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07-01)
한낱 바람에 불과한 인생
욥기 7장 1-21절
사람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의 생활과 다양한 경험의 모든 것 즉 일생을 가리켜서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생의 가치와 목적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나름대로 견해를 갖는 것을 인생관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낙관주의나 비관주의라고 그리고 현실주의, 이상주의 등으로 나누어 말하기도 합니다. 당신은 어떤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가십니까?
욥기 6장의 욥의 말이 엘리바스를 비롯한 친구들의 규범적 지혜를 겨냥한 것이라면 7장은 다시 3장과 연결되는 탄식과 탄원입니다. 인과응보의 원리에 대한 비판적 발언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인생의 고통이라는 깨달음과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토로하는 욥의 탄식이 주를 이룹니다. 욥은 크신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작은 인간의 삶에 일일이 관여하시느냐고 항변한다.
하루는 길고 인생은 짧다(1-10)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알고 있는 욥에게 소망이라는 단어는 도저히 붙잡을 수 없는 단어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소망과 희망을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에 남겨진 희망이 헛된 희망일 수밖에 없는 것은 죄인인 우리에게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욥은 이제 희망 없는 자신의 삶에 대한 탄식을 하나님께 쏟아 놓고 있습니다.
1이 땅에 사는 인생에게 힘든 노동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그의 날이 품꾼의 날과 같지 아니하겠느냐 2종은 저녁 그늘을 몹시 바라고 품꾼은 그의 삯을 기다리나니 3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4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까, 언제나 밤이 갈까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 5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덩이가 의복처럼 입혀졌고 내 피부는 굳어졌다가 터지는구나 6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희망 없이 보내는구나 7내 생명이 한낱 바람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하리이다 8나를 본 자의 눈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9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스올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10그는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고 자기 처소도 다시 그를 알지 못하리이다(1-10)
욥의 질병은 피부 질환입니다(2:7-8).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온몸을 질그릇 조각으로 긁어야 할 정도로 심한 질병이었습니다. 질병은 ‘관계적’입니다. 개인적인 고난과 질병에서 시작된 욥의 탄식은 인간 전체의 고난으로 시야를 확장합니다.
본문에서 욥은 고통을 삶의 대가로 지불받는 임금으로 표현합니다. 보통 힘든 노동이나 고역도 무한히 연장되지 않고 정해진 때에만 고통을 겪습니다. 그래서 하루 끝에 작은 위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즉 급료를 받는 노동자에 인생을 비유하면서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의 노동이라면 그 노동에 합당한 급료를 받아야 하는데, 욥 자신에게는 “여러 달째 고통”과 “고달픈 밤(들)”(3)이 할당된 몫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욥 고통스런 하루 일과가 끝나면 뭔가 좋은 일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욥의 밤에는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2). 욥의 진술의 특징이자 강점은 인생에 대한 일반적인 진술과 개인적인 경험을 연결 시키는 것에 있습니다.
엘리바스가 “내가 보건대”(4:8)라는 표현과 “환상”과 같은 신비한 체험을 통해 개인적인 생각을 진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엘리바스가 말하는 내용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한정되는 개인적 체험이 아닙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일반론이 모든 인간과 모든 현상에게 적용된다는 규범적 지혜는 개별적 예외들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엘리바스의 지혜가 ‘개인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지혜는 빌닷이나 소발의 지혜와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반면에 욥은 자신의 인생에서 인과응보의 원리가 무너지는 고통스런 ‘개인적 체험’을 겪고, 여기에서부터 타인과 다른 이들의 고통으로 나아갑니다. 규범에 대한 예외가 있을 수 있고, 사실 그 예외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생에서 겪는 현실이기에 욥기를 읽는 독자들의 공감도 자아냅니다. 걱정과 근심으로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4)하는 “고달픈 밤”(3)을 보내본 누구나 욥의 심정이 어떠할지 헤아리게 됩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을 자는 기본적인 원리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원리이고, 한 사람의 인생에서도 대부분의 세월을 그 원리에 따라 보내겠지만, 그 원리가 깨어진 경험, 즉, 밤에 잠 못 들어 괴로운 경험 역시 대부분 사람에게 일어납니다.
5절에 욥이 맞이하는 고통스런 밤의 풍경이 그려집니다. 살에는 구더기와 흙덩이가 의복처럼 덮여 있고, 피부는 굳어졌다가 터집니다. 피부 악창으로 고통을 겪으며 밤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욥의 탄식 속에 시간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교차합니다. 고통을 견디는 시간은 매우 더디게 가는 반면(4), 한 사람의 인생 전체는 한낱 바람이 부는 것같이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입니다(6-9). 잠자리에 누우면 “언제나 밤이 갈까”(4)를 생각하는 불면의 밤의 시간은 무척 느리게 갑니다. 그러나 동시에 삶 전체는 마치 “베틀의 북보다 빠르고”(6) “한낱 바람”과 같이 스쳐 지나가는 것입니다(7). 욥기는 전도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크심과 인간의 작음을 대비하며 한 인간의 삶이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무죄한 자에게 임하는 고통’(innocent suffering)이라는 개인적이고 예외적인 경우를 통해 규범적 지혜를 비판하는 미시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통의 시간을 겪는 인간에게 그 시간이 얼마나 느리게 가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7-10절은 탄식 중에 드리는 욥의 기도문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2인칭으로 나옵니다. 7절에서 욥은 자신의 생명이 한낱 바람 같음을 생각하고 자신을 구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자신이 죽으면 자신을 본 사람들이 다시는 자신을 보지 못할 것이고 하나님의 눈이 자신을 향할지라도 자신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8). 구름이 사라져 없어지듯이 스올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생명의 땅으로 올라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9). 죽은 자는 다시 생전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돌아가더라도 그 처소가 자기를 모를 것이라고 합니다(10).
하나님을 향한 탄식(11-21)
무한하신 하나님과 동행할 수만 있다면 짧은 우리의 인생도 영원한 삶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짧은 인생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이 다 가기 전에 우리 자신의 유한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11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 12내가 바다니이까 바다 괴물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13혹시 내가 말하기를 내 잠자리가 나를 위로하고 내 침상이 내 수심을 풀리라 할 때에 14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라게 하시고 환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 15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16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 17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18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19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20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21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거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애써 찾으실지라도 내가 남아 있지 아니하리이다(11-21)
11절은 욥이 불평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괴로움 때문에 입을 다물 수 없다고 합니다. 자신이 마치 하나님께서 무찌르셔야 하는 바다 괴물이나 된 듯이 감시하신다고 하소연합니다(12).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꿈과 환상으로 자신을 놀라게 하고 두렵게도 하시는 분입니다(13-14). 그러니 차리라 질식사라도 당하고 싶다면서 괴로움을 토로합니다(15). 자신이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니 제발 죽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16).
17절에서는 시편 8:4이 생각납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니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지나치게 자신을 감시하고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시는 것에 질려하는 심정을 토로하기 위해 이 표현을 사용합니다. 자신에게 그만 신경 쓰고 놔달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그런 과한 관심을 받을 만큼 대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크게 하여 마음을 두시기 때문에 아침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신다고 보고 있습니다(18). 잠시도 가만두지 않으십니다. 침 삼킬 만큼 짧은 순간도 놓아주시지 않습니다(19). 욥은 설령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께 무슨 그렇게 대단한 손해를 주길래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하소연합니다(20). “어찌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21절에서 욥은 자신의 허물을 고백합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거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렇다고 해서 드디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이 고난의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설령 자신이 허물을 범했다고 해도 왜 그것을 용서하거나 제거하지 않고 응징하느냐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애써 찾으실지라도 내가 남아 있지 아니하리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죽어 흙이 될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도 못 찾을 만큼 하찮은 존재가 될 것인데, 왜 이렇게까지 집착하시느냐는 뜻입니다.
정리해보면, 이 장에서 욥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둬 달라는 마음을 ‘사라짐’으로 표현합니다. 욥의 고통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수직적 차원과 사람들에게서 오는 수평적 차원이 있습니다. 그처럼 사라짐 역시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사라짐과 하나님으로부터 사라짐이라는 두 가지 차원으로 나타납니다. 인생은 바람과 같고(7) 입김과 같이 짧은 것이라서(16) 빨리 지나가야 하는데, “뼈를 깎는 고통”으로 점철된 인생은 그 짧은 순간인 인생마저 너무 길게 느껴지고, 더 빨리 그 고통스런 삶을 끝내고 싶다는 마음이 표현됩니다(15). 이런 삶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16). 욥은 하나님께 자신을 놓아달라고,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그만 죽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15-16). 영원하시고 무한한 하나님 앞에 입김과 같은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한 인간의 행위가 그 커다란 하나님께 어떤 영향을 미칠 리는 없습니다(20, 엘리후 35:6-7). 그렇게 크신 하나님께서 미천한 인간 하나의 잘잘못에 일일이 관여하셔서 작은 잘못 하나에도 벌을 내리실 필요가 있느냐고 항변합니다(17-20). 죄가 있다면 없애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일 터인데, 왜 하나님께서는 욥을 표적으로 삼아 고통스럽게 하시는 것이냐고 토로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욥의 외침이 하나님께 대한 불경한 발언으로 여겨지겠지만, 욥과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소리치는 욥의 마음에 절절히 공감할 것입니다. 욥의 발언 역시 1-2장의 하늘에서 벌어진 사건을 모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고통이 어쩌면 가장 괴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친구들처럼 고난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유를 찾아 해석하려는 것입니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참된 안식과 영원한 생명을 소망합니다. 인생의 가장 큰 소망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소망 없는 세상의 방법들을 버리고 생명의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참된 구원의 은혜를 넉넉하게 맛보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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