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데살로니가전서(05-01)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11절


어떤 사람이 무디(Moody)에게 와서 구원 받은 것 같이 않아서 걱정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무디는 그에게 “노아의 방주 안에는 안전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물론이죠!”라고 대답했습니다. 무디는 “무엇이 노아를 안전하게 만들었을까요?”라고 하면서, “방주 때문에 안전했을까요? 아니면 노아의 느낌 때문이었을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 때 느낌으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구원 받은 사실을 깨닫게 되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가지고 있었던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의문들을 대답해 줍니다. 성도들이 어떤 자세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교훈합니다. 사도 바울의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한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마지막 권고입니다.

 

도적 같이 임할 재림(1-3)

이 세상은 밤과 같은 점점 어두워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바울시대보다 훨씬 더 영적, 윤리적으로 어둠이 깊어 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빛의 자녀들의 사명이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권면하신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1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1-3)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 죽은 사람의 문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주님의 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만약 내일 재림하신다면 오늘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라는 화두로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을 도적과 같이 임할 것을 전제합니다. 이것은 아무도 그 때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재림이 반드시 있음을 말합니다. 주님은 반드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종말에 대해 부정하거나 무시하거나 오해하고 있습니다. 종말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이 어디 있냐고 조롱하고, 종말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종말이 없다고 무시하면서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종말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들은 종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열심히 하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든지 간에 예수님의 재림인 종말은 그때가 반드시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에 대해서 최대의 관심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재림의 시기에 대해 정확한 시기와 날짜는 알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재림에 시기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태복음 24:36-44)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를 알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는 오직 하나님만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서 시기를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은 거짓 교사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성도들이 그들에게 현혹을 당할 것입니다(마가복음 13:5-6).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징표는 모든 사람들이 분명히 볼 수 있도록 구름을 타고 오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계시록 1:7). 그러므로 성도들이 어떤 사람이 메시아인지 혹은 자신들이 사는 시기가 마지막 때인지 궁금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것들에 집착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대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재림은 만약이라는 상황이 아닙니다. 예고 없이 도적같이 임하실 현실적인 상황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어떻게 오실 것인지에 대해서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께 다시 오신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성도들에게 중요한 것은 재림하실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을 준비하는 것을 임산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임산부들은 자신의 출산일을 예정하여 모든 것을 준비합니다.

그래서 재림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은 거짓된 평안과 거짓된 안정감에 사로잡혀 “평안하다, 안전하다”(3)고 할 것입니다(예레미야 6:14). 하지만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날이 날벼락과 같은 일이 되고 맙니다. 모든 것이 끝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다른 기회도 연기도 없습니다. 더 이상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것이 세상의 마지막인 종말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하나님 없이도 평안하다, 안전하다’를 외칠지라도 성도들은 ‘지금이 그리스도 안에서 깰 때이다’라고 외쳐야 합니다.

 

재림을 맞이할 준비들(4-8)

같은 사건이라 할지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관점이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성공적인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위험한 상황일 수 있습니다.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 다르게 살아가야할 점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4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4-6)

 

사도 바울은 먼저 세상 사람들이 종말에 대해 무지한 상황을 잠들어 있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깨어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비록 그 시기와 때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재림은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고, 징조들을 통해 이미 알 수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재림에 대한 성도들의 준비는 그 시기를 아는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깨어서 근신하는 것이 준비입니다.

 

사도 바울은 재림에 대해서 세상을 향한 교회의 책임을 이야기 합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이야기 해주어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무지한다고 해서 내버려 둘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삶이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에게 해답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삶 가운데 예수님께서 언제 오시든지 재림을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무지한 세상 사람들이 당신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에 대한 해답을 얻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죄 안에서 빈둥거리거나 유혹에 빠져 있거나, 자신의 의심에 공격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날마다 영적으로 교제하며 하나님을 가까이 동행하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 재림의 자세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성도들은 그렇게 세상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또 다른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잠든 자들을 깨워야할 사명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할 사명입니다. 복음을 전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7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7-8)

 

사도 바울은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준비 상황을 무장 군인을 비유로 해서 설명합니다. 데살로니가서 보다 후에 기록된 에베소서에는 더 자세하게 소개합니다(에베소서 6:10-18). 이것에서 소개한 흉배와 투구는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무기입니다. 이런 무기를 가지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말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경계하라, 분별하라’는 의미입니다. 분명하게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삶, 참 진리를 선택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욕심이 이끌려서 미혹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사도바울은 근신하라고 권고합니다. 근신(勤愼)은 ‘self-control’이란 단어입니다. 자신과 싸워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근신하는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근신과 관련해서, 자기 자신을 무장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장해야할 것들을 ‘흉배(胸背)’와 ‘투구(鬪毆)’를 말합니다.

‘흉배’는 가슴을 붙이는 것은 마음을 믿음과 사랑으로 지키라는 의미입니다. 종종 살다보면 세상이 부럽고 손 내밀고 싶을 때가 찾아옵니다. 그 때에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더욱 더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으로 주님의 복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해야 합니다. 그러면 ‘투구’는 머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인 감성과 지성 중에서 지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살다보면, 주님의 뜻과 계획에 대해 질문과 의심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해답을 알 수 없겠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다보면, 주님께서 재림하셨을 때, 지금 알 수 없었던 질문들이 명확하고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믿음과 사랑이라는 방탄조끼를 입고,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소망의 투구를 쓰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마지막 때를 살아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싸움을 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영원히 함께 할 최후 승리(9-11)

마지막에 이기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인생이 무너질 것 같을 때, 더욱 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 역사의 마지막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9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10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9-11)

 

사도 바울은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구원에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의지하고 살아가지만 때로는 너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그런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울 때 일수록 삶을 흔드는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셨을 때, 이룰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는 다른 시간 개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세우심’(9) 또는 정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구원’과 ‘획득’이란 말을 병행해 사용합니다. 단지 구원을 받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획득하도록 정해 놓으셨다는 의미입니다. 끝까지 구원을 붙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특별히 이 일은 우리가 자든지 깨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10) 하시는 예수님의 강한 소망에 근거합니다. 나보다 더 나를 갈망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대에 부응해 우리의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세상과 구별된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지나치게 관심 가졌던 예수님의 재림 전에 죽은 사람들이나 지금 살아있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함께 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성도들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 때문에 영생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은 미래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성도들이 사는 방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성도들은 믿음의 형제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 피차 격려하고 덕을 세우며 살아가야 합니다(11). 한 몸의 지체로서 서로 격려하고 세워주어야 합니다. 격려한다는 것은 좋은 말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에게 꼭 필요한 것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우려서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누군가에게 격려가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성도들의 모습을 보고 그리스도를 더 닮고 싶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혼자 싸우는 전쟁은 패하기 쉽지만, 서로 협력하면 더 쉽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는 영적인 싸움을 하다가 지쳐서 위로를 기다린 성도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미시길 바랍니다. 그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재림을 소망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어서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연약한 형제들을 향해 서로 세워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자신에게 주신 사명에 끝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