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06-01)
경건을 이익으로 삼는 거짓 교사들
디모데전서 6장 3-10절
예수 그리스도의 건전한 교훈에서 떠나서 헛된 논쟁에 빠진 자들과 자신의 물질적인 이익을 위해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경계하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편지를 시작하면서 거론했던 바른 교훈과 경건한 삶의 주제를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다시 거론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전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열매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바른 교훈은 어떤 삶과 인격의 열매를 가져옵니까?
바울은 성도들에게 경건으로 인도하는 권면의 말씀을 한 후, 이제 경건에서 떠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고 경계하라고 교훈합니다. 그들은 돈에 대한 탐심 때문에 진리의 복음을 버리고 떠난 자들입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모든 악의 근원이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가진 것을 족하게 여기면서 경건하게 살 것을 명합니다.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3-5)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나온 교훈만이 바른 교훈입니다. 그 교훈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백성으로 만들어갑니다. 그들의 열매는 사랑과 연합과 화평이지만, 반면에 잘못된 다른 복음은 다툼과 교만과 악한 생각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공동체 안에 분열을 낳으며 사랑 대신에 미움을 낳습니다.
3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3-5)
거짓 교사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공부하며 그대로 사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 진리에서 나온 경건에 관한 교훈이 아니면 다른 복음입니다. 바울은 다시 복음의 진리에서 떠난 거짓 교사들의 외형적인 특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⑴ 진리의 말씀에서 떠난 거짓 교사들(3)
먼저 거짓 교사들은 진리의 말씀이 아닌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다른 교훈’이란 거짓된 교훈이란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은 그리스도의 올바른 말씀에서 떠나 다른 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 성도들에게 상당히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가르침으로 들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가르침은 성도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것으로 다가왔으며 그럴수록 그 피해는 더욱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그들을 흉악한 이리 떼에 비유했습니다(사도행전 20:29), 그러나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 아무리 그럴듯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복음의 진리와 다른 거짓 가르침일 뿐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1:6에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헛된 말’이라고 했으며, 4:1에서는 ‘귀신의 가르침’이라고 정죄했습니다. 그러므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단순히 다른 것이 아니라 ‘헛된 것’이고, ‘거짓된 말’이며, ‘귀신의 가르침’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복음은 ‘바른 말씀’입니다. 올바른 말씀은 거짓 교사들의 다른 가르침과 대조됩니다. 올바른 말씀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둘째, 복음은 ‘경건에 관한 교훈’입니다. 바른 복음의 특징은 성도들을 경건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러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경건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다음 4절 이하에 설명하는 것처럼, 분쟁을 일으키고 투기와 비방과 같은 모든 불의한 행위를 불러일으킵니다.
⑵ 거짓 교사들의 특징(4-5)
경건케 하는 복음에서 떠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옵니까? 바울은 이 결과에 대해서 4-5절에서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바울은 먼저 거짓 교사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도 교만하게 행하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교만’이란 자신을 과장하여 부풀리는 것을 말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자신을 뽐내려고 하는 건전하지 못한 욕망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러한 욕망은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거짓 교사들이 변론과 논쟁을 좋아했던 것은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건전한 욕구에서 비롯된 젓이 아니라 자신을 과장하여 드러내 보이려고 하는 건전하지 못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한 욕망에서 비롯된 논쟁은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불의와 불법을 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바울은 그들의 변론과 논쟁이 가져오는 결과가 어떤 것인지 다섯 가지로 설명하는데 그것은 투기, 분쟁, 비방、악한 생각 그리고 다툼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부정적인 결과를 생산하는 거짓 교사들이 어떤 존재인지 다시 설명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마음이 부패한 사람들이며, 진리를 잃어버린 자들이고, 경건의 말씀을 물질적인 이익을 챙기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자들입니다(5). 여기서 마음이 부패한 것과 진리를 잃어버린 것은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러한 상태를 계속해 왔다는 것을 의미하고, 반면에 경건의 말씀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한다는 것은 그들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거짓 교사들의 마음이 부패한 것은 진리를 잃어버린 결과입니다. 진리에서 떠난 그들은 마음이 부패해졌고, 경건의 복음을 물질적 이익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거짓 교사들의 주된 관심사가 물질적인 이익에 있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복음을 경건한 신앙의 기초로 생각지 않고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건전한 교훈이 아니라 다른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의 특징은, 교만하며 쓸데없는 논쟁에 열정을 쏟아 붓고, 교회를 분열시킵니다. 또 그들의 마음은 부패해서 진리의 말씀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경건마저도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목적이 있다면 그들의 가르침은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였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에 관하여(6-10)
경건에 관한 교훈을 버릴 때 마음이 부패하고, 결국 경건에는 관심이 없고 그것을 통해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 데만 몰두하게 됩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고 종교를 상업적 이득의 도구로 이용하게 됩니다. 이처럼 부패한 말씀은 부패한 마음을 낳습니다.
6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6-10)
세상의 어떤 것보다 진리를 사랑해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여 돈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도록 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제 경건을 통한 이익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⑴ 자족하는 경건의 이익(6)
거짓 교사들이 복음을 물질적 이익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지적한 바울은 이제 디모데에게 탐심을 버리고 가진 것에 만족하라고 권면합니다. 경건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첫째는 6절을 어순에 따라 번역하면 ‘큰 이익은 족하는 경건이다’이다. 바울이 ‘큰 이익’이란 표현을 문장의 첫 머리에 둔 것은 그것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이익을 물질적인 것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크고 위대한 이익에 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큰 이익’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지 않지만, 그것은 12절에서 말하는 영생을 가리키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생이 물질적 유익과 비교할 때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입니까! 그런데 그 위대한 이익을 얻는 길은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경건입니다. 바울은 자족하는 마음을 경건과 같은 것으로 묘사합니다. 돈에 대한 탐욕이 모든 죄의 근원이지만 탐심을 버리고 가진 것에 만족하는 것은 경건의 시작입니다.
⑵ 자족해야 할 이유(7-8)
바울은 자족하는 것이 큰 유익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한 후에 이제 자족해야 할 당위성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것은 물질에 대한 탐욕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설명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인간이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다가 죽을 때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 이외에 그 이상의 것들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태어나고 죽는 것을 이 세상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의 인생이 전부가 아니라 어딘가에서 들어왔듯이, 또한 어디론가 가야할 장소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갈 때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면 무엇을 저축하고 쌓아두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먹을 음식과 입을 옷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것은 욕심이며, 그것은 모든 죄를 불러오는 원인이 됩니다. 요컨대, 가진 것을 족하게 여기는 자족하는 마음은 우리를 경건으로 인도합니다.
⑶ 물질에 대한 탐심은 모든 죄의 근원(9-10)
자족하는 것이 경건의 길인 반면에 탐심은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 설명합니다. 부자가 되려는 자는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빠집니다. 시험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시험을 극복하면 연단을 받아 더 굳건한 믿음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탐욕을 가진 자들이 시험을 받게 되면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올무에 떨어지게 됩니다.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빠지게 된다는 것은 탐욕적인 사람으로 전락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부자가 되려는 욕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설명합니다. 그것은 시험에 빠지게 하고 올무에 떨어져 탐욕적인 사람으로 전락하게 만들며, 결국은 멸망에 빠지게 합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는 가룟 유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시험을 받아 예수를 죄인들에게 파는 올무에 걸려들었고 결국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돈이 많은 부자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 욕구에 맹목적으로 집착할 때, 우리가 시험에 빠지고 올무에 떨어지게 됨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을 많이 가진 것 자체는 죄가 될 수 없지만,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이것은 가난한 자에게나 부자에게나 동일합니다. 돈에 대한 탐심은 믿음에서 떠나게 하고, 많은 근심 가운데 고통을 받게 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많은 근심을 찌르는 가시처럼 우리를 괴롭히는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돈에 대한 욕심은 우리를 부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우리를 찌르는 가시가 되어 괴롭힙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 사도는
11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11-13)
이것은 비록 우리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어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진정한 만족은 물질에 만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혼에 말씀으로부터 만족을 누리는 것입니다.
돈에 대한 유혹은 오늘날 사역자들에게도 여전히 맘몬 신으로 강렬하게 역사합니다. 말씀을 가르치면서 보상 받기를 원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이것은 돈에 매이게 하는 함정입니다. 그리고 돈에 매이게 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바른 교훈을 전하는 자들은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을 부탁합니다. 자고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지극히 만족하는 마음은 외부적인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 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의 위험 경고(9-10)
바른 교훈은 경건한 삶을 만들어내고 모든 것에 감사하고 은혜를 의지하는 자가 되게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자족하게 되고, 돈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유보다 관계를 중시하게 됩니다. 돈이 주는 근심보다 주님 안에서 평강을 누립니다.
9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9-10)
돈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데 인생을 겁니다. 그리고 온갖 유혹에 쉽게 빠지고 믿음에서 떠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결국에는 자신의 인생을 멸망으로 이끌게 될 것입니다. 돈이나 물질은 유동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가치 있는 인생을 걸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아프리카에는 큰 돌이 돈의 역할을 하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 돌을 자신의 소유로 삼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겠습니까? 우리들의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보셨을 때, 아무것도 아닌데, 우리들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보다 더 세상의 것을 사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것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탐심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족할 줄 아는 마음이 매우 중요합니다. 즉 지금 내게 있는 것으로 만족할 만큼 자제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지금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하나님에게서 왔으니 다 감사하고, 지금 내게 없는 것들은 아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으니 미련을 두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처럼 자족하는 마음이 있을 때, 돈에 끌려 다니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에서 나온 바른 교훈은 우리로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안전과 평강을 누리게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상대화하고 나의 모든 조건에 대해 감사하게 만듭니다. 바른 교훈은 우리로 여기서 천국을 누리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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