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03-01)
디모데를 파송한 목적
데살로니가전서 3장 1-13절
속담 중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행한 일이 힘들 때 끝까지 하라는 권고입니다. 때로는 지내온 반보다 나머지 반이 훨씬 고통스럽습니다. 구원을 받은 것도 기적이지만 구원 받은 후에 그 믿음을 지켜 나가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 이유는 바른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은데, 주변의 환경이 녹녹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이 성도들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디모데를 다시 보낸 목적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를 통해 그들에 대한 들려온 소식은 고난 가운데서도 승리하고 있다는 매우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머물지 말고 더욱 성숙한 성도들로 성장하길 간구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를 파송한 바울(1-5)
부모님의 마음은 항상 자식을 향한 불타오릅니다. 특히 어렵거나 힘든 자녀가 있으면 그 자녀에게 부모님의 마음이 집중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아버지의 마음 역시, 영적 자녀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불타오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1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 2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3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4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5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1-5)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볼 때, 두렵고 떨렸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영적인 자녀들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 폭도들에 의해 데살로니가를 쫓겨나올 때, 심리적인 부담은 매우 컸습니다. 그들에게 말씀을 더 이상 전하지 못한 것은 안타까워했습니다. 자신에게 핍박을 가했던 것처럼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에게 극심한 핍박을 가할 것입니다. 그들이 이것을 견디어 낼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남아 있었습니다.
(1) 디모데를 보냄(1-2)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다시 보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사단의 방해로 가지 못했습니다(2:17-20). 데살로니가 서오들은 초신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신학적 지식이 충분하지 못했으며, 그곳에서 일어난 박해가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나중에 디모데가 바울에게 돌아와서 그들의 상황 보고는 떠날 때 우려와는 달랐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다시 데살로니가에 보내면서 디모데가 다시 데살로니가로 돌아가는 목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일행은 ‘참다 못하여’(1) 자신은 아테네에 남아 있기로 하고,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내어 그들의 형편이 어떤지 알아보고 그들을 영적으로 격려하는 일을 맡기기로 했습니다. 사도행전 17:15을 보면, 바울이 아테네에 있는 동안 디모데와 실라가 마게도냐에서 아테네로 돌아와 합류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1-2절에 나타난 결정으로 인해 바울과 실라는 아테네에 채루하고 디모데를 다시 데살로니가로 파송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대 사회에서 여행은 오늘날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도 교회의 안녕을 위하여 자신들의 안위는 뒷전에 두고 장거리 여행을 마다하지 않았던 헌신적인 교회 지도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형제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동역자인’(2) 디모데를 파송했습니다. 바울은 자신과 일행이 전한 복음을 ‘우리의 복음’(1:5), ‘하나님의 복음’(2:2,5,9)에 이어 ‘그리스도의 복음’(3:2)이라 부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주체이고 핵심이 시기 때문입니다. 디모데를 파송한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을 강하게 하고 격려하기 위함이었습니다(2). 바울은 사단이 그들의 믿음을 흔들 때 무너지지 않도록 그들을 강하게 만들기 원했고, 시련 앞에 믿음을 지키도록 격려하기 원했습니다.
(2) 박해가 가져온 위험(3-4)
바울은 박해로 인해서 아무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돕는 것이 그들이 세움 받은(케이메다) 목적이라고 밝힙니다(3).
바울의 일행은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성도가 된 이후에도 그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교육하고 격려하는 일에 힘을 쏟았습니다. 성도를 생산하는 일과 그들이 건강한 성도가 되게 하는 일은 선후를 따질 수 없이 중대한 사명이었습니다.
4a절은 ‘우리는 너희에게 우리가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을 미리 말했다’고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일행과 데살로니가 성도들 모두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우리’(inclusive we)입니다. 바울은 일행의 환난(데살로니가전서 3:7)만 아니라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환난(데살로니가전서 1:6; 3:3; 2:14)을 전부터 예견했고, 예견대로 실제 박해가 찾아왔습니다(4b).
(3) 디모데를 보낸 이유(5)
5절은 바울이 디모데를 보낸 목적을 한 가지 더 제시하는데,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라고 소개합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우리’를 사용하다가 여기에서 ‘나도’라고 단수를 사용한 것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생겨난 일을 알기 위해 디모데를 보내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이 자신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시험하는 자’, 즉 사단은 하나님의 일꾼들의 사역을 좌절시키기 위하여 휘방하거나 올가미를 놓아 영적 붕괴시키고자 합니다(마태복음 4:3; 고린도전서 7:5). 시험하고 박해하지만, 그들은 시험을 이겨내고 ‘우리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참조. 고린도후서 15:58; 빌립보서 2:16) 바울의 일행은 디모데를 파송했습니다. 후에는 아테네와 고린도에서 디모데가 가져오는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난을 허락하시는 목적은 성도들을 괴롭히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환난의 도가니를 통과해 정결하고 성숙한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발견하고 성장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현재 삶의 모습이 영적 자녀들에게 좋은 본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 자녀를 향한 기쁨(6-8)
영적 지도자, 말씀을 전하는 자의 보상은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 믿음 가운데 굳게 서있는 일을 보는 일입니다. 그들이 날마다 믿음으로 성장하고 어려움 속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모습이 기쁨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보면서 그 기쁨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6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7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8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6-8)
사도 바울에게 주는 기쁨은 큰 것에 있지 않습니다. 디모데가 데살로니가에서 돌아올 쯤에 바울은 핍박으로 아덴을 떠나 고린도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도 또한 극심한 핍박과 환난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잘하고 있는 소식을 전해들고 극심한 어려움을 겪는 중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1) 데살로니가 성도의 애정(6)
마침내 디모데가 실라와 함께 돌아왔습니다(사도행전 18:5).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라는 구절로 볼 때 데살로니가전서는 디모데의 귀환 직후에 고린도에서 쓰였을 것입니다. 마음에 근심과 걱정을 갖고 있던 바울은 디모데가 가져온 좋은 소식을 듣고 기쁨의 환호를 질렸을 것입니다.
디모데가 가져온 소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소식은 그들이 영적으로 믿음과 사랑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8회 등장하며, 사랑은 7회 등장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 충실했습니다. 박해로 인해 낙담하지 않고 서로 사랑은 서로 밀접한 관계 속에서 제시되는 경우가 많으며, 갈라디아서 5:6에서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형제들과 전도자들을 향한 사랑에서 확인되고 있다고 말합니다(‘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둘째 소식은 그들이 바울의 일행에 대한 ‘좋은 기억’을 계속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어쩔 수 없이 데살로니가를 떠날 수밖에 없는 과거 상황에 대해, 감사하게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고 나쁜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디모데는 그들이 바울과 일행을 간절히 보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것은 바울과 선교팀이 느끼는 것과 동일한 감정이었습니다.
(2) 데살로니가 성도의 상태(7-8)
데살로니가 성도만이 아니라 바울과 일행도 어려운 시간(궁핍과 환난, 7절)을 겪었습니다. 그런 일행에 디모데가 좋은 소식(6절의 ‘믿음과 사랑’, ‘우리를 잘 생각하여’를 ‘믿음’이라는 단어로 요약)을 전해주었을 때, 일행은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8절은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고 하는데, ‘데살로니가 성도 여러분이 주 안에 굳게 서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으니, 우리는 이제 살맛이 난다’ 정도로 의역이 가능합니다. 믿음 안에 굳게 서는 것의 중요성은 바울이 다른 서신들에서도 강조하는 바입니다(고린도전서 16:13; 갈라디아서 5:1; 빌립보서 1:27; 4:1). 성도들이 핍박에 굴복하지 않고 믿음 안에서 인내하였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을 때 사도는 기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들과 아름다운 교제를 통해 자신의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시험과 환난 가운데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어떻게 믿음을 지킬까 걱정했는데, 그들이 굳게 선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하나님 앞에 안위를 얻고 감사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의 성장된 모습에 지도자들에게 감사를 표현할 때, 지도자들이 많은 위로를 받고 더욱 힘 있게 사역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작은 배려는 영적 지도자를 세우는 일들을 할 것입니다.
영적 자녀를 향한 간구(9-13)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모든 것을 주시면서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신 기쁨은,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 위에 굳게 서있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진정한 열매입니다. 사람들은 짧은 인생 동안에 많은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적인 관점에서 선택합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과 거룩함’을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9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10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11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갈 수 있게 하시오며 12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13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9-13)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간절히 보고 싶었습니다. 간절히 다시 보고 싶은 이유는 거짓 교사들처럼 어떤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 생활을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그들을 위해 이 세 가지를 간구했습니다.
(1)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볼 소망(9-10)
바울 일행은 그들이 느끼는 감사를 하나님께 보답할 길이 없다고 말합니다. 문자적으로 ‘우리가 기뻐하는 모든 기쁨’(9)이라는 헬라어 표현은 그들이 느끼는 기쁨의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됐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감사만 표현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한 간구를 더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10).
바울은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기’ 원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전서 1-3장의 분위기를 볼 때 바울이 이 교회에 심각한 결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표현은 그들의 믿음이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할 필요성을 바울이 느꼈고 그 부분을 돕기 원했다는 의미입니다.
(2) 그들에게 돌아가 도울 수 있도록 기도함(11-13)
바울은 희구법(optative)을 사용하여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소원을 아뢰는 기도를 합니다. 소원의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데살로니가를 다시 방문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길을 인도해달라는 간구합니다(11). 둘째는 데살로니가 성도 서로와 모든 사람에 대해 사랑이 차고 넘치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12). 셋째는 첫째와 둘째 기도가 이루어진 결과 그들의 마음이 흠 없도록 종말에 하나님 앞에서 세워지기를 간구합니다(13). ‘그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참조. 슥 14:5[칠십인역]; 신명기 33:2)와 ‘거룩함에 있어서’라는 동족어의 중복적 표현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마음이 성도라는 이름답게 ‘거룩’하게 준비되기를 바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바울의 감사와 간구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격려와 교육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들이 핍박을 받는 중에 믿음을 잘 지켜온 것에 대해 격려하면서도, 그들이 완벽하지 않음을 상기시키며 성도와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을 통해 더욱 성장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재림을 맞이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그냥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화산이 폭발하듯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절대로 인위적인 사랑이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진실한 사랑은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랑을 합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에서 사랑이 넘치는 삶과 거룩한 삶은 절대 떨어질 수 없습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성도들은 날마다 사랑과 거룩함이 충만한 삶을 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본받아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거룩함으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부드러운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험악한 세상을 승리할 수 있는 힘이 이곳에서 나옵니다. 날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며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기대하시는 진정한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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