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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25-02)


달란트 비유로 가르쳐 주신 예수님

마태복음 25장 14-30절


우리는 돈이 매우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 재능, 교육, 정성, 그리고 힘을 집중하여, 자신의 수익과 투자에 집중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천국 시민인 성도는 하나님 나라에 투자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땅 가운데 머물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재능, 시간, 열정 그리고 모든 것을 투자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주님 재림하신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디에 인생을 투자하면서 살았는가를 물으시는 때가 올 것입니다.

 

  • 본문은 예수님께서 비유하신 말씀으로 세 명의 종들에게 막대한 자본을 맡기고 타국으로 떠난 주인의 이야기입니다. 종들의 재능에 따라 차등해서 주인의 소유가 맡겨집니다. 두 종은 곧바로 가서 장사를 해 원금만큼 이윤을 남깁니다. 세 번째 종은 땅에 고이 묻어둡니다. 주인이 귀환하자 종들과 정산합니다. 원금만큼 이윤을 남긴 처음 두 종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습니다. 한편 세 번째 종은 원금을 그대로 돌려주었지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을 받습니다.

 

종들에게 경영을 맡기는 주인(14-15)

하나님 나라를 알고 경험한 은혜를, 크든 작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여 주의 나라를 섬기는 데 써야 합니다. 선물로 받은 것이니 겨루거나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인은 종들의 능력에 맞게 책임을 맡긴 비유를 하십니다.

 

14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14-15)

 

본 비유도 재림을 준비하는 하늘나라 백성이 기준으로 삼아야 할 삶의 원리를 가르칩니다. 이 세상에 임해 있는 하늘나라는 재림까지 예수님의 사명(책임)을 맡은 교회를 통해 확장해가는 나라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누가복음 19:12-13에는 ‘귀인’으로 표현됨)은 예수님을 가리키며 종들은 제자들을 가리킵니다(20:26-27).

그는 먼 길을 떠나면서 소유를 종들에게 맡깁니다. 주인이 자신의 종들에게 사명을 맡기는 장면은 24:45과 비슷합니다. 첫 번째 비유에서 ‘현명함’과 ‘신실함’을 좋은 종의 태도로 제시했으며, 열 처녀 비유(25:1-13)가 재림을 준비하는 것의 초점을 ‘현명함’에 맞췄다면 달란트 비유는 ‘신실함’을 강조합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임무와 책임을 맡기고 먼 길을 떠났다가 돌아와서 결산한다는 점에서 첫 번째 비유와 분위기가 비슷합니다. 첫 번째 비유가 집안일을 묘사하는 반면에 본 비유는 외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을 배경으로 합니다. 첫 번째 비유에서는 주인이 예상보다 일찍 왔지만, 세 번째 비유에서는 주인의 관점에서 보면 긴 시간, 충분한 기회를 주었습니다. 열 처녀 비유에서 어리석은 처녀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실제보다 쉽게 생각했지만, 달란트 비유에서 악한 종은 실제보다 더 힘들게 생각했습니다.

 

주인은 종들을 구분해서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어 사업을 할 수 있게 합니다. 본문의 달란트는 하늘나라를 섬기도록 주어진 ‘책임성’, ‘기회’에 가깝습니다. 종들은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하인들이 아니라 사업에 능한 전문가들입니다. 주인은 돈을 허비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이윤을 남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본 비유가 알레고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주인이 달란트를 맡긴 것은 성도들이 받은 책임이나 기회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주인은 세 사람에게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달란트를 나눠줍니다.

 

능력에 따라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백성이 맡는 책임이나 기회는 능력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늘나라를 위해 일을 하더라도 역량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기에,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이나 기회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적은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큰 책임을 맡기는 것은 무자비 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책임성의 크고 작음에 따라서 자기 백성을 차별해서 평가하지 않으십니다(21,23), 신자들은 책임이나 기회가 서로 다르다고 해서 그 자체로 좌절하거나 오만하게 굴지 말아야 합니다. 능력의 차이는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으며, 차별 의식을 갖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평가는 받은 책임이나 기회를 신실하게 사용했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자랑의 조건이 결코 되지 못합니다.

 

임무를 수행하는 종들(16-18)

하나님께서 판단하는 기준은 충성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였고, 은혜에 합당하게 반응하였는지를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장사든 뭐든지 상관없습니다. 얼마나 남겼는지도 상관없습니다. 더 많이 남겼다고 더 많이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얼마를 남겼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성실했는지로 평가했습니다.

 

16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16-18)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즉시 사업을 하러 나가서 자산을 배로 불렸습니다. ‘즉시’는 청지기의 태도를 강조합니다(16). 즉시 사업을 하러 나가는 첫 번째 종의 태도는 주인이 맡긴 임무를 진실하게, 수행하는 모습을 강조합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같이’ 즉 같은 방식으로 두 달란트의 재산을 배로 늘렸습니다(17). 두 번째 종도 즉시 장사하러 갔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모두 같은 비율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 돈을 전혀 활용하지 않고 땅을 파서 숨겼습니다(18). 달란트가 ‘돈’(문자적으로는 ‘은’)으로 표현된 것으로 볼 때, 달란트가 동전의 형태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맡긴 돈을 그대로 돌려달라고 요청한 것이 아니라 소득을 남기라고 지시했으므로 세 번째 종은 주인의 뜻을 어겼습니다. 세 번째 종이 달란트를 땅에 묻은 이유는 주인이 회계하는 장면에서 설명됩니다.

 

‘즉시’ 일하러 나간 두 종은 그만큼 하늘나라의 일에 대한 책임감이 컸습니다. 그러나 책임감이 전혀 없는 사람, 즉 하늘나라의 사업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은 종말의 나라에서 제외됩니다. 제자도는 실패의 위험이 있더라도 부여받은 기회를 사용하는 것입니다(참조 10:39; 16:25-26).

 

주인의 회계(19-30)

심판의 기준은 불충이고 무지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의 심판은 그가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냉정하고 비정한 주인으로 잘못 안 데서 기인합니다. 그러니 이미 받은 은혜를 은혜인 줄 모를 것이고, 자신의 삶 전체를 책임져주시는 주인을 신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19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19-30)

 

주인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돌아왔습니다. 오랜 시간은 주인이 충분한 시간, 충분한 기회를 종들에게 주고 나서 결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인은 자신의 것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사람이기에 결산을 시작합니다. 결산하는 장면에서(20-23) 첫 번째 종은 다섯 달란트를 가져와 재산을 배로 늘렸다고 보고합니다(20). 주인은 그 종에게 착하고 신실한 종이라고 칭찬하면서 많은 것을 종에게 맡깁니다.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는 보상을 내립니다. 주인이 종에게 작은 것에 신실했다고 말하지만, 종이 받은 다섯 달란트는 어마어마한 규모였습니다. 주인이 약속한 ‘네 주인의 기쁨’은 종말에 하나님의 백성이 누릴 기쁨을 의미합니다. 이어서 두 달란트를 받은 두 번째 종이 와서 주인에게 두 달란트를 더 남겼다고 보고합니다(22). 주인의 칭찬과 보상은 첫 번째 종에게 한 것과 같습니다(23).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주인을 엄한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종은 주인이 엄하므로 사업에서 실패했을 때 받게 될 평가가 두려워서 아무런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핑계합니다. 종은 주인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소득을 착취하는 사람으로 이해합니다. 그는 주인을 인격적으로 신뢰하지 않았고, 주인에 대해서 상당한 불만을 가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의 사명을 평가하는 기준은 신실함입니다. 모든 신자가 똑같은 능력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하늘나라의 일을 수행하는 기회나 책임이 동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책임의 크기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각자가 맡은 일을 신실하게 수행하는 선한 청지기로서 재림을 준비할 것을 원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의 성품(또는 예수님을 통해 반영된 하나님의 성품)은 세 번째 종의 말과 달리 엄하지도 않고, 성도들의 수고를 착취하는 것도 아닙니다. 한 달란트는 노동자의 20년 치,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는 각각 100년 치 임금과, 40년 치 임금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입니다. 주의 제자들이 하나님께 받은 기회와 책임은 매우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인은 이렇게 큰 책임을 맡기고도 최소한의 성과를 낸 행위에 대해서 ‘작은 것’에 신실했다고 칭찬합니다. 재림을 준비하는 기간은 은혜와 감사의 기회이지 무서움과 착취의 기간이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성품을 오해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의 사업에 관심이 없으며,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사명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주인이 오랜 후에 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까지 사람들에게 그 책임을 완수할 충분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위해 유용한 일을 했는지 물으실 때, 기회가 너무 적었거나 활동할 기간이 너무 짧았다고 변명할 수 없을 만큼 충분한 시간입니다. 신실함은 아무리 짧은 기간, 아무리 적은 기회가 주어지는 상황에서도 반드시 입증됩니다.

 

마지막으로, 재림 전까지 교회는 착한 종들과 악한 종들이 섞여 있으며, 나쁜 제자는 재림에 대한 긴장감이 없을 뿐 아니라 주인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따라서, 달란트 비유는 재림 때에는 선한 제자와 나쁜 제자가 분리될 것임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와 기회를 낭비하지 말고 충실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들은 바로 가서 장사해서 두 배나 되는 이윤을 남겼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과감하게 생명을 걸고 모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나중이 아니라 지금 최선을 다해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꼐서 보시기에 착하고 충성된 종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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