 너희는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 하니 3그의 어머니의 형제들이 그를 위하여 이 모든 말을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매 그들의 마음이 아비멜렉에게로 기울어서 이르기를 그는 우리 형제라 하고 (1-3)
에룹바알(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첩에 아들입니다(8:31). 아비멜렉의 이야기가 기드온 이야기 뒤에 이어지는 후속편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첩에게서 나은 아들이며, 아들들 중 첫째를 제외하고(8:20) 유일하게 이름이 언급되었습니다(8:30-31). 특히, 이름이 ‘내 아버지는 왕이라’라는 뜻입니다. 그는 첩의 아들, 그것도 이방 여인의 아들이었기에 이복형제나 다른 가족에게 한 식구로 인정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어머니 고향인 세겜에 등장합니다. 세겜은 기드온의 고향인 오브라에서 남서쪽으로 10km,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65km로 ᄄᅠᆯ어진 곳에 위치했습니다. 세겜은 에브라임 지파의 도시로 이스라엘 중심부에 위치하며, 상업적 종교적으로 매우 유명하며 중요한 도시입니다. 남쪽에는 그리심 산이 있고, 북쪽에는 에발 산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입성한 다음에, 그곳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한 곳이며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갱신했던 곳입니다.
그곳에 사는 지파는 북쪽 이스라엘에서 가장 강력한 에브라임 지파였습니다. 그러므로 사실 기드온이 에브라임 출신의 세겜 여자를 아내가 아닌 첩으로 들린 이유에 대해서는 의문스러운 점이 많지만, 이유가 무엇이든지 세겜 여자를 첩으로 맞아 들렸다는 자체가 문제를 일으킵니다. 아비멜렉은 자기 어머니가 첩이며 이방인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오브라에 있는 기드온의 집에서는, 정식 부인들의 아들들에 의해 신분상 낮은 위치에 있게 됩니다. 이로 인해 그는 기드온의 지위나 재산을 물려받는데, 매우 불리했습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처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비멜렉은 ‘내 아버지는 왕이다’라는 뜻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마 자신의 아버지 기드온이 왕처럼 사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왕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키웠습니다. 그는 오브라에서 정통적으로 자신이 기드온의 후계자가 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자신을 지지해줄 사람들을 찾아 어머니의 고향 세겜으로 온 것입니다. 그는 세겜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자신 계획을 실행하여, 제일 먼저 외할아버지에게 가문 사람들을 모아 자신이 왕이 될 수 있도록, 세겜 사람들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9장의 아비멜렉 서사는 그를 “여룹바알의 아들”로 소개하며 시작합니다. 이 서사에는 ‘기드온’이란 이름이 아예 나오지 않고 ‘여룹바알’로만 언급됩니다(2, 5[2], 16, 19, 24, 28, 57). 저자가 ‘바알이 그와 싸우라’는 뜻의 ‘여룹바알’만 고집한 것은 의도적인 전략인데, 바알 대적자인 기드온과 바알 숭배자들(세겜인들과 이들의 지지를 받는 아비멜렉)을 대조시키려는 목적입니다. 기드온은 바알 제단을 찍고 하나님의 제단을 세움으로써 바알과 다퉜습니다(6:27-31). 이제 아비멜렉은 바알 숭배자들과 손잡고 죄를 지음으로써 하나님과 다투려 합니다.
아비멜렉이 모친의 고향(8:31)인 세겜에 온 목적은 이곳의 왕이 되기 위함입니다. 그는 왕이 될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장래에 거침돌이 될 수 있는 이복형제 70명을 제거할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아비멜렉의 ‘스스로 왕 만들기’ 작전은 혈연에 호소하여 세겜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겜의 사람들’(바알레 쉐켐)이란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로 번역된 단어가 ‘바알’의 복수형(베알림)입니다. ‘바알’은 ‘주인’의 뜻도 있으나, 사사기에서는 줄곧 우상 신을 가리켰습니다(2:13; 3:7; 8:33). 여기서는 ‘세겜의 주인들’의 의미로서 세겜 성읍 주민들을 가리키며, 이들이 바알 숭배자임을 알려줍니다. 이 호칭은 9장에서 15회나 나와 ‘바알’을 계속 상기시키며 세겜에 바알 숭배가 편만했음을 부각합니다(2,3,6,7,18,20,23[×2],24,25,26,39,46,47, 51). 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아비멜렉은 먼저 그곳의 외가 친척들의 지지를 얻어 그들을 조력자로 이용합니다. 그는 자기가 왕이 될 수 있도록 세겜 사람들에게 자기를 선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는 세겜인들이 자기를 왕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로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째, 자기 한 사람이 세겜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이 여룹바알의 아들 70명이 다스리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아비멜렉은 자신을 포함하여 기드온의 아들들이 왕 될 자격이 있음을 전제로 말합니다. 실상 기드온은 왕처럼 살았지만, 왕이 되어 백성을 다스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서 왕이 되라는 요청을 받고 거절했지만(8:23), 그는 ‘내가 다스리는 게 어떻겠느냐?’며 스스로 왕의 자리를 구합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을 대적에게서 구한 업적을 세우고도 왕의 자리를 거절했지만, 공적도 없는 아비멜렉은 적극적으로 그 자리를 탐합니다. 기드온의 70명 아들들도 유명한 사사의 아들이란 명목으로 지역에서 실세 노릇을 했겠지만, 왕으로 다스리지는 않았습니다. 아비멜렉은 사실을 부풀려 70명의 형제들이 다 왕좌를 노리는 것처럼 설명합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여룹바알”로 부름으로써 바알 숭배자인 세겜인들로 하여금 기드온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를 일으키게 유도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의 자식들의 다스림에도 거부감을 느끼고, 그들 대신 아비멜렉을 지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유는, 아비멜렉이 ‘그들의 뼈와 그들의 살’이기 때문입니다. ‘뼈와 살’(골육)이라는 표현은 아담이 하와를 처음 보고 자신의 형질과 똑같음에 감탄하며 표현한 말입니다(창 2:23;참조. 창 29:14; 삼하 5:1). 골육을 내세우는 것은 자신을 왕으로 세워 서로 덕을 보자는 의미입니다.
아비멜렉은 외가 친척들의 연합과 열성으로 세겜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비멜렉의 회유에 말려들어 그의 충성스러운 대변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의 도움으로 아비멜렉의 말은 세겜 모든 사람의 귀에 전달되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이 우리의 형제’라며 그에게 마음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혈연에 하소연하여 세겜의 왕이 되려 했던 아비멜렉의 작전이 제대로 맞아떨어졌습니다.
자기 형제들을 죽인 아비멜렉(4-5)
이방신, 즉 우상은 옳고 그름에 문제보다는 사람들의 욕망을 성취해 주는 역할에 그칩니다. 욕망은 탐욕을 만들고, 탐욕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성도들은 탐욕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기 욕망을 채워 줄 지도자를 따르는 것은 공멸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4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칠십 개를 내어 그에게 주매 아비멜렉이 그것으로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사서 자기를 따르게 하고 5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 곧 자기 형제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으되 다만 여룹바알의 막내 아들 요담은 스스로 숨었으므로 남으니라(4-5)
아비멜렉을 지지하기로 결심한 세겜 사람들은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70개를 가져다가 아비멜렉에게 줍니다. 이것은 바알브릿 신전이 아비멜렉의 왕권을 지지한다는 표시인데, 바알브릿은 8장 33절에서 언급된 신으로 기드온이 죽은 후,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 대신 따르던 배교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이런 바알브릿 신전의 후원을 받는다는 것은 아비멜렉의 왕권은 처음부터 이방신의 지지를 받고 성립된 배교적인 정권임을 보여줍니다.
아비멜렉은 왕이 되는데 세겜에서 용병을 사서 물욕을 키웁니다. 그들을 데리고 오브라의 아버지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 자신의 이복형제 70명을 한 바위 위에 죽이는 끔찍한 일을 저지릅니다. 세겜 주민들은 ‘바알브릿’(‘언약의 바알’, 8:33) 신전에서 은 70세겔(798g)을 아비멜렉에게 후원금으로 줌으로써 말만(3)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 를 왕으로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4). 이는 아비멜렉이 왕이 되는 데 바알의 동의와 지지를 얻었음을 함축합니다. 세겜인들의 물질 지원은 기드온의 무고한 아들들을 없애는 데 동의하고 공조하는 행동입니다. 기드온이 바알을 부수고 여호와의 제단에 수소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헌신을 보였을 때(6:25-27), 오브라의 바알 숭배자들은 그에게 보복하지 못했습니다(6:28-31). 이제 세겜의 바알 숭배자들이 그의 아들들을 죽여 보복함으로써 바알에게 헌신을 표현합니다.
아비멜렉은 은 70개 후원금으로 무모한 무법자들을 조력자로 구했습니다. 본문에서는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4)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않고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지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이 없기에 그는 용병을 사서 세력을 키운 것입니다.
그는 오브라로 가서 한 바위 위에서 자기 형제를 다 죽입니다. 여기서 아비멜렉의 잔인성을 강조하기 위해 여룹바알의 아들이 아비멜렉의 형제 사실을 강조합니다. 자기 왕권을 위해 형제들을, 그것도 한 바위에서 한꺼번에 몰살시킨 무자비하고 패륜적인 인물로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에 왕정 국가에서는 왕이 되기 위해, 혹은 왕이 된 후에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형제를 죽이는 일이 흔했습니다. 하지만 사사시대에는 권력을 위해 형제들을 죽이는 일들은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아비멜렉이 보여주는 고대 사회의 왕권 탈취에 모습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지도자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을 다스리다가 죽은 후, 그 왕권을 세습하지 않고, 새로운 지도자가 선택되는 하나님의 통치 방식보다 얼마나 잔인하고 인륜을 저버린 채 욕망에 충실한 모습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왕들을 죽여 자기 형제의 죽음에 보복했으나(8:18-21), 그 아들 아비멜렉은 왕이 될 욕망을 위해 자기 형제를 죽입니다. 우상 하나의 제작비가 은 200세겔(2.28kg 인데(17:4), 이들을 처치하는 데는 은 70세젤(798g)이 들었으므로, 한 사람의 소중한 목숨이 은 1세겔(11.4g)의 헐값에 사라진 것입니다.
그가 죽인 자들은 ‘여룹바알의 아들’이자 ‘그의 형제’로 설명됩니다(5). 이는 그들이 바알 대적자 기드온의 자식들임과, 아비멜렉의 골육지친임을 강조합니다. 결국, 아비멜렉은 자신이 ‘골육’임을 강조하여 세겜인의 환심을 샀으나(2), 정작 70인 형제의 목숨을 앗아갈 때는 그들이 세겜 주민들보다 훨씬 더 가까운 자신의 ‘골육’임을 무시했습니다.
이로써 기드온의 권세와 영화를 상징하던 아들들은 그의 한 아들로 인해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형제 모두가 살육당해 핏물을 이루었을 현장은 아비멜렉의 대담함과 폭력성과 잔인성을 그대로 나타냅니다. 기드온의 장자인 여델이 두려워하며 적장을 감히 죽이지 못했던 것(8:20)과는 아주 대조적인 장면입니다. 바위 위에서 형제들을 처단한 아비멜렉은 후에 맷돌 짝에 머리가 부서져 죽게 됨으로써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54). 하나님께서는 그의 형제들이 당한 폭력과 흘린 피를 기억하고 계십니다(24).
한편, 이 순간에도 70명의 아들 중 막내 요담은 살아남았습니다. 자기 형제들이 살해당할 때 가까스로 숨어, 다행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요담은 아비메렉의 정권이 붕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는 아비멜렉이 형제들을 잡는 중에 몸을 숨겼고, 5절에서 아비멜렉의 형제 70명이 죽었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요담 대신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종이나 다른 자가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세겜의 왕이 된 아비멜렉(6)
욕망의 노예가 된 자에게 사람은 존중에 대상이 아니라 자기 이해에 따라 얼마든지 이용하거나 제거될 수 있는 대상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통제되지 않는 지도자의 야망과 자기 욕망을 채워 줄 지도자를 거절하지 않고 따르는 맹목적인 추정은 위태로운 공생이고 공멸을 자초하는 길입니다.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의 멸망을 재촉하는 것입니다.
6세겜의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모여서 세겜에 있는 상수리나무 기둥 곁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으니라(6)
마침내 아비멜렉은 세겜의 왕이 됩니다. 그를 왕으로 추대한 자들은 세겜의 모든 사람들과 “밀로 모든 족속”입니다. ‘밀로 족속’은 직역하면 ‘밀로의 집’이므로 밀로 가문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세겜인들에 버금가는 권세가일 것입니다. 아니면 대부분의 번역본처럼 ‘벧밀로’라는 지명일 수 있습니다. 이들을 ‘세겜 망대 사람들’(46)과 동일한 집단으로 보기도 합니다.
한편, 왕을 세운 장소로 세겜의 상수리나무 기둥이 소개됩니다. 기둥은 ‘세워진 것’이란 뜻으로서 기념비나 기념물을 뜻합니다. 이곳은 세겜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장소였을 것입니다. 같은 곳인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세겜의 상수리나무는 아브라함(12:6-7)과 야곱(창 35:4)과 연관되어 등장했습니다. 특히, 오늘 왕을 세운 장소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갱신할 때 상수리나무 아래에 큰 돌을 세운 것을 상기시켜(수 24:25-26), 큰 대조를 이룹니다.
이렇게 아비멜렉은 이방 신전에 후원을 받아 자신의 형제 70명을 죽이고, 이방신을 섬기는 곳에서 이방 신 보호를 받으며 이스라엘의 최초 왕이 되었습니다. 아비멜렉이 왕이 되는 과정은 하나님이 철저히 무시되었고 오직 자기 욕망과 이방신만을 충실하게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아비멜렉의 모습은 아버지 기드온이 품고 있던 욕망을 실현한 것으로, 아버지의 부정적인 모습이 자식에게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력은 잘 사용되면 백성을 압제에서 구원하고 평화로 이끕니다. 하지만 통제되지 않은 권력은 폭력성을 드러내어 공동체를 위기로 몰아갑니다. 결국, 분별력과 올바른 시민 정신이 짐승을 통제하고 길들여 보호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 지혜와 통찰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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