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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4-03)

 


물 위에서 걸어오신 예수님

마태복음 14장 22-36절


오병이어는 광야에 하늘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지만,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던 상태처럼,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와 아직은 완성되지 않는 하나님 나라 사이에 있는 나라가 광야에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왕으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 사이에 있는 우리 시대가 광야의 시대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했지만, 악의 혼돈이 넘치는 시대가 우리 시대입니다.

 

  • 오병이어 기적 후 예수님께서는 급히 제자들과 무리를 바다 건너편으로 돌려보내십니다. 그리고 홀로 산에 롤라가 기도하십니다. 배로 바다를 건너던 제자들이 새벽에 큰 풍랑을 만나 곤란에 빠졌고, 예수님께서는 물 위로 걸어 제자들이 처음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8:23-27의 사건과 비슷한 상황에서 제자들은 구약의 하나님만이 보이실 수 있는 모습을 예수님을 통해 목격하십니다. 이어지는 34-36절은 예수님의 치유 사역이 미치는 범위를 묘사합니다.

 

물 위에서 만난 하나님의 아들(22-33)

예수님의 삶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 본이 됩니다. 우리들도 사람들과 함께 머물며 일하고 사역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사람들과는 따로 떨어져 홀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기도하는 사람은 바른 방향을 향해 걸어갈 수 있습니다. 홀로 하나님과 기도하는 사람이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영적인 풍성함을 나눌 수 있습니다.

 

22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4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5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8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22-33)

 

앞에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인 사건을 보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새로운 광야 시대를 볼 수 있습니다.

 

(1) 제자들과 무리를 보내심(2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십니다(22). 제자들이 가는 동안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서둘러 무리와 자신과 제자들을 분리하는 장면은 빵을 먹은 무리가 예수님을 정치적-민족적 메시아로 오해하고 기대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참조, 요 6:14-15).

 

(2) 산에 올라 홀로 기도하심(23)

 

또한 제자들도 현장에 무리와 함께 머물러 있었다면 무리와 같은 기대를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러 홀로 산에 올라가십니다(23). 마태는 예수님께서 기도하러 산에 오르셨다고 설명합니다(26:36-42; 참조, 막 1:35; 눅 5:16; 6:12; 9:18). 예수님께서는 서서히 기도로 고난의 길을 준비하시는 것 같습니다.

 

(3) 풍랑으로 고생하는 제자들(24)

 

배는 이미 육지에서 떠나 바다 깊은 곳에 이릅니다. 바람 또는 폭풍이 제자들의 배를 향해 불어와 파도가 배에 강하게 부딪쳤습니다.

 

(4) 물 위로 걷어오신 예수님(25-27)

 

제자들이 파도를 맞으며 목숨을 위협받고 있던 밤 사경(로마의 시간대에서 오전 3시부터 6시까지)에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오십니다. 구약에서 새벽 시간은 두려움의 시간이지만(시 91:5; 107:10-12),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돕기 위해 개입을 하시는 때입니다(출 14:24; 시 46:3-5; 사 17:14). 이 시간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오신 때이므로 아침이 밝기 전 이른 새벽 시간에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오신 모습은 예수님의 구원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시는 목적은 제자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으십니다. 바다를 잠잠하게 하시는 하나님(예, 시 65:7;89:9-10; 107:29; 욘 1:15; 전 3:23)은 물 위 또는 바다를 걸으시고(욥 9:8) 지나가십니다(출 14:20-21; 사 43:16; 51:9-10; 참조 창 1:1-2; 욥 38:16; 시 77:19).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바다를 거든 모습을 바다를 지배하는 하나님의 권능을 갖고 계신 사실을 의미하며, 바다를 걸어오시는 목적은 제자들을 구출하기 위함입니다. 제자들의 힘으로는 바다의 파도를 극복할 수 없고, 오직 예수님만이 구약의 하나님의 권위로 이 위기에서 제자들을 구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른 새벽의 안개와 으스스한 분위기에서 제자들은 물 위를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물체를 보고 유령으로 오인했을 것입니다. 공포에 빠진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즉시, 반응하신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마태는 이 부사를 문장의 맨 처음에 배치합니다.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은 ‘안심하라’입니다(참조. 9:2).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 제자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나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권위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므로(임마누엘) 제자들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자들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임재(임마누엘)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목적은 그들을 구출하시는 것입니다.

 

(5) 물 위를 걷는 베드로(28-29)

 

베드로는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자신을 명령해서 물 위로 오도록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베드로는 11장 28절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을 떠올렸을 수 있습니다.

배 안에서 공포에 떨던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오라’고 하십니다.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물 위를 걷게 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한 베드로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경험을 합니다. 하나님만이 물 위를 걸으시는 존재이기에, 말씀을 믿은 베드로는 성경에서 인간으로서는 처음으로 물 위를 걷습니다.

 

(6) 물에 빠져가는 베드로(30-31)

 

자신을 덮칠 것 같았던 파도를 예수님처럼 밟고 서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부는 것을 본 베드로는 두려워했습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오라!’고 하신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고 바람에 압도당할 때 물에 빠져듭니다.

베드로는 ‘주여 구원하소서’라고 외칩니다. 예수님께서는 즉시 손을 뻗어 베드로를 붙잡아 구원해주십니다(참조, 삼하 15:5). 마태는 31절에서 ‘즉’를 문장의 맨 앞에 배치함으로써 예수님의 즉각적인 반응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손을 붙잡고 나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라고 꾸짖으십니다.

베드로는 믿음이 작은 상태에서 구출 받았습니다. 베드로의 믿음이 책망을 받아야 할 정도지만, 예수님께서는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제자의 손을 급히 잡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작아 물에 빠져드는 베드로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구원하신 다음에 믿음이 작았던 문제를 지적하시고 믿음이 큰 사람이 되기를, 즉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7)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30-31)

 

풍랑은 예수님의 책망으로(8:27) 그친 것이 아니라,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실 때 풍랑이 멈춥니다. 예수님께서 배 안으로 들어오시는 장면은 임마누엘의 주제를 드러냅니다. 즉 예수님께서 구원하시는 방법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함께하심이 베드로와 제자들에게는 곧 구원입니다. 베드로가 구원받는 장면을 포함해서 이제까지 일어난 모든 사건을 겪은 배 안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경배하면서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합니다.

마태복음에서 하나님의 아들(참조 3:17; 16:16; 17:5; 27:54)이라는 칭호가 하나님(3:17), 귀신들(4:3,6; 8:29), 저자의 설명(2:15) 이후 처음으로 제자들의 입에서 나옵니다. 14:22-33과 8:18-27은 갈릴리 바다가 주는 공포 속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권위를 목격한 사건입니다, 8:27에서 예수님의 행위에 충격을 받은 제자들은 이후에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를 듣고 목격하면서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통해서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됐을 것입니다. 앞 사건에서 광풍을 제압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8:27)라고 했던 제자들의 고백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14:33)로 발전합니다. 제자들의 신앙은 예수님을 경험하면서 더 깊어집니다(8:27 → 14:33 → 16:16).

 

본문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처음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에 중요합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구출하는 분이다! 베드로는 실패한 상태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실패해서 물에 빠질 때 구원을 외칠 수 있는 대상은 예수님뿐입니다. 교회는 구원을 외치고 즉시 예수님께서는 구원으로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물에 빠져드는 제자는 절박한 상황에서 외칠 수 있습니다. ‘주여, 구원하소서!’ 예수님께서는 큰 믿음을 원하십니다. 큰 믿음은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 말라!’는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은 평화로운 상태가 아니라 마치 예수님께서는 멀리 계시고 인생과 신앙의 배가 뒤집힐 것 같은 상황에서 나왔습니다. 두려움의 바다는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장소이며, 밤 사경은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만나는 때입니다. 셋째는, 광야에서 빵을 먹고 바다에서 구원을 받은 장면은 출애굽 사건과 연결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출애굽을 가져오진 분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바다에서 구원받고 광야에서 빵을 먹는 사건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한 것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으로 새 출애굽을 행하십니다.

 

게네사렛에서의 치유(34-36)

사람들은 수많은 질병으로 고통을 당할 뿐만 아니라 영적인 존재이기에 영적인 갈급함으로 참 만족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것 같지만 모든 것을 풍요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계신 곳은 풍요가 넘칩니다. 부족함이나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래서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갈급함도 채워집니다.

 

34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35그 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36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34-36)

 

이 단락은 예수님의 사역이 어느 범위까지 확장됐는지를 요약합니다(4:23-25; 8:16; 9:35-36). 예수님 일행은 게네사렛 땅에 도착했습니다. 게네사렛 호수는 갈릴리 바다의 다른 이름이며(누가복음 5:1). 게네사렛은 구체적으로 갈릴리 해변의 북서쪽에, 가버나움에서 남서쪽으로 약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비옥한 평야 지대로 갈릴리 지역에서 가장 남쪽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서 모든 병든 자를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은 목적은 가르침보다는 치유였습니다. 무리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게 된다고 믿은 것은 혈루증 여인의 사건 때문일 것입니다(9:21). 마태는 만지는 것을 치유 내러티브에서 핵심적인 동작으로 묘사합니다(8:3,15; 9:20,21,29; 20:34).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아픔을 낫게 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게네사렛에서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모든 사람을 치유하셨습니다. 그들은 이미 소문을 들어서 예수님의 명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근방 모든 병자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도 병이 나을 수 있다고 믿었고 믿음대로 손을 대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믿음이 미신적이고 천박하다고 박대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들은 만큼 믿었고, 믿은 만큼 자신들의 맡겼고, 결과를 받았습니다. 제자들보다 서기관들보다 지식적으로 떨어지지만 절박함과 단순함으로 순종의 길을가는 일에는 절대 뒤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베드로처럼 흔들리는 절반의 믿음이 아니라 게네사렛 무리들처럼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낫는다는 그 단순한 믿음이 우리 삶을 회복시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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