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24-03)
마지막을 준비하고 권고하신 예수님
마태복음 24장 36-51절
세상 물건 중에 일회용품이나 싼 제품들은 쉽게 망가집니다. 하지만 값비싼 명품은 오랫동안 사용해도 변하지 않고 원형을 잘 유지합니다. 그렇게 좋은 명품이라도 영원하진 않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헐리고 망가집니다. 하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이며, 이것을 증명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고 영원합니다.
- 본문은 재림의 시기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정확한 날과 때는 하나님을 제외한 모두의 무지 속에 숨겨집니다. 그것은 기다리는 자에게 모호함과 의심이 아닌 성실한 준비를 요구합니다. 기다리는 자에게 그 때는 부지불식간에 성큼 다가올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노아의 때가 교훈하듯 준비는 고사하고 무관심과 방종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재림의 시기(36-41)
아무도 모르는 일을 알아내려는 것은 매우 무모한 행동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즉 세상 끝나는 시기는 하나님만 아시고 아무도 모르며, 심지어 예수님까지도 모르십니다. 하물며 우리가 그때를 알아내려고 하는 것은 더욱 무의미한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제자들의 자세를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36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36-44)
앞에 예수님께서 임박한 재림을 강조하신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번에는 재림의 시기는 알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임하실 것이기 때문에 항상 때어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면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때는 마치 노아의 때와 같습니다.
(1) 그 때를 알지 못함(36)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마지막이 언제 일지는 ‘그 날과 시간에 대해’ 성부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날과 시간’은 인자가 오는 때를 말합니다. ‘그 날과 시간’, 곧 역사의 끝에 예수님께서는 천사들과 함께 오시는데, 천사들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그 때를 알지 못합니다.
본문은 성자의 자발적인 낮추심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들이 지상에 계시는 동안 그 때를 모르기 때문에, 성부 외에는 어떤 누구도, 천사들이라 할지라도 알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돌로 빵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신 것처럼, 자신은 능력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에 교회가 종말에 대한 무분별한 자식을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도록 의도하십니다. 재림의 시기에 대해 예수님께서 스스로 제한하신 겸손은 교회로 하여금 그 시기에 대한 사람들의 오만과 거짓에 미혹되지 않도록 합니다.
(2) 그 때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동과 운명(37-41)
본문은 인자가 오실 때 세상에 일어날 모습을 설명합니다. 노아 시대 실제로 일어난 일(37-39)은 심판이 임했을 때, 한 가족 또는 동료 가운데서도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을 설명합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결혼하는 일상의 일에 매여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홍수가 쓸어버리는 순간까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재림도 특별한 전조를 전달하고 나서 오는 사건이 아니기에, 그때도 세상의 분위기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재림은 모든 사람들이 홍수를 경험했던 것처럼 공개적인 사건이 될 것이지만(27), 일상생활을 하고 있을 때 일어날 것입니다.
40-41절은 심판의 때가 예상하지 못한 때에 임하고, 그 결과로 운명이 갈라진다는 점을 다른 예로 설명합니다. 함께 일하는 가족이라 할지라도 심판의 때를 알지 못할 운명이 달라집니다. 밭에서 함께 일하는 ‘둘’은 아버지와 아들, 형과 동생일 수 있습니다(41). 함께 맷돌을 돌리는 두 여자는 어머니와 딸, 자매일 것입니다(42). 심판의 날이 이르면 한 사람은 데려감을 겪고 다른 한 사람은 남겨지게 됩니다.
(3) 그 때를 알지 못하는 제자들의 태도(42-44)
앞에서 심판의 날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일반’ 사람들의 운명을 언급하신 에수님께서는 42-44절에서 재림의 시기를 알지 못하는 제자들 또는 교회가 취해야 할 삶의 태도를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크게 ‘깨어 있으라’와 ‘준비하라’로 요약할 수 있으며, 이 명령을 지원하기 위해 도둑에 대한 비유가 들어가 있습니다.
42-44절의 구조를 보면, 주께서 오시는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깨어 있음과 준비는 도둑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집주인이 깨어 있다는 것과 도둑의 침입을 준비(대비)할 것이라는 당연한, 즉 제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논리로 표현됩니다. 여기서 ‘깨어 있는 것’과 ‘준비하는 것’은 동일한 의미입니다. 제자는 신실한 청지기로서 재림의 시기를 추측하는 데 집중하거나 그 시간을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신실하고 현명한 종과 악한 종의 비유(45-51)
도둑이 올 때를 미리 알 수 없습니다. 그때를 예측하는 것이 무모하듯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시간도 알 수 없습니다. 도둑을 맞닥뜨리는 방법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재림하실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현명한 종이라면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맡겨준 일에 대해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45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8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45-51)
이 비유는 45절의 질문 형식으로 시작합니다. ‘주인의 적합한 때에 음식을 제공하도록 집에 있는 종들을 맡겨 놓은 신실하고 현명한 종은 누구입니까?’ 주인이 와서 베푸는 보상을 받게(46-47) 될 종은 주인이 올 때 변함없이 행하고 있기 때문에 ‘신실하며’ 적합한 때에 양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현명합니다.’
주인의 집, 곧 하나님의 집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교회의 지도자가 일반적으로 가장 큰 책임을 맡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도자들에게만 본 비유를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연속되는 세 가지 비유에서 ‘준비를 하라’는 가르침은 지도자들보다는 교회를 향하고 있습니다. 종은 성도들(참조 롬 1:1; 갈 1:10), 집의 동료 종들로서, 신실하고 현명한 사람들은 동료를 섬기는 사람입니다. 음식을 나눠주는 장면은 시편 104:27과 145:15과 비슷한데, 이 시편들에서 적합한 때에 음식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인 반면, 비유의 주인은 종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겠습니다. 종이 적합한 때에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성도로서 동료를 위해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 이제 그렇게 행하는 것을 주인이 본 종은 복됩니다.
악한 종은 주인이 오려면 오래 걸릴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신의 동료 종들을 때리고 술친구들과 먹고 마시며 지냈습니다(49). 여기서 원어 ‘크로니조’는 ‘시간이 걸리다’의 의미뿐만 아니라 ‘오지 않는다’의 뜻도 포함합니다. 종은 주인이 지금까지 오지 않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도 오지 않을 줄로 오판했을 수 있습니다. 한편, 종은 주인이 맡긴 일을 책임졌으므로 공동체의 내부자입니다.
주인은 악한 종이 예상하지 않은 날과 종이 알지 못하는 기간에, 즉 종이 예상한 때보다 더 일찍 왔습니다(50). 주인의 심판은 종을 산산조각 내는 것입니다(51). 그런데 악한 종은 위선자로 불립니다(참조 눅 12:46). 마테복음에서 사용된 위선을 범주화해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속과 다르게 겉모습을 보이는 것(6:2,5,16; 7:5; 22:18; 23:25,27),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착각하고는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서 파멸에 이르게 만드는 자기기만(23:13), 가르치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태도(23:23,29)가 됩니다.
51절의 위선은 셋째에 해당합니다. 23장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행위를 재판하고 율법에 따라 순종할 것을 가르치고 설교했지만, 자신들은 실행하지 않았던 것처럼, 주인의 뜻을 알고도 실행하지 않은 악한 종은 유대 지도자들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위선자들이 던져지는 곳은 바깥 어두운 곳, 지옥이며, 종은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51b; 8:12; 13:42,50; 15:30; 22:13).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곳(마 8:12; 13:42,50; 22:13; 24:51; 25:30)은 최후 심판에서 벌어질 예상 밖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바깥 어두운 곳’(마 8:12; 22:13; 25:30)이 붙은 세 본문은 모두 하늘나라의 잔치가 벌어지는 ‘밝은’, ‘안쪽’의 이미지와 대조되는 어두운 지옥(게헨나)을 묘사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에 속한 것으로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연속되는 세 비유 중에서 첫 번째 비유(45-51)의 내용과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인을 대신해서 동료 종들과 집을 책임 맡은 종들이 책임을 수행해야 하는 시기는 주인의 부재 기간으로, 이 기간은 교회가 예수님의 명령을 받은 이후부터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들이 청지기 역할을 하도록 의도하셨고(창 1:26-28), 이 기간에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통해 회복된 청지기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최후 심판에서 보상하고 벌하시는 기준은 청지기적 삶입니다. 형제와 자매를 향한 긍휼이 청지기적 삶의 핵심입니다(25:31-46). 청지기적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은 최종적인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재림이 없다면 이런 행위를 일삼는 명목상 그리스도인들의 신실하지 못함과 어리석음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기에, ‘지연’은 거짓 신앙인들의 삶을 드러내는 수단입니다. 책임을 연기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최후 심판의 때가 예상보다 빨리 이르러 회개할 기회를 박탈당합니다. 회개할 시간이 없을 뿐 아니라 회개할 마음도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재림이 있기 때문에 가짜 믿음과 참 믿음이 드러납니다.
항상 인자의 오심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도둑이 예고 없이 들어닥치는 것처럼, 주님도 생각하지 않을 때에 오실 것입니다. 따라서 때를 알려고 하기보다 날마다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가 마치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인 것처럼 여기며 거룩하고 치열하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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