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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02-01)

 


모범적인 전도자 바울

데살로니가전서 2장 1-12절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을 하는 목적에 따라 하려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일에 열정을 가지고 하지만, 타인에 의해 마지못해 무기력하게 일을 해나갑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은 사람들이 볼 때에만, 자신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은 자기에게 이익이 될 때에만 열심히 일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일행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고린도로 피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을 무너뜨리기 위한 바울의 사역에 대한 공격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에 대한 일들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순전하고 신실하게 사역했는지를 증언합니다.

 

복음을 위한 진정한 헌신(1-4)

좋은 환경은 항상 좋은 결과를 약속하지는 않습니다. 풍성한 삶을 사는 비결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환경을 초월합니다. 오히려 주어진 환경을 좋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환경이란 언제나 변할 수 있습니다.

 

1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2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3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4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1-4)

 

사도 바울 일행이 전했던 유럽 선교의 일정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바울은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기 원했지만, 성령께서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류시키시고 유럽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유럽 지역에 첫 선교지는 빌립보였고, 두 번째 선교지가 데살로니가였습니다. 이 두 지역에서 바울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합니다. 그의 모습을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2)라고 소개합니다. 데살로니가에서 계속적으로 어려움 중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더 나가서 유대인들이 일으킨 소동으로 인해 밤중에 급히 떠나야 했습니다(사도행전 17:1-10). 이러한 일들은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적은 열매를 얻었기 때문에 실패한 헛된 일처럼 보였습니다. 바울은 그것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1).

 

세상에서 일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고 수고한 것만 헛되지 않습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지만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하십니다(시편 126:6). 지금은 그 열매가 희미하게 보이지 않아서 어리석어 보이지만,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가는 것은 때가 이르면 30배, 60배 100배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일들은 아무리 화려해도 결국은 헛된 일이며, 허망한 일이 많습니다. 기쁨으로 심어서 눈물로 거두는 일들이 허다합니다. 그러나 결코 헛되지 않는 일은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이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열매 맺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 데살로니가에서 바울을 쫓아낸 반대자들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속였다고 모함했습니다. 바울이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다가 어려움이 생기면 가차 없이 떠나 버리는 순회 철학자나 다름없다고 비난했습니다.

이러한 비난을 염두에 두고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동기와 목적을 설명하여 반대자들의 비난에 반박하고 있습니다. 순전한 마음과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자세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스스로 이익이나 기쁨을 위해서가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그 당시는 지역에 대학이나 학교가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순회 철학자들과 순회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가르침과 철학을 전하고 대가를 받았습니다. 많은 헬라 철학자들이 전 그리스 지역을 다니면서 그렇게 했습니다. 바울도 종종 그런 오해를 받았습니다. 마치 떠돌이 순회 철학자들처럼 복음을 통해서 돈을 버는 사람처럼, 자기 경제적인 이익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람처럼 오해해서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복음 전하는 자세를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자세하게 말합니다. 자신이 데살로니가에 갔던 것은 어떤 궤계나 속임수 그리고 아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고 간 것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서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람을 보지 않고 세상의 인정과 명예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한 일만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복음을 위한 헌신된 자세(5-10)

사람들의 실수와 허물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하나님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복음 전할 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복음 전도자의 말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삶과 태도를 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할 때 어떤 태도로 복음을 전했는지에 대해 나누고 있습니다.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6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7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8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9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10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5-10)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개척했던 장본인이고, 예수 그리스도께 위임받은 사도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들에게 권세와 권위를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권위로 나가지 않고 오히려 유모(乳母)처럼 섬기는 자로 나갔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영적인 권위는 섬김의 권위이며 희생의 권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갔던 것은 무엇을 얻으려고 갔던 것이 아니며, 복음을 줄 뿐 아니라 할 수 만 있다면 생명까지도 너희를 위해서 주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이유가 ‘너희는 나의 사랑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8).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초청은 우리들로부터 대가를 요구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생명을 통해 구원의 복음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혹시라도 돈 때문에 사역한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그는 손수 텐트를 만들어가면서 자비량(Tent Maker)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복음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것을 헌신하고 수고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흠이 없는 삶을 살아온 것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합니다.

 

10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10)

 

바로 이 시대에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는 가장 필요한 말씀입니다. 이 시대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세와 삶 그리고 말과 행동이 하나 된,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삶이 매우 중요합니다. 복음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실수와 잘못 때문에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세상이나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이 거룩하고 옳고 흠이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어야합니다.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보다 더 복됩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은 생명을 담고 있는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거짓과 탐심의 탈은 믿음의 생활에서 제거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목자의 심정으로 사람들을 순수하게 사랑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생생하게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음(11-12)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통해 복음을 전하길 원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도록 명령하셨을 뿐 아니라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주신 말씀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신 말씀입니다.

 

11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12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11-12)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제 막 설립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린 자녀를 대하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사랑으로 위로하고 권면합니다. 부모의 심정으로 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말로 가르칠 뿐 아니라 몸소 흠 없이 바르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영광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때까지 만족함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사랑이 없기 때문에 사랑의 원형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뒤에야 사랑을 나눠 줄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서 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랑은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성도들이 나눌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때로 젖먹이를 기르는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때로는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성도들을 훈계했습니다. 이런 사역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 모두의 몫이 돼야 합니다.


복음이 자신에게 전달될 때까지 수고와 헌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수고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교회 안에서 영적인 자녀로 양육을 받고 또 다른 사람을 양육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서서,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감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힘이 있게 복음을 전파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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