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10-03)
제자들이 세상을 살아갈 자세
마태복음 10장 24-33절
세상에는 많은 법칙과 규칙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전쟁터에서 장군을 사병들이 자기 몸보다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장군은 그 군대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법칙과는 반대로 실천하셨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보호 받기보다 제자들을 위해서 먼저 어려움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희생의 법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핍박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가르치고 있습니다. 24-25절은 본 단락의 서론으로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설정하고, 26-31절은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32-33절은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한 종말의 결산을 묘사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24-25)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분이 걸어가신 길을 제자들도 걷는다는 의미입니다. 영광의 길이든 고난의 길이든 상관하지 않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스승보다 더 잘 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항상 스승을 닮고자 하는 마음은 품어야 합니다. 매 순간 제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24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24-25)
예수님께서는 22-23절에서 파송을 받은 제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고 도망 다니는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예고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왜 제자들이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 미움을 받는 이유와 근거를 설명하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핍박을 대해야 할 것인지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와 스승’ 그리고 ‘종과 상전’을 대조하는 격언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스승보다 높지 않고, 제자가 스승만 하다면 금상첨화라는 취지로 말씀하십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익숙한 스승 랍비와 제자 문하생의 관계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종과 상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랍비와 제자와의 관계를 주종관계로 이해하기도 했으니 이 두 비유는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는 대부분 촌부인 열두 명을 제자로 부르셨고, 일꾼으로 파송하십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또 종이 주인보다 높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자와 종은 스승과 주인을 적극적으로 따르며 그 뜻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 목적은 스승처럼 되기 위해서입니다.
특별히 제자는 스승의 모든 것을 닮기를 애써야 합니다. 가르침은 물론이거니와 성품과 삶의 방식까지 닮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스승은 그 목적을 가지고 제자를 선택합니다. 열두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스승이자 주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운명을 따르는 제자이며, 예수님께서 이루시려는 하늘나라의 일꾼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그들이 자신을 닮아 하늘나라 사역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자신처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태복음에서 나타난 ‘제자도’의 핵심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자신의 권능을 주심도 그런 차원에서입니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집 주인과 그 집 사람들의 비유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특별히 집주인을 ‘바알세불’로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스스로 바알세불로 비유하신 것이 아니라, 앞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대적하여 언급했던 표현입니다(9:34). 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바알세불)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하고 폄훼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바알세불’이라 배척당하며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스승이자 주인인 예수님께서 그렇게 당하셨다면, 그를 따르는 제자와 종 역시 당연히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현재 문맥이 제자들을 향한 세상의 박해를 다루고 있기 떄문에 예수님께서는 지금 박해자들이 받는 고난을 제자들 역시 받을 것을 강조하십니다(요 12:20). ‘집주인’인 예수님꼐서 박해당하니 그 ‘집에 속한 사람들’이야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기서 ‘집주인’과 ‘집사람들’의 설명을 덧붙인 것은 언어유희를 의도하셨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바알세불’이 히브리어로 ‘제불(집)’과 베엘(주인)의 합성어로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사탄을 가리키는 바알세불로 불렀기 때문에, 제자들도 더 낫게 불릴 것이라고 기대할 여지는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반복해서 강조하시는 점은 예수(보내시는 분)와 제자들(보냄 받는 자들)의 관계와 권위입니다. 특히 마태는 ‘-처럼 되다’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제자들의 소망이 예수님처럼 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제자는 스승과 존재론적으로는 구분되지만, 스승처럼 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그분을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길에는 당연히 예수님께서는 겪으신 어려움이 올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닮아가는 삶, 이런 과정에서 예수님과 깊은 사귐을 갖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복됩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가진 예수님이 바알세불(귀신의 왕)이라는 조롱을 받았다면, 그 권능을 거저 받은 제자들 역시 그런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복음 때문에 당한 비난이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실패로 여기지도 말아야 합니다. 도리어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했으니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26-31)
예수님께서는 제한적으로 은밀하게 복음을 증거 하셨지만,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드러나고 알려질 것입니다. 자기 목숨보다 순종을 더 귀하게 여기고, 자기 명예보다 그리스도의 명예를 더 존중하며 땅보다 하늘에 재물을 쌓고 소망을 두는 사람을 예수님도 심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사랑한 자’로 인정해주실 것입니다.
26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26-31)
파송 받은 제자들이 가혹하고 적대 적인 대접과 핍박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고를 하신 예수님께서는, 26-31절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보살핌을 언급하심으로써 위험에 빠질 제자들을 위로하십니다. 본 단락에는 세 번에 걸쳐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이 나옵니다(10:26,28,31). 각각의 명령에 이어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제시됩니ㅂ.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드러내실 것이기 때문에(10:26-27), 미래에 육체와 영혼을 모두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28), 하나님께서는 현재 주권적으로 보살피시기 때문에(20:29-31) 제자들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컨대, 제자들은 세 가지로 논증되는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1) 드러내시는 능력, 2) 심판하시는 능력, 3) 돌보시는 능력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숨겨진 것을 드러내시므로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26-27). 제자들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그들’은 핍박하는 자들입니다ㅂ. 사람들은 진리를 억압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메신저들을 핍박할 것이지만, 마지막 날에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행위를 드러내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들이 비밀리에 들은 내용을 모두에게 선포하라고 명령하십니다(27). 27절은 숨겨진 것이 드러난다는 맥락에서 앞절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하늘나라의 비밀은 하늘에 숨겨진 비밀이었고, 이제 예수님을 통해 계시 됐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에서 은밀하게 시작됐으므로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야 합니다. 제자들은 하늘에 감춰졌으나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내기 위해 드러난 예수님의 오심과 하늘나라 복음을 공개적으로 전파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1:21-23; 4:17; 10:7-8). 제자들의 존재 목적은 하늘나라의 비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시작하신 하늘나라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은밀히 말씀하신 것을 제자들은 전파해야 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은밀하게 오고간 대화, 그 속에 감춰진 예수의 말씀은 복음서 기복과 전파를 통해서 알려지게 됐습니다. 공적인 선포는 공에다 대고 비밀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 비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며 28:20의 명령처럼 모든 민족을 향해 전파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과 인간의 능력 차이가 있으므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28). 제자들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몸을 죽이지만 영혼을 죽일 능력이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몸을 지옥에서 멸하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해야 합니다(참조, 눅 12:45), 오직 하나님만이 몸과 영혼 모두를 멸하실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돌보시므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29-31).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에서 활동하고 제자들을 특별하게 돌봐주는 아버지라는 사실을 설명하실 때,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전개하는 방식을 따라서 참새를 예로 들어 설명하십니다. 참새 한마리는 1/32데나리온(하루 품삯이 1데나리온)의 값이 칩니다. 매우 싼 참새 한 마리도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새의 이야기를 사용해서 하나님께서 땅에서 벌어지는 일에 현재적으로 개입하시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너희 아버지’(5:16,45-46)는 제자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특징을 강조하는 표현으로서 가족 언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을 친밀하게 돌보는 아버지이십니다. 제자들의 운명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있으며, 하나님의 손과 돌보심, 곧 섭리 가운데 있습니다ㅂ. 또한 제자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은 제자들의 머리카락 수를 다 알고 계십니다(30). 머리카락의 수를 세는 일은 어떤 사람의 머리에 집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참새 한 마리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에 비해서 머리카락 한 가닥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당사자 자신도 감지하지 못하게 일어나므로, 하나님은 제자들이 느낄 수 없는 부분까지도 알고 계시며, 그만큼 친밀하게 돌보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30절의 핵심은 제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앎,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제자들이 핍박을 받고 죽음에 이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을 잘 알고 계시고 불쌍히 여기며 보호하십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인생의 불행처럼 느껴지는 일들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 가운데 일어난 일이므로, 그 순간도 하나님이 보살피고 계신다는 사실을 신뢰해야 합니다.
제자들의 행위에 대한 종말의 결과(32-33)
세상 두려움을 이기려면 하나님을 향한 참된 두려움을 품어야 합니다.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요,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입니다. 진짜 두려움이 들어올 때, 거짓 두려움은 힘을 잃습니다. 모든 두려움이 자기 자리로 돌아갑니다.
32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32-33)
본문은 하늘 법정의 장면과 땅의 장면을 대조합니다. 하늘 의회 또는 하늘궁정이 종말에는 최후 심판을 집행하는 법정의 기능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하늘 법정을 암시하는 표현은 법정 용어와 전치사 ‘앞’입니다. 이 전치사는 하늘 법정에서 재판관과 하늘의회 구성원들 사이의 위치를 알려 주는 표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참조, 25:32, 다니엘 7:13). 다시 말해서, ‘앞’은 ‘하나님 앞에서’를 뜻하는 코람데오 정신을 떠올립니다. ‘지인하다’와 ‘부인하다’는 법정 용어들이며, 전치사 ‘앞’과 함께 결합돼 하늘(법정)과 지상(법정)을 대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두를 향한 내용으로 확대하기 위해서, ‘누구든지’를 사용하십니다. 32-33절에는 경고의 분위기가 담겨 있습니다. 32-3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땅에서의 행위와 하늘 법정에서의 반응을 대조하며 종말론적인 시각으로, 현재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도록 가르치십니다. 모든 인간은 이 땅에서 행한 것에 대해서 하늘 법정에서 결산을 받게 됩니다. 이 사실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느냐에 따라 이 땅에서의 경외심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시고 귀히 여기십니다. 그분은 크고 두려운 분이지만, 동시에 세밀하고 부드러운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크고 중요한 문제들 뿐 아니라 자꾸 사소한 일에도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혹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자가 되기로 결단하기는 쉬워도, 끝까지 제자의 삶을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매 순간 자신이 주님의 제자임을 기억하고, 참 두려움으로 거짓 두려움을 이기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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